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빨강 창비청소년문학 27
박성우 지음 / 창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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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시집으로 중고딩들의 정서와 심리를 잘 풀어냈다. 오직 공부만이 살길이라고 성적 위주의 입시교육에 닥달 당하는 고단한 청소년들, 그래서 짠한 마음에 가끔 눈시울이 젖지만 금세 푸하하~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시집이다.  

청소년기의 특징답게 성에 대한 호기심이 여과없이 노출되기도 하고, 그네들만의 유희와 몸짓들이 까발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시인은 어른들이 몰라준다고 너무 오래 삐치지도 말고 너무 일찍 철들지도 말라고 당부한다. 맞다 정말~ 그런 시기가 지나버리면 결국 어른이 되는 거니까, 그냥 천천히 청소년기를 즐기면 좋겠다. 초록으로 가는 연두이거나 톡톡 튀는 빨강, 같은 청소년들이 이 시집을 읽으며 공감도 하고 말이지.   

엄마인 내가 봐도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공감을 팍팍 느끼는 시들이 수두룩하다. 이래서 난 박성우 시인이랑 코드가 맞아서 좋다.^^ 

 

사춘기인가?  

요샌, 아무 말도 하기 싫다 

엄마랑 아빠가 뭘 물어와도
대답은커녕 그냥 짜증부터 난다
이게 사춘기인가? 

엄마 말이 안 들리니? 들려요
너 요새 무슨 일 있지?
없어요
너 요새 누구랑 노니? 그냥 놀아요
너 요새 무슨 생각하니?
아무 생각 안 해요
쉬는 날 식구들끼리 놀러 갈까?
싫어요
너 요새 진짜 왜 그래?
뭐가요
엄마랑 말하기 싫어?
고개만 끄덕끄덕
대충대충 설렁설렁 대답하고는
내 방으로 휙 들어가 버린다
제발 신경 끄고 내버려 두라고
신경질을 내기도 한다 
엄마든 아빠든 다 귀찮아서
방문도 틱 잠가버린다 

넌 안 그러니?
   

 

-엄마 아빠도 이런 시기를 거쳐 왔건만, 왜 아이들 마음을 몰라주는 걸까?ㅋㅋㅋ 그냥 꼬치꼬치 캐묻지 말고 내버려 두는 아량도 필요하겠다. 어제 막내 중학교에서 체육대회를 해 잠시 보고 왔는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요즘 애들을 실컷 보고 왔다.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봐줘야 할 것 같다.

심부름 

누나는 고 삼이다 
반에서 일이 등 하는 고 삼이다 

그런 누나가 뜬금없이
만두가 먹고 싶다고 해서,
뒤에서 오 등 정도 하는 내가
밤늦게 만두 심부름을 갔다 

너무 늦어서 이 골목 저 골목
문 닫지않은 만두 집을 찾아 헤매다가
큰 사거리 근처까지 나가서 겨우 샀다 

만두가 식을까 봐 뛰어서 집으로 갔다 

심부름 가서 딴짓하다 늦게 왔다고
엄마한테 잔소리를 잔뜩 들었다 

난 뒤에서 오 등이니까,
말대꾸할 힘도 없어서 그냥 잤다 

 
-아~ 맘이 싸해지는 시다. 개콘에서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대놓고 타박하지만, 사실은 우리 스스로 이미 세뇌돼버려 가정에서도 이런 횡포를 부린다. 에휴!ㅜㅜ  

 

1318 다이어트 

밥은 하루 세 끼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잠들기 전까지도 간식을 챙겨 먹는 대신, 

엄마 아빠와 선생님의 잔소리를
다이어트 약처럼 하루도 안 빼먹고 꼬박꼬박 잘 먹어! 

잘 먹고 있지? 

*유의 사항: 눈치를 많이 봐야 효과가 좋음
                 간혹, 부작용으로 더 찔 수도 있음
  

 

같은 동네 사는 완상이 오빠가 서울대에 합격한 뒤로, 완상 오빠 얘기만 하는 엄마 때문에... 완상이 오빠네가 이사를 가든지 우리 집이 이사를 가든지 하면 좋겠다,는 서울대. 알람이 울리면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책가방 메고 학교에 가서 기계처럼 이어지는 공부 공부... 집으로 돌아와 종일 가동한 기계를 점검하니 고장 난 기계처럼 껌뻑껌뻑 꺼진다는 공부 기계. 선생님아 학생아 이젠 제발, 나도 좀 쉬자고 호소하는 학교가 우리에게. 성적, 복장, 태도, 뭐가 어때서요라는 말까지맘에 안 들어도 그냥 좀 놔둬요 소리치는 시. 우리 청소년들의 안쓰러운 현실에 공감하면서도 마음이 심란하다.  그래도 출렁출렁으로 작은 위로 받으면 안될꺼나. 

 

출렁출렁 

  이러다 지각하겠다 싶을 때, 있는 힘껏 길을 잡아당기면 출렁출렁, 학교가 우리 집 앞으로 온다 

  춥고 배고파 죽겠다 싶을 때, 있는 힘껏 길을 잡아당기면 출렁출렁, 저녁을 차린 우리 집이 버스 정류장 앞으로 온다 

  갑자기 니가 보고 싶을 때, 있는 힘껏 길을 잡아당기면 출렁출렁, 그리운 니가 내게 안겨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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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5-15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왜 이 글을 못 읽었는지 모르겠어요.
아,, 시들이 참 좋네요. 어른이 쓴 시가 아니고 중고등학생의 시를
이렇게 묶어놓으면 더 공감될거 같아요...

순오기 2010-05-15 19:28   좋아요 0 | URL
학생들이 쓴 시라면 더 리얼할지도...

hnine 2010-05-15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런 시를 쓸 수 있었으면...아직도 내 일 처럼 공감이 팍팍 되는데 말이어요. 제목은 많이 보았는데 저는 소설인줄 알았어요. 꼭 읽어볼래요.

순오기 2010-05-15 19:32   좋아요 0 | URL
창비시선이 아니라 청소년문학 시리즈에 넣었더군요.
저기 표지의 빨강에 '박성우 청소년시집'이라고 써 있어요.^^

같은하늘 2010-05-15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쩜 이리도 아이들의 잘도 표현했는지... 글쓰는 분들은 정말 대단해요.
나중에 아이에게도 보여주면 좋겠어요.

순오기 2010-05-15 19:33   좋아요 0 | URL
글쟁이들이 써 놓을 걸 보면 정말 기막하게 잘 표현했지요.
마치 내 마음을 들여다 본 것처럼...^^

프레이야 2010-05-15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아이들을 위한 동시집은 여럿 있지만
1318을 위한 시집은 전 처음이에요.
솔직한 마음이 담긴 것 같아 좋으네요. 이런 시집 필요할 것 같아요.^^

순오기 2010-05-15 19:34   좋아요 0 | URL
맞아요, 동시집은 많은데~ 청소년을 위한 시집은 못 본 거 같아요.
하긴 요즘 청소년들이 시집을 볼 짬도 없이 몰아세우고 있으니...ㅜㅜ

희망찬샘 2010-05-18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부름~ 콱 박히네요. 시집을 사서 막 읽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순오기 2010-05-21 01:09   좋아요 0 | URL
심부름~ 대체로 부모들이 저런 경향이 있지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