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끝낸 아들은, 놀토인 오늘 아침 아빠와 무등산에 갔다.
녀석이 초등 4학년이던 2003년 3월 1일에 함께 무등을 오른 후, 둘이서만 산에 가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2003년 3.1절 무등산 이야기
인절미, 귤, 바나나, 사탕, 물, 수건~~~ 을 챙긴 배낭을 둘러메고 버스를 타러 가는 부자의 인증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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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선생님은 가채점 된 점수로 00대학교 수시를 넣어보자고 오늘 학교오라고 하셨다는데...
등록금 비싼 사립대는 언감생심이라
고3 중반, 자기 성적과 현실을 맞춰보더니 지역 국립대에 간다고 맘 먹었다.
바라기는 수능 등급을 잘 받아서 장학금을 받는 게 목표였는데
당연히 1등급 받을 줄 알았던 '언어'가 복병이었다.
수능 끝내고 와서 첫마디가 "언어가 어려웠어" 하더니 다섯개나 틀려서 1등급은 어림도 없고
더불어 장학금도 물 건너간 듯...ㅜㅜ
남들이 아무리 쉽다고 해도 자기가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어려운 시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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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아빠가 최고인 줄 알던 어린 아들은 어느새 아빠 키를 훌쩍 넘어섰다.
아빠는 지금은 머리가 벗겨지고 배나온 전형적인 중년이지만, 아들처럼 고딩까지는 엄청 말랐다고 한다.
학창시절 사진을 안 봤다면 우리도 믿지 않았겠지만,
달리기 대표도 했다던 날씬한 사진을 보곤 우린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아빠란,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
<우리 아빠가 최고야>에 그려진 이런 모습이 아닐까?^^
우리 아빠는 무서워하는 게 하나도 없다.
우리 아빠는 거인들이랑 레슬링도 할 수 있고
운동회날 다른 아빠들이랑 달리기 시합을 해도 문제없이 이긴다.
고릴라만큼이나 힘이 세고...
우리 아빠는 집채만큼이나 몸집이 크면서도 곰 인형만큼이나 부드럽다.
과묵한 성격, 타고난 미식가적인 입맛에 좋아하는 음식까지 부자가 닮았다.
엄마 치마폭에 매달려 울던 아들은 예닐곱 살부터 아빠와 둘이 목욕탕엘 다녔고,
조금 더 커서 사춘기엔 아빠와 함께 목욕가는 걸 거부했지만, 아빠는 서운타 않고 면도기를 사다 주었다.
과묵한 부자끼리 혹은 남자끼리만 통하는 게 있는지 어울리지 않게 둘이서 두런두런 이야기도 곧잘 했다.
어쩌면 우리 아들도,
고대영 선생님의 <아빠와 아들>처럼 장래희망이 아빠가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엄마 모르게 비밀의 마일리지를 차곡차곡 쌓아가는지도 모르고...
오늘 부자의 산행을 모르고 잠든 엄마는, 아빠가 일곱 시에 아들을 깨워서 산행을 알았다.
현미밥 1인분은 충분하기에 아빠 먼저 먹고, 아들은 철원 쌀밥을 해먹이려고 했는데, 어쩌라고!
둘이 먹기엔 부족한 현미밥, 어쩔 수없이 라면 하나를 끓여서 사이좋게 나눠주었다.
부자는 라면에 밥 말아먹는 게 더 좋았지만, 산에 보내는데 라면 먹이는 건 좀....
그래도 그림책 속 부자처럼 눈물까지 흘리진 않았지만 맛나게 먹고 갔다.^^
이순원 작가의 <19세>는 내게 다 커버린 아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특히 사춘기 사내녀석들의 성 의식을 이해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중.고딩 아들을 둔 엄마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라 권한다.^^ 책에 쓰인 것처럼 성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방법은, 훨씬 더 진화했지만 그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은 아빠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작가가 6학년이 된 아들과 함께 아버지 집으로 가는 길에 60리 길을 걸으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로 이어지는 '아버지' 이야기~
이땅의 무수한 아버지들도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을 꿈꾸지 않을까...나는 엄마지만 책을 읽다보면,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걸으며 나누는 대화가 부럽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을 '부권 상실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런 '아버지가 없고 아빠만 있는 시대'의 또 한 사람의 아버지로서 아이에게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걷는 오래된 길 이야기를 하고, 아아니가 태어난 대관령 너머의 오래된 집과, 또 작게나마 삶은 이런 거란다 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가더라도 어린 시절의 잃어버려서는 안 될 자연과 우주의 거울들에 대한 이야기를 대관령 푸른 나무와 길섶의 작은 들풀들을 바라보며 그것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작가의 말-
오늘 무등산에 오른 우리아들과 아버지도 오롯이 부자만의 좋은 시간을 가질거라 생각하면 뿌듯하다.
우리 아들, 수능은 기대치에 못미쳤지만....그래도 표창창을 받아왔다. 그것도 선행부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