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대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
윌리엄 골딩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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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 ㅡ윌리엄 골딩

**한국어로 번역된 해외 문학을 읽을 때의 비애
특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ㅡ

외국어를 완벽하게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은 드물다.
나역시 다른 나라의 언어를 공부하려는 노력이 부족해서 원서로 된 책을 읽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당연히 한국어로 번역된 책을 선택해야 한다.
책을 읽는 내내 난 번역가에 의해 지배당하며
작가가 정말 이런 표현을 썼는지,
아님 적당히 번역가가 한국식으로 고쳐 썼는지도 모른채 그냥 읽어나간다.
이번 ‘파리대왕‘ 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처음부터 남발되는 어려운 한자어로 시작하여
어떤 문장은 주어와 술어의 연결도 되지 않는다.
한없이 짜증나고 일일이 한자어의 뜻을 찾아보며 읽어야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고전문학속에 빠지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래도 참고 읽는다.
읽다보면 ‘그것‘ 이 나타날 것이라고 믿으며 말이다.
내게 있어서 ‘그것‘ 이란 어느 순간 주위의 여건에 간섭받지 않고 책 속에 빠져드는 행복한 몰입이 시작되는 것이다.
집중되지 않는 번역이지만, 원어로 읽지도 않지만 어느새 작가가 나에게 직접 말을 걸어 온다.
훌륭한 작가의 작품에 있는 문장들이 외국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 순간 난 황홀하다.
(어쨌든 이러한 것들은 번역가들 덕분이다.)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은 핵전쟁이 벌어져
한 떼의 영국 소년들을 비행기로 안전한 장소로 후송하는 공수 작전중에 적군의 요격을 받아 태평양상의 무인도에 소년들이 불시착하면서
겪는 일로 시작한다.
ㅡ해설중에서
이 소설은 알레고리의 형식을 가지며 섬에서의 소년들과 사물, 사건들이 모두 이차적 상징으로 나타난다.
글을 읽어나가면 어느 정도 그러한 것들이 어떤 뜻을 내포하는지 이해하기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섬에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신호인 봉화를 피우기 위해서는 모두의 협동이 필요하지만 소년들은 쉽게 분열된다.
돼지라는 이성적인 브레인을 둔 랠프가 대장이 되지만
고기라는 눈 앞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또다른 대장 잭의 등장으로 점점 소년들은 폭력에 노출되고 파국으로 치닫는다.
결국 잭의 일당들은 살인까지 저지르고 집단 광기의 도가니로 빠지며 랠프마저 제거하려고 섬에 큰 불을
내지만 그 불이 내는 봉화의 신호로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영국의 순양함에 의해 그들은 구출된다.
이러한 삶의 아이러니속에서 그래도 믿을 수 있는건
인간의 악에 대항할 수 있는 돼지라고 표현되는
한 불행한 근시 소년의 ‘옳은 것은 옳기 때문‘ 이라는
절규이다.

‘파리대왕‘ 은 이 지구의 한 점에도 미치지 못하는 무인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세계 전체를 보여 준다.
권력, 지식, 리더, 지식인. 종교, 욕망, 인간의 본성, 악,
집단, 광기, 폭력, 법과 규범, 파괴, 문명등 축약된 이야기속에서 인간과 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에 비추어봤을 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세상의 보편성과 다양성을
문학이라는 장르를 통해 탁월한 문장으로 보여주는 작가들의 위대성에 감사를 표한다.


내가 쓴 글자들과 문장들을 다시 읽어 본다.
이 많은 한자어의 남발은 무엇이지?
처음에 비판하고 투정부린 번역가에게 미안해진다.
어려운 이국의 문장들을 모국어로 표현해 내는 작업이 얼마나 힘드는 일인지 이해하고 그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다양한 작품을 많이 내주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게도.
다만 책 뒷표지의 말마따나 문학의 고전은 세대마다 새로 번역되어 오늘의 감수성을 좀 더 많이 전율시켜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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