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고2가 된 막내는 제7회 빛고을 독서마라톤은 3킬로(3000쪽) 읽기에 도전했다.
작년에는 5킬로(5000쪽) 읽기에 도전하고 격주로 집에 와서 책을 읽고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책을 읽고도 차일피일 미루다 기숙사로 가기 전 엄마의 잔소리에 부랴부랴 기록하기 일쑤였고,
후반엔 당연히 다 됐을거라 생각했는지 도가니를 읽고 기록하지 않아서 결국 완주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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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잘 된 일에서 깨달음을 얻는 것보다 때로는 잘못된 일에서 크게 깨우침을 받는다.
막내는 '태만'이 결국 다 된 일을 그르친다는 걸 깨달았다며, 겨우 5천쪽을 완주하지 못한 것에 자존심 상해 했었다.
그래서 올해는 목표를 더 낮춰서 3킬로 (3000쪽)에 도전해 목표는 이미 도달했다.
목표에 도달하곤 더 이상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책을 안 읽는 것도 아닌데...
논술대회에 나가느라 읽은 책들도 기록하지 않아서 요것만 옮긴다.
4/14 나는 코끼리였다
미안한 말이지만, 난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왠지 모르게 징그러웠다. 뚱뚱한 비만아에다가 틱장애가 있어 괴상한 소리가 입에서 튀어나오는 우성이. 소리를 지르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머릿속에 사는 '바오밥'이라며 대화까지 나눌 때 그냥 좀 무서웠다. 아이들에게 괴롭힘 당하고 왕따 취급 받는 모습을 보는게 불쌍하고 불편해서 그런 것 같다. 게다가 친형인 줄 알았던 사람이 사실은 아빠였다니.... 아이들 동화치고는(청소년 소설인데...^^) 불편한 소재가 많았다. 전생에 코끼리, 대나무, 엉겅퀴, 쥐 등으로 태어나면서 공통적으로 바랬던 한가지 소원이 있었다. 바로 인간이 되고 싶다는 것! 코끼리였던 전생을 체험하며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닫게 된 우성이는 미워하던 아빠도 용서하고, 자전거를 타며 새롭게 바뀔 모습을 기대하게 만든다.
4/15 노서아 가비
그 동안 대륙을 돌아다니며 스케일 큰 모험을 하는 풍운아 이야기가 있었다면, 노서아 가비는 그 풍운아가 '여자'다. 지금까지 이렇게 대담하고 천재적인 사기꾼이 있었을까? 누명을 쓰고 죽은 역관의 딸인 '따냐'는 러시아로 가서 거짓말을 잘하는 재능을 살려 가짜로 숲을 파는 '얼음여우단'의 일원이 된다. 또 그곳에서 아버지가 즐겨마셨던 러시아 커피, '노서아 가비'에도 빠진다. 이후 그녀의 삶에 중요한 순간에 가비가 빠지지 않는다. 따냐가 멋있는게 어떠한 상황에서도 조용히 몸을 숨기고 살펴보다가, 기가막힌 방법으로 빠져나오거나 역전시킨다.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인 이반도 뼛속부터 사기꾼이라 이 두 커플은 서로 사랑하지만 웃는 얼굴로 거짓말을 한다. 마치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를 조선시대 버전으로 보는 것 같았다. 구한 말, 정치적 격변기이자 우리 민족의 수난시대. 외로운 임금이었던 고종의 고뇌가 가비를 통해 느껴졌다.
4/15 별이 된 소년
영화 '일 포스티노'를 감명깊게 봐서 파블로 네루다의 어린시절을 다룬 책이 흥미로웠다. 책을 펴자 보이는 초록색 잉크. 진정한 네루다의 책인 것 같아서 좋았다. 아직 네루다가 되기 전, '네프탈리'는 작고 여리고 순수한, 소년다운 상상력이 살아있는 아이였다. 그러나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에게 눌려 점점 기가 죽어간다. 아버지를 무서워했다가, 그래도 믿었다가, 다시 실망하고, 결국에는 분노하는 네프탈리. 어린 동생 로리타와 네프탈리를 매일 바다에 밀어놓고 헤엄을 강요하는 아버지가 나라도 정말 미웠을 것 같다. 매일 힘든 수영 연습을 하고 백조 두 쌍을 보는 게 낙이었지만, 어느 날 백조 한 마리는 죽고 한 마리는 깊은 상처를 입었다. 여동생과 함께 정성껏 백조를 보살피지만 결국 백조는 네프탈리의 품에서 죽는다. 백조가 죽은 순간, 오열하는 네프탈리 안의 무언가도 같이 사라진 것 같았다. 그것이 순수성이든, 아니면 아버지를 향한 일말의 애정이든. 소수자인 원주민에 대한 애정도 잃지 않으면서 그렇게 점점 어린 소년은 '파블로 네루다'로 커 간다. 위대한 시인의 남다르고 순수한, 자연을 닮은 아이적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뒤에는 새어머니의 이해심 많은 포용력과 보살핌이 컸다. 이런 사람이었기에 그렇게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시를 쓰고, 조국을 위해 몸을 바칠 수 있었을 것이다. 네루다의 시집을 읽고싶어졌다.
4/22 류시화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
아침 자습시간에 심심해서 잠시 들춰봤는데, 예상외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내용에 자리에 가져가서 정독했다. 그리고 다 읽고 난 후에는 나 혼자 감동에 겨워서 책을 덮지 못 하고 있었다. 류시화 시인이 인도에 가서 만난 사람들과 겪은 깨달음, 자세한 인도의 생활상을 진솔하게 볼 수 있었다. 인도에 대해 막연하게 아무데서나 똥 싸고, 길바닥에 온갖 가축과 오물이 널려있고, 왼손으로 배변 뒷처리를 하는 더러운 나라라고 생각했다. 아마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가릴 곳 없는 벌판에서 버스 승객들의 시선을 받으며 큰 일을 본 류시화씨가 부끄러움을 감추려 불평하자 승객들이 왜 당신들은 부끄러워 하냐, 많이 가리고 걸칠수록 문명인인 것이 아니다, 탁 트인 벌판에서 상쾌한 공기를 느끼며 일을 보는 것이 자신들의 명상법 중 하나다,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런 내용이었다. 이걸 보고 '아, 맞아. 그렇지.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구나'하는 놀라움이 섞인 수긍을 하게 됐다. 또한 밉상이라고 여겼던 쑤닐의 'No problem!'은 물론이고, 류시화씨가 만난 수많은 놀랍고 경이로운 스승들. 아름답고 순수한 마음을 지니고 깨달음을 추구하는 인도 사람들을 보자 내 영혼마저 조금 맑아지는 것 같았다. 신이 살아있는 나라.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이지만 인도에서만은 그 시곗바늘이 잠깐 멈추고 찬찬히 돌아볼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신에 대한 경외감, 존재에 대한 탐구, 가장 자연스러운 사고방식이 살아있는 마지막 나라. 공부하는데 지치고, 갈등이 생길 때 No problem을 외치던 쑤닐을 생각하면 마음의 짐이 조금 가벼워진다. 그동안 내가 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는 영국이나 유럽 쪽 국가였는데 이 책을 읽고 인도로 바뀌었다. 나도 20대, 혹은 30대에 꼭 인도를 가보고 싶다. 가서 나를 돌아보고, 마음을 깨끗이 닦고 싶다.
5/5 정글북
야생동물들에 대한 키플링의 뛰어난 관찰력과 실제 그들의 이야기를 옮긴 것처럼 생생하고 개성적인 동물들 하나하나는 오랜만에 신선하고 흥미를 끄는 이야기였다. 왜 정글 북이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랑받는지 알 것 같았다.
정글 북의 간판스타라 할 수 있는 모글리 이야기에서 가장 좋았던 동물은 처음 모글리가 늑대 무리에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도와준 흑표범 바기라와 모글리에게 정글의 법칙에 대해 알려준 늙은 곰 발루다. 모글리의 늑대가족들도 그렇지만, 인간의 아이인 모글리를 가장 사랑하고, 항상 아끼고 지켜주며 친구처럼 대해준 동물들. 모든 정글 동물들에게 경외와 무서움의 대상이지만 모글리에게만은 따뜻한 바기라를 보면서 마치 현대의 '차도남'을 보는 것 같아서 더 정이 갔다. 모글리가 원숭이들에게 잡혀갔을 때 그 고고하던 바기라가 비단구렁이 카에게 도움을 청하다니. 바기라가 얼마나 모글리를 생각하는지 다가와 감동적이면서도 한편으론 자존심 때문에 그 일을 부인하는 모습이 웃겼다. 그리고 모글리가 인간 세상으로 간 뒤 바기라와 발루가 나오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어릴 때부터 운명의 숙적이었던 절름발이 호랑이 시어 칸을 잡은 뒤 인간 세상에서 쫓겨나 다시 정글로 돌아온 모글리. 정글에서는 인간이라고 쫓겨나고, 마을에서는 늑대의 새끼라고 쫓겨 난 모글리가 참 안쓰러웠다. 숙적을 잡고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난 어디에 속하는 걸까?' 고민하는 모글리의 노래 속에 담긴 슬픔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다시 늑대 가족들과 함께 사냥을 하고, 후에는 결혼까지 한 모글리가 한평생 정글의 법칙에 따라 당당하게, 행복했을거라고 믿고 싶다.
그밖에도 인간에게 살육당하지 않는 평화로운 섬을 찾아 물개들을 인도한 코틱, 몽구스의 운명에 따라 코브라 부부와 대결을 펼쳐 이긴 리키티키타비, 코끼리들의 투마이가 된 작은 소년, 마치 인간들처럼 군대에서의 자신의 직분과 임무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노새, 말, 낙타, 물소, 코끼리들까지. 진짜 동물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어린아이가 되어 정말로 동물들과 이야기하고 지켜보는 것처럼 상상할 수 있는 즐겁고 기분좋은 시간이었다.
5/3 은교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이적요와, 서지우와, 한은교를. 그들의 사이를. 스승과 제자사이의 갈등과 불신의 시발점인 은교는 오히려 이적요와 서지우가 '서로'를 사랑하고 있고, 자신이 소외된 느낌을 받았다고 소리쳤다. 은교의 젊음과 생명 넘치는 싱싱함과 정결함을 찬미하고, 그녀를 '육체적으로'사랑할 수 있는 젊은 제자를 향한 애증을 가진 시인과, 문학적 재능이 없어 괴로워하고, 순박히 스승을 존경하다 점점 변해가고, 멍청했지만, 끝까지 멍청하지는 않았던 제자. 누가 누구를 사랑하고 누가 누구를 질투한 것인지. 은교를 품에 안는 모습을 보고 결국 죽이려고 실행까지 하는 이적요가 서지우를 사랑했다고? 그게 과연 사랑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이, 서로에게 깊이 잠식되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은교를 향한 집착과 갈망도 오히려 서로에 대한 관심, 견제에 대한 반동쯤으로 된 것 같은.
두 사람의 노트를 모두 읽고 난 은교는 마지막에 그것들을 불태운다. 그냥, 그게 가장 자연스러운 것 같다. 세 사람의 그 시간들을 그대로 흘러가게 보존할 수 있는. 그 셋은 그들만이 가장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을것이다. 마치 한몸처럼. 언젠가 좀 더 성숙해진 후에 다시 읽고, 그들을 이해하고 싶다.
5/20 내 이름은 눈물입니다
친구 책상에 있던 걸 잠깐 훑어보던건데 생각보다 심각한 이야기에 다시 제대로 읽었다. 콩고 내전의 군인들이 적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성무기'로 이용하는 강간. 그 피해자들의 사진과 절절한 이야기가 너무 사실적이고, 한편으론 이 시대에 아직도 이런 일이 있다는게 믿을 수 없어서 충격적이기도 하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어째서 여자들은 이렇게 항상 이용되고, 당하는건가. 전쟁이라는 건 광기의 소용돌이 같다. 사람이 사람에게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휘두르고, 사람 취급하지 않고, 죽인다. 성폭력을 한것으로도 모자라 더러운 막대기나 나뭇가지, 심지어 신발짝등을 찔러 넣는 미친 군인들. 그 여자들의 상처는 어느 누가, 어떻게 보상할 수 있을까. 전쟁이라는 게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전쟁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고, 결국은 아예 일어나지 않는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도 미약하지만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이다.
6/10 오만과 편견
얼마나 재밌을지 기대하면서 읽었는데, 생각보다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옛날책이라 번역도 매끄럽지 못하고, '다아시'는 졸지에 '다르시'가 되었다. 다아시가 왜 그렇게 갑작스럽게 엘리자베스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지도 잘 모르겠고, 보고 싶었던 다아시와 엘리자베스 커플의 이야기는 오히려 별로 나오지도 않았다. 그냥 베넷가족의 주책과 말썽이 나오고 그걸 뒤치다꺼리하는 엘리자베스와 제인의 이야기가 가장 많았던 것 같다. 이 책에는 별로 마음에 드는 인물이 없다. 주인공인 엘리자베스에게는 감정 이입이 안 되고, 다아시는 많이 나오지도 않아서 잘 모르겠고, 제인은 착해빠지기만 했고, 빙리씨도 마찬가지다. 번역의 문제인건지 아니면 정말 책이 이런건지. 나중에 다른 책으로 다시 읽어보고 싶다.
6/24 천 개의 찬란한 태양
그동안 왠지 제목이 안끌려서 안 읽었는데, 그걸 후회한다. 마리암과 라일라, 단순히 그 둘뿐이 아닌 전쟁에 휩싸인 아프간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날 울렸다. 오랫동안 자신이 사생아인게 잘못인 줄 알고 주눅들고, 애정을 받지 못한채 몇십년동안 가정폭력을 견뎌온 마리암. 그런 마리암이 순수하게 자신을 좋아해주는 라일라와 그녀의 딸 아지자를 만나며 점점 마음을 열고 사람을 믿게되고, 마침내 한사람의 어머니로 성장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을 미워하는줄만 알았던 어머니의 사랑과, 너무나 크게 받은 상처로 인해 거부했던 아버지 잘릴 또한 이해하고 용서하게 된다. 뭐라 해야할까, 아프간 전쟁이 끝나서 다행이다. 이제 복구와 재건의 시간이 이어지겠지. 그 과정에서 다시 다치고 상처받는 사람이 없으면 좋겠다. 또한 여성의 인권이 상승해서 이 책에 나온것처럼 여자라고 부당한 대접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 인간을 성에 따라서 그렇게 차별하고 미워하는게 올바른 종교같지는 않다.
읽었는데 기록하지 않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