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하면 현실이란, 아무리 불가피하다 할지라도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사람들은 흔히 타인의 삶에 관해 뭔가 정확한 세부사항을 알면, 그로부터 정확하지 않은 결론을 도출하고, 또 새로이 발견한 이 사실에서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들에 대한 설명을 찾기 때문이다. - P14
원래 우연성의 현실 세계보다 가능성의 세계에 더 많이 열려 있던 내게 이런 일은 그만큼 더 위험했다. 가능성의 세계는 인간의 영혼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지만, 개인에게 속을 위험이 있다. 내 질투는가능성이 아닌 이미지에서, 내게 고통을 주기 위해 생겨난 것이었다. 그런데 개인과 민족의 삶에서 (따라서 내 삶에서도 언젠가는 틀림없이 일어날) 어느 한순간 우리는, 동서남북으로 펼쳐진 공간 속에 숨겨진 가능성을 꿈꾸는 대신 다음과 같이 올바르게 성찰하고 생각하는 경찰청장이나 명철한 시각의 외교관 또는 수사반장을 필요로 하기 마련이다. - P38
그때 굶주린 회복기 환자가 아직 허락되지 않은 온갖 음식을 미리 다 먹어 치우듯, 나는 알베르틴과의 결혼이 나를 다른 존재에게 바치는 지나치게 무거운 임무를 수행하게 하고, 또 그녀의 지속적인 현존 때문에 나 자신이 부재하는 삶을 살게 하여 영원히나로부터 고독의 기쁨을 빼앗음으로써 내 삶을 망가뜨리지않을지 자문해 보았다. 고독의 기쁨만이 아니다. 비록 내가 그런 날들에 바라는 것이 욕망뿐이라 할지라도 사물이 아닌존재가 야기하는 욕망 -그런 욕망 중에는 개인적인 성격의것도 존재한다. - P43
날씨가 나쁠 때에도 납작한 모자를 쓰고 모피 코트 차림으로 장을 보려고 걸어서 외출하는 공작 부인을 안마당에서 마주칠 때가 가끔 있었다. 공작령도 공국도 없어진지금 게르망트 공작 부인이라는 이름이 무의미해지면서, 이제 그녀가 많은 지식인들에게 그저 그런 여인에 불과해졌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나는 존재와 고장을 향유하는 방식에서다른 관점을 택하고 있었다. 나쁜 날씨를 무릅쓰고 외출하는이 모피 코트 차림의 부인이, 내게는 공작 부인과 대공 부인과자작 부인으로서 소유하는 그 모든 영지의 성들을 그녀와 함께 가지고 다니는 듯 보였는데, 이는 마치 대성당 정문 상인방에 조각된 인물들이 그들이 건설한 대성당이나 수호하는 도시를 손에 들고 있는 것과도 같았다. 그러나 이런 성과숲 들을, 나는 내 정신의 눈을 통해서만 왕의 사촌 누이인 그모피 코트 입은 여인의 장갑 낀 손에서 볼 수 있었다. 비가 쏟아질 듯한 날씨에 내 육체의 눈이 식별해 내는 것은, 공작 부인이 들고 다니기를 꺼리지 않는 우산뿐이었다. - P49
우리가 흔히농담으로 하는 말들은 대개는 그 농담과는 반대로, 우리가 어려움에 시달리며, 하지만 어려움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이고싶지 않으며, 더 나아가 우리와 얘기하는 사람이 그에 대해 농담하는 걸 들으면서,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믿어 주기를 바라는 은밀한 기대를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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