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해설가교육을 받을 때,

새벽 6시에 지리산 자락 집을 나와 남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오는 교육생이 있었다.

날마다 지리산에서 오는 그분을 생각하면, 모두 광주시내에 사는 우리는 차마 힘들다 소리를 할 수 없었다.

빡쎈 일정에 입술이 세번이나 물집 잡혔던 나도 '깨갱'할 수밖에.... ^^

 

3개월의 교육기간을 마치고 수료 기념여행을 계획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실행하지 못했다.

지리산 자락에 사는 그분은 자기 집으로 놀러오라고 번개를 쳤다.

잠자리와 먹을 건 제공할테니 아이들 데리고 가족이 함께 와도 좋다며,

잠자리가 부족하면 마을회관을 제공한다고 했다.

 

7월 7일은 친정엄마 생신이라 친정형제들이 모여 저녁식사를 하는 날이고,

이번 주 목욜이 시아버님 생신이라 시댁형제들도 그 주말에 증도에서 1박 2일로 모인다는데,

큰동서에게 내 맘이 가는대로 하겠다 말씀드리고, 나는 지리산행을 택했다.

금요일은 내 생일이기도 했으니까, 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결혼하고 20년이 넘도록 시아버지 생신에 참예하느라 친정엄마 생신은 그냥 지나기 일쑤였고,

남편은 이날 이때까지 장인, 장모 생신이라고 가서 뵙거나 챙긴 적도 없었는데 뭐.

나만 며느리 노릇 하는 건 좀 그렇잖아?

모락모락 피어나는 억울함에 반기를 들었다고나 할까...ㅋㅋ

 

 

<지리산 둘레길 걷기 여행> 이혜영/한국방송출판/ 2009.6.8 초판 1쇄

이성을 처음 보고 눈에 콩깍지가 씌이는 데는 사실상 상황의 힘이 큰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예가 춘향의 모습을 처음 본 몽룡일 것 같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뎐>에도 잘 나타나 있다. 책을 펼쳤는데 글자는 안 보이고 하품만 나오던 몽룡이(조승우 분)는 방자를 앞세우고 단오 구경을 하러 나왔다. 그리고는 우연히 숲에서 그네 뛰는 춘향이(이효정 분)를 목격하고 온몸이 감전되고 만다. 감전사고의 과실(?)을 따지자면 내 생각엔 춘향이의 미색이 50%, 그리고 배경이 된 숲이 50%다. 그만큼 감전사고에 기여한 숲의 공헌이 크다. 춘향이는 짙은 녹음 속에서 붉은 치마 나부끼며 강렬한 보색의 홀림을 유발한다. 게다가 나무들이 워낙 거대해서 춘향이는 여리고 작은 한 마리 나비 같다.

  춘향이가 단숨에 몽룡이의 시선을 낚아챈 그 숲에 들어섰다. 영화 속 무대였던 행정마을 서어나무 숲이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이름값과 달이 숲이 자그마해 보이고, 실상 나무 규모도 64그루에 불과하다. '그럼 그렇지, 영화 속 이미지는 환상일 뿐이야.' 하지만 둑길 따라 다가갈수록 숲의 키는 점점 커지고 몸뚱이도 거대해진다. 나무 아래 서면 인간 뭄뚱이의 왜소함을 제대로 실감하게 된다. 이 나무들은 어쩌자고 한 그루도 남김없이 모조리 훤칠한 것인가.... (201쪽)

 

 

이 책이 나왔던 2009년부터 아들 친구 엄마랑 둘이서 지리산 둘레길 걷기를 꿈꾸었지만, 지금껏 실행할 수 없었다. 지리산에서 오던 교육생은 바로 <춘향뎐>속 서어나무 숲이 있는 행정마을에 산다. 어린시절 그곳에서 나고 자라 성장기에 산내로 이사했지만, 결혼하고 다시 그곳에 가서 산다. 숲해설 교육을 받을 때도 서어나무 숲을 자랑스럽게 소개해, 교육생들은 수업이 없는 5월 21일에 다녀왔지만 나는 동행할 수 없었다. 드디어 그 서어나무 숲을 내 눈으로 확인하는 거다.

 

7월 7일 토요일 아침 7시 30분에 동갑내가 숲해설가 동기생이랑 지리산으로 떠났다. 야호~~~~~ ^^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곳, 사진으로 보여주는 게 최상이다. 
마을에서 숲을 향해 걸어가며 찍은 사진을 시작으로 서어나무 숲으로 들어가보자.

 

 

영화가 개봉한 2000년, 서어나무 숲은 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마을숲' 부문 대상으로 선정돼 겹경사를 맞았다. (지리산 둘레길 걷기, 201쪽)

 

 

아래 사진은 가족이 함께 온 교육생 남편이 찍은 사진이다.

숲 속 벤치에 누워있는 동갑내기 교육생과 앉아있는 나, 순오기가 보인다. 자세히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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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즐거운지 웃음이 가득한 ~~ ^^

 

 
동갑내기 숲해설가, 바로 이번 토욜부터 시작되는 작은도서관 숲해설 프로그램을 같이 진행할 친구다.

 

 

곤충박사로 통하는 둘째아들 덕분에 온 가족이 출동했다. 고2 큰 아들이 동생도 잘 챙기던 모습이 좋아보였다.

쭉쭉빵빵한 엄마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듯...

장비를 제대로 갖추고 와서 사진을 찍던 바깥분, 그분은 우리를 찍고 나는 그분을 찍고.....^^

 

 

 

쭉쭉 뻗은 서어나무 줄기 따라 가면 하늘이다~

 

몸짱나무로도 불리는 서어나무 곁에서 빵긋~ ^^

 

 

그네 뛰는 그녀들, 춘향이가 부럽지 않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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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육나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나무답게 회색빛 서어나무 기둥마다 불끈불끈 힘줄 같은 무늬가 꿈틀댄다.

  행정마을 사람들이 서어나무를 심고 가꾸기 시작한 것은 1700년대 후반, 마을이 생겨난 직후라고 한다.

 "옛날 한 스님이 우리 마을을 지나다가 보니까 뒤가 허술한 거야. 우리 마을터가 삼면이 다 들판이잖아. 그래서 북에서 오는 바람을 막으려면 비보림(裨輔林)을 심으라고 했대. 그 이후로 마을이 완벽해진 거지. 아픈 사람 없지. 물 많지. 농사 잘 되지."

 

  정말 숲 덕분인지 행정마을 사람들은 무탈하게 살아왔다.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땅을 파면 여기저기 물이 나온다. 어떤 데는 깊이 파면 마을이 물에 잠긴다고 하여 말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우리 마을이 배 밑바닥 자리였거든. 저 건너 고리봉(1,304m)에다 배를 매고 그 제일 낮은 바닥이 우리 마을이었지. 낮으니까 물이 고여." 고리봉에 매여 운봉 하늘에 떠 있는 큰 배가 머릿속에 보일 것만 같다. 전설을 떠나서 보더라도, 마을 위치가 그렇다. 행정마을은 두물머리다. 수정봉에서 발원한 뒷내천과 고리봉에서 발원한 앞내천이 마을을 앞뒤로 감고 흘러간다. 두물머리의 땅 모양이 배의 형국이라는 것이다. (202쪽)

 

행정마을을 사랑하는 우리 교육생이 들려준 말과 똑같은 내용이 책에 나오니가 그대로 옮겼다.

1박 2일에서 이승기가 걸었던 구간에 행정마을이 있는데, 이승기는 서어나무 숲을 들르지 않고 그냥 지나쳤지 아마...

<지리산 둘레길 걷기> 책에 삽입된 지도~

 

 

 

 

지리산 행정마을에서의 1박 2일은 KBS 1박 2일보다 훨씬 더 재미나고 행복한 일정이었다.

가족과 함께 다섯 식구가 온 교육생은 서어나무 숲에서 고기를 구워 나눠먹었고, 밤에는 텐트에서 잤다.

우리는 밤새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잘 자고 있는가 방범순찰을 돌았다.

구름이 잔뜩 끼어 칠흙같이 어둔 밤에 용감한 아줌마들 여섯이~ ㅋㅋ

그리고 살금살금 발길을 돌려 반딧불이를 보러 마을 논길을 걸어 습지를 지나 다시 서어나무 숲길로 돌아오는데

텐트에서 잠들지 못했던 우리 동기는 살짝 빠져나와 다시 우리와 뜨거운 밤을 보냈다.

이런 추억을 학창시절이나 처녀시절을 한참 지난 아줌마 시대에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접힌 부분 펼치기 ▼

 

 

 

 

 

 

사진에 찍힌 시간을 보면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있다. 서어나무 숲 위로 뜬 달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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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페이퍼는 행정마을 서어나무 숲이 주인공이니까 자랑은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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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남매맘 2012-07-11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손인지 모르지만 마지막 네일 아트 한 손이 눈에 팍 띄네요.손이 참 곱네요.
맞아요. 우리가 언제까지나 시댁이나 친정일에 불려 다녀야 합니까? 내가 행복해야 남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죠. 잘하셨어요. 짝짝짝!!!
아! 지리산~~ 그립습니다.언제 다시 가보려나 싶어요.지리산은 대학3학년때 과 친구들과 종주한 적이 있어요. 진짜 힘들더군요. 가장 짧은 코스를 선택했지만 윽~ 걷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 다리가 아프고, 지치더라고요.그래도 지리산에 대한 기억은 아름답게 남아 있습니다. 마지막 천왕봉에 오르기 전에 묵었던 산장에서는 한여름에 파카를 입었는데도 이가 덜덜 떨릴 정도로 춥더라고요. 산장에서 사 먹었던 초코파이며 복숭아 통조림 맛이 아직도 기억 납니다. 순오기님 덕분에 엣추억에 잠겨 봅니다.

순오기 2012-07-12 00:36   좋아요 0 | URL
미술 전공한 벽화 아티스트 손이지요.^^
지리산은 산행도 좋지만 정령치 숲 속에 들어가 마냥 쉬었다 와도 좋더군요.

마노아 2012-07-11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어나무야말로 쭉쭉빵빵인 걸요. 춘향이에 반할 수밖에 없었던 몽룡이의 심정이 이해가 가는 모습인 걸요. 아, 좋은 여행 부럽습니다. 저는 요새 언니에게 조카 데리고 담양 다녀오라고 꼬시는 중입니다. 사정상 당일치기로 가야 하는데 언니가 솔깃해 하고 있어요.^^ㅎㅎㅎ

순오기 2012-07-12 00:36   좋아요 0 | URL
쭉쭉빵빵 서어나무~ 정말 대단한 몸짱나무에요.^^
딤양나들이 좋지요, 한과 체험 코스를 선택하면 아이들도 충분히 만족할 듯...

프레이야 2012-07-11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우와~~~ 입이 쩍 벌어지고 눈은 커다래지고 느무느무 부러워요.
7월 7일, 날 받아놓으신 날 지리산으로!! 반전(반항ㅋ)이에요.
잘하셨어요. 가족들 챙기느라 늘 수고하시는데요 뭘.
근육나무 ㅎㅎ 서어나무가 저렇게 생겼군요. 줄기끝 초록 사이로 보이는 하늘 한 뼘까지도 멋지게 담아낸 언니^^
저 숲 속에 있으면 누구든 춘향이 저리가라겠어요.. 눈도 마음도 시원해요.~~~~

순오기 2012-07-12 00:39   좋아요 0 | URL
너무 착하면 안돼요, 가끔은 반항도 해야지요.ㅋㅋ
서어나무 숲, 비오는 날 사진은 더 멋지더라고요.
다음에도 또 가고 싶어요.
시외버스비 4,900원 광주에서 45분이면 남원 도착이라 별로 어렵지 않을 듯해요.

라로 2012-07-12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뜨악!!저는 뭣보다도 저 호박잎 쌈!!!!ㅠㅠ
저 정말 저런 쌈 너무 좋아하거든요,,,,아침도 아직 안 먹었는데 침 흘리고 있어요,,꿀꺽.
언니 생일 기억하고 있었는데 일 잘리고 어쩌고 하다보니 잊었어요,,ㅠㅠ
읽고 싶으신 책 있으면 골라주세요~~~~.^^*

순오기 2012-07-13 06:06   좋아요 0 | URL
바로 이웃집에서 잘라온 싱싱한 호박잎 쌈은 도시에서 맛보기 어렵지요.
저 호박잎 쌈에 다들 정신없이 저녁밥을 먹었어요.ㅋㅋㅋ
책선물은...^^

마녀고양이 2012-07-12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언니 대단하시당... 과감하게 지리산을 택하셨단 말씀이시죠. ^^
그리고 숲 해설가를 이제 활용하신다는 말씀에 다시 한번 입이 헤벌쭉해집니다.

숲이 너무 좋네요. 그리고 언니의 웃는 모습도.
그런데 서어나무 숲이 주인공 맞아요? 보고 나니 푸르른 나무도 보이지만, 언니 웃는 얼굴과 쌈들만 보이는구먼. ㅋ

순오기 2012-07-13 06:09   좋아요 0 | URL
시댁 식구들이 내 생일 챙겨준 적도 없고, 아버님 생일 때문에 항상 친정엄마 생신은 뒷전인데...
한번쯤 반기를 들어도 괜찮아요, 난 착한며느리 그런 거 하기 싫어요.ㅋㅋ
숲해설 공부하면서 숲이 얼마나 좋은지 내 몸이 안다니까요.^^

블루데이지 2012-07-12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어나무 처음봐요! 다음에 산에 가게되면 꼭 서어나무 찾아볼께예요^^
정말 대단하신 순오기님...숲해설가..왠지 영화에 나오는 직업같아요~
멋지셔요!
롤모델 삼고 싶은 순오기님!
눈과 마음 모두 호강하고 갑니다.

순오기 2012-07-13 06:12   좋아요 0 | URL
서어나무는 몸짱나무답게 정말 굉장해요.^^
숲해설가로 활동하려면 30시간의 봉사활동부터 채워야 해요.
공식적으로 숲해설가 협회에서 차례대로 배치하는 선배님들의 숲해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 외에는
동기생들과 스터디하는 거지만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정말 좋아요.^^
황송하게도 룰모델이라뇨~ ㅠ

숲노래 2012-07-12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사람들도 오늘사람들도 숲을 잘 사랑하고 돌보면
아무 걱정 없이 잘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어요

순오기 2012-07-13 06:1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숲을 사랑하고 돌보면 저절로 행복해질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