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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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에 서술된 SF의 정의는 미래의 과학과 기술, 우주 여행, 시간 여행, 초광속 여행, 평행 우주, 외계 생명체 등을 소재로 하는 장르이다. 그러한 것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 과학 소설이다. 사실 판타지와 SF 를 잘 구분하지도 못하고 많이 즐기기도 못하는 사람으로써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은 7개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엔 말하고자 하는 것이 명확해 가볍게 읽어 나갔는데, 갈수록 흥미롭고 기발한 내용이 서술되어 점점 책에 빠져들게 되었다. 읽어 갈수록 생각할 것도 많았다.

 

이 소설들은 나처럼 과학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별 무리없이 읽어낼 수 있다. 과학 소설을 읽다 보면 거기에 나오는 이론적인 단어가 실제의 것인지, 아님 작가가 만들어낸 가상인지 잘 구분이 안되는데, 여기에서는 실제의 과학 지식들이 많이 사용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그 단어를 입력하면 거의 설명되는 단어가 많았다.

 

김초엽의 소설에서는 미래의 세계가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그 상상력이 기발하다. 지성을 가진 외계인을 만나고, 지구와 생태가 비슷한 다른 행성으로 이주를 한다. 감정을 그대로 표현해주는 물건도 있고, 죽고 나서도 그 사람의 특징이나 감정을 그대로 간직하는 도서관도 있다. 그 시대의 도서관은 책을 보관하는 곳이 아니라 사람의 마인드를 보관하는 곳이다. 종이책은 이미 없어진지 오래다. 그러한 과학 지식을 동원한 상상의 세계를 그려내는 작가가 대단해 보인다.

 

과학 소설을 읽으며 한 번씩 나 자신을 미래의 세계에 놓아 본다. 그런 세계에 살게되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며, 과연 행복할 것인가를 상상하며.......늙고 병들지 않는 세상도 좋고, 특히 태어날 아이에게 가장 좋은 특성들을 세팅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그렇게 된다면 행복하고 기분 좋을 것도 같은데 내가 그런 세상을 진정으로 원하는 지는 잘 모르겠다. 과학이라는 것이 적용되는 모든 것은 양가적인 것이라 결론이 쉽게 나진 않는데, 문제는 우리의 미래의 모습이 나의 선택이 아닌 주어지는 것이라는 데에 있다. 무시되고 탈락되어진 나에게 다가오는 미래는 암울하다.

 

'멋진 신세계'나 '1984'에서는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그렸는데 김초엽도 비슷한 것 같다. 뭔가가 어둡고 씁쓸하다. 소설에서 그려지는 미래의 세계에서도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들이 지금과 비슷하다. 환경이 변하면 분명히 사람들의 생각이 바뀔 법도 한데 그렇지 않다. 어떻게 변하든 사람이란 존재는 잘 안바뀌는 건지 아니면 미래의 세계를 동원해 지금의 현실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주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세계에서 오히려 우리가 당면한 문제가 더 잘 보인다.

 

과학의 발달로 인한 세상의 변화는 너무나 당연하고 우리에게 바로 직면해 있다. 대세를 거스르지는 못하겠지만 다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안나의 말처럼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으면 좋겠다. 빛보다 빠르게 달리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일상의 균열을 맞닥뜨린 사람들만이 세계의 진실을 뒤쫓게 되는 걸까?-p19

그때 나는 알았어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거야-p54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동결은 대가 없는 불멸이나 영생이 아니야.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눈을 뜨는 순간이 있어야하고 그때마다 나는 내가 살아보지도 못한 수명을 지불하는 기분이 들지-p179

완벽해 보이는 딥프리징조차 실제로는 완벽한 게 아니었어. 나조차도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몰랐지. 우리는 심지어, 아직 빛의 속도에도 도달하지 못했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우리가 마치 이 우주를 정복하기라도 한 것 마냥 군단 말일세. 우주가 우리에게 허락해준 공간은 고작해야 웜홀 통로로 갈 수 있는 아주 작은 일부분인데도 말이야. 한순간 웜홀 통로들이 나타나고 워프 항법이 폐기된 것처럼 또다시 웜홀이 사라진다면, 그러면 우리는 더 많은 인류를 우주 저 밖에 남기게 될까?-p180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 안에 있는 것이라고. 그 사실을 위안 삼으라고.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p182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마인드들은 우리가 생전에 맺었던 관계들, 우리가 공유했던 것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뇌에 남기는 흔적들과 세상에 남기는 흔적들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기억한다는 것이죠. 마인드와 자아의 관계에 대한 의문이 영원히 미해결로 남는다고 해도 우리는 마인드를 통해 그들의 삶을 더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p257

자신을 고유하게 만드는 그 무언가를 남길 수 있었다면. 그녀를 규정할 장소와 이름이 집이라는 울타리 밖에 하나라도 있었다면. 그녀를 붙잡아줄 단 하나의 끈이라도 세상과 연결되어 있었더라면.
-p264 (관내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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