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타샤의 정원 - 버몬트 숲속에서 만난 비밀의 화원 ㅣ 타샤 튜더 캐주얼 에디션 2
타샤 튜더.토바 마틴 지음, 공경희 옮김 / 윌북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타샤의 정원>은 꽃을 통해 친구가 된 토바 마틴이 글을 쓰고, 리처드 브라운이 사진을 찍어서 펴낸 책이다. 곁에서 지켜 본 사람의 증언이라 실제 타샤 할머니의 생각과 다른 부분도 있을지 모르지만, 객관적으로 조명됐을 거 같아 오히려 신뢰감이 든다. 타샤 할머니는 90세에도 장미 전문가가 되고 싶다며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하는 욕심쟁이(?^^)다.
타샤 할머니는 매력적이지만, 타샤 할머니처럼 사는 건 흉내 낼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 타샤 할머니의 정원이 30만평이라는데 얼마만큼의 넓이인지 나는 가늠이 안 된다. 내가 가늠할 수 있는 넓이는 겨우 몇 백 평 정도라 천이나 만이 넘는 땅은 감이 안 잡힌다. 게다가 손수 그 넓은 정원을 가꾼다는 건 평생 일 구덩이에서 살아야 된다는 얘기다.
난, 어릴 때 시골 살면서 콩밭 보리밭 매는 것도 끔찍했기에, 전원을 꿈꾸는 사람들의 로망에 편승하지 않는다. 자기 혼자 먹을 푸성귀를 가꾸는 거라면 일에 치이지 않겠지만 자식들 주고 이웃과 나눠 먹을 만큼 가꾸는 일도 여간 아니라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농사일을 해보지 않고 자란 남편은 광주에 내려와 살면서 무등산 자락 선산에 딸린 2백 평쯤 되는 땅에 채소를 심고 싶어 했다. 우리집에서 무등산자락까지 다니는 기름 값이면 그냥 사먹고 말지, 농사는 취미로 할 일이 아니라고 극구 말렸었다. 하지만 고집을 부려 열무와 배추를 심고 주말에 몇 번 가더니만 제풀에 나가 떨어졌다. 이파리가 올라오는 족족 벌레가 먹어 그야말로 사람이 먹을 게 없었다. 그렇다고 농약 팍팍 쳐가면서 가꿔서 식탁에 올리려면 뭐하러 그 고생을 하겠는가 말이다.^^
타샤 할머니의 30만평 정원에 이 책에 보이는 것처럼 다 꽃을 심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꽃이든 채소든 다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일이라 생각만으로도 후덜덜이다. 타샤의 정원은 부지런한 사람의 몫이라, 나처럼 일하기 싫어하고 게으른 사람은 거저 줘도 못 꾸민다. 타샤 할머니는 부지런하고 성격도 치밀해서 정원의 꽃들도 제멋대로 아무 곳에나 피어나게 하지 않고, 조화롭게 어울리도록 씨를 뿌리고 알뿌리를 옮겨 만들어낸 수고의 결과물이란 걸 확인하면 경외감이 더한다. 장미, 튤립, 수선화, 접시꽃, 안개꽃, 작약, 양귀비, 붓꽃, 층층이부채꽃, 제비꽃 등 철따라 피어나는 크고 작은 꽃들은 타샤 정원의 초절정 환상이다.
타샤의 정원에 놀러가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타샤의 일을 거들어야 한다는 걸 보면, 타샤 할머니도 일에 치여 산다는 걸 알 수 있다. 제 아무리 부지런한 사람도 그 넓은 정원을 가꾸는 일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긴 타샤의 눈부신 정원을 본 사람이라면 감사한 맘으로 저절로 일을 돕고 싶은 것 같다.
타샤의 정원을 보면 확실히 서양 정원과 동양 정원의 차이를 알겠다. 예전에 영화 '비밀의 정원'에서 봤던 그런 정원, 내가 읽은 비밀의 정원은 타샤 튜터의 삽화라서 더욱 타샤의 정원과 닮아 있다. 우리의 대표 정원인 '소쇄원'은 자연과 어우러진 공간 배치와 여백의 미에 감탄하지만, 타샤의 정원은 빈틈없이 꽉 찬 느낌이다. 정원 뿐 아니라 꽃꽂이도 동양은 여백의 미를 추구하는데 서양은 꽉 찬 포만감을 준다. 타샤가 정원에서 꺾어 집안에 꽂아 둔 꽃꽂이를 봐도, 우리 꽃꽂이를 한 내게는 그닥 멋져 보이지 않는다. 내가 배운 꽃꽂이가 여백의 미를 중시하는 전통적인 동양 꽃꽂이라서 그렇겠지만, 타샤의 꽃꽂이는 화에서 보는 전형적인 서양꽃꽂이라 많이 아쉬웠다. 타샤 할머니가 동양의 미를 알면 이제라도 배우고 싶어하지 않을까?^^
타샤는 23세에 결혼해 2남 2녀를 키웠고, 42세에 <1 is One>이란 그림책으로 칼데곳 상도 받았다. 56세에 버몬트 주 산골에 당신이 원하는 형태의 18세기풍의 농가를 짓고, 좋아하는 꽃들을 맘껏 가꾸고 그리며 살았으니 이 얼마나 멋진 삶인가! 더구나 오랜 전 드레스를 버리지 않고 다락방에 두었다가 손주들이나 손님이 오면 맞을 만한 옷을 내어 입히고 모델 삼아 그림을 그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타샤 할머니는 정말 타고난 마술사 같은 분이다.^^
이 책을 보면서 위 사진에 나온 꽃이름을 알게 돼서 기뻤다. 재작년에 어떤 식당 정원에 이 꽃이 있어 사진을 찍었는데 여태 이름을 몰랐다. 꽃대마다 제각각 다른 색의 꽃을 피워 올리지만 한 가지에서도 꽃송이마다 다른 색깔의 꽃을 매달고 있어 신기했는데, 타샤 할머니의 정원에선 2미터도 넘는 이 꽃 이름은 '디기탈리스'란다. 앞으로 절대 이름을 잊어버리진 않을 거 같다.
1915년 보스턴에서 태어난 타샤 할머니는 2008년 6월에 돌아가셨다. 좋아하는 일 하면서 멋지게 사신 타샤 할머니, 당신의 그림책과 더불어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