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영사 문지 스펙트럼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최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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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무더위의 인도 켈케타, 곧 다가오는 계절풍과 철책으로 분리된 사람들. 뒤라스의 문장은 시가 그렇듯 음악적 요소를 지녔고 질식할듯 단조롭고 외로운 선율을 떠올린다. 분절된 문장은 멈춰 세우고 분절된 철책은 넘나들게 하며, 그녀의글은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면서도 그 과정의 몰입과 흥미를 놓치지 않는 미로와도 같았다. 자주 길을 잃었고 되돌아갔으며, 그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났다.

그 동안 읽은 모든 책을 통틀어 인물을 탐구하는데 전체 페이지를 할애한 적은 처음이었다. 끊임없이 궁금했다. 복중 태아에게 잠식당하는 한 소녀의 끝없이 이어지는 걸음의 이유가. 결국 혼자 남겨져 문둥병자들 속에 뒤엉켜 이름조차 부여되지 못한 채 본능만 남겨진 자신의 삶을. 또한, 철책 안 사람들에게 외면받는 프랑스 부영사의 지난 날과 그만의 광기, 울부짖음에 대해. 그리고 사랑을 말하는 그를.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서로에게 엮이는지, 도대체 어떤 인간인지 알기 위해 모든 페이지를 탐독했다.

철책 안밖의 풍경은 극명하다. 걸인과 문둥병자들이 머무는 철책 밖과 보호를 받으며 철책 안에 머무는 백인들은 같은 땅을 밟고 있지만 철저하게 분리되어 다른 삶을 산다. 철책 안 부영사와 철책 밖 소녀의 영역은 다를지라도 자기 삶의 무력감, 공허함, 통제가 어려운 본능(사랑과 식욕)과 같은 점에서 유사하다. 부영사가 사랑에 빠진 대사의 부인도 마찬가지다. 위 인물들은 대체로 신경쓰지 않는다. 내버려둔다. 외로움과 슬픔에 세워진 자신을 알지 못한다. 혹은 알려하지 않는다.

카키색 군복의 보초들이 보호하는 안-마리와 사람들의 두려운 눈길을 받는 고독한 부영사, 불임이 된 소녀였던 이름 없는그녀까지도 애처로웠다. 부영사가 그녀를 슬픔으로 이해할 때, 나는 부영사를 슬픔으로 바라봤다.

“나는 인생을 가볍게 생각해요.” 그녀는 손을 빼내려도 애쓴다. “그것이 내가 하고 있는 일이에요. 모든 사람이 옳아요. 내게는 모든 사람이 완전히, 온전히 옳아요.” (p164)

“부영사의 인도는 고통스러운 인도인가요?”
“아니요, 그는 그렇지조차 못해요.”
“그렇다면, 그 대신 그에게 무엇이 있을까요?”
“아무것도.”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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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의 소녀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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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 ‘기욤뮈소’의 소설 3종이 리커버되어 출간되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내일』, 『브루클린의 소녀』 모두 소장하고 싶을만큼 표지 디자인이 매력적이다. 대학시절에 그의 책들을 꽤 보았는데 ‘기욤뮈소식 스릴러’ 장르라 칭할 정도로 숨막히는 사건 속에 언제느 사랑과 감동이 숨겨져 있다. 그러니 한참 열광하며 빠져보냈다.

워낙 다작을 한 작가라 읽지 못한 작품들이 더 많았는데, 이번에 『브루클린의 소녀』를 읽게되었다. 마치 영화를 관람하는 듯한 필력과 긴장감 넘치는 서사에 정신줄 놓고 읽기 딱 좋은 책이었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있었더라면 분명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쳤을 것이다. 실마리가 풀릴 듯 새로운 의문이 계속 솟아나 약 10페이지 남짓 남았을 때도 여전히 숨겨진 진실에 놀랐다. 그야말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안나의 숨겨진 정체에 경악한것도 잠시 계속해서 새로운 진실들이 드러난다. 다 지나간 과거라 생각했지만 10년이 지나서도 사건 관련자들의 실종 및 살인이 일어나니 독서를 멈출 수가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도대체 범인이 누구야?’, ‘안나는 살아있는건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조금만 더를 외치며 완독을 했다.

놀라움 곳곳에는 사회적 문제를 시사하는 장면들과 사연들이 등장해 현실적인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줄거리
결혼을 앞둔 안나와 라파엘은 함께 여행을 떠난다. 여행지에서 라파엘은 과거 얘기를 꺼내지 않는 안나에게 말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느니 얘기해달라고 요구한다. 안나는 그의 집요함에 타들어간 3구의 시체가 담긴 사진을 보여주며 자신이 한 짓이라고 말한다. 충격적인 사진에 놀라 안나를 떠나버린 라파엘은 후회하며 이내 사랑하는 그녀에게 돌아온다. 하지만 사라져버린 안나, 사랑하는 연인을 찾기 위해 라파엘은 그녀의 과거를 추적하며 숨겨진 진실을 하나 둘 맞닥트린다.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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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약하고 지독한 냄새 구름 나무자람새 그림책 24
파블로 알보 지음, 구리디 그림, 문주선 옮김 / 나무말미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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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일러스트가 돋보이는 그림책을 만났다. 스페인 작가의 글과 그림이 만나 전 세계의 아이들이 좋아하는 소재로 <고약하고 지독한 냄새 구름> 그림책을 출간했다.

그림책 중 페이지 수가 꽤 있는 편인데도 감각적이고 유쾌한 일러스트와 글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작가의 유머와 위트가 가득해서 읽는 내내 즐거움으로 가득했는데, 끝을 향해갈수록 이 사태가 어떻게 해결될지 상상하며 읽는 즐거움도 한 몫했다.

⭐️줄거리
평화로운 행복시, 어느 날 “뿌르르르륵! 빠앙 빠앙 빠아앙! 뿌왁 뿌우와왁! 뿡!” 엄청난 굉음과 함께 하늘 가득 우중충하고 으스스한 잿빛 구름이 등장한다. 도시를 덮친 구름은 심지어 냄새도 고약해서 고양이는 ‘멍멍’, 강아지는 ‘짹짹’거린다.

고약하고 지독한 냄새 구름에 휩싸인 도시에서 온갖 재앙이 일어날 때, 단 한 사람이 없었다. 바로 브로콜리와 탄산음료를 좋아하는 소년 토마스! 이 고약한 냄새구름의 정체는 무엇이고 이를 해결할 유일한 소년 토마스는 평화로운 행복시를 되찾을 수 있을까?

✨구름의 정체를 아이들과 함께 상상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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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은의 가게
이서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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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살 게 없는 서른일곱의 ‘마은’은 빈곤한 주머니 사정에 맞는 작은 평수, 목이 좋지 못해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염려를 부르는 상가에서 카페를 시작한다. 장사가 안 되는 것도 불안한데 그녀에게는 자신을 침범하는 타인, 남성들의 무신경함과 위협이 얹어져 자꾸만 위축되는 상황이 발생된다.

<마은의 가게> 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젠더로서의 여성과 그녀들의 연대랄까. 몇몇의 사람들은 이런 소설을 읽으며 불쾌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여기는 것 같다.’,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데 역차별이다.’ 등등 일면 맞는 얘기인 듯 하다. 하지만 여성은 여전히 광범위하게 침범당한다. 물리적인 침범도 무수하지만 비물리적 침범은 여전히 일상 곳곳에서 자행된다.

카페 사장 ‘마은’과 여성이기에 승진의 문턱이 높아 욕심조차 버린 ‘보영’, 가게에 꼭 비상벨을 달아 놓으라 걱정해주는 ‘정미’와 ‘솔이’ 각각은 매우 느슨한 관계이지만 연대하는 면모를 보여줄 때가 많다. 다정한 관심은 불안을 녹이고 외로움을 덜어주었다. 책은 단순히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호소하지 않는다. 고질적이기에 더 없이 중요한 이야기라 생각된다.


🔖남자 친구나 오빠, 누구든지 와서 따끔하게 말해야 다음부턴 가게 앞에서 저러지 않을 거라고. 담배뿐 아니라 주차든 뭐든 장사에 방해되는 일이 생길 때마다 가급적 그들을 부르라고 했다. 남자들을. 나는 남자 친구나 오빠가 없다는 말은 구태여 하지 않았다.(p107)

🔖행복하지 않아도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아는 것은 슬픈 일일까 기특한 일일까.(p119)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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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 이름 붙이기 - 마음의 혼란을 언어의 질서로 꿰매는 감정 사전
존 케닉 지음, 황유원 옮김 / 윌북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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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독서를 하다가 나의 감정을 명료하게 표현한 글을 보며 전율을 느낄 때가 있다. 삶을 살며 복잡미묘한 감정을 경험하지만, 그 감정을 형언하기가 참 어렵다. 그래서 대충 뭉뚱그려 간단하게 표현하는데 ‘존 케닉’은 이런 불완전한 언어의 빈틈을 메우고 싶다는 생각을 실천에 옮겨 <슬픔에 이름 붙이기>를 출간한다.

번역이 불가한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의 주장은 나조차도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 모호함을 해석하고 이름 붙이기 위해서는 아마 오랜 시간 감정에 머물러 사유해야겠지. 이 작업은 언어로 정립하는 것을 넘어 한 존재를 이해토록 한다. 그래서 소중한 작업이다.

‘솔라, 솔라, 솔라’ 감정 사전을 빌어 마음을 읊어본다. 이 명사는 마치 운율을 지닌 한 편의 시처럼 여울진 한 편의 노랫자락처럼 흥얼거리게 된다. 지난 날의 표현하지 못한 감정들을 글로서 만나는 기쁨이란. <슬픔에 이름 붙이기>는 감정 사전을 뒤적이다 나의 마음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언어에서는 모든 게 가능하다. 즉 번역 불가능한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의하지 못할 만큼 모호한 슬픔은 없다. 우리는 그저 그 일을 하기만 하면 된다.(p17)

🔖우리는 우리의 삶을 채워나가기 위해 이런 바보 같도 사소한 것들을 필요로 한다. 설령 그것들이 별 의미 없는 것들일지라도 말이다. (중략) 삶이 늘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는 일들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때로 삶은 그냥 삶이다-그리고 그래도 괜찮다.(p46)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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