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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징검돌 - 화가 박수근 이야기 ㅣ 사계절 그림책
김용철 글.그림 / 사계절 / 2012년 5월
평점 :
"찌르릉 찌르릉 아이는 오늘도 그림을 그리러 집을 나섭니다.
스케치북이랑 물감, 붓도 다 챙겼습니다."
-본문중에서-

자전거를 탄 까까머리 소년이 그림 화구를 실고 오른 방향으로 쭉 뻗어나간다.

소년은 개울가 앞 징검돌 앞에서 멈춰선다. 옆에서 빨래하는 아낙들의 모습이 정겹고 토속적이다.
까까머리 소년은 자전거를 들고 성큼성큼 징검돌을 건너는데, 그만 물에 흠뻑 젖고 만다.

옷이 마르기를 기다리는 시간,
이제부터 소년의 진짜 그림놀이가 시작된다.
모든 것은 바로 징검돌을 건너면서부터다.
징검돌은 꿈과 현실의 경계이자 환상적인 그림의 세계로 안내해준다

소년과 주위 배경이 찰랑찰랑 고용히 집중하며 일아물체가 된다.
그림의 너울너울 거리는 물결느낌이 조용하고 나른하다.
자연스레 개울가에 두발 담그듯 시각적 심상이 떠오른다.
이제 소년의 징검돌에는 하나둘 친숙하고 정겨운 동물과 이웃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아이 업은 단발머리 소녀, 검둥개, 이웃 사람들, 젖먹이는 아낙 등등
소년은 보이지 않아도 마음으로 느끼고 그려 본다.

"장에 갔다 돌아오는 아버지입니다.
마을사람들이 줄지어 개울을 건너옵니다."
-본문중에서-
징검돌을 딛고 아버지와 마을 사람 모두가 하나 둘 건너온다.
오른편을 바라보는 소년과 반대 방향 왼편의 쭉 기다리는 마을사람들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마치 이 징검돌 위에서 소년과 그림 세계가 완벽하게 조우하는 느낌이다.
어디까지 상상의 그림이고, 현실일까
징검돌 위에 펼쳐지는 몽환적인 꿈의 경계가 물결 파문처럼 고요히 스며든다.
개인적으로 마을로 귀가하는 이 행렬이 참 따스하고 좋다.
한 손 가득 짐을 들고 있는 우리 이웃의 삶이 그림에서 활짝 만개하는 것 같다.
각자 개개인마다 고단하지만 정겨운 사연이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그리고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완결성을 획득한 마지막 장에서 펼쳐진다.
마지막 장에서 독자는 토속적이고 서정적인 그림의 서사에서 온전한 현실로 복귀하게 된다.
책 마지막 문장 한 줄, 사실( fact)이 주는 묵직한 감동이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는다.
이 <꿈꾸는 징검돌>은 김용철 작가의 손에서 박수근 작품들이 상상의 힘을 덧입고 재현된다.
흡사 바위와 나무껍질처럼 단단하고 거친 그림의 질감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굳이 미술관을 가지 않더라도, 이 책을 통해 자연과 아이의 정서를 닮은 작가의 그림을 간접 감상해 본다.
쪽마루 아뜰리에에서 조는 한낮의 오수처럼, 박수근 그림의 세계로 고요히 빠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