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주르와 아스마르 - Azur & Asmar, 초등용 그림책
미셸 오슬로 지음, 김주열 옮김 / 웅진주니어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예술 애니메이션 영화를 그림책으로 만들었다 하더니, 과연 그림이 예술이었다. 유럽풍의 그림 느낌이 판타지에 잘 어울렸고, 강렬한 색채 역시 눈을 사로잡았다. 마치 한 편의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살아있었다. 내용 면에서는 마법 요소가 있는 이야기에, 서로 다른 인종과 문화에 대한 존중의 메시지가 어울려 띠지에 적힌 '21세기 아라비안나이트'라는 말이 제법 잘 어울렸다.
초반부에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은 프랑스. 파란 눈의 아주르는 성주의 아들이고, 아스마르는 갈색 피부 아랍인 유모 제난의 아들이지만 제난은 두 아이에게 똑같이 어머니다운 자애로움을 보여준다. 제난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드는 두 아이는 그야말로 형제나 마찬가지였지만, 인종과 신분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성주는 아들을 멀리 떠나보내고, 유모와 아스마르를 쫓아낸다. 몸은 떨어져 있어도 두 아이의 마음에는 늘 유모에게서 전해들었던 요정 진의 이야기가 살아 꿈틀거린다.
이야기는 결국 요정 진을 찾아나서는 아주르가 먼 이국에서 다시금 제난과 아스마르를 만나고 신비한 전설의 가르침에 따라 모험을 떠나고, 어렵사리 비밀을 푸는 열쇠를 구하고, 고난 끝에 결국 요정 진을 자유롭게 해주는 결말로 이어진다.
얼핏 보면 그야말로 알라딘의 마술램프나 알리바바, 신밧드 이야기의 짜깁기인 것도 같지만 그 과정에서 독자는 21세기다운 의미심장한 교훈을 몇 가지를 얻게 되는데, 그 중 하나는 앞서 말했듯이 문화 상대주의이다. 아주르가 집을 떠나 찾아간 땅은 유모 제난에게 들어왔던, 익숙한 땅이었지만 거기서는 프랑스에서와는 반대로 파란 눈이 불행을 가져온다며 아주르를 핍박한다. 파란 눈은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때와 장소에 따라 고결함을 상징하기도 하고, 불길함을 상징하기도 한다는 일침. 문화나 인종적 특성을 일방적인 잣대로 평가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눈이 진실을 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아주르는 핍박을 면하기 위해 장님 행세를 하게 되지만, 덕분에 눈 뜬 사람들이 찾지 못했던 세 개의 열쇠 중 두 개를 찾아낸다. 손으로 만져보거나, 냄새를 맡는 일은 평소에는 시각에 가려 사물의 진실을 파악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오이디푸스나 리어왕이 눈 멀고 나서야 진실을 볼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세 번째는 아주르와 아스마르의 갈등과 화해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인간 사이의 관계를 상징한다는 점이다. 쫓겨난 것에 대해 원망을 가슴에 품고 성장한 아스마르가 마음을 열고 다가간 아주르를 위해 몸을 다치고, 아주르가 아스마르를 둘러메고 모험을 강행하는 부분은 이기심을 조금씩 벗어버리고 자신을 내놓을 때 일체의 벽이 제거된 아름다운 관계가 이루어진다는 이야기에 다름아니다.
아름다운 그림과 흥미진진하면서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잘 어울린 품격 있는 그림책. 마치 희곡처럼 말하는 이의 이름을 앞세워 대사를 읽기 쉽도록 한 것도 호감가는 부분이다. 4학년 딸과 함께 읽었는데, 아이가 무척 재미있어 했다. 다만, 영화 원작을 그림책으로 만들다보니 줄거리 전개에 급급한 부분이 조금은 보인다. 좀 더 압축되고, 그림책만의 완결성이 돋보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