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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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는 늪이 아니다. 습지는 빛의 공간이다. 물 속에서 풀이 자라고 물이 하늘로 흐른다. 꾸불꾸불한 실개천이 느릿하게 배회하며 둥근 태양을 바다로 나르고 수천 마리 흰기러기들이 우짖으면 다리가 긴 새들이-애초에 비행이 존재의 목적이 아니라는 듯-뜻밖의 기품을 자랑하며 일제히 날아오른다.-p13

 

습지에 사는 소녀, 카야는 모든 가족에게 차례차례 버림받고 혼자서 습지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 곳의 모든 것과 어우러져  살아간다.  학교에 딱 하루 가고 평생 다니지 않았지만 나중에 습지에 관한  책을 여러 권 내는 작가가 된다. 이 책의  내용이 단지 그것뿐이라면 이 소설은 아름답다. 또한 역경을 딛고 결국 자아를 실현하며, 사랑을 쟁취하는 한 소녀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시작은 체이스 앤드루스라는 마을에서 소문난 바람둥이가 늪에서 시체로 발견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카야라는 한 소녀의 성장과정과 체이스 앤드루스의 죽음을 파헤치는 수사과정이 교차되며 전개된다.

 

상상력은 깊디깊은 외로움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다.-p46

 

하지만 수집품이 커질수록 외로움은 깊어졌다. 심장 크기만 한 아픔이 카야의 가슴속에 살았다.

그 무엇도 아픔을 덮어주지 못했다.-p184

 

마을 사람들의 편견과 무시로 카야는 타인과의 관계를 포기하고 살아가지만 뼛속까지 스며드는 외로움과 혼자 살아가는 것의 한계로 인한 도움의 필요성때문에 카야의 주변엔 그래도 사람이 필요했다.  그 사람들은 카야를 도와주기도 하지만 피해를 주고 미워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 시절엔 아직까지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심했는데도 카야를 도와준 사람은 흑인인 점핑과 메이블부부였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은 습지를 배경으로 했기에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많다. 카야가 그 모든 것을 포용하고 사랑하며 나타내는 표현들이 아름답다. 또한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스릴도 있으며 소설의 마지막에 법정에서의 재판과정이 있어 끝가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형식만을 중요시하는 체이스 앤드루스의 부모와 소박하고 다정하며 자식의 의사를 존중하고 인정해주는 테이트의 아버지를 대조시키며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나타내준다. 다양한 배경과 사건들로 이 소설은 흥미롭고 끝에 반전도 있다.

 

다만 이 소설은 서사에 비해 문장이 조금 아쉽다. 문장이나 단어를 다르게 표현했다면 소설의 내용들이 더 아름답고 진하게 가슴에 와 닿았을 것 같다. 어쩌면 내 생각과 다르게  담담히 표현해서 카야의 삶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생각해보라는 작가의 의도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혼자 살기 어렵다. 상상할 수 없이 불행하고 외로운 소녀 카야에게도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내 앞에 이런 소녀가 나타난다면 난 어떻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책에서의 문장에서처럼 위태롭지만 다음 한 발을 내디딜 정도의 말과 따뜻한 눈빛과 도움을 주어야만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으니 끊임없이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할 줄 아는 연습을 해야겠다. 조디 오빠의 말처럼.

 

사실, 사랑이라는 게 잘 안될 때가 더 많아. 하지만 실패한 사랑도 타인과 이어주지. 결국은 우리한테 남는 건 그것뿐이야. 타인과의 연결 말이야.-p300

 

 

 

 

 

 

 

소년의 차분함. 그렇게 찬찬히 말하고 움직이는 사람을 카야는 한번도 본 적이 없다.너무나 확고하면서도 편안한 행동거지였다. 그냥 근처에만 있었는데, 그렇게 가까이 간 것도 아닌데, 딱딱하게 뭉쳐 있던 카야의 응어리가 한결 느슨해졌다. 엄마와 조디가 떠나고 처음으로 숨 쉴 때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상처말고 다른 무언가가 느껴졌다.

시의 존재 의미는 말이야. 사람한테 뭔가 느끼게 만드는 거지.

테이트의 아버지는 진짜 남자란 부끄러움없이 울고 심장으로 시를 읽고 영혼으로 오페라를 느끼며,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법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왜 상처받은 사람들이, 아직도 피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용서의 부담까지 짊어져야 하는 걸까?

살아오면서 가장 무너지기 쉬운 자리에 서서 카야는 그녀가 아는 유일한 안전망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바로 그녀 자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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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4 17: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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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4 17: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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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채 2020-02-14 17: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2020-02-21 22: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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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2 00: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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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2 00: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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