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않는 하루 - 두려움이라는 병을 이겨내면 선명해지는 것들
이화열 지음 / 앤의서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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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 하루』 제목만으로 끌리는 책을 자주 만나는 편은 아닌데, 움츠러든 마음이 먼저 반응을 했던 것 같다. 두려움이라는 병을 이겨내면 선명해지는 것들이란 부제도 마음에 들었다. 나는 불안도가 높은 편이라 금방 긴장하고 당황하고는 한다. 벌써 3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나이임에도 말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살아가며 느끼는 건 나이를 먹는다고 두려움이 소멸되는건 아니란 것이다. 오히려 새로운 요소들로 인해 쉼없이 불안은 야기된다. 애초에 타고난 성격에 의한 영향이 있겠지만 가끔 수련이 부족한 탓인가 여기기도 한다.

저자의 위로를 받아볼 요량으로 읽기 시작하였는데, 초반에 약간 숙연해지고 말았다. 파리지앵 남편을 만나 파리에 정착한 저자에게 암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저자의 풍경은 밝고 활기차다. 심지어 그 삶에는 웃음도 사랑도 존재한다. 입원하고 치료를 받았던 프랑스 의사들과 간호사들조차 낙천적으로 환자를 대한다.

그렇게 슬프지도 억울하지도 않다. 어차피 세상의 아름다운 곳을 전부 여행할 수 없고, 세상의 맛있는 음식을 다 먹을 수 없고, 가슴 뛰는 그 많은 책을 다 읽을 수 없다. 경험의 밀도가 중요할 뿐이다.

영원히 숙성하는 포도주도, 불멸의 인생을 사는 인간도 없다. 적당한 시기에 포도주를 따서 마시고, 햇살을 만끽하는 것 말고 우리에게 다른 선택이 있는 걸까?

'죽음에 가까이 다가간 사람들에게 삶은 어떤 의미인가?', '우리는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가야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던질 수 있었던 책이었다. 과연 어떤 불행이 내게 손을 흔든다면 난 그 앞에서 초연한 태도로 있을 수 있을까? 경험하지 않은 일이라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태도로 살고 싶다. 죽음 자체의 고통보다 죽음을 생각하는 고통이 더 큰 것처럼 미래의 엄습할 불행으로 당장 주어진 삶을 버려두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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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엔딩 (양장)
김려령 외 지음 / 창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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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책의 뒷 이야기를 알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이야기의 결말 이후는 언제나 독자의 몫이었고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자유의 영역이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마음이 갔던 인물들의 다음 이야기가 알고 싶었다. 이런 바램들을 흘려보내지 않고 담아 두었다가 실제로 책으로 내준 창비 출판사의 『두 번째 엔딩』. 우선은 출판사에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심지어 가제본으로 제작하여 서평 신청도 받길래 냉큼 신청했는데 선정되었다. WOW 진심 행복했다.

무려 8명의 작가들이 써 내려간 두 번째 엔딩의 원작은 『버드 스트라이크 , 『우아한 거짓말』, 『모두 깜언』, 『싱커』, 『유원』, 『아몬드』, 『1945, 철원』과 『그 여름의 서울』, 『페인트』였는데 모든 작품들을 읽었던 건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대중에게 알려진 작품들이라 책을 펼쳐 읽는 내내 신이 나 있었다. 실은 위의 작품들 중 내가 읽은 것은 고작 『싱커』와 『아몬드』 뿐이라 다른 작품들은 별로 읽는 의미가 없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웬걸, 전작을 안 읽어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을 뿐 아니라 짧은 글 안에서도 함축된 힘이 있었다. 눈시울을 붉히게도 하고 미소짓기도, 긴장이 되기도 하며 속절없이 빠져들었다.

예상을 엎었던 것 중 하나는 전작의 등장인물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곧이 곧대로 그렇게만 생각했는데, 어떤 작품들은 전작의 등장인물과 엮여 있는 인물이 화자로 등장해 새로운 이야기를 꾸려 나갔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 그래서일까, 전작의 등장인물이 포커스가 되지 않아 실망한 것도 잠시 새롭게 시작되는 전개에 흠뻑 빠졌다. 세상이 확장되는 느낌이랄까. 전작 주인공에게 맞춰있던 포커스를 그 주변으로 돌리는 것도 꽤나 재미있었고 결국 모든 사람이 소설의 주인공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읽었던 『싱커』와 『아몬드』 의 다음 이야기를 듣기 위해 펼쳤다가 다른 작품들의 원작이 궁금해졌다. 출판사의 빅피쳐(?)인지는 모르겠으나, 읽어보지 않은 원작들이 속편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고 싶어졌다. 역시나 한 권을 읽었는데 읽고 싶은 책이 수두룩 쌓이게 되는 마법이 일어났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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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삼킨 소년
트렌트 돌턴 지음, 이영아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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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살 소년이 자라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랄 생각이 먼저 들 정도로 엘리의 주변 어른들은 걱정스럽다. 한 살 많은 함구증의 형과 마약에 빠진 엄마, 마약상인 새아빠, 악명 높은 전설의 탈옥수인 70대 베이비시터. 첫 등장부터 파격적이다. 탈옥수 베이비시터는 엘리가 아이의 몸에 어른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며 어른이 듣기에도 혐오스러운 잔혹한 범죄의 면면들을 동화책 읽어주듯 들려준다. 이야기의 복선 같기도 한 '너의 마지막은 죽은 솔새'의 말은 엘리와 형, 슬림의 입에서 오르내린다. 은유적 표현들이 꽤 많았는데, 함구증인 형이 오른 손 검지를 이용해 허공에 하고 싶은 말을 쓰는 장면은 마치 음악을 지휘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전혀 평범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자라나는 어린아이. 분위기는 기묘하다. 탈옥수 70대 베이비시터인 슬림은 흔히 질이 안 좋게 보여질 수 있지만, 엘리에게 큰 영향을 주는 인물이다. 모자람 많은 어른들이지만, 삶의 지혜를 주는 슬림과 엘리에게 소중한 가족들. 어려운 상황 속에서 아이는 성장한다. 아이가 가진 힘으로 자라나기도 하고, 주변의 온정으로도 자란다. 600페이지가 넘는 『우주를 삼킨 소년』은 두꺼운 페이지를 자랑한다. 딱 보아도 두꺼운 위용에 쉽게 손이 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표지와 제목이 매우 매력적이고 한 번 읽으면 가독성이 높고 흥미로워 생각보다 빨리 읽힌다.

흔하게 알고 지내기 어려운 사람들이 담긴 이야기는 엘리의 성장과 함께 흘러간다. 좋은 사람이 될까? 나쁜 사람이 될까? 그것은 선택의 문제라고. 과거도 부모도 출신도 상관없이 말이다. 이 말이 귀에 맴돈다. 그럼에도 자라온 환경은 중요하다.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보기랄까.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스스로의 선택 또한 중요하단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이야기의 끝은 언급하지 않겠지만, 부디 엘리의 시선을 만나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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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유년의 기억, 박완서 타계 10주기 헌정 개정판 소설로 그린 자화상 (개정판) 1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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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타계10주기 개정판으로 더 예쁘게 돌아온 박완서 장편소설, 역시 명작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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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유년의 기억, 박완서 타계 10주기 헌정 개정판 소설로 그린 자화상 (개정판) 1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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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자유로웠던 유년시절이 존재한다. 그것이 찬란했던지 그렇지 않았든지 간에 말이다. 한국 문학의 거목, 박완서작가의 타계 10주기를 맞아 헌정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일전에 저자의 에세이 『모래알만한 진실이라도』를 읽어서인지 한결 친근하게 느껴졌다. 경계없이 마음의 문을 열고 읽기 시작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박완서 작가의 수많은 작품들 중 가장 익숙한 장편소설이었다. 매체에서 워낙 홍보를 많이 하기도 했고 집에 책이 있었는데 읽어보진 못했던 참이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1992년 출간된 박완서의 자전소설이다. 개풍 박적골에서의 어린 시절부터 전쟁으로 황폐해진 서울에서의 스무 살까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유독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박적골의 풍경에 담긴 이야기였다. 80년대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종종머리를 딴 계집애들과 서당과 천자문 그리고 시골의 뒷간 괴담까지 행복으로 가득찬 유년시절의 기억들이 읽는 이의 입가를 미소짓게했다. 한편으로 어린시절을 이 정도로 기억하고 글로 표현할 수 있단 사실이 놀라웠다. 일정 부분 픽션이 가미되었겠지만, 엄청난 기억력이다.

억척같은 소설 속 엄마를 보며 자연스럽게 나의 "엄마"가 떠올랐다. 어린시절 내가 기억하는 엄마에 대하여. 나이가 먹은 지금은 또 다른 느낌이지만 말이다. 시대적 배경이나 살아온 환경이 쉽지 않은 것은 확실했다. 그럼에도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이 항상 곁에 존재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여겨진다. 조부모님과 어머니, 오빠 그리고 주변 지인들까지. 혼자 성장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듯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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