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끝낸 아들은, 놀토인 오늘 아침 아빠와 무등산에 갔다.
녀석이 초등 4학년이던 2003년 3월 1일에 함께 무등을 오른 후, 둘이서만 산에 가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2003년 3.1절 무등산 이야기 

인절미, 귤, 바나나, 사탕, 물, 수건~~~ 을 챙긴 배낭을 둘러메고 버스를 타러 가는 부자의 인증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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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아빠가 최고인 줄 알던 어린 아들은 어느새 아빠 키를 훌쩍 넘어섰다.
아빠는 지금은 머리가 벗겨지고 배나온 전형적인 중년이지만, 아들처럼 고딩까지는 엄청 말랐다고 한다.
학창시절 사진을 안 봤다면 우리도 믿지 않았겠지만,
달리기 대표도 했다던 날씬한 사진을 보곤 우린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아빠란,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
<우리 아빠가 최고야>에 그려진 이런 모습이 아닐까?^^ 

우리 아빠는 무서워하는 게 하나도 없다.
우리 아빠는 거인들이랑 레슬링도 할 수 있고
운동회날 다른 아빠들이랑 달리기 시합을 해도 문제없이 이긴다.
고릴라만큼이나 힘이 세고...
우리 아빠는 집채만큼이나 몸집이 크면서도 곰 인형만큼이나 부드럽다. 

 

  


과묵한 성격, 타고난 미식가적인 입맛에 좋아하는 음식까지 부자가 닮았다.
엄마 치마폭에 매달려 울던 아들은 예닐곱 살부터 아빠와 둘이 목욕탕엘 다녔고,
조금 더 커서 사춘기엔 아빠와 함께 목욕가는 걸 거부했지만, 아빠는 서운타 않고 면도기를 사다 주었다. 
과묵한 부자끼리 혹은 남자끼리만 통하는 게 있는지 어울리지 않게 둘이서 두런두런 이야기도 곧잘 했다. 

어쩌면 우리 아들도,
고대영 선생님의 <아빠와 아들>처럼 장래희망이 아빠가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엄마 모르게 비밀의 마일리지를 차곡차곡 쌓아가는지도 모르고...

오늘 부자의 산행을 모르고 잠든 엄마는, 아빠가 일곱 시에 아들을 깨워서 산행을 알았다.
현미밥 1인분은 충분하기에 아빠 먼저 먹고, 아들은 철원 쌀밥을 해먹이려고 했는데, 어쩌라고!
둘이 먹기엔 부족한 현미밥, 어쩔 수없이 라면 하나를 끓여서 사이좋게 나눠주었다.
부자는 라면에 밥 말아먹는 게 더 좋았지만, 산에 보내는데 라면 먹이는 건 좀....
그래도 그림책 속 부자처럼 눈물까지 흘리진 않았지만 맛나게 먹고 갔다.^^  

 

 


 이순원 작가의 <19세>는 내게 다 커버린 아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특히 사춘기 사내녀석들의 성 의식을 이해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중.고딩 아들을 둔 엄마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라 권한다.^^   책에 쓰인 것처럼 성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방법은, 훨씬 더 진화했지만 그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은 아빠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작가가 6학년이 된 아들과 함께 아버지 집으로 가는 길에 60리 길을 걸으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로 이어지는 '아버지' 이야기~
 
이땅의 무수한 아버지들도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을 꿈꾸지 않을까...나는 엄마지만 책을 읽다보면,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걸으며 나누는 대화가  부럽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을 '부권 상실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런 '아버지가 없고 아빠만 있는 시대'의 또 한 사람의 아버지로서 아이에게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걷는 오래된 길 이야기를 하고, 아아니가 태어난 대관령 너머의 오래된 집과, 또 작게나마 삶은 이런 거란다 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가더라도 어린 시절의 잃어버려서는 안 될 자연과 우주의 거울들에 대한 이야기를 대관령 푸른 나무와 길섶의 작은 들풀들을 바라보며 그것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작가의 말- 

오늘 무등산에 오른 우리아들과 아버지도 오롯이 부자만의 좋은 시간을 가질거라 생각하면 뿌듯하다.  
우리 아들, 수능은 기대치에 못미쳤지만....그래도 표창창을 받아왔다. 그것도 선행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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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2 17: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잘잘라 2011-11-12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밀히 따지면 뭐 '남의 집' 얘기이긴 하지만 그래두 뭐 흐믓하긴 합니다욧~ 흐믓흐믓흐흐흐~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배가 살살 아프기도 하지만 뭐.. 흐흐흐흐므읏~~~ ^^

2011-11-15 0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1-11-12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마음이 따뜻해지네요....아빠라는 존재...참 따뜻해요.

순오기 2011-11-15 02:57   좋아요 0 | URL
답글이 늦었네요. 감사~ ^^

무스탕 2011-11-12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 지성정성은 도대체 운동이랑 담 쌓고 살아서 늘 아빠는 외로이, 쓸쓸히 혼자서 산에도 가고 자전거도 타고 그래요;;
딸 없는 엄마도 불쌍하지만 같이 놀아주지 않는 아들을 둔 아빠도 못지않게 가엾어요 ^^;;

순오기 2011-11-14 16:00   좋아요 0 | URL
외로운 아빠와 함께하는 지성정성이 되어주기를~ ^^

수퍼남매맘 2011-11-13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자의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자녀가 장성해서도 " 우리가 아빠가 최고야!" 라고 말할 수 있도록 자녀에게 부끄럽지 않는 부모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순오기 2011-11-14 15:5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장성해서도 '우리아빠가 최고야!' 할 수 있다면, 그 아빠의 인생은 성공한거지요.^^

소나무집 2011-11-14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들 키우는 엄마로서 모두모두 공감되는 이야기예요.
우리도 주말이면 아빠랑 아들이랑 함께 시간 보낼 수 있도록 열심히 배려하는 중이에요.
아드님이 꼭 국립대에 갈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지금 분위기 봐서는 국립대는 머잖아 모두 반값 등록금 학교가 되거나 무상 교육이 될 것 같아요.^^

2011-11-14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