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438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처럼 날이 선선한 오전이길래 스토너를 재독해야지 싶어 폈다가

 

회사일로 인한 문자를 몇 차례 받고 나니

바로 마음의 평정이 깨져 안정을 찾기 위한 일환으로 시집을 꺼내들었다.

 

안정이 찾아졌는가? 라기보다는 조금 멍해졌고

 

치유가 되었는가? 라기보다는 견딘다는 말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한강 씨의 글을 읽다 보면 떠오르게 되는 계절은 이상하게도 여름이다.

 

그녀의 글에서 느껴지는 쓸쓸함이라던가 인간 존재의 고독이라던가를 생각하면

 

쓸쓸한 겨울밤이 떠오를법도 한데 내가 느끼는 그녀 글의 이미지는

 

듬성듬성 그늘이 드리워진, 유난히 햇빛이 강한 인적 없는 어느 여름의 골목길이고

 

그늘에 서 있는 누군가가 햇빛이 강한 부분을 보면서

'저기를 다시 가려면 얼마나 뜨거울까' 를 생각하는 거다.

 

그럼에도 골목을 벗어나려면 다시 햇빛이 강한 부분을 지나야 하고

 

그는 그렇게 햇빛에 살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견디고

다시 그늘을 만나 잠시 위안삼다가 다시 해를 맞서야 하는 과정

 

한강 씨의 글의 느낌은 이런 식의 견딤을 이미지화한 듯한 느낌이다.

 

 

삶을 견딘다 란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무엇보다 '삶' 이란 단어 자체가 주는 묵직함 탓에

'사는 게' 라고는 말해도 '삶' 이라 말한 적은 크게 없는 것 같다.

 

다만 한창 무기력과 우울에 빠져 있을 때

 

하루치의 목표치를 정해두고 그것을 달성하는 걸로 겨우 무기력을 헤어나온 기억은 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하루하루 견디다 보면

어느 틈엔가는 괜찮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 있다.

 

지금도 살아가는 게 뭔지는 모른다.

 

만화로라도 뭔가 그리고는 있다 하지만

결국 작가 비슷한 존재로는 살아보지 못 한 채 그냥 그렇게 끝날 수도 있다.

(사실 그렇게 끝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지금은 무엇이든 하는 게 더 견디기 쉽다 생각하는 바이고

 

결국 내가 하는 이익과 상관없는 일련의 행동들은

어찌 보면 생존을 위한 발버둥이 아닐까 하는 생각.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6-06-26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이 이 시집을 읽었을 때 내용이 어려웠습니다. 최근에 <흰>을 읽은 뒤에 다시 시집을 읽었습니다. 여전히 한강의 시가 어려웠지만, 저도 시 역시 소설처럼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이미지화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cheshire 2016-06-26 18:25   좋아요 0 | URL
`흰`은 나오자마자 구매하긴 했지만 아직 읽기 전입니다. 시도 좋긴 하지만 사실 저역시 어려운 부분이 더 많고 제가 좋아하는 부분은 시 보다는 소설에서 더 많이 보여지는 것 같아 그래도 아직은 시보단 소설이 좋은 것 같습니다. 물론 소설이란 장르가 그래도 그나마 친숙하다는 점도 있겠지만요.
 

1. ....교화란 걸 처음으로 목격한 기분

2. 교화와 동시에 명예욕이란 건 지식이나 교양과는 상관없는 것이란 느낌

3. `아이` 가 계속해서 `순교`를 꿈꾼 이유는 뭘까

4. 작가의 말인지 아니면 출판사의 덧댐인지 모르겠지만 권말에 실린 시지프스의 시각으로 본 소설을 해석하면 많은 것을 놓치리란 느낌

5. 썩 유쾌한 책은 아니다. 왠지 파리대왕이 생각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지의 세계 민음의 시 214
황인찬 지음 / 민음사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나의 오랜 악습 중 하나는 글을 이미지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소설이건 시이건간에 문장을 통해 연상되는 이미지가 있는지가 중요하고

   그 이미지가 마음에 드는지가 중요하다.

   그림 그리던 시절 어떻게든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던 습관이 남아있는 탓이라 생각된다.

 

2. 아마 그 악습의 영향이지 싶다.

   비소설과 지식이 넘쳐나는 소설에 약한 까닭은.\

   정보와 교양의 틈바구니에서 나의 연상이 끼어들 틈이라곤 없어 보였기에

 

3. 빨간 책방에서 건축 이라는 시의 낭독을 듣고 바로 구매해버린 시인의 책이다.

   전작인 '구관조 씻기기' 와 '희지의 세계' 를 같이 구매했다.

   취향으로 따지자면 '희지의 세계' 가 좀 더 마음에 든다.

 

4. 사실 시에 대해서는 뭐라 말할지 모르겠다.

   그의 언어에 대해 평하자니 내가 너무 아는 것이 없고

   그의 발상에 대해 말하자니 내가 너무 둔감한 사람인지라

   무슨 할 말이 있으리요. 그냥 멍하니 있을 뿐.

 

5. 다만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딘가 섬뜩한 이미지가 있다는 것.

   묘사한 풍경을 찬찬히 그려보면 그냥 정적인 방의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한쪽 구석의 그림자 속에서 누군가 기어나올 것만 같은 기이함이 숨어있다.

 

6. 너무 익숙해서 낯선 것을 가리키는 용어가 있었다.

   푼크툼이었나 스투디움이었나. 아무튼 둘 중 하나다.

   대상을 낯설게 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생경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뭐 그런 거였는

   그 예시 중 하나가 무표정한 사람의 얼굴을 모공까지 보일 정도로 확대한 사진이었다.

   아마 이것이 시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7. 그의 시가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는 독특하다.

   허나 장강명 씨의 글에서 느꼈던 '재단된 듯한 감성' 이 느껴진다.

   지금도 나쁘진 않지만 좀 더 다른 이미지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8. 같은 시대에 같은 애니와 만화를 보고 자라서인지 그 기괴함이 꽤나 익숙한 편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두 2016-06-24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이미지로 판단한다는 부분 너무 공감해요ㅎㅎ체셔님은 왜 이부분을 악습이라고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cheshire 2016-06-26 10:54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이미지에 의한 판단이다보니 썩 올바른 독서법은 아닌 것 같단 자격지심 탓일까요. 실제로 다른 이들보다 빠른 속도로 읽고 많은 부분을 기억 못 하는 편이구요. 그러다보니 썩 올바른 독서의 자세는 아닌 것 같단 생각에 악습이라 하게 되었습니다^^

2016-09-19 0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heshire 2016-09-19 00:27   좋아요 0 | URL
좋게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오랜 시간 나만 그런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도 그런건지 이미지가 아니면 무엇으로 글의 호불호를 따지고 어떻게 문장이 해석되는지 등에 의문을 갖고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분이 많은 것 같아서 위안도 되는 마음이랄까... 다시 한 번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1. 문득 기형도 전집이 떠올라 그 책을 다시 사야겠다 마음먹었다.

2. 바로 직전에 황인찬 시인의 `희지의 세계` 를 읽었다. 흰 광목천으로 방안 사물을 모두 덮은 풍경 속 보이지 않는 얼굴의 소녀가 떠올랐다. 이후 바로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를 읽었다. 내가 아는 가장 번화한 골목의 지저분한 곳이 떠올랐다.

3. 되고 싶던 것은 보이지 않는 얼굴의 소녀였다. 허나 이제 난 너무 지치고 버거워서 간신히 놓지 않는 게 전부라 나쁜 소년에 조금 더 마음이 끌린다.

4. 불온한 검은 피와 기형도 전집을 사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확실히 재미도 있고 몰입도 있으나...강남역 사건이랑 맞물려서 ˝왜 포식자 라는 저 놈도 여자만 죽이나˝ 하는 생각 때문에 영 개운치가 않음. 본인보다 약한 이들만 골라서 행하는 악이야 악일 수 있겠다만 `종`으로 분류될만큼 절대악은 아닐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하자면 좀더 근원적이고 성별에 거리낌없는 악을 원했다.

특이사항 하나. 소설의 모든 배경이 집안이라는 것. 그리고 소설이 묘사하고 있는 실질적인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
말그대로 공간과 시간에 제한을 걸어 주인공의 기원을 찾기 위해 애쓴듯한 느낌

...허나 다시 읽을 것 같진 않다.
자꾸 강남역이 떠오를 것 같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