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준연을 봤다. 하진이나 준연 씨랑은 다른 사람이죠. 예전부터 신기했어요, 6년이나 해 왔다는 거보다 6년 동안질리지 않았다는 게요. 연애도 6년이면 질리잖아요. 15년 넘게회사 다니면서 하고 싶은 게 있다고 나간 사람들도 여럿 봤는데 다들 1, 2년 지나니 두 손 두 발 다 들더라고요. 정말 좋아하는 건 취미로 해야 하는 거라면서요. - P217
자기 삶은 영영 혼자일 거고, 자기 생활은 영영 불안할 거라고. 하지만 그 두 가지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사람이란 뭐든 할수 있다고요. - P219
준연은 씁쓸히 웃었다. 우리 다 사랑을 잃어버린 거죠. 하진은 학교에서, 저는 가난에서, 해원 씨는 가정에서 - P221
증류소로 내려가는 날 아침은 가을의 첫날 같았다. 하늘은박물관 돔처럼 높았고 드문드문 떠 있는 뭉게구름은 천장화 속그려진 것처럼 선명하고 입체적이었다. 고속도로를 타자 단풍이 물감 방울처럼 점점이 떨어진 산들이 보였다. 산등성이를 비추는 햇살은 환하면서도 와인 잔처럼 얇은, 가을 햇살이었다. 이렇게 또 한 해가 가는구나 싶었지만 나는 하진을 떠올렸다. 가을이 깊어지고 겨울이 다가오는 게 기다려졌다. 같이 있으면바람은 차가울수록 좋고 밤은 길수록 좋을 테니까. - P229
힘들어도 마음은 편해. 아빠가 해 놓은 게 있으니까. 뭘 무리하거나 위험하게 하도록 내버려 두질 않았거든. 최대한 편하게, 안전하게 할 수 있도록 보조해 놓거나 보강해 뒀어. 그래서 여기가 아름다운 거야. 정말 계속해서 할 수 있게, 지칠 수는 있어도 질리지는 않게 안배해 놨거든. 나도 아직 다 몰라. 하면서, 계속 하다 보면서 하나씩 발견하지. 아빠가 해 놓은 걸, 아빠가정말 이 일을 사랑했고 끝까지 할 생각이었다는 걸. 하진은 뿌듯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 P233
대단하다 싶어서. 그동안 얼마나 해 왔는지, 또 혼자 그래 왔는지 말을 막 쏟아 내는 데서 느껴져서. 종종 준연과 대화하다보면 느끼는 것이기도 했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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