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기쁨 - 흐릿한 어둠 속에서 인생의 빛을 발견하는 태도에 관하여
프랭크 브루니 지음, 홍정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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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되는 문장들로 치유받는 기분이 이런걸까. 업무적으로 장애인을 자주 접하는 직장생활 덕분에 나는 다른 이들보다는 조금 더 그들이 겪는 일상생활에 대해 알고 있고 올바른 지원방법 역시 배워왔다. 특히 중도장애(비장애인으로 살아가다가 질병이나 사고로 장애를 얻게되는 것)인 분들은 처음 장애를 업고나서 여러 어려움과 싸워 나가야한다. 보통은 여러 번 좌절하며 결국은 나아가는 삶을 살게 되지만 그 실상을 자세히는 알지 못한다. 「상실의 기쁨」의 저자는 흔하지 않은 질병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글로 담았다.

우리는 우리가 향한 곳을 반드시 봐야 할 필요는 없다. 목적지가 보이지 않아도 괜찮고 그 길을 가는 동안 지나치는 모든 것을 보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전방 1미터 정도만 볼 수 있으면 된다.

상실과 기쁨이란 단어는 함께 묶여 있기에는 모순적이다. 어느 누가 상실을 기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주 철학적인 문장이 될 것이다. 상실의 과정을 거치며 기쁨을 알게되기까지는 숱한 시간이 흐를 것이고 그 사이에서 누군가를 탓하거나 책망하는걸 그만두고 오직 현재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대단하다. 엄두도 내지 못할 것 같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와 관계했던 여러 장애인분들 중 자신의 삶을 비관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분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각자 자신이 현재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들을 찾아 선택했다. 그 과정에서 지지와 독려를 하는 것이 나의 몫이었지만 오히려 배울 때가 많았다.

산다는건 상실에 익숙해지는 것이란 말이 기억난다. 시각이나 청력, 신체의 상실만큼 괴로운 것도 없겠지만 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어떤 상실을 마주할 때 그 힘듦과 괴로움이 온통 나에게 향한다고 느끼고는 한다. 하지만 그 또한 삶의 과정일 뿐이다.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 그 상실을 마주할 때는 분명 괴롭겠지만 또 살게 된다는 이야기가 좋다. 그러니 너무 먼 미래를 보지 말고 전방 1미터 정도만 볼 수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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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키냐르의 수사학
파스칼 키냐르 지음, 백선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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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학 :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그에게 영향을 끼치기 위한 언어기법을 연구하는 학문

책의 제목부터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백과사전을 검색했다.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언어적 사유를 기꺼워 할 것임으로 나 역시, 파스칼 키냐르의 수사학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으로 책을 펼쳤다. 완독을 하는데에는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문장 하나하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고 그러다 만난 좋은 문장에서는 한참 생각에 잠겼다. 최근 짧은 호흡의 소설책을 위주로 읽어서인지 진도가 나가지 않아 답답함도 있었지만 보물같은 문장들을 제대로 만나고 싶다는 생각그에 충분히 시간을 내었다. 여러 번 반복하여 읽을수록 좋은 문장을 만날 때는 그의 천재적인 사고와 필력에 전율했다.

"날이 밝으면 빛이 있는 법." 수사학자는 절대 논증하지 않는다. 그저 가리킬 뿐인데, 그가 가리키는 건 열린 창문이다. 그는 언어가 창문을 연다는 사실을 안다. 밤이 낮을 주듯이 말은 각 시대에 빛을 주기 때문이다.

언어의 힘에 대해 논할 때면 정색하며 달려드는 경향이 있다. 언어와 그걸 뱉어내는 말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기 때문이다. '언어는 그 자체로 탐구다.'라는 그의 말처럼 인간의 사회가 언어에 의해 탄생되어 해방되었음을 절감한다. 이런 언어의 힘과 매력에 글은 반짝거리며 사람들을 매혹한다. 누구보다 문학을 사랑하고 이를 격렬하게 표현한 파스칼 카냐르의 사유는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강렬한 일렁임을 가져다주었다. 완독을 한 이후에도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아 도리어 길을 잃었으나 그의 문장을 만나 행복했다.

문체는 독자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어야 한다. 고개를 쳐들고 쉬쉬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독사에게 들쥐가 홀리듯이.

그래서 읽는 이들은 옴짝달싹하지 못한다. 홀린 것이다.

그래서 꿈꾸는 자들은 거의 옴짝달싹하지 못한다. 그들의 성기만 일어선다.

홀린다는 것, 그것은 눈으로 죽이는 것이다.

역시나 어려웠지만 좋았던 파스칼카냐르의 소론집을 만날 수 있었다. 이 파편적인 글들에 담긴 그의 애정을 확인할 수 있어 더없이 좋았다. 오랜만에 하나의 문장으로 귀결되지 않는 독서를 할 수 있어 또한 좋았다.


*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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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론테 자매, 폭풍의 언덕에서 쓴 편지 - 뜨겁게 사랑하고 단단하게 쓰는 삶 일러스트 레터 3
줄리엣 가드너 지음, 최지원 옮김 / 허밍버드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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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전기를 즐겨 읽는 편은 아니지만, 브론테 자매의 생애는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전기의 특성상 개인의 위대함에 포커스를 맞추고는 하는데 100년도 전에 살았던 자매들이 모두 작가라는 사실이 궁금증을 자아냈고 그들의 궁핍하고 지난한 생활을 시작으로 글에 대한 열정과 순수로 결말 짓는 생의 끝자락까지 이입하며 독서를 마쳤다.

「브론테 자매, 폭풍의 언덕에서 쓴 편지」 는 6남매의 브론테 형제 중 샬롯, 에밀리, 앤 세 자매에 대한 이야기를 중점으로 다루고 있다. 아버지의 부탁으로 작가인 '엘리자베스 개스켈'이 샬롯의 전기를 쓰게 되었는데 그 덕에 자매에 대한 기록이 담긴 지인들의 편지를 통해 그들의 일생을 볼 수 있다. 책을 통해 고전 영미문학이라 불리우는 브론테 자매의 출판물 「제인에어」 , 「폭풍의 언덕」 등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어릴 때 그물을 짰다네

햇살과 바람으로 엮은 그물을

우리는 아이였을 때 샘을 팠다네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우리는 앳된 시절에 겨자씨를 뿌리고

아몬드 가지를 잘랐네

이제 성숙한 어른이 된 지금

그것들은 잔디 아래 시들었을까?

말라서 스러지고 죽어 갔을까,

썩어서 흙으로 돌아갔을까?

무릇 삶에는 어두운 그늘이 내려앉고

그 환희는 순식간에 사라지노니!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브론테 가족이 살았던 황야의 풍경이다. 세차게 불어대는 격렬한 바람과 거칠고 황량한 벌판의 요크셔 황야는 그리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지방이 아니었지만, 이 곳에서 자매들은 지어내기를 통해 그들만의 그물을 짜며 자라왔다. 가정환경 및 개인적 성향으로 인해 자매들은 다른 이와의 교류를 단절하고 자신들의 왕국을 건설하며 이야기에 흠뻑 도취된다. 직접 자신들만의 신문을 발행하기도 하고 각종 소설 및 시로 엮은 종이 뭉치도 여럿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 양이 방대하여 그들이 어린시절부터 얼마나 읽고 쓰는 행위에 몰입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아마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결국 그들 자매 모두를 작가로 이끌었을 것이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여러 고초를 겪으며 밥벌이를 위해 살아가지만, 끝까지 글을 쓰는 일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출판을 하기에 이른다. 처음에는 셋의 시를 엮은 시집을, 그 다음은 소설을 출간한다. 그 유명한 「제인에어」는 샬롯 작품이며, 「폭풍의 언덕」은 에밀리의 작품이다. 충분히 더 많은 작품을 출간할 수 있었지만, 에밀리와 앤은 20대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난다. 홀로 남겨져 생을 다하는 순간까지 글을 썼던 그녀의 삶이 숭고하게 느껴진다. 브론테의 자매들의 삶이 조금 더 길었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짙어진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글쓰기에 전념하는 건 내게 도움이 되었다. 글은 어둡고 쓸쓸한 현실에서 행복한 비현실의 공간으로 나를 이끌었다. 침몰하고 있는 나를 상상력이 끌어올려 주었다. 내게 이런 재능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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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 장례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5
천희란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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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먼저 얘기하는 것이 좋을까? 독서를 끝마친 뒤 글을 쓰기에 앞서 골똘히 고민했다. 주요 등장인물은 셋 뿐이지만 그들 각자에게 처해진 혹은 선택한 상황에 대해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줄거리로 요약하자면 K의 죽음으로 시작되고 K의 죽음으로 끝이난 이야기라 할 수 있겠지만, 인물들이 겪는 심정의 변화들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죽음은, 이별은, 소멸은 간단히 추억으로 교환된다. 갈등과 분노는 안타까움과 위무의 기도에 참윤된다. 소멸한 자의 슬픔과 번뇌에 목소리가 주어진다. 죽은 자가 죽기 전에 쌓은 악덕에 가장 설득력 있는 서사가 부여되고, 그의 죄는 그와 함께 소멸한다. 남은 자들의 고통은 재갈을 물고 신음한다. 책임을 묻거나 싸울 수 없고, 소멸을 되돌릴 수도 없어서, 영원히 해소될 수 없는 통증 같은 것을 귀중한 보물처럼 안고 살아가야 한다. 산 자들의 세계는, 그렇게 산자들의 평화를 지속한다.

「K의 장례」를 관통하는 것은 죽음이다. 노년 작가의 죽음이 가져온 두 여성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사실 노년 작가의 의도는 관찰되지 않는다. 그저 짐작할 뿐이다. 왜 그가 그런 선택을 했는지 진실을 알 수는 없지만 그의 딸이 했던 말처럼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나르시즘 속에서 죽어간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의 소멸은 남은 자들의 몫이다. 죽음은 슬픔과 이별을 동반한다. 허나 어떤 죽음에는 분노와 고통이 수반되기도 한다. 죽은 이와 어떤 관계를 유지했느냐에 따라 그 죽음에는 다른 감정들이 깃든다. 죽음이, 이별이, 소멸이 결국 산 자들의 몫이란 사실은 언제나 진실이며 때에 따라 그 고통은 평생에 걸쳐 그림자를 드리운다.

희정이 K와의 관계에 대해 체념할수록 그녀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내면에 누적되어가는 의존적 감정과 기대를 더 자주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존재감이 세상에 드러날수록 커지는 고립감을 이해받고자 했다. 자발적으로 세상으로부터 멀어져 고독을 스스로의 자유로 선택한 이에게 요구할 수 없는 이해였다.

무엇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결심하면 그것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내가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어떤 사건을 자연스레 잊는 다면, 사건이 나를 지배할 만한 힘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불쑥 떠오르는 기억이라 해도 그것을 기억하는 자신을 용서할 수 있다면, 나는 그 기억과 내 인생 안에서 동거하는 중이다.

K와 희정의 관계는 K의 죽음으로 인해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15년간 이어져온 둘의 거래는 물리적 시간과는 상관없이 서로의 욕망에 의해 놓을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K의 딸, 장재인 역시 그의 아버지를 거부하는 방법으로 손승미란 이름으로 바꿔 생활했고 K의 진정한 소멸을 통해 자유를 찾지 않았을까 싶다. 아버지의 그림자를 떨쳐낼 수록 벗어나지 못했던 그녀에게 그 그림자와 함께 사는 법을 깨우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결국 그 속박을 이해하는 과정이 곧 해방이란 사실을 말하는 저자의 글을 보며 자유를 보았다. 지우고 싶을 수록 얽매여 오는 유무형의 형태에서 자유를 찾기 위한 해답이 결국은 '나'에게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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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세구 : 흙의 장벽 1~2 - 전2권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마리즈 콩데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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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미지의 공간, 작열하는 태양아래 살아 숨 쉬는 생명들이 울부짖는 곳. 내게 아프리카는 그런 이미지로 다가온다. 척박함, 가난, 굶주림, 기아, 질병, 말라리아, 전쟁과 같은 잔혹함이 끊이지 않는 곳. 과거 서양국가로 인해 지역적 특성과 문화에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땅이 그어져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대립하고 충돌하는가 생각하면 눈쌀이 찌푸려지기도 한다. 안타까운 역사를 뒤집지 못하고 끝내 어둠 속에 남아 있는 것 같아 씁쓸해지기도 한다. '마리즈 콩데'는 흑인 여성과 노예에 대한 소설을 썼다. <세구: 흙의 장벽 1, 2>는 두 권을 합쳐 900쪽에 달하는데 프랑스 현지 출간 시 20만부 이상 팔리며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히트작이다. 현재 아프리카 말리 공화국의 도시인 18세기 세구왕국을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로 역시 재미있다. 고전이 좋은 이유는 강산도 변한다는 긴 세월이 흘러도 삶을 꿰뚫는 힘을 가진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마리즈 콩데'의 <세구: 흙의 장벽1, 2>는 생각이 많아지는 소설이었고 어쩌면 속단했던 아프리카의 역사를 제대로 마주할 수 있도록 낱낱이 보여주었다.

'세구'는 아프리카 대륙의 높은 흙의 장벽을 둘러싼 막강한 왕국이다. 전성기를 맞이한 세구 왕국 귀족가문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흘러간다. 트라오레가문의 수장 두지카, 그리고 네 아들 티에코로, 나바, 시가, 말로발리. 이 네 명의 형제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아프리카 대륙이 당시 어떤 정치적 상황에 놓여 있었고 종교적 생활과 의식은 어땠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네 형제의 결말은 지금의 아프리카 대륙을 보듯 끝없이 비참하고 비극적이지만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진정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것처럼 '마리즈 콩데'의 <세구: 흙의 장벽>은 아프리카 문학을 통해 뒤로 후퇴하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가자고 힘주어 말하는 경종 같았다.

언제나 과거에는 미래가 있다. 과거를 알지 못하면 현재를 제대로 살 수 없고 미래도 그려낼 수 없다. 이 변치않는 사실은 어느 역사나 마찬가지다. 아주 크게는 세계, 국가가 되겠지만 개개인에게도 해당된다. 결국 글은 독자의 것이다. 같은 글을 읽고도 느끼는 바가 읽은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하듯이 우리는 어떤 소설을 읽고 예상치 못하게 자신의 삶에서 무언가를 찾아 내기도 한다. 고민히 깊어지는 글은 늘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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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2-07-17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몰루는 작가들이 왜 이리 많은지....새 작가들의 작품들이 계속 출간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