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가장 인상에 깊게 남은 것은 갑작스레 타국에서 살게 된 자의 두려움, 불안, 긴장과 설레임 등이었으나 앞부분의 단편들을 생각해보면 꼭 그게 전부는 아닌 듯 싶다.

슬픔과 원망, 혹은 분노
안타까움과 연민, 그리고 경계.
이러한 복합적인 감정들이 한데 어우러져있거나 혹은 그 사이사이 경계에 위치한 이야기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비극적이라기엔 모던하고.
그렇다고 가볍다 치부하기엔 서사의 무게가 있는.

어쩌면 일상이란 게 이런 건가 싶기도 했다.

좀 더 집중하며 읽었다면 좋았겠지만
짧은 서사에 익숙치 않은 습관은 여전한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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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또다른 시집 ‘불온한 검은 피‘ 를 읽긴 읽었으나 거진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다만 남은 건 무언가 어둡고 우울한 정서가 있었다 정도. 애초에 텍스트에 대한 기억력이 좋지 못 한 탓도 있다.

‘내가 원하는 천사‘ 에서 내가 바란 건
아마도 한국의 골목이 아닌 사막과 신전의 이야기였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지하철과 시장과 그안에 꾸물럭대는 모습들이 썩 달갑진 않았다.
‘또 여기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마 기대가 어그러진 탓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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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기다림
오츠이치 지음, 김선영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1. 이 책을 처음 본 것은 16년도의 일이다.

   그 때만 해도 이 책을 상당히 좋게 봤으며

   일독 후의 감상은 이 작가의 팬이 될 것 같다는 축약된 문장 뿐이었다.

   러나 근래의 이슈들과 범죄들을 접한 이후로는

   아무래도 시각이 달라져 버렸다.

   일단 작품 속의 설정을 납득할 수 없다.

   저 상황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나?

   이러한 생각 때문에 작품 전체에 흐르는

   유대와 공감에서 비롯된 잔잔함에 집중할 수 없게 되었다.


2. 한 번 발화된 생각은 다른 쪽으로 흘러갔다.

   왜 하필 '여성시각장애인' 이어야 했으며

   숨어든 남자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 하는 실패자' 로 그려져야 했으며

   왜 여자는 아버지와만 남았으며 앞을 못 보는 자신의 처지보다

   앞을 못 보게 된 자신 때문에 쓸쓸해진 아버지를

   안타까워하는 것처럼 그려져야 했나.

   그리고 가장 의문스러운 것.

   왜 '그녀' 는 모든 것을 포용하고 감싸안는 이미지란 말인가. 왜 하필.


3. 물론 작품의 설정을 하나하나 꼬집으며 트집을 잡자는 건 아니다.

   다만 일종의 선입견 같은 것이 작용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 뿐.

   어쩌면 클리셰라고 해도 좋을까.

   '불우한 처지에도 세상에 대한 의심 없이 순하고 착하고 맑은 여자'

   '우연히 그 여자 곁에 오게 된, 집단에서 떠밀린 외로운 남자'

   '세상에서 밀려나 외로운 이들의 유대는 외딴 집에서 시작되고-'


   뻔한 이야기, 뻔한 설정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슬슬 자기검열의 시대가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4. 새벽공기의 싸늘함. 희미한 회색. 흰 손.

   사락거리는 커튼. 여명 등의 이미지가 주는

   쓸쓸함이 감도는 정돈된 분위기는 여전히 마음에 든다.

   허나 이 모든 것을 그냥 '분위기가 좋으니 됐다' 라고 받아들이기에는

   마음에 걸리는 구석이 많은 거다.

   ...그리고 언제부터 봤다고 반말인지.

   (원작이 그랬는지 번역하면서 그리 된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5.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밀려난 외로운 남녀의 유대' 라는 것이

   비단 일본이나 한국에서만 그려지는 것도 아닌데

   왜 유독 동양의 컨텐츠들에 대해서만 강하게 반응하는 걸까.

   한 쪽이 일방적으로 의존하고 이끄는 식으로 그려지는 것에 반발심이 드는 건지.

   아니면 서양의 컨텐츠들에 비해 더 익숙한 배경이라 그런 건지.


6.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추천하는 바이다.

   허나 근래 이런 저런 장르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일이 많은 이라면

   아무래도 피하는 게 좋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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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차미혜 사진 / 난다 / 2016년 5월
평점 :
품절


1. 흰 것들에 대한 글이라기보단

   너무 일찍 사라져버린 누이에 대한 글이 아닐까 하는 생각.

   조각조각 흰 것들을 이어붙인 망자에게 주는 선물. 수의.


2. 죽은 사람에 대한 죄책감에 기억을 지워버린 사람에 대한 글을 썼던 적이 있다.

   만화로 그려보려다가 지금보다 더 실력이 미개하던 시절이었던지라

   결국 포기하고 어떻게든 형태 있는 것으로 남겨보고자 글로 썼다.

   그리고 그 글의 마지막은

   기억을 되살린 이가 죽은 이를 위한 도피처를 만드는 글을 쓰는 걸로 끝난다.

   (기억을 잃었던 이의 직업은 소설가로 설정되어 있었다.)


3. 어제였나. 오늘 새벽이었나.

   넷플릭스에서 천국보다 아름다운을 보았다. 정확히는 보다 말았다.

   그리고 과거에 썼던 글과

   지금 아이디어 노트에 적혀있는 하나의 단상과 연결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날 글로 성을 짓는 사람의 이야기가 떠올라 아이디어 노트에 적어두었다.

   천국보다 아름다운에서 애니의 그림은 크리스의 세계가 된다.

   이에 죽은 이를 떠나보지 못 해 그의 영혼을 자신의 작업에 불러들여

   삶을 영원히 반복하게 하는 누군가를 상상했다.

   결국 그 끝은 비뚤어져버린 사랑. 


4. 언제부턴가 흰 것을 생각할 때면 자동적으로 회색이 떠오르곤 한다.

   아마 이것은 일종의 직업병이 아닐까 싶은데.

   보통 그림에서 흰색을 표현하고자 할 때

   밝은 면을 칠하는 것이 아닌 그림자의 영역을 칠하여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그 때 그림자의 영역에 칠하는 색은

   대부분 푸른색 계열이거나 거기에 갈색이 더 해진 회색 계열.

   물론 강한 조명이라던가 햇빛이 비추면 좀 달라지겠지만

   어쨌든 내가 쓰던 색은 그러했다.

   그래서일까.

   내가 상상하는 흰 것들은 눈부시게 하얗다기보다는

   바래서 색이 없어진 것에 가깝다.

   바래거나 혹은 타고 난 뒤 희미해진 것들.

   

5. 문득 아직 죽음을 목격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어지는 것이 아플 정도로 애정을 쏟은 적 또한 없으니

   이별과 죽음은 아직 내게 간접적인 무언가들이다.

   그래서일까. 상실과 애도를 그려내는 것들에 쉽게 끌리는 편이다.

   물론 인내심이 없으니 끝까지 보는 경우는 드물지만.


6. 해서 그녀는 만족하였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개인적인 추측에 지나지 않지만

   이 글이 그녀의 누이에 대한 애도라 확신하는 나는

   그녀가 바랬던 만큼 그녀의 누이를 위한 세계가 완공된 건지

   아니면 결말에서 느낀 흰 벽들의 건물의 긴 복도에서

   문을 빠져나가는 듯한 그 모습이 그녀가 그리고자 했던 건지.

   그렇다면 언젠가 그녀의 누이는 그녀의 또다른 글에서 나오는 건지.

   아니면 들어와서 빠져나가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이 목적이었는지.


7. 어쨌든 누군가를 위해 세계를 만든다- 는 것은

   창작하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내가 생각 중인 이야기는 종종 틈날 때마다 다듬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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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파는 내가 끼니마다 음식을 만들고, 때로 쓸고 닦기도 하는 부엌의 후미진 곳에서 소리 없이 썩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양파가 싱크대 밑 수납장에서 아무도 모르게 고양이 시체로 변화하는 과정에 소설의 진실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아마 작가의 말의 저 문장들이 이 소설집의 인상을 설명해주고 있지 않나 싶다. 일상의 것들에 이질적인 그림자가 물들기 시작하는 순간. 혹은 잊혀진 것들이 물러지고 삭아져 낯설고 기괴한 이형이 되는 찰나.

그러한 순간들에 대한 글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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