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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ㅣ 사계절 그림책
안녕달 지음 / 사계절 / 2017년 10월
평점 :
따스한 시골 마을이 배경이다.
소박하고 정겨운 그림에 손글씨와 사투리가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이번 안녕달의 신작 <메리>는 전작들과 달리 어느 한때의 일상과 조우하는 환상의 세계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시골 마을 할머니와 반려견의 일상이 잔잔하고 담담하게 펼쳐진다.
<메리>는 특히 글에 싣지 못한 많은 이야기가 그림 속에 가득 담겨 있다.
그림을 찬찬히 훑다 보면, 책 테두리 바깥의 이야기까지 확장해서 상상할 수 있다.
어느 명절날, 대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할아버지는 "강생이를 키우자"라고 선포(?) 한다.
식사하면서 묵묵히 경청하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발표가 익숙한 일인 듯 밥을 드시는 아버지,
혼자 분주하게 상 차리는 어머니,
똑같은 내복을 입은 세 남매 등등
그림을 들여다보면 모두의 이야기가 식탁에서 켜켜이 만개한다.
이후 집안에 들여온 강생이는 하얀색이다.
할머니는 강아지를 메리라고 이름을 지어준다.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할아버지의 말이 유독 마음에 걸린다.
"강생이는 빨간색이 좋은데."
무슨 말일까? 몇 번을 다시 읽어보았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은 할머니를 보면, 이 상황이 매우 익숙하리라 어림 짐작해본다.
할아버지 건강에 대한 슬픈 복선은 다음의 장례식 장면으로 자연스레 펼쳐진다.
할아버지 돌아가신날, 검은 상복을 입은 가족들은 깊은 슬픔에 빠져있다.
그런데 머리가 허옇게 센 할머니는 누구일까?
순간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림책 첫 장면 허옇게 머리가 센 할아버지와 달리 할머니는 아마도 새치 염색 파마를 했으리라.
장례식날 머리가 허옇게 센 할머니의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어쩌면 반려견 메리는,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남겨준 귀한 선물일지도 모른다.
홀로 시골에 남겨진 할머니 곁에 이제 메리만이 오롯이 있어준다.
너무나 작고 아기였던 메리는 어느덧 성견이 되었다.
그리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할머니의 머리는 다시 검은색 뽀글이가 되었다.
그림책 속 마당을 마구 휘젓는 새끼 강아지들이 너무도 발랄하고 앙증맞다.
마당 한편에는 네 개의 강아지 똥이 모락모락 정겹게 모여있다.
새끼 강생이들 덕분에, 적적한 집에 활기가 가득하다.
강생이들을 향한 할머니의 지청구도 끊이지 않는데, 말과 달리 행동과 표정에는 애정이 잔뜩 묻어 나온다.
그러나, 예정된 가슴아픈 이별이 다가온다.
처음 메리가 이 집에 오게 된 연유처럼,
아가 강아지들도 하나둘 다른 집으로 가게 된 것이다.
세 마리 중 마지막 강생이 한 마리만 남았다.
강아지 세 마리 발랄하게 핡핡 뛰어다니는 모습만 봐서 잘 몰랐는데 이 막둥이 강아지는 한 쪽 다리가 짧다.
마음에 상처가 있는 이웃집 손녀가, 이 강아지를 마음에 들어한다.
어쩌면 어른들이 미처 보지 못한, 새끼강아지의 상처에 더 시선이 간걸까.
마지막 강아지마저 이웃집 손녀 품에 파묻혀 대문밖을 나서는데, 읽는 내내 콧등이 시큰해진다.
강생이시절 처음 이 집에 왔던 때처럼, 자식잃은 메리는 홀로 밤새 낑낑 울었다.
마냥 웃음 많고 밝은 메리의 슬픈 속울음이다.
외지에 자식을 다 내보낸 할머니처럼, 메리 역시 자식들이 모두 품에서 떠났다.
이제 시골 집에는 또 다시 메리와 할머니 뿐이다.
그렇게 시간은 또 지나, 어느 또다른 명절이다.
풍성한 음식이 가득한 식탁과 달리 할머니 홀로 고독해 보인다.
그 순간 할머니가 주섬주섬 맛난 괴기(?)를 챙겨 마당 밖 메리에게 간다.
서로가 마주하며 함께 고기를 나눠 먹는다.
이 마지막 할머니와 메리가 함께하는 식사 장면이 오랫동안 여운으로 맴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혹은 알았던 메리의 이야기...
노령화 사회로 접어든 시골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더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책장을 덮고 나니, 여전히 현재의 시간을 살아가는 메리와 할머니가 자꾸 어른거린다.
"메리야" 하고 부르면,
녹색 대문 안, 꼬리를 흔들며 메리가 핡핡 우리를 반겨줄 것만 같다.
우리 모두가 아는 메리 이야기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나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