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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기다림
오츠이치 지음, 김선영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1. 이 책을 처음 본 것은 16년도의 일이다.
그 때만 해도 이 책을 상당히 좋게 봤으며
일독 후의 감상은 이 작가의 팬이 될 것 같다는 축약된 문장 뿐이었다.
그러나 근래의 이슈들과 범죄들을 접한 이후로는
아무래도 시각이 달라져 버렸다.
일단 작품 속의 설정을 납득할 수 없다.
저 상황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나?
이러한 생각 때문에 작품 전체에 흐르는
유대와 공감에서 비롯된 잔잔함에 집중할 수 없게 되었다.
2. 한 번 발화된 생각은 다른 쪽으로 흘러갔다.
왜 하필 '여성시각장애인' 이어야 했으며
숨어든 남자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 하는 실패자' 로 그려져야 했으며
왜 여자는 아버지와만 남았으며 앞을 못 보는 자신의 처지보다
앞을 못 보게 된 자신 때문에 쓸쓸해진 아버지를
안타까워하는 것처럼 그려져야 했나.
그리고 가장 의문스러운 것.
왜 '그녀' 는 모든 것을 포용하고 감싸안는 이미지란 말인가. 왜 하필.
3. 물론 작품의 설정을 하나하나 꼬집으며 트집을 잡자는 건 아니다.
다만 일종의 선입견 같은 것이 작용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 뿐.
어쩌면 클리셰라고 해도 좋을까.
'불우한 처지에도 세상에 대한 의심 없이 순하고 착하고 맑은 여자'
'우연히 그 여자 곁에 오게 된, 집단에서 떠밀린 외로운 남자'
'세상에서 밀려나 외로운 이들의 유대는 외딴 집에서 시작되고-'
뻔한 이야기, 뻔한 설정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슬슬 자기검열의 시대가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4. 새벽공기의 싸늘함. 희미한 회색. 흰 손.
사락거리는 커튼. 여명 등의 이미지가 주는
쓸쓸함이 감도는 정돈된 분위기는 여전히 마음에 든다.
허나 이 모든 것을 그냥 '분위기가 좋으니 됐다' 라고 받아들이기에는
마음에 걸리는 구석이 많은 거다.
...그리고 언제부터 봤다고 반말인지.
(원작이 그랬는지 번역하면서 그리 된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5.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밀려난 외로운 남녀의 유대' 라는 것이
비단 일본이나 한국에서만 그려지는 것도 아닌데
왜 유독 동양의 컨텐츠들에 대해서만 강하게 반응하는 걸까.
한 쪽이 일방적으로 의존하고 이끄는 식으로 그려지는 것에 반발심이 드는 건지.
아니면 서양의 컨텐츠들에 비해 더 익숙한 배경이라 그런 건지.
6.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추천하는 바이다.
허나 근래 이런 저런 장르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일이 많은 이라면
아무래도 피하는 게 좋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