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몰입은 충분하다.

어떤 부분에서는 감정적 동화까지 일기도 한다.

그럼에도 무언가 서걱거리는 면이 있어 결국 책장 서열(?)에서 하단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1. 아마도 그 첫째 이유는

   소희 라는 여자와의 이야기가 너무 뻔하다는 데 있지 않나 싶다.

   그들의 이야기가 뻔하다는 걸 떠나서

   수도사가 되기로 결심한 청년의 마음을 흔드는 역할로서의 그녀가

   이제껏 드라마, 영화, 심지어 만화에까지도 나오는 캐릭터의 반복이었다.

   그리고 삼총사- 미카엘, 안젤로, 요한의 캐릭터마저

   나 만큼이나 만화를 끼고 산 사람이라면 외모만 읊어도 성격과 행적이 능히 짐작될 정도로

   너무 단순한 인물 설계가 아니었나 싶다.

 

 

2. 인물 설계만큼이나 이야기의 진행 역시 지나치리만큼 매끄럽다.

   이는 바로 일전에 읽은 '속죄' 처럼

   작가가 고심하고 또 고심하여 치밀하게 쌓아 매끄럽다는 것과는 다르다.

   실제로 공지영 씨가 어떤 스타일의 글을 쓰는지

   이 글을 쓰기 위해 어느 정도의 노력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공지영 씨의 글을 읽은 게 이번이 처음이므로)

 

   쉽게 썼다- 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너무 흘러가는 대로 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은 든다.

   그것이 신에 운명을 맡긴 사람의 이야기라서인지

   아니면 본래 그녀의 스타일이라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대로 '모든 건 하나님의 뜻' 이라며 회피해버리고 마는

   몇몇 그릇된 교인의 태도(개인적으로 썩 좋아하진 않는) 가

   소설 전개 방식 자체에서 보이는 것만 같아 좀 불편했다.

   그리고 소설에서 그려지는 역경이 좀처럼 역경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고난과 역경이 너무 자연스럽고 평화롭다.

 

 

3. 하나님을 믿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부정도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부처도 믿진 않지만 그렇다고 부정도 않는다.

   현실이 매트릭스와 같은 거라고 인식해버린 오래 전의 어떤 날 이후로

   내게 있어 세상은 일어날 수 없는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기묘한 곳이다.

   실제 이런 현상은 최근 들어 더 심해지지 않았는가.

   그러나 이것이 창작의 영역에 들어가면 조금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정말 무슨 일이든 일어나서는 안 된다.

   한 때 창작을 업으로 꿈꿨던 이의 결벽증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쨌든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세상이라 하여

   정말 아무 일이나 일어나버리는 소설 속의 세계는

   그 세계가 마음에 들건 안 들건 받아들이기 힘들다.

   누누이 말하지 않았던가. '최소한의 이유라도 있어야 한다' 고.

 

 

4. 이 소설의 좋은 면은

   수도원의 차가운 기류와 주조연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의 관계와 갈등이 흥미롭다는 것.

   그러나 주조연의 의식대로(혹은 습관대로) 흘러가버리는 듯한 이야기가

   '종교와 사랑 사이에서 고뇌할 수도 있었던' 것을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있다' 쯤으로 바꿔버린 듯 하다. 

 

 

5. 문득 이승우 씨의 '지상의 노래' 와 '생의 이면' 이 떠올랐다.

   '높고 푸른 사다리' 가 최악의 작품인 것은 아니지만

   같은 종교(?) 쪽의 이야기라면 차라리 '생의 이면' 이나 '적멸' 이 내 취향에 가깝고 

   사랑 이야기라면 차라리 '달을 먹다' 나 '깊은 슬픔' 이 내 취향에 가깝다.

 

 

6. 뭔가 많이 부족하다. 뭔가가.

   정확한 평점은 별 두개 반~세개 그 사이 어디 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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