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 1일, 우리 삼남매 어렸을 때 녀석들을 앞세우고 무등산에 올랐던 이야기다.
내일부터 개강이라 방금 고속버스로 올라간 큰딸이 중학교 2학년, 내일 고등학교 입학하는 아들은 초등 4학년, 이제 중2가 되는 막내딸은 초등 2학년이었다. 세월이 흐른 뒤에 읽어보면 한편의 영화를 되돌리듯 추억에 잠기게 된다. 가족은 이런 사랑의 추억을 공유하니까 좋다.^^

무등산(無等山) 이야기       2003. 3. 1

  늦은 아침을 먹고 가랑가랑 내리던 봄비가 멎기에 서둘러 집을 나섰다. 
  "가면서 먹을거리와 필름 사야 돼~ 출발!"
  카니발 안에선 아빠의 18번 장사익의 찔레꽃이 한바탕 난리를 치고 있었다. 이 노래를 맨 처음 들을 때 아이들은 귀를 막고 소리를 줄여 달라 간청했지만 이제는 다섯 식구가 서로 목소리를 돋우어 따라 부르는 가족노래가 되었다. 일명 우리가족의 주제가다.^^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식구들 모두 목청껏 찔레꽃을 따라 부르느라 우리는 먹을거리와 필름 사는 것도 잊고 무등까지 갔다. 어디선가 팔겠지~ 둘러보았지만 눈에 띄지 않았다.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아쉬움을 안은 채 등산로 따라 올랐다.  


  갈림길까지 와서 어디로 갈까 망설였다. 짧고 쉬운 토기봉을 오를까~ 중머리재를 오를까? 아니면 4.9km 장불재 쪽으로 가서 입석대, 서석대를 오를까? 아빠는 쉬운 토끼봉으로 가자하고, 큰딸은 소풍 올 때마다 거기 가는데 또 가느냐 반대하여 다수결 3:2로 장불재를 오르기로 하였다. 사람들은 대부분 토끼봉으로 가는데 우리 다섯 식구만 장불재로 향했다.     

 

  "역시 엄마가 삼남매를 둔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어! 
  만약 둘이었다면 다수결로 정할 때 2:2라서 안 될 거 아냐~ 후후"
우리는 신나게 등산로를 올랐다. 우리끼리 가면서 태극기를 흔들며
  "무등산 정기 받아 터전 이루고 이 나라 키워나갈 새싹들 모여~ "
  초등학교 교가도 부르고,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하늘 높이 아름답게 펄럭입니다~"
소리소리 지르며 노래를 불렀다.
  


  중간 휴식처에선 태극기를 세우고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도 올리고, 1절부터 4절까지 애국가를 부르며 우리만의 애국심을 뽐내었다.

  '3.1 정신 계승 기념 등반'이라는 우리만의 거창한 구호가 아니어도 우리는 한껏 들떠서 "대한독립 만세~ 대한민국 만세~ "
 를 외치며 오늘의 무등은 몽땅 우리 차지가 되었다.
  


  여기 저기 잔설이 남아있고, 폭포처럼 흘러내린 물은 그대로 얼어붙어 고드름 폭포를 만들어 내어 아이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와~이 얼음 밑으론 물이 흐른다~~"
물안개처럼 피어난 구름은 산머리를 휘감고 돌아 한 폭의 동양화를 눈앞에 펼쳐 놓았고, 한시를 읊으며 가는 우리의 발걸음은 더욱 힘찼다. 비는 내리지 않으나 날씨가 개었다 흐렸다 변덕스러워, 멀리 산 아래 보이는 마을들은 햇빛에 나타났다 사라지며 숨바꼭질하듯 했다.  


  유일한 먹을거리 귤을 까먹으며 처음엔 껍질을 산 속에 버렸는데, 썩지 않고 동물들이 먹지 않으니 과일껍질을 버리지 말라는 안내문을 보고 우리는 배낭에 도로 담았다. 몇 차례 쉬었지만 아이들은 지치고 힘들어하며 그만 내려가자 하였다.
  "그래도 장불재까지 가야지. 재작년 여름엔 정상까지 갔었잖아~ "

  "그땐 먹을거리가 많아서 에너지를 보충하며 갔었다고~
  옥수수, 오이, 빵, 과자 초콜릿, 얼마나 먹을 게 많았다고~"
 
  "그래 간식 준비 못한 건 엄마의 잘못이다. 이따 내려가면 맛난 점심 사줄게~
  오늘은 아빠가 한 턱 쏜다~"
  달래가며 아빠의 양손을 잡은 딸들은 그런대로 따라 올랐다.
 

 "엄마가 뚱보 아빠랑 결혼한 것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지 않니?" 
 "맞아, 아빠가 빼빼 했다면 이렇게 손잡고 늘어지지 못할 거야" 
 "그래 우리아빤 바라만 봐도 넘넘 든든해~"
  옆에서 쫑알쫑알 지껄여도 한마디 대꾸 없는 무등 같은 우리 남편!

  아이들은 군사시설을 철수하고 원상 복구한 중머리재에 이르자 강력히 돌아가자 주장하였다. 그때 갑자기 휘몰아 친 광풍은 0.7km를 남겨둔 장불재를 다 가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게 했다.  


  내려오는 길은 부자끼리 모녀끼리 짝을 이루어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민경아, 무등산은 왜 무등인지 알아?" 
  "아니, 몰라. 왜 무등이야?"
  "응, 옛날에 산의 신선들이 등급 매기는 회의를 했는데, 이 산의 신선이 그 회의에 참석하지 못해서 등급을 받지 못해 無等山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등수를 매길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훌륭해서 無等山이라는 이야기도 있단다."
  "그래서 없을 無자 無等山이야?"

  "그렇지."  

 


  바라만 봐도 행복한 막내 민경이와 엄마의 대화가 끝없이 이어지며 드디어 주차장에 닿았다. 우리는 주린 배를 안고 식당에 들어가 가장 빨리 나오는 보리밥 비빔밥을 먹으며 
  "보리밥이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네. 된장국도 너무 맛있다!"
감탄하며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그릇을 비웠다.
  


  "엄마, 3.1정신 계승 두 번만 했다간 우리 다 돌아가시겠다."
우리들은 포만감을 안고 카니발에 올라 무등을 등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 오늘 하루 무등은 완전한 우리 차지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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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03-01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년 전 오늘의 일을 순오기님이 기록해 두신 거예요? 보람차고 사랑스러운 추억담이에요. 언제나 발휘되는 긍정 마인드도 배울점 가득이에요. ^^

순오기 2009-03-01 17:49   좋아요 0 | URL
당시에 아이러브스쿨을 블러그처럼 썼어요. 그걸 복사해온거죠.^^

바람돌이 2009-03-02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기록이 있으니까 추억이 다시 살아나서 참 좋아요. 나중에 아이들한테 좋은 선물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

순오기 2009-03-16 00:43   좋아요 0 | URL
사랑은 추억이더라고요.^^

쟈니 2009-03-02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무등산에 그런 이야기가 있었군요. 산을 오르는 순오기님 가족의 이야기를 보니, 저도 어렸을 적 일요일날 뒷산에 부모님 손 잡고 올라가던 생각이 나서 맘이 따뜻해집니다.

순오기 2009-03-16 00:44   좋아요 0 | URL
이래서 무등산이 되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 재미있지요?^^
부모님과 함께 했던 추억들이 많을수록 사랑도 깊어지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