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를 발견한 퀴즈왕들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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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쟁이와 모나리자 ㅣ 사계절 1318 문고 15
E. L. 코닉스버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0년 7월
평점 :
알라딘에선 네꼬님의 페이퍼로 <클로디아의 비밀>이 히트했는데, 뉴베리상을 받은 코닉스버그의 <퀴즈왕들의 비밀>과<클로디아의 비밀>을 읽고 <거짓말쟁이와 모나리자>까지 읽으면 코닉스버그의 팬이 되는 건 거부할 수 없는 수순이다.^^
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하인 살라이에게 밀라노 성 밖에 있는 농지의 반을 유산으로 남긴다. 그 농지에 살라이가 지은 집은 앞으로 살라이 자신과 그의 상속인과 후손들의 재산이 될 것이다. 이것은 내 하인 살라이가 지금까지 성실하고 친절하게 봉사해 준 데 대한 보답이다.
레오나르도의 유서에 등장하는 살라이를 주인공으로, 레오나르도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았으며 왜 모나리자를 그리게 되었는지 수수께끼를 풀어주는 책이다. 코닉스 버그가 그려낸 살라이는 비록 좀도둑이고 거짓말쟁이였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이 사랑스런 캐릭터다. 그래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늘 그와 함께 하고 유산을 물려줄 정도로 아꼈구나, 싶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모나리자에 대한 독자의 흥미와 궁금증을 채워주기에 흡족한 소설이고, 코닉스 버그가 그려내는 르네상스 시대의 풍경과 레오나르도의 경쟁상대였던 미켈란젤로도 눈여겨 볼 만하다. <거짓말쟁이와 모나리자>라는 제목에 어떤 중의성을 내포했는지, 코닉스 버그가 그려낸 살라이를 따라 가 보자.
"왜 지갑을 훔쳤지?"
"전 아무것도 안 훔쳤어요. 저분이란 부딪쳤을 때, 제 칼이 우연히 지갑 끈에 닿은 거예요. 그래서 지갑이 제 손 안에 떨어졌고요. 끈이 해졌나 봐요."
"여보게 레오나르도, 서툰 변명이나 그럴 듯한 변명이나 근원은 하나구먼. 둘 다 궁지에 몰린 끝에 나오니 말일세. 꼬마야, 너를 붙잡은 분이 누군지 아니?"
"하느님이신가요, 나리?"
"아니, 하느님은 아니야. 하느님의 가장 뛰어난 창조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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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을 혼내 줘야겠는 걸. 내 지갑을 훔쳐서가 아니라 자네가 누군지 모른다니 말일세. 네 머리채를 잡고 계신 분은 밀라노 성 최고의 화가이자 지성인이자 기술자이며, 그래서 세계 최고라고도 할 수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어른이시다."
레오나르도와 살라이가 처음 대면한 장면이다. 레오나르도는 그 길로 살라이 아버지한테 찾아가 살라이를 견습공으로 데려 왔다. 견습공 중에 가장 나이가 어리고 자질구레한 일을 도맡아 했지만, 이후 살라이와 레오나르도의 행보와 대화는 유쾌하게 펼쳐진다. 살라이는 실제 레오나르도의 일기와 가계부에도 등장하는 자코모이다.
자코모는 1490년 성 막달라 마이아의 날에 우리 집에 왔는데, 나이는 열 살이었다.
자코모가 그들이 옷과 함께 침대에 놓여 있던 지갑에서 돈을 훔쳤다.
이 자코모란 아이는 내 터키제 가죽을 훔쳐가 구두 수선공에게 20솔다에 팔아 넘기고는....
그 중 13스쿠도는 여동생의 결혼 지참금에 보태라고 살라이한테 빌려 주고.....
레오나르도는 밀라노를 통치하던 루도비코 스포르차 공작 밑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한다. 그림이나 동상 뿐 아니라 축제를 주관하거나 도시를 설계하는 일에도 참여한다. 레오나르도의 뛰어난 머리와 기술은 그 모든 것을 하기에 충분했을 듯하다. '일 모로'라고 지칭되는 루도비코 공작이 체칠리아 갈레라니라는 정부를 두고, 서른 여덟에 맞은 정식 부인 베아트리체는 열두 살이지만 매력이 넘치는 여자였다. 물론 그 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 준 이는 레오나르도였다.
스스로 까무잡잡하고 못생겼다고 생각하던 베아트리체와, 세 치 혀의 놀림이 뛰어난 살라이가 콤비로 발휘하는 일련의 에피소드는 배꼽을 잡게 한다. 언니 이사벨라에게 밀리고 공작의 정부 체칠리아에게 밀려 항상 두번째였던 베아트리체는, 레오나르도의 친구가 되어 솔직함과 당당함으로 권력에 아부하는 상류층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베아트리체는 삶의 직관이 뛰어났고, 레오나르도는 그 내적 아름다움을 알아봤다. 레오나르도와 베아트리체는 서로의 부족한 면을 채워주는 훌륭한 친구였다. 공작이 사랑스런 부인의 재능을 알아보고 사로잡혔음은 말할 것도 없다.
살라이는 좀도둑이고 거짓말쟁이였지만 레오나르도를 제 맘대로 움직이려는 실력자들을 한 방 먹이는 모사꾼이었고, 레오나르도의 디자인이나 낙서를 빼내어- 살라이 표현대로 하면 잠시 빌려 돈을 벌 줄 아는 타고난 수완가였다. 그러나 점차 변해가는 베아트리체나 레오나르도에게 직언도 서슴치 않는 진정한 친구였다.
"베아트리체를 좋아했다고! 당신이! 당신이 좋아하는 건 당신의 생각이지 사람이 아니에요. 당신은 기계예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생각하는 기계라구요. 당신은 얼음덩어리에요. 그림들도 하나같이 얼어붙은 생각들뿐이에요.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거만하고 꽉 막힌 사람, 당신은 누구하고도 친구가 될 수 없어요. 당신은 심지어...... " 136쪽)
당대 실력자들은 레오나르도의 그림을 갖고 싶어했지만, 그는 아무에게나 그려주지 않았다. 베아트리체의 언니 이사벨라가 수없이 요청했음에도 제대로 된 초상화를 그려주지 않고 스케치와 흉상 조각만 남겼다. 그러나 평범한 상인의 부인 리자 조콘디를 그려 달라고 왔을 때, 살라이는 직감한다. 바로 그 여인은 레오나르도가 그리지 않은 베아트리체의 초상이 될 거라고... 불멸의 수수께끼가 된 모나리자의 그림이 잉태되는 순간이다. 모나리자의 배후에는 우리의 주인공 살라이가 있었다.^^
이 책은 소설이 끝나고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나리자와 살라이로 추측되는 젊은이와 레오나르도의 초상화, 루드비코 스포르차와 체칠리아, 이사벨라 스케치와 흉상도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