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은,

 그 애가 품은 악의가 끝까지 거짓 주장을 고수하여

 마침내 그를 완즈워스 감옥으로 보낼 만큼 그렇게 큰 것이었나 하는 점이었다."

                                                                               - 본문 330 페이지

 

 

1. 처음 읽은 것은 아마도 여름의 일.

   다행히 작년 여름까지는 아니고 올해 여름의 일이었다.

   더운 날씨 탓인지 아니면 당시의 생활 탓인지 꽤나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버겁게 읽었고

   솔직히 말해 이런 책이 어디가 좋다는 거야?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무엇보다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은 위에 옮겨놓은 저 문장이다.

   "어린 계집아이가 한 증언이 그토록 힘을 가질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 덧붙여 한 가지 더.

   "그 어린 계집아이는 대체 어떤 망상으로 그를 범죄자로 몰았는가"

 

   처음 읽었을 때도 그랬지만 

   브리오니가 그를 '그렇게' 생각하게 되기까지의 설명이 좀 충분치 않았다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어린 여자아이, 허상에 빠져 사는 아이라는 이유로

   '왜' '무엇 때문에' 가 일절 배제되어 버린 느낌.

 

 

2. 이는 이번에 처음으로 느낀 기묘한 점.

   한 사건을 두고 세 사람의 의견이 충돌한다는 것.

   여기에서 말하는 한 사건이야 어차피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모두 알 수 있을 터이니 생략하고

   한 사람의 인생을 뒤집어놓은 그 사건에 대해 티나지 않게 각자의 주장이 제기되면서도

   그 주장이 서로 상충한다는 것은 내가 볼 때는 꽤나 흥미로운 점이었다.

   무엇보다 '속죄' 라는 제목과 주제를 생각해볼 때

   내가 만약 작가라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주인공의 눈이 되던가, 사건의 대상자의 눈이 되던가 둘 중 하나 일 듯 싶다.

   그런데 굳이 3인칭을 택하여,

   굳이 주인공 마음을 읽어내기도 바쁜 와중에 여러 사람의 내면을 다루어야 했고

   또 그 와중에 굳이 각 사람의 입장까지 서술한다라...

   그 집요함과 결벽성에 박수는 치지만 질린다 는 느낌도 없잖아 있다.

 

 

3. 죄와 벌. 사죄와 용서

   내가 집착하는(?) 몇 가지 주제 중 하나가 '죄와 벌' 이다.

   특히 무심결에 저지른 실수를 갚기 위해

   기나긴 시간을 고통 속에 보내는 그런 이야기에 많이 약한 편이다.

   영화로 따지면 단연 '올드보이' 가 있겠고

   책으로 따지자면...아직까지 '속죄' 외에는 발견한 책이 없다.

   만화 중에서는 아마 잔혹한 신이 지배한다와 토마의 심장 정도

   (남성분들은 접근하기 힘든 내용이겠지만)

 

   '속죄' 를 처음 읽었을 때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던 부분이 1부와 2부의 간극이었다.

   문장의 차이부터 시작해서 문체에서 느껴지는 목소리의 거리까지

   왜 서로 다른 두 글이 1부와 2부로 맞붙어 있는지

   더 정확히 말하자면 1부의 흐름대로라면

   사건 직후의 로비의 삶이 그려졌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법한 부분에

   왜 갑자기 전쟁이 등장하는지 사실 다시 읽으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다 3부 쯤 브리오니가 부상병을 대하는 장면에서 이내 납득이 가고 말았다.

 

   "라티머 이병은 괴물이 되었고, 자신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전에 그를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을까? 그녀는 앞으로도 계속 그를 사랑할 수 있을까?"

 

   브리오니가 정의랍시고 행한 것들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이 정도의 폭력이었던 거다.

 

 

4. 사실 쉬운 책은 아니다.

   길이도 길이거니와 무엇보다 제인 에어나 폭풍의 언덕을 연상시키는 1부가

   상당히 더디게 읽힌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것(?)만 넘어서면

    꽤 높은 몰입도를 자랑하는 페이지들이 기다리고 있긴 하지만..글쎄...

   정밀한 골조에 감탄을 하는 반면,

   너무 잘짜여진 작품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거리감 또한 존재한다.

   분명 잘 짜여진 책이고, 좋은 작품이다.(잘 썼다기 보다는 잘 짜여졌다고 말하고 싶다)

   허나 마음 가라앉히고 똑바로 앉아서 덤벼들어야 할 것 같은 책이라

   정이 간다고는 할 수 없을 듯 하다.

 

 

5. 어쨌든 좋은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좀 더 숨쉴 구석이 있다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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