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일상이 흐트러진지가 언제인지도 모르겠고, 이제는 그 게을러진 일상이 진짜의 일상이 되고 있다. 나는 본래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이라 그러한 세상의 단절에 영향을 덜 받을줄 알았다. 그러나 오리려 재택근무를 하기에 밖에서 받는 에너지가 나에게 무척 중요했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는다. 일은 계속 하지만 무기력해지고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책은 계속 읽는데 도무지 글이 써지지 않는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서도 어떻게 이 책을 글로 표현할 지 막막하다. 일상의 무기력은 생각의 무기력으로 옮겨진 것 같다. 2주 전에 독서 동아리 모임을 했었는데 아직까지 후기를 올리지 못하고 있고, 알라딘에서도 '좋아요' 만 누르고 있다. 아예 글을 시작할 첫문장이 떠오르지 않는다.
영화를 전공하는 딸아이는 영화도 많이 보지만 뮤지컬덕후이기도 하다. 그런 딸아이에게 코로나는 중요하지 않다. 마스크를 쓰고서 공연을 보러 다닌다. 딸아이는 혼자서도 많이 다니는데 한번씩 나와 같이 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모처럼 주말을 맞이해서 둘이서 대학로에 갔다. 마로니에공원은 목련꽃으로 가득했고 여전히 연인들이 많았고 또한 여전히 벤치에서 싸우고 있는, 여자가 울고 있는 연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봄이 완연한 길을 걷고 있으니 옛날 생각도 많이 났고 즐거웠다.
딸아이와 대학로의 번화가쪽이 아닌 주택가에 있는 카페거리에 갔다. 그곳에는 프렌차이즈가 아닌 조그만 카페가 많은데 그중에서 북카페가 있길래 들어갔다. 커피를 마시며 둘이서 얘기를 나눴다. 대학들이 이제 싸강을 시작했기에 딸아이는 교양과목으로 글쓰기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 수업의 교수님이 먼저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하루동안의 의식의 흐름에 대한 글을 써보는 과제를 냈다고 했고, 나는 마침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소리와 분노'인데 그 책이 의식의 흐름의 기법으로 쓰여졌다고 얘기했다. 의식의 흐름의 기법으로 쓰여진 책이 읽기는 어렵지만 몰입을 하다보면 그 책에 더 흠뻑빠질 수 있다는 얘기도 했다. 그리고 요즘 글이 도무지 써지지 않는다고 했더니 딸아이는 아무도 엄마글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다고 그냥 부담감을 갖지 말라고 했다. 딸아이는 요즘 세대답게 나에게 나대로 살라고 계속 말해준다. 우리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카페에 있는 책도 읽었다. 바깥이 어둑어둑해지는 틈에 우리는 집에 가려고 카페에서 나왔다.
카페에서 나오는데 카페 사장님이 우리를 따라 나오셨다. 조그마한 카페라서 우리가 하는 얘기가 들렸나보다. 책을 읽고 책얘기를 나누는 모녀의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고 자기는 그러한 것을 좋아한다고 다음에 꼭 다시 찾아달라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때, 카페 사장님의 말을 듣는 순간 불현듯 글이 써질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한다는 그 말이 나를 향한 격려의 말처럼 들렸고 이상하게 나를 받아주는 넉넉한 마음 같았다.
일상을 다시 찾고 게으름을 물리치고, 그리고 글을 쓰자
봄빛이 완연하고 예쁘니 산책을 다녀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