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의 이십 주기 추모 모임 단체 대화방에 나는 부영과 경애를 초청했다. 둘 다 들어와서 인사도 하지 않고 메시지를 올리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의 메시지를 읽는 것 같지도 않더니 잠시뒤 경애가 대화방을 나갔다는 알림이 떴다. - P9
전철역에서 곧바로 들어가 집구석에서 술을 마셨으면 좋았을걸 굳이 집 근처 술집을 기웃거리다 어딘가 쑤시고 들어간 게 문제였다. 소주를 반병쯤 비웠을 때 부영에게서 <다녀왔냐 난 괜찮다>는 거두절미한 메시지가 왔다. - P16
정원이 이거 오래 굶주렸네. 난리 발광 났다. 아주지 생일이다. 난리 발광, 부영은 정확히 그렇게 말했다. 나는 요즘 대화방에서 정체불명의 생물체가 좋아서 미친듯이 움직이는 모양의 이모티콘을 보면 직접 보지도 않은 그날의 정원이 떠오른다. 자유인지해방인지 모를 마법의 버튼이 눌려 난리 난 정원의 모습이. - P19
정원이 뭐라고 대답하기 전에 내가 소리쳤다. 막 시작하는 단계데 지금 그런 말이 왜필요해? - P23
무슨 관계든 끊어. 우리가 어떻게든 관계를 끊고 살아. 아………그때 나는 ‘사슴벌레‘가 불어로는 얼마나 아름다운 발음일까생각했던 것 같다. - P26
전화를 끊은 경애는 내가 룸메이트 시절 자주 본 면벽의 자세로약간 돌출한 입을 오물거리며 오랫동안 자책의 기도를 했을까. - P33
처음 이 소설을 구상했을 때 제목은 강촌 여행」 또는 「생일 여행」이었다. 누군가의 생일에 지인들이 함께 떠나는 짧은 여행을테마로, 여정과 대화로 이루어진 가벼운 스케치 같은 소설을 쓸생각이었다. 이렇게 한없이 기억을 후벼파는 이야기를 쓸 생각은없었다. - P41
결국 또 술 마시자는 모임인 거네. 엄마가 비아냥거리자 아빠는 대꾸했다. - P54
어쩐지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본 것 같아서 핸드폰으로 ‘가상화폐 사기‘를 검색해봤다. 모두가 부자를 꿈꾸고 있었다. - P59
언니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정면만 바라봤다. 갑자기 왜 화를내는지 모르겠다. 나는 언니가 ‘망했다‘고 말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전에 오로라네 엄마가 말해줬는데, 망했다는 말만큼 나쁜말이 없다고 했다. 망했다고 생각해버리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니까. 언니는 진짜 다 망했다고 믿는 걸까? 그렇게 믿으면서 분리수거는 왜 하는지 모르겠다. 학교는 왜 다니고 공부는 왜 하는지, 셀카는 왜 찍고 비공식 모임은 왜 하는지 모르겠다. 망했다고말하면서 왜 망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지 정말 모르겠다. - P65
호맞I 써마. 할머니가 말했다. 써마 아니고 썸머. - P65
좀비라면 단번에 알아볼 수나 있지. 사람은 언제 어떻게 돌변해서우리를 공격할지 알 수가 없잖아. 언니는 매일 대비한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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