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한 문장 한 문장이 가슴을 저민다

 

더 정확하게 말해보자면

 

억지로 칼로 가슴을 헤집어 문장을 집어넣는 것 같은 느낌이다.

 

너무 아픈 현실을 너무 나긋하고 다정하게

마치 지나간 사랑노래인양 아련하게 표현하여 더욱 슬프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생각하려 하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이렇게 되뇌며 겨우겨우 페이지를 넘기다가 결국 울컥하고 만 것은

어쨌든 난 아침이 오면 출근을 할 것이고

별 것 아닌 일로 인생의 괴로움을 논하며

급여인상을 언제 거론하면 좋을지 따위나 생각하고 있겠지 하는 사실 때문.

 

 

본문의 문장처럼 광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많은 아이들이 또 죽었고, 많은 젊음들이 사라졌고, 가장이 이 추위 속에 굴뚝에 올라가 있다.

 

 

그래도 난 여전히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살아남는 게 가장 큰 미덕인 양 그렇게 살겠지.

이게 사는 건가 라는 생각 따위나 하며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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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몰입은 충분하다.

어떤 부분에서는 감정적 동화까지 일기도 한다.

그럼에도 무언가 서걱거리는 면이 있어 결국 책장 서열(?)에서 하단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1. 아마도 그 첫째 이유는

   소희 라는 여자와의 이야기가 너무 뻔하다는 데 있지 않나 싶다.

   그들의 이야기가 뻔하다는 걸 떠나서

   수도사가 되기로 결심한 청년의 마음을 흔드는 역할로서의 그녀가

   이제껏 드라마, 영화, 심지어 만화에까지도 나오는 캐릭터의 반복이었다.

   그리고 삼총사- 미카엘, 안젤로, 요한의 캐릭터마저

   나 만큼이나 만화를 끼고 산 사람이라면 외모만 읊어도 성격과 행적이 능히 짐작될 정도로

   너무 단순한 인물 설계가 아니었나 싶다.

 

 

2. 인물 설계만큼이나 이야기의 진행 역시 지나치리만큼 매끄럽다.

   이는 바로 일전에 읽은 '속죄' 처럼

   작가가 고심하고 또 고심하여 치밀하게 쌓아 매끄럽다는 것과는 다르다.

   실제로 공지영 씨가 어떤 스타일의 글을 쓰는지

   이 글을 쓰기 위해 어느 정도의 노력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공지영 씨의 글을 읽은 게 이번이 처음이므로)

 

   쉽게 썼다- 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너무 흘러가는 대로 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은 든다.

   그것이 신에 운명을 맡긴 사람의 이야기라서인지

   아니면 본래 그녀의 스타일이라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대로 '모든 건 하나님의 뜻' 이라며 회피해버리고 마는

   몇몇 그릇된 교인의 태도(개인적으로 썩 좋아하진 않는) 가

   소설 전개 방식 자체에서 보이는 것만 같아 좀 불편했다.

   그리고 소설에서 그려지는 역경이 좀처럼 역경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고난과 역경이 너무 자연스럽고 평화롭다.

 

 

3. 하나님을 믿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부정도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부처도 믿진 않지만 그렇다고 부정도 않는다.

   현실이 매트릭스와 같은 거라고 인식해버린 오래 전의 어떤 날 이후로

   내게 있어 세상은 일어날 수 없는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기묘한 곳이다.

   실제 이런 현상은 최근 들어 더 심해지지 않았는가.

   그러나 이것이 창작의 영역에 들어가면 조금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정말 무슨 일이든 일어나서는 안 된다.

   한 때 창작을 업으로 꿈꿨던 이의 결벽증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쨌든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세상이라 하여

   정말 아무 일이나 일어나버리는 소설 속의 세계는

   그 세계가 마음에 들건 안 들건 받아들이기 힘들다.

   누누이 말하지 않았던가. '최소한의 이유라도 있어야 한다' 고.

 

 

4. 이 소설의 좋은 면은

   수도원의 차가운 기류와 주조연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의 관계와 갈등이 흥미롭다는 것.

   그러나 주조연의 의식대로(혹은 습관대로) 흘러가버리는 듯한 이야기가

   '종교와 사랑 사이에서 고뇌할 수도 있었던' 것을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있다' 쯤으로 바꿔버린 듯 하다. 

 

 

5. 문득 이승우 씨의 '지상의 노래' 와 '생의 이면' 이 떠올랐다.

   '높고 푸른 사다리' 가 최악의 작품인 것은 아니지만

   같은 종교(?) 쪽의 이야기라면 차라리 '생의 이면' 이나 '적멸' 이 내 취향에 가깝고 

   사랑 이야기라면 차라리 '달을 먹다' 나 '깊은 슬픔' 이 내 취향에 가깝다.

 

 

6. 뭔가 많이 부족하다. 뭔가가.

   정확한 평점은 별 두개 반~세개 그 사이 어디 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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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은,

 그 애가 품은 악의가 끝까지 거짓 주장을 고수하여

 마침내 그를 완즈워스 감옥으로 보낼 만큼 그렇게 큰 것이었나 하는 점이었다."

                                                                               - 본문 330 페이지

 

 

1. 처음 읽은 것은 아마도 여름의 일.

   다행히 작년 여름까지는 아니고 올해 여름의 일이었다.

   더운 날씨 탓인지 아니면 당시의 생활 탓인지 꽤나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버겁게 읽었고

   솔직히 말해 이런 책이 어디가 좋다는 거야?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무엇보다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은 위에 옮겨놓은 저 문장이다.

   "어린 계집아이가 한 증언이 그토록 힘을 가질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 덧붙여 한 가지 더.

   "그 어린 계집아이는 대체 어떤 망상으로 그를 범죄자로 몰았는가"

 

   처음 읽었을 때도 그랬지만 

   브리오니가 그를 '그렇게' 생각하게 되기까지의 설명이 좀 충분치 않았다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어린 여자아이, 허상에 빠져 사는 아이라는 이유로

   '왜' '무엇 때문에' 가 일절 배제되어 버린 느낌.

 

 

2. 이는 이번에 처음으로 느낀 기묘한 점.

   한 사건을 두고 세 사람의 의견이 충돌한다는 것.

   여기에서 말하는 한 사건이야 어차피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모두 알 수 있을 터이니 생략하고

   한 사람의 인생을 뒤집어놓은 그 사건에 대해 티나지 않게 각자의 주장이 제기되면서도

   그 주장이 서로 상충한다는 것은 내가 볼 때는 꽤나 흥미로운 점이었다.

   무엇보다 '속죄' 라는 제목과 주제를 생각해볼 때

   내가 만약 작가라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주인공의 눈이 되던가, 사건의 대상자의 눈이 되던가 둘 중 하나 일 듯 싶다.

   그런데 굳이 3인칭을 택하여,

   굳이 주인공 마음을 읽어내기도 바쁜 와중에 여러 사람의 내면을 다루어야 했고

   또 그 와중에 굳이 각 사람의 입장까지 서술한다라...

   그 집요함과 결벽성에 박수는 치지만 질린다 는 느낌도 없잖아 있다.

 

 

3. 죄와 벌. 사죄와 용서

   내가 집착하는(?) 몇 가지 주제 중 하나가 '죄와 벌' 이다.

   특히 무심결에 저지른 실수를 갚기 위해

   기나긴 시간을 고통 속에 보내는 그런 이야기에 많이 약한 편이다.

   영화로 따지면 단연 '올드보이' 가 있겠고

   책으로 따지자면...아직까지 '속죄' 외에는 발견한 책이 없다.

   만화 중에서는 아마 잔혹한 신이 지배한다와 토마의 심장 정도

   (남성분들은 접근하기 힘든 내용이겠지만)

 

   '속죄' 를 처음 읽었을 때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던 부분이 1부와 2부의 간극이었다.

   문장의 차이부터 시작해서 문체에서 느껴지는 목소리의 거리까지

   왜 서로 다른 두 글이 1부와 2부로 맞붙어 있는지

   더 정확히 말하자면 1부의 흐름대로라면

   사건 직후의 로비의 삶이 그려졌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법한 부분에

   왜 갑자기 전쟁이 등장하는지 사실 다시 읽으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다 3부 쯤 브리오니가 부상병을 대하는 장면에서 이내 납득이 가고 말았다.

 

   "라티머 이병은 괴물이 되었고, 자신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전에 그를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을까? 그녀는 앞으로도 계속 그를 사랑할 수 있을까?"

 

   브리오니가 정의랍시고 행한 것들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이 정도의 폭력이었던 거다.

 

 

4. 사실 쉬운 책은 아니다.

   길이도 길이거니와 무엇보다 제인 에어나 폭풍의 언덕을 연상시키는 1부가

   상당히 더디게 읽힌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것(?)만 넘어서면

    꽤 높은 몰입도를 자랑하는 페이지들이 기다리고 있긴 하지만..글쎄...

   정밀한 골조에 감탄을 하는 반면,

   너무 잘짜여진 작품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거리감 또한 존재한다.

   분명 잘 짜여진 책이고, 좋은 작품이다.(잘 썼다기 보다는 잘 짜여졌다고 말하고 싶다)

   허나 마음 가라앉히고 똑바로 앉아서 덤벼들어야 할 것 같은 책이라

   정이 간다고는 할 수 없을 듯 하다.

 

 

5. 어쨌든 좋은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좀 더 숨쉴 구석이 있다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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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때문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작가가 여러 차례 길을 잃은 느낌.

그래서 `아이에 대한 애도` 인지 `문학에 대한 애도` 인지 불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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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성별조차 없는, 한낱 객체이고 싶었다.
자신 때문이 아닌 다른 이로 인해 마음과 정신이 흔들리는 것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랬던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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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4-11-30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젠 아니라는 말같아 안심.

cheshire 2014-11-30 22:42   좋아요 1 | URL
시간이 많이 흘렀지요. 많은 부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