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누가 뭘 갖고 싶냐고 물으면 옷이라고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나의 소원은 항상 새옷을 입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때 소풍가는 날이면 항상 외로웠다. 모두들 엄마가 사준 맛난 김밥과 소풍에 따라온 엄마들을 보면 부럽기도 했었다. 그래서 난 엄마를 보는 게 소원이고 갖고 싶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 많은 책을 보는 게 소원이고, 나만의 글을 쓰는게 소원이었다. 그리고 미국에서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한국으로 나가는 게 소원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소원들 중에 지금 하나가 더 늘었다... 소원이 아니라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

그리 큰 것이 아니다.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들이 평생 꿈이고, 소원이기도 한 바로 집이다. 그것도 미국이 아닌 한국이다.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 두다리 뻗고 편히 잘 수 있는 곳! 때에 가리지 않고 일어나고, 자고 치우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걱정없이 한국나가서 편히 쉴 수 있는 바로 우리의 집이다!!! (한국에 우리의 집이 있을 때는 미국과 이별이겠지...)

언니한테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다. 오후에 언니는 밥과 반찬을 만들어 놓고, 가게 일 때문에 나가야 한다. 그래서 항상 막내가 학원에 가기 전에 형부 먹으라고 미리 식탁에 반찬들을 차려 놓고 간다. 학원 마치고 집에오면 식탁을 치우고... 어쩔 때 막내가 그런다. 이모 상 차림에서 조금이라도 해방되고 싶다고... 이번에 한국에 나갔을 때 아이들이 시험기간이고 학원에 갔다가 늦게 오는 바람에 내가 형부가 집에 오면 밥을 퍼고, 반찬들을 차린다. 다 먹고 나면 식탁에 놓인 빈 그릇들을 치우는데... 형부는 100% 한국남자다. 형부는 식사가 끝나면 바로 일어나서 거실로 향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다. 나는 앉아서 식탁에 놓인 빈 그릇들을 바라보면 한숨을 쉰 적이 여러번이다. 몸이 아플 때는 정말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먹는 것 조차도... 그런데 안 하고 놔 두면 가게 일 마치고 늦게 집에오는 언니가 치워야 하는 것이다. 5주동안 차리고 치우고, 청소하고... 하지만 거의 옆지기가 많이 도와 주었다. 형부가 먹은 빈 그릇들 생선 가시들, 닭고기 뼈 등을 치우는 옆지기를 볼 때마다 미안했다. 진공청소기로 청소를 해 주고, 언니와 내가 물리치료 받으려 갈 때 언니가 돌려 놓은 빨래를 갖다 널고 정리를 해 준다. 언니가 그런다. 너무 고맙고, 제부 보기가 부끄럽고 미안타고. 그리고 아픈데 설겆이 하지말고 그대로 두라고... (아이들이 엄마 돕는다고 설겆이를 했다가 그릇들을 깨워 먹는 바람에 절대로 설겆이를 못하게 했다.)

무엇보다 내가 견딜 수 없는 건 오지 말라는 것이다. 3년전에도 나한테 그랬다. 집에 오지 말라고. 그랬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옆지기가 막창이 먹고 싶다고 해서 형부랑 술자리를 함께 했다. 그리고 우리가 갈 때마다 뵙는 형부 친구분과 함께. 조용히 술 몇 잔이 오고가고 난 뒤 형부가 그런다. 다음에 올 때 집에 오지 말라고... 그러면서 언니와 옆지기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난 언니한테 이야기를 하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오던지... 언니는 아니라고 농담으로 했는 말이라고 귀 담아 듣지 말고 신경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는데... 어제도 언니가 그런다. 내가 있으니 마음대로 화도 못 내고, 투정도 못 부려서 그렇다고. 이번에 형부가 나한테 잔소리를 많이 들었다. 반찬 투정을 하길래 언니가 노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반찬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닌데 투정이냐고. 그리고 아이들은 군말없이 잘 먹는데 부끄럽지 않는냐고 했더니 5주동안 투정이 없었다.

미국에 집을 안 갖는 이유가 옆지기가 퇴직을 하면 한국에 나갈 생각이기 때문이다. 옆지기나 나나 시골에 아담한 한옥 기화집을 짓고 사는 게 꿈이다. 시골이 좋고 조용한 곳을 좋아하는 두사람. 큰방 하나, 작은방, 그리고 책과 노닐 수 있는 서재... 손님용 방하나만 있으면 된다. 작은 텃밭에 야채를 가꾸고 심심하면 퍼즐을 하고... 이런 꿈을 갖고 있는 우리 두사람이다.

농담이라고 해도 3년전에도 또 이번에도... 절대로 농담이 아니다. 쓸 비용만 조금 아껴서 모텔에 묵을 수도 있다. 물론 한달 묵는 비용이 많이 들어가겠지만... 3년전에 모텔에서 묵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러지를 못했다. 울면서 부탁하는 언니와 아무것도 모르고 다른 데 가시지 말고 꼭 집으로 오셔야 해요! 당부하는 조카들 때문에...

우리가 나갈 때마다 이런 소리 들으면 솔직히 기분이 나쁘고 마음에 상처가 된다. 친정집이 없는 서러움... 우리집이 없는 서러움... 형부 덕분에 절실히 느낀다. 그리고 또 느낀다. 오갈 때없는 언니의 서러움을... 형부가 정말 고맙다. 이런 서러움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주어서...

나 말고도 세상에는 서러움에 우는 여성들이 많을 것이다...

요즘 옆지기와 난 생각을 많이 하게된다. 나이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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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산책 2009-12-03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속상하네요..제가 이러니 후애님은 어떠실지..아무쪼록 후애님의 소원이 하루빨리 이루어지길 바래요. 조용한 시골에 아담한 한옥이라뇨~ 상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ㅎㅎ 저도 놀러가고 싶네요^^

후애(厚愛) 2009-12-04 07:14   좋아요 0 | URL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지 전 도시보다 시골이 훨씬 좋아요.
소원이 이루어져서 아담한 한옥을 짓고 시골에서 살게 되면 꼭 놀러오세요.
고맙습니다.^^

2009-12-03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4 0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섬 2009-12-03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눈물이 찔끔거렸어요. 친정엄마없는 외로움이 얼마나 크셨을까요? 한국나들이할때 마음 편안하게 머물 공간 하나 없다는 게 또 얼마나 더 외로웠을까요? 힘들게 살아가는 언니의 모습을 보며 형부에 대한 섭섭함 또한 드는게 맞겠죠. 얼마나 속이 상하셨을까요?
후애님이 바라는 소원 한가지는 꼭 이루셨으면 좋겠네요.^^ 한국으로 나와서 텃밭 가꾸며 아기자기하게 예쁘게 사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후애(厚愛) 2009-12-04 07:25   좋아요 0 | URL
매년 명절때마다 친정엄마없는 외로움과 서러움이 크지만 저보다도 명절때마다 시댁 눈치보는 언니가 많이 불쌍하고 안타까워요. 저라도 옆에 있으면 많은 힘이 될텐데... 그러지도 못하고...
다음에 한국 나가면 지내기가 많이 불편할거에요.
그래도 언니나 조카를 위해서 참아야겠지요..
고맙습니다.^^

순오기 2009-12-03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죽들 때까지 철들지 않는 한국남자 많아요.ㅜㅜ
사람은 쉽게 변하는 게 아니니까 그러려니 하시고~~
한국에 텃밭 딸린 아담한 한옥~ 장만할 때까지 응원할테니 힘내세요!

후애(厚愛) 2009-12-04 07:28   좋아요 0 | URL
형부는 항상 자기생각 밖에 안 해요.
상대방이 상처를 입거나 말거나 무조건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고요.
제발 철이라도 들었으면 좋겠어요.
힘 낼께요~ 고맙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12-03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을 꼭 이루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좀 놀러가고 ^^
참 늙어서 얼마나 서러울려고 그럴까요?
가족밖에 없는데 말이죠.

후애(厚愛) 2009-12-04 07:3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시골에서 살게되면 꼭 놀러오셔야해요~~^^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는 형부에요.
아마도 평생 모를거에요. 참 답답해요...

무스탕 2009-12-04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내의 처지를 잘 알고 있으면서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을 한다는건 듣는 입장에서 참 서러운 일인데 말이에요..
후애님의 소박한 바램이 꼭, 빨리 이루어 지길 바랍니다.
저도 나중에 놀러갈께요 ^^

후애(厚愛) 2009-12-04 12:08   좋아요 0 | URL
생각 안 하려고 해도 생각이 나고... 많이 답답하고 힘이드네요..
꼭 놀러오셔야해요~~ 고맙습니다.^^

같은하늘 2009-12-04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나 속상하셨을까요. 알라딘 마을에 풀어 놓으시고 위로 받으세요.
그리고 아담한 한옥 마련하려는 후애님의 소원이 빨리 이루어지시면 좋겠어요.
그때 놀러가도 되는거죠? ㅎㅎㅎ

후애(厚愛) 2009-12-05 07:20   좋아요 0 | URL
항상 이곳에서 많은 분들에게 위로를 받아요.
그래서 너무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당연하죠! 꼭 놀러오셔야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