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유년 시절에 관한 작가들의 한탄과, 심리학자들의 이론과, ‘내가 어렸을 땐‘이라는 주제만 나왔다 하면 그 즉시 시작되는 모든 인간의 봇물 같은 토로 외에 또 어떤 매력을 부여할 수 있을까? 아마 잃어버린 절정의 무책임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아닐까. 하지만 그녀는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 무책임을 잃지 않았다. 그녀는 완벽한 무책임을 느꼈다. - P19

심장이 똑같이 옥죄어드는 기분이었다. 똑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내가 좋아하는 건 이게 다인데, 이건 결코 진정한 내 것이 될 수 없겠지. 이 여잔 날 떠날거야? 이 순간에 어떻게 다른 머리칼을, 다른 존재를 사랑하는 게 가능하다고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사랑은 분명 오직 이 돌이킬 수 없는 
기분에 달려있었다.
- P68

"삶에요. 남들이 삶이라 부르는 것에요. 샤를, 그러니까 인간은 정말로 사랑해야 하는 걸까요, 불행한 열정을 가져야 하는걸까요? 존재하기 위해 일하고, 돈을 벌고, 무언가를 해야 하는 걸까요?"
- P103

그는 정말이지 그녀가 혼자서 삶을헤쳐 나갈 수 없으리라 여겼고, 그 순간 그녀는 바로 그 때문에 자신이 그에게 안전감 이상의 애착을 느낀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그녀의 무책임을 받아들였다. 15년 전 그녀의 무의식적 선택, 영원히 청소년기에 머물겠다는 그 결정을 인정해주었다. 똑같은 결정에 앙투안은 틀림없이 분노하리라. 어쩌면 그녀가 되고 싶은 사람과 샤를이 바라보는 사람 사이의 완벽한 일치가 
그 모든 열정보다 더 강력하고, 그녀에게 그 모든 열정을 부인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 P106

그러니까, 루실, 언젠가 나한테 돌아와요. 난 당신을 당신 자체로 사랑해, 앙투안은 자기 짝으로서 당신을 사랑하지. 당신과 함께 행복하고 싶은 걸 거고, 그 나이엔 그게 맞아. 하지만난 당신이 나와 무관하게 행복하기를 바라오. 기다리겠소, 내가 할 일은 그것뿐이니까."

"게다가 앙투안은 머지않아 당신이 당신인 걸로, 그러니까 당신이 향락적이고 무사태평하고 비겁한 걸로 나무랄 거요, 아니면 벌써 나무랐을지도 모르고, 틀림없이 그가 당신의 약점 혹은 결점이라고 부를 것들에 대해 당신을 지탄할 거란 말이지.
그는 여자를 힘 있게 만드는 게 뭔지 아직 모르거든 남자들이
여자를 사랑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라는 것도. 설사 그것이 최악의 것을 가린다 하더라도 말이오. 아마 앙투안은 당신을 통해 그걸 배우게 될 거요. - P179

나는 모든 존재가 행복할 숙명이라는 걸 알았다.
행동은 삶이 아니라 어떤 힘을 허비하는 방식, 무기력이다.

아르튀르 랭보 《지옥에서 보낸 한 철》 - P195

루실은 필시 재앙이 될 미래, 앙투안의 분노를 유발하고, 신뢰를잃고, 그 둘 모두 그녀가 그가 제안한 이 정상적이고 안정적이며 비교적 쉬운 이 삶을 그와 함께 살아갈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미래를 향해 달려가면서, 스스로에게는 어떤 거짓말을 했던 것일까? 그녀는 자신의 실패를 잠정적으로 숨기는 것이 이 상황을 만회하려는 의지를 의미하는 건 전혀 아니라는 걸 정확히 인식했다. - P216

많은 사람들이 다 듣지 않고 암시만으로 이해한 것을 잊지만, 완전한 침묵은 어처구니없고 황당하고 부조리한 걸 의미할수 있다는 것 또한 잊는다.  - P224

그들은 싸늘했고, 서로에게 몸이 닿는 걸 피했다. 이 넓은 침대에서 세상의 모든 무게를 짊어진 기분이었다. 고독한 저녁시간, 궁핍한 경제 사정, 자글자글한 주름들이 보였다. 화염의바다 속에서 원자폭탄이 발사되는 것이 보였다. 힘겹고 적대적인 미래가 보였고, 서로가 없는 삶이, 사랑 없는 삶이 보였다. 앙투안은 만일 루실이 스위스로 떠나게 내버려 둔다면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이고, 루실을 원망할 것이며, 그것이 그들의 사랑의 끝이 되리라고 느꼈다.  - P237

루실은 걸어서 돌아왔다. 집으로, 샤를에게로, 고독에게로,
그녀는 자신이 삶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모든 삶으로부터 영원히 박탈당했다는 것을 알았고, 박탈당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 P255

"퇴각의 북소리라는 표현은 어디서 온 겁니까?"
한 식자가 대답했다.
"리트레 사전에 따르면 패배를 알리기 위해 울리는 신호죠." - P25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