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과 대안의 사회 1 - 의미로 읽는 인류사와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과 대안의 사회 1
이도흠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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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라는 장밋빛 미래를 향한 막연한 낙관주의에 경종을 울리는 책!

인류사에 있어서 4차 산업혁명의 의미와 방향성을 냉철하게 모색하다!

 

 

 

   “내 아들은 미래를 향해서 나가고, 난 내 현재를 지키기 위해 싸울 겁니다. 아마 그 사이 어디쯤에 혁신의 속도란 게 결정되겠죠.”

   드라마 <스타트 업>에 나오는 대사 중 하나다.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한 인력감축시스템을 개발한 회사 측과 이로 인해 많은 인력이 일자리를 잃게 된 노사 측이 갈등을 빚는 대목이다. 디지털혁명, 인공지능, 자동화 기술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각종 혁신들은 우리 사회를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지만 그 사이에서 생계를 잃고 속도에 적응하지 못해 도태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사람들이 혁신의 속도에 적응하고 같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 기술개발과 혁신의 한계에 대해 냉철하게 고찰하고 합리적이면서 현실적인 대안을 세워야 할 것, 이는 4차 산업혁명이 반드시 안고 가야 할 숙제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실제 현주소는 어떠한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의 4차 산업혁명은 ‘유령’ 상태다. 『4차 산업혁명과 대안의 사회』에 따르면, 대통령이 ‘AI강국’을 선언하고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인공지능범국가위원회로 전환하여 추진한다고 하지만 정작 AI 인재는 터키와 이란에도 뒤처진 15위이고, ‘2019 AI 100대 스타트업’ 가운데 한국 기업은 단 한 곳도 없으며, 빅데이터 활용 비율은 OECD에서 꼴찌라고 한다. 반면 2016년에 AI에만 미국과 중국이 각각 461조 원과 520조 원을 투자하고 해마다 그 비용이 급속히 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경우 4차 산업혁명에 매년 평균 0.44조원과 AI반도체에 0.1조 원씩 투자하여 2030년에 최대 455조 원의 경제효과를 창출하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사기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현실이 이러한데 IT강국에서 AI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이 신기루 같은 비전에 대한 냉철한 판단도 시급해 보인다.

 

 

 

   이 외에도 4차 산업혁명이라는 과업 앞에는 수많은 숙제들이 산재해있다. 가상현실과 실제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고 가상현실이 실제 현실을 대체하고 있고 텔레프레즌스는 기존의 어떤 매체가 형성하였던 리얼리티보다 더 실제 현실과 유사한 현실감을 겪게 한다. 롤플레잉 게임에 중독된 아이가 실제 현실에서 친구나 가족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례에서 잘 드러나듯, 가상현실이 현실을 대체하거나 전도하는 ‘재현의 위기’는 점점 일상이 되고 있다. 특히 우리에게 닥친 매우 실존적인 문제들, 즉 기후위기, 환경위기, 간헐적 팬데믹, 인류세/자본세와 같이 인류 사회가 종점에 도달했음을 알려주는 징후들은 절박하고도 시급한 4차 산업혁명의 당면 과제다.

 

 

 

열역학 제2법칙대로, 자연은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에서 높은 상태로 변화하고, 변화의 과정에서 항상 엔트로피는 증가하고, 시간은 엔트로피가 최대가 될 때까지 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러므로 전 지구가 경쟁적으로 추구하는 경제성장이란 사용 가능한 자원을 사용 불가능한 쓰레기로 바꾸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결국 모든 것이 쓰레기가 되는 종말로 치닫는 질주일 따름이다. 이 우주 안에서 어느 곳에 질서와 발전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다른 곳에 그보다 더 큰 무질서와 쓰레기가 생긴다는 것을 진리로 천명한다. / 142p

 

 

궁극적 진리를 해명하는 초월의 과학을 지향하되, 세속의 과학 차원에서는 진리에 부합하되 인간과 자연이 상생하고 약자들과 생명을 살리는 과학기술을 도모하는 것이다. 윤리로 규제하고 법적 통제도 해야 하지만, 근본적으로 세속의 과학은 자본주의 체제와 결별해야 한다. 자본주의를 해체하거나 최소한 자본과 과학기술의 유착의 고리를 끊지 않는 한, 과학기술이 자본과 권력의 이윤과 이해관계와 탐욕을 충족시키거나 확대하는 방향으로 이용되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 15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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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와 결합한 과학기술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저자는 4차 산업혁명에 관련된 모든 기술들이 인류를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가운데 어디로 이끌 것인가를 결정하는 관건은 자본주의 체제에 있다고 지적한다. 아니, 이 체제와 결별하지 못한다면 그 끝은 디스토피아라고 냉정하게 말한다. 자본주의와 4차 산업혁명이 결합한다면, 4차 산업혁명의 과학기술은 이윤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이용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자본과 국가의 공세와 조작에 의해 대중들은 파편화되고 지배층의 부패와 부조리 그리고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화되며 개인의 행위는 물론 무의식마저 감시당하거나 조절될 수 있다. 과학기술을 자본의 탐욕으로부터 독립시키지 않는다면, 패러다임과 사회체제의 대전환이 없으면 그 끝은 인류 멸망과 다름없다. 이는 기술혁신의 장밋빛 미래만을 더듬고 있었던 우리 인류에게 전하는 뼈아픈 충고다.

 

 

 

신자유주의에 완전히 포획되었다고 생각한 그 지점에서 대중은 희망버스를 탔고 촛불을 들었다. 대중에게 선의 씨앗과 이타심도 있고 악의 씨앗과 이기심도 공존하며, 대중은 지배이데올리기에 휘둘리는 대상이자 지배층에 맞서서 저항을 실천하는 주체이다. 대중은 무지하고 대중매체에 쉽게 조작당하는 우중이자 텍스트와 담론들을 주체적이고 비판적으로 읽는 적극적 독자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들이 어떻게 저항하는 주체로 정립하고 연대하느냐에 있다. / 204p

 

 

“유령으로서 4차 산업혁명과 실상으로서 4차 산업혁명을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이다. 대중들은 SF적 상상력과 과학적 사실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수많은 인공지능 영화를 보고 이것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현실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딥러닝 기술로는 원칙적으로 강인공지능을 만들 수 없다. 그럼에도 대중들은 딥러닝으로 제작한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는 것을 보고서는 딥러닝으로 작동하는 강인공지능이 머지않아 현실과할 것으로 착각한다. 무엇보다 먼저 현재의 과학적 성과를 냉철히 성찰하고 이를 바탕을 잠재적인 것과 현재적인 것,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구분하고, 가능하더라도 그 기술적, 정책적, 윤리적 한계와 인간 사회와 자연에 대한 영향관계를 살펴야 한다. / 3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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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4차 산업혁명과 대안의 사회』는 700만 년의 인류사에서 4차 산업혁명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디스토피아를 최소화하고 유토피아를 최대화하는 길은 무엇인지 자연과학과 인문학, 동양과 서양을 융합해 통찰하는 것은 물론, 각종 난제들을 촘촘하게 분석하여 이에 따르는 대안들을 모색하고자 쓰인 책이다. 기술비관주의나 낙관주의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인공지능의 실상과 허상을 분명하게 직시하게 함으로써 4차 산업혁명을 지혜롭게 대비하고자 한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제 4차 산업혁명은 기술 혁신을 도모하는 특정 개발자와 자본가들 같은 일부 소수자들만이 아니라 반드시 우리 사회 전체가 의견을 나누고 올바른 선택으로 이끌기 위해 공유해야 할 시급한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2020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의미 있는 책이었다. 이 책에 담긴 시대적 과제를 우리 모두가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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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혼자 아파하지 마세요 - 국내 최초 단원고 스쿨 닥터 김은지 원장의 마음 토닥토닥
김은지 지음 / 마음의숲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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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여서 위로가 되는 이야기!

단원고 스쿨 닥터 김은지 원장이 세상에 전하는 연대의 가치와 힘!

 

 

 

   2주 전,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알림장을 읽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적이 있다. 한 원생의 아버지가 다니는 운동 동호회 모임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나왔다는 것이다. 결과는 다행히 음성으로 나왔지만 이제껏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협이 이토록 가깝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 혹시나 양성으로 판정되면 당장 어린이집 운영이 중단되는 건 아닌지, 남편의 일에도 지장을 주는 건 아닌지,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를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은 또 어찌해야 하는지. 그 순간에 얼마나 많은 생각이 드는지,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러운 일이지만 원생의 가족들 역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원망 섞인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만약 나의 부주의로 인해 양성 판정을 받게 된다면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끼칠 피해와 미안함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평소 그런 생각을 곧잘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고 보면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에도 이 같은 국가적 재난은 종종 있어 왔다. 대구 지하철, 세월호, 포항 지진…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평범한 일상에 위협을 느꼈으며, 더 이상 나를 둘러싼 세상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재난이 우리를 망가뜨릴 수 없음을 증명하는 따뜻한 연대의 힘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주변에서 나왔다는 이유로 그들을 잠시나마 원망하기도 했던 마음 때문인지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피해자임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누군가로부터 원망을 듣고 죄책감을 느껴야 했을지도 모를 그날, 그 고통 속에 있었던 사람들은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까. 지금은 모두 그 날의 상처를 극복했을까.

 

 

 

   이런 이유로 국내 최초 단원고 스쿨 닥터이자 마음 건강 센터의 센터장인 김은지 원장의 책에 마음이 이끌린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 역시 단원고 스쿨 닥터로서의 소임을 다하고 난 뒤에 많은 이들로부터 이와 같은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세월호 생존자 학생들은 이제 회복되었나요? 아니면 아직도 힘든가요?” 그녀는 말한다. 재난 피해자들이 회복된다는 것은 증상이 모두 없어지는 상태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고. 어떤 사건이 트라우마로 남는 이상, 0으로 영원히 없어지는 게 아니라 다만 증상을 견디는 힘을 기르는 것이라고 말이다. 피해자라는 낙인,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받아야 할 원망과 그로 인한 자책… 또 다시 맞은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국가적 재난 앞에서 확진자를 비난하고, 특정 집단이나 지역에 대한 비난과 편 가르기로 우리는 지금 그들에게 더 큰 트라우마를 남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문제다.

 

 

 

연대라는 놀라운 힘에 대하여

 

 

 

   『이제 혼자 아파하지 마세요』는 소아 청소년 정신과 전문의인 김은지 원장이 단원고 스쿨 닥터로 재직하면서 아이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마음 건강을 돌보는 데 애써왔던 지난 과정과, 청소년을 비롯해 지금도 어딘가에서 저마다의 상처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이들을 위로하고 응원하고자 쓰인 책이다. 책에는 처참하고 잔인한 재난의 경험 속에서 만났던 보석 같은 순간과 연대라는 기적 같은 희망, 서로를 보듬으며 치유하고 성장하는 이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서로 부여잡고 울면서 힘을 북돋던 날들, 세월호 참사 이후 새롭게 단원고의 문을 열기 위해 모았던 마음들, 운동장 가득 빛나던 촛불들. 단원고 사람들과 사회 전체가 연대를 통해 서로를 얼마나 지지하고 함께했는지를 기억한다.

 

 

 

가끔 저는 제가 어느 위치에 서 있는지 생각하곤 합니다. 사실 단원고에서 의사는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구성원들의 정신 건강을 살피는 일을 했지만, 학교란 늘 교육이 최우선인 곳이니까요. 저는 단지 마음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제공하는 역할이었습니다. 굉장히 수동적이고 한가로운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았지요. 의사는 항상 판단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원하는 만큼의 도움만 주며 지켜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맡은 ‘스쿨 닥터’ 역할의 가장 큰 비중은 기다림에 있었습니다. 늘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했어요. / 31p

 

 

재난 피해자들의 회복은 사회의 분열, 재난 피해자들을 향한 부정적인 인식에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때문에 사회적 지지를 통해 그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이해와 존중을 받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일은 환멸기에서 회복기로 넘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회와 세상에 대한 신뢰는 재난을 겪은 사람들이 환멸기를 이겨내는 원동력이 되니까요. / 1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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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톡데일 패러독스라는 말이 있다. 현실을 냉철하게 받아들이되 포기하지 않는다면 마침내 승리하고 말 것이라는 신념의 합리적 낙관주의 이론이다. 여기서 스톡데일은 베트남 전쟁 당시 포로로 갇혀 있다가 살아남은 미군 장교의 이름이다. 당시 스톡데일은 갇혀 있는 포로들끼리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탭 코드’라는 것을 만들었다고 한다. 베트남 군인들 모르게 포로들만 알고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신호를 만들어 낸 것이다. 수용소의 포로들은 모두 독방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서로 직접적인 소통을 할 수 없었는데, 스톡데일이 탭 코드를 만든 후에는 옆 사람에게 자신의 상태와 어려움을 표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는 수용소에 갇혀 있던 사람들의 불안감을 덜어내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들은 함께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서로를 격려하는 메시지도 끊임없이 보냈다. “The man next door(옆에 있는 사람 덕분이었습니다).” 훗날 수용소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느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스톡데일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서로가 함께하고 있다는 믿음, 격려와 소통이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의 몇 년을 견딜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김은지 원장은 이 이야기를 통해 ‘함께하는 힘’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일러준다. 동시대에 어려움을 함께 겪고 살아내는 이웃들이 곁에 있다는 것, 그것이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탭 코드는 아닐까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bless you”라는 따뜻한 말을 유산처럼 남겼습니다. 공포와 고통으로 온 사회가 마비된 순간에도 서로의 안녕과 평화를 빌어주는 말을 놓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말이 아직도 우리 곁에 문화로 남아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있습니다. 단순한 재채기임에도 불구하고 신의 축복까지 빌어주면서 말이지요. 고난을 함께 겪고 이겨낸 온 ‘인류 동지’로서 할 수 있는 최선 아닐까요? / 63p

 

 

때로는 어려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방향성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포기하지 않고 관심을 가진 채 목표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빛이 날 때가 있습니다.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우리가 우리 사회의 아픈 부분을 외면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 7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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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서는 연대를 비롯해 트라우마로부터 자기를 지켜내고 이겨낼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소개한다. 그 중에서도 ‘돌봄’을 통한 치료 극복은 매우 특별한 방법인 듯하다. 실제 단원고에서는 ‘단이’ ‘원이’라 이름을 지은 두 마리의 골든 리트리버를 1년 동안 길렀는데, 이는 동물들을 돌보는 행위를 통해 심리 치유를 시도한 한 방법이라고 한다. 김은지 원장은 동물을 기름으로써 책임을 분담하고 함께 견디는 시간을 통해 돌봄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면, 스스로가 어떤 생명을 돌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이 생긴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어떤 존재를 돌보기 위해서 스스로의 감정과 욕구를 조절하고 인내하며 난관을 헤쳐 나갈 때 우리 역시 성장한다는 것이다. 혼자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일을 누군가를 돌보게 되면 흔쾌히 하게 되기 때문이다.

 

 

 

   김은지 원장은 과거의 어딘가에 계속 머무른 채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이들에게 현재를 자각하는 방법을 소개하기도 한다. 이는 오감에 신경을 집중하는 방법으로, 음식을 먹을 때는 그 맛과 색깔, 냄새를 더 잘 느껴보려고 하고 가방을 들 때면 뻗는 팔이 늘어나는 감각, 가방을 손에 쥐었을 때의 느낌, 가방의 무게에 집중해보는 것이다. 샤워를 할 때는 어제의 일, 오늘 할 일 등을 생각하기보다 물의 따스함, 물이 닿는 피부의 느낌, 샴푸 향기 등에 집중하려고 노력해보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때는 그 사람이 곁에 다가올 때 느껴지는 감정, 행복, 눈빛에 집중해보라고 말이다. 그렇게 현재를 살아가는 감각, 지금 이 순간을 선명하게 느끼는 연습을 하다보면 힘든 트라우마의 시간 속이 아니라 현실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곳곳에 숨어 있던 지금의 행복에 보다 마음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부모가 아이의 심리적인 충격을 잘 해결하지 못한 채 무엇이든 요구하는 대로 들어주거나, 지나치게 감시하고 제한하는 일들이 종종 벌어집니다. 어른들이 자신의 감정(트라우마에 대한 분노, 어른으로서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아이에 대한 연민 등)에 몰두해 아이들의 발달 과정에 대한 고려 없이 물질적, 감정적 공세를 펼칠 때 아이들은 오히려 퇴행하게 됩니다. 지나친 걱정과 감시가 끝내 아이를 망치는 결과를 불러오는 것이지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공감과 끊임없는 지지, 그러면서도 한결같은 훈육입니다. 물질적 공세, 무조건적 허용이나 감시가 아닙니다. 트라우마로 요동치는 아이에게 끊임없는지지, 공감, 일관된 훈육을 제공하려면 부모가 안정되고 건강해야 합니다. / 99p

 

 

가끔씩 튀어나오는 자신의 당황스러운 모습을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그 모습을 ‘잘 살려고 애쓰는 모습’이라 여기고 너그러이 봐주세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난과 자책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수용과 이해입니다.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잘 지내온 당신에게 말해주세요. 잘 견뎌주어서 고마웠다고. 지금도 이렇게 노력해줘서 고맙다고요. / 153p

 

 

 

   흥미롭게도 트라우마로부터 성장한 아이들은 믿을 수 없고 안전하지 않은 세상에서 스스로 안전기지 역할을 하려 했다고 한다. 세월호 생존 학생들은 트라우마를 겪은 후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 ‘도움을 받는 것이 이렇게 좋고, 또 중요하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사회복지학과, 간호학과, 물리치료학과 등 누군가를 돕는 일을 배우는 학과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불안정한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을 돕는 방식으로 세상의 안정성을 회복하고, 세상을 바꿔나가는 모습으로 성장해나가려고 했다.

 

 

 

   어찌 보면 우리에게 있어 코로나라는 재난도 더 나은 나,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계기가 되어주지 않을까. 감염병 재난이 만들어 낸 지치고 힘든 순간에 우리가 머무를 수 있는 자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수 있지는 않을까. 김은지 원장은 아침마다 코로나 확진자의 숫자를 들여다보며 불안해하기보다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플레이리스트를 확인하고, 엉망이 된 여행 계획에 분노하기보다 남은 여유와 자유로움에 관심을 둬보는 것은 어떨까하고 제안한다. 이렇게 작은 자원들에게로 극이동하면서 우리의 삶을 채워나가다 보면,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채워진 지난 시간들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무엇보다 표지의 그림처럼 내 곁에는 당신이 있고 당신 곁에는 내가 있다는 믿음으로 서로 포옹하면서 연대하는 사회, 이것이야말로 코로나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아닐까.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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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평전 - 이탈리아 성당 기행
최의영.우광호 지음 / 시공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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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난 후, 당장 이탈리아로 떠나고 싶어졌다!

성당을 중심으로 따라가는 아주 특별한 유럽 문화 기행!

 

 

 

 

  언젠가 이탈리아 여행 가이드북을 읽다가 나는 하나의 사진을 보고서 감탄을 금치 못한 적이 있다. 바로 밀라노를 대표하는 건축물, 밀라노 대성당 때문이었다. 135개의 첨탑과 3천 개가 넘는 조각상으로 화려함과 세련미를 갖춘 밀라노 대성당은 이제껏 본 성당 중에 단연 인상적이었다. 사진으로만 보았을 뿐인데도 나는 밀라노의 대성당이 갖춘 위용과 경이로움에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평소 유럽 하면 미술관이나 박물관 중심의 여행을 생각하곤 했었는데, 이 사진 한 장으로 인해 성당이야말로 유럽 여행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성당이 고결한 것은 건축물 그 자체 때문이라기보다,

위대한 티끌들이 수백 년 공들여 빚어낸 삶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 7p

 

 

 

   『성당 평전』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성당이 위대한 이유는 소박함과 화려함, 고난과 영광, 혼돈과 질서로 가득한 유럽인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아주 특별한 장소이기 때문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피렌체, 나폴리, 베네치아, 바리, 밀라노 등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성당 80곳을 따라가는 이 여정은 살아 숨 쉬는 유럽 문화를 온몸으로 느끼는 체험에 가깝다. 즉, 성당을 이해한다는 것은 다양한 건축 양식이나 기법뿐만이 아니라 각 성당의 유래와 그곳에 얽혀 있는 사연, 유럽인들의 신앙과 유럽사의 관계를 엿보는 일이다. 무엇보다 성당에는 탄생과 삶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생이 깃들어 있다. 유아세례는 인간이 공동체로 진입하는 의식이자 삶의 출발점이며 축제의 장이었고, 서민들은 일상의 대소사와 나라의 위기 극복을 위해 이곳에서 하나로 기도했으며, 죽은 이의 대한 마지막 예도 바로 이곳에서 함께 했다. 이처럼 성당에 깃든 옛 유럽인들의 삶과 이야기는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유럽인들의 땀과 기도로 쌓아 올린 성당의 역사

 

 

 

   미술사가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곰브리치 세계사』에서 이렇게 적었다고 한다. “중세가 별이 빛나는 아름다운 밤이라면,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시작된 이 새로운 시대는 아침에 비유할 수 있다.” 14세기 초, 이탈리아 피렌체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경건하며 풍부한 지식과 합리적인 교양을 갖춘, 돈 많은 신흥 엘리트 계급이 피렌체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꿔놓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가리켜 우리는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이때 피렌체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르네상스 문화와 예술, 건축이 꽃피게 되었는데, 그 맨 앞에 피렌체 대성당인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이 있다. 당시 피렌체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이탈리아 최대 규모의 성전을 건축하기로 결심했고, 당대 최고의 건축가이자 예술가인 캄비오를 총지휘자에 맡기면서 시작은 활기차게 출발했다. 그러나 6년 후에 캄비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흑사병이 창궐하는 바람에 무려 14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서야 ‘꽃의 성모 마리아’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이 완공되었다. 비록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기도가 차곡차곡 쌓인 결과물이었기에 피렌체인들은 이 성당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담과 이브에서 시작해 구약성경 10대 명장면을 표현한 이 문은 청동 바탕에 금박을 입힌 것으로 초기 양식의 르네상스 한 획을 긋는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켈란젤로가 이 작품을 보고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다”며 감동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래서 이 문은 지금까지 ‘천국의 문’으로 불리고 있다. 현재 세례당의 문은 복제품으로, 진품을 두오모 미술관에 가면 만날 수 있다.

세례당의 볼거리는 ‘천국의 문’ 하나가 아니다. 세례당 안으로 들어가면 천장과 둘레가 온통 황금빛 모자이크로 장식돼 있다. 그 황금빛 속에서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 그리고 수많은 성인 성녀들의 응답 역사가 쏟아진다. / 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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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성당들 중에서도 인간의 절망과 희망, 좌절과 용기, 무기력과 삶에의 의지를 동시에 담고 있는 성당이 있어 눈길을 끈다. 바로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이다. 성당 이름에 좀처럼 붙지 않는 ‘살루테’라는 단어는 이탈리아어로 ‘건강’을 뜻한다고 한다. 도대체 왜 성당 이름에 건강이라는 의미를 붙인 것일까. 여기에는 이러한 사연이 있다. 최초의 흑사병이 1348년부터 1350년까지 전 유럽을 휩쓸었고, 전체 유럽 인구의 4분의 1이 사망했다. 베네치아에도 흑사병이 강타하면서 공포심이 극에 달한 사람들이 의지할 곳은 신앙뿐이었다. 하지만 전염병과 관련한 수호성인 성 로코를 모신 성당을 지었지만 효과가 없었고, 마지막으로 의지처를 삼은 이가 성모 마리아였다. 그렇게 해서 50년에 걸쳐서 완공된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에는 여기저기에서 성모 마리아를 볼 수 있다. 제단을 비롯해 곳곳에 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성화와 석상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 면면에서 우리는 베네치아 사람들이 얼마나 흑사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는지 알 수 있다.

 

 

 

   성모 마리아의 전구 하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던 과거 베네치아인들처럼 페스트가 휩쓸고 있었을 때 레체 사람들은 성 푸블리오 오론초에게 전구를 청했다. 성 푸블리오 오론초는 레체와 오스투니에 처음 그리스도교 신앙을 심어준 인물로 레체 사람들은 고난이 있을 때마다 그에게 간절히 기도했고 그때마다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한다.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에도 1백 일 넘는 기도가 끝나갈 즈음, 기적적으로 페스트가 사라진 것이다. 때문에 레체 사람들은 이후 도시 곳곳에 성인의 동상과 기념물을 세우고 그를 통한 기적을 기억했다. 몬테로소 사람들 역시 삶이 지치고 힘들 때 카푸친 수도원 성당을 찾아가 영적 위안을 얻었다. 질병으로 고통 받을 때도, 먹을 게 없어 힘들 때도 그들은 수도원을 찾았다. 그렇게 되찾은 힘을 동력 삼아 몬테로소 사람들은 다시 세상으로 내려갔다.

 

 

 

나는 다른 곳들을 그 앞에 세우고자 한다.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과 산 마르코 미술관을. 왜? 대성당과 피렌체 내 도미니코회 수도원을 장식했던 미술품들이 모두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피렌체의 그리스도교 신앙유산은 우피치가 아닌 이 두 박물관에 모조리 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우피치만 가고,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과 산 마르코 미술관을 가지 않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실제로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과 산 마르코 미술관은 신앙의 도시 피렌체의 자부심이다. / 60p

 

 

 

  이 외에 서민 성당으로 낡은 겉옷을 입은 듯 겉은 소박하지만 마초가 그린 <낙원에서의 추방>, <성전세> 등 미술사 최고봉의 작품들로 내면은 탁월함을 품고 있는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 한 도시에 두 개의 유력가문이 자존심 경쟁을 벌인 끝에 무려 1백여 개에 달하는 탑을 쌓아올림으로써 자신이 더 위대하다는 욕망을 증명하려 했던 산 지미냐노, 1천 년 전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야 했던 베네치아 사람들에게 절실한 희망이었던 중재자 모세를 기억하며 광야의 고통을 버틸 수 있게 했던 산 모이세 성당 등 이탈리아 성당들은 아주 오랜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아름다운 생명력을 지닌 채 시민들과 함께 하고 있다.

 

 

 

안드레아 사도는 신앙을 굽히지 않았다. 그 어떤 육체적 고통도 영적인 황홀함을 굴복시키지 못했다. 안드레아는 고통의 신비 안에서 복음을 당당하게 증언했다. 영광의 신비, 빛의 신비만이 진정으로 도달해야 할 의미라고 설파했다.

(…) 안드레아 사도의 유해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예수의 옷자락을 잡았을 손, 예수와 함께 식사를 나눴던 그 몸 아닌가. 안드레아 사도의 몸을 빌려 2천 년 전 예수를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큰 행복이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등 많은 언론이 아말피를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할 명소’로 선정했다는데, 뜬소문이 아니었다. / 183p

 

 

성 니콜라오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로 둔갑한 사연은 다음과 같다. 성 니콜라오의 이야기가 전설로 이어져오면서, 이후 유럽에는 성 니콜라오 축일(12월 6일)에 자선을 실천하는 전통이 자리 잡는다. 이 풍습이 신대륙 발견 이후 네덜란드 개신교 신자들에 의해 미국으로 전파된다. 네덜란드인들은 가톨릭 주교인 성 니콜라오를 ‘산테 클라스’ 즉 ‘자비로운 요술쟁이’라고 불렀고, 이 말이 영어 ‘산타클로스’가 됐다. 또 산타나클로스의 복장은 가톨릭 주교 복장에서 유래하는데, 현재 우리가 아는 모습은 1931년 코카콜라 광고 그림이 시초라고 한다. / 30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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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당평전』을 통해 이탈리아 곳곳을 누비다보면 성당이라는 건축물이 유럽의 문화 그리고 역사와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간 성당이라고 하면 신에게 가 닿으려는 인간의 욕망과 화려함에만 주목했던 나로서는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곧 우리가 하나의 건축물을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기도 한다. 이처럼 『성당평전』은 이탈리아의 성당을 따라가는 여정을 담은 책이지만, 다양한 상식과 유럽 역사에 관한 통찰력 그리고 신에게 소망함으로써 삶을 구원하고자 했던 시민들의 간절함을 읽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책이다. 새로운 희망을 향한 염원이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한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에, 얼마나 믿음과 의지를 쏟고 있을까. 이 책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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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나로 살 뿐 1 - 원제 스님의 정면승부 세계 일주 다만 나로 살 뿐 1
원제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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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얻은 깨달음과 삶의 의미들,

그렇게 여행은 나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시간이 된다!

 

 

 

   카투사 출신에 게임을 좋아하는 스님이라니. ‘카투사’와 ‘게임’ 중에 그 어느 쪽도 평소 생각해왔던 ‘스님’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것 하나 없어 보이지만 그래서 뭔가 남다르다는 건 확실하다. 인연 따라 자연스럽게 살자, 최선을 다하지 말자, 적당히 건강하고 적당히 행복하자는 삶의 신조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두루마기에 삿갓을 쓰고 세계 일주를 다니는 모습 역시 예사롭지 않다. 바로 『다만 나로 살 뿐』의 저자, 원제 스님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묵은 경전 글귀가 아닌, 고요한 선원 좌복 위에서만이 아닌, 삶이라는 생생한 터전에서 자신을 내던져 보는 것. 그리하여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해보는 것. 절 밖에서, 기왕이면 세계라는 큰 무대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해봄으로써 자신의 마음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또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해나가는지 스스로를 시험해보고자 한 결심도 보통의 것은 아니었을 테다. 때문에 『다만 나로 살 뿐』은 스님이 쓴 여행기 혹은 수행기라 했을 때 떠올릴 만한 느낌과는 사뭇 다른 데가 있다. 격을 낮추되 가볍지 않고, 거리낌이 없으나 흐트러지지 않는 스님의 모습과 꼭 닮아서 픽, 하고 웃음이 나다가도 어느 새 마음을 탁 치고 올라오는 깨달음이 그곳에 있다.

 

 

 

앎보다 삶이 훨씬 중요하고, 배움보다 익힘이 더 값지다는 깨달음

 

 

 

   스님에게 있어서 불교란 모든 만남과 소통의 시작이며 중심이다. 불교 신자나 불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생각하는 불교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과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 어떤 자연 풍광이나 체험보다 사람과의 교류 속에서 얻은 깨달음을 기록한 글들이 유독 마음을 끈다. 특히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시도한 카우치서핑을 통해 만난 사람들, 우연히 여행지에서 대화를 나누다 닿은 인연들과의 이야기가 그러하다. 그중에서도 미국에서 검안사로 일하다 은퇴한 뒤 세계 일주 중인 피에르와의 만남이 인상 깊다. 미국인이지만 불교인이고 나름의 방식대로 선 수행을 하고 있었으며, 카우치서핑 멤버로 커피를 무척 사랑한다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그보다 나이, 국적, 살아온 과정, 하는 일 모두 떠나 마음으로 가깝게 느끼고 각별한 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훗날 위암 선고를 받았노라 자신의 근황을 전하는 피에르에게 애써 담담히 소중한 친구와의 이별을 준비하는 대목을 읽다보니, 삶과 죽음이라는 커다란 명제 앞에서 때로는 단순해질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스스로 돌이켜보는 하나의 수행으로 받아들이겠다는 피에르와 몸뚱어리는 비록 죽음으로 인해 단절되었을지언정 끝없는 흐름으로 살아갈 우리에게 죽음은 곧 새로운 인연을 시작하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는 스님의 말씀은 죽음 앞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지닐 것인가 대해 얼마간 생각하게 만든다.

 

 

 

“스님, 중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어요. ‘내가 풍경 그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가 풍경이 되기도 한다’라는 말이요.”

문득 놀랐습니다. 속담이지만 마치 수행의 과정이나 결과를 묘사한 말처럼 들리기도 했던 탓입니다. 내가 풍경을 그린다는 것은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풍경을 그리는 나 자신마저도 풍경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가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허공이 나를 보아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허공으로서의 안목을 얻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에 대한 집착이 사라져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 6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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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샹그릴라에서 만난 독일인과의 이야기는 더욱 긴 여운을 남긴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그 독일인은 사람들에게 세계 곳곳의 독일 대사관 위치를 알려주는 것을 참 좋아했는데, 애석하게도 그의 몸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호스텔에 머무는 사람들은 그를 기피하고 있던 중이었다.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 것에 안타까워하던 그는 때마침 스님이 긴 시간 동안 대화에 응해주자 무척이나 행복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스님은 그때 그의 맑아 보이는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며 어떻게 사람이 저리도 맑은 빛을 내보일 수 있을까 궁금했단다.

 

 

 

   그런데 다음 날, 누군가가 그 독일인이 새벽에 돌아갔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러면서 “페이라이쓰까지 와서 메이리설산의 일출도 보지 않고 돌아간 바보”라고, 그런 바보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여행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이를 바라보며 스님은 일반 상식 수준에서 그 독일인은 제대로 여행을 계획할 줄도 모르고, 여행의 묘미를 즐기지도 못하는 바보로 비쳐졌을지 모르겠으나 ‘인간이 불행한 것은 정상이라고 규정하는 그런 관념과 기준이 있어서’가 아닐까 하고 넌지시 생각한다. 체면이라는 상식이 없기에, 효용이라는 분별이 없기에 설혹 메이리설산의 일출을 보지 않고 다시 고된 길을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아쉬울 게 없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어쩌면 정작 바보는 이 분별심을 그토록 소중하게 껴안고 살아가는 우리일지도 모른다고. 덕분에 나는 내가 정해놓은 관념과 기준에 따라 타인을 구분하고 성격을 지은 것은 아닌지 스님의 말씀을 통해 반성해보게 된다.

 

 

 

끓는 데 필요한 열량보다 공기 중으로 완전히 녹아들어가는 데에 더 많은 열량이 필요하듯, 새로운 앎을 얻는 것보다도 그 앎이 삶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가는 데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학습, 곧 배움과 익힘입니다. 배움의 결과는 앎이지만, 익힘의 결과는 삶입니다. 그 앎이 삶으로서 온전해지기까지는 배움보다 훨씬 많은 익힘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앎보다 삶이 훨씬 중요한 것이고, 그렇기에 배움보다 익힘이 더 값지고도 긴요한 노력이라고 말입니다. / 180p

 

 

삶이 자신의 책임이듯 그 사람을 바라보는 안목도 온전히 자신의 책임입니다. 서른이란 그러한 나이입니다. 자신의 안목을 다시금 돌이켜보아야 하는 것이지, 더 이상 남 탓만을 할 수는 없는 나이입니다. 자신이 살아가는 삶과 사람을 보는 안목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만 하는 나이라는 것입니다. / 1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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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외에도 유럽 여행 중에 가방과 지갑을 도둑맞은 일화, 세계 일주 중에 찾아온 여행 매너리즘, 그라나다에서 피자 주인 가게가 내민 신문에 실린 스님의 모습(이것이 스님 플렉스) 같은 흥미로운 에피소드들도 수록되어 있다. 스님이 쓴 여행기라 하면 고루한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냐는 편견이 있을 수도 있는데, 여행에세이처럼 가볍게 접근하기에도 충분히 좋을 만한 책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여행을 가기 쉽지 않은 요즘, 나에게 있어 여행은 어떤 의미인지 이 기회에 생각해볼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다음 2권에서는 또 어떤 여행기와 깨달음이 담겨 있을까. 편안하게 따라가는 마음으로 2권으로 이어가보려 한다.

 

 

 

이 도서는 ‘수오서재’로부터 협찬을 받았으나 본인의 주관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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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도시 SG컬렉션 1
정명섭 지음 / Storehouse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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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사고가 일어나면 안 되는 곳, 개성 공단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지다!

남한과 북한의 경계, 제3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긴장감 넘치는 추리소설!

 

 

  “우리 회사 직원으로 채용할 테니까 개성 공단에 가서 범인을 좀 찾아줘.”

  헌병 부사관 출신으로 민간 사업자(흥신소)를 운영하고 강민규는 어느 날, 큰 삼촌 원종대로부터 뜻밖의 부탁을 받는다. 원종대는 개성 공단에 입주해 있는 자신의 속옷 공장의 원자재와 완성품이 자꾸 없어지는 것에 대해 이렇다 할 손을 쓸 수 없어 막막한 상태였다. 개성 공단은 입주 업체의 사장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CCTV를 달거나 북한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릴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으로부터 개성 공단에서 만든 물건을 조직적으로 빼돌려서 암시장에 유통시킨다고 의심을 받고 있었으니, 이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 위해 강민규를 찾아 온 것이다.

 

 

 

   그날 이후, 강민규는 개성 공단 관리 과장이라는 직책을 달고 개성 공단으로 향한다. 간단한 사전 교육과 통관 절차를 걸친 후에 차로 한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바로 그 곳. 칙칙한 회사 점퍼나 등산복 차림의 대한민국 사람들과 작업복 차림의 북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섞여서 걸어가는, 대한민국의 여느 중소도시와 다를 바가 없는 개성 공단. 2미터 높이의 이중 펜스가 쳐진 개성 공단의 출입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강민규는 개성 공단으로 진입하면서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 시절은 물론, 입대 후에 부사관으로 지원해서 전역할 때까지 북한은 무섭고 두려운 적이었으며, 상종도 하지 말아야 할 존재였다. 그런데 이렇게 북한 땅에 지어진 개성 공단에 들어와서 일을 하게 될 줄을 누가 알았을까. 두 눈으로 보고 직접 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남북한이라는 특수한 관계의 괴리감 사이에서 강민규는 어렴풋이 현기증을 느낀다.

 

 

 

“개성 공단 증후군이라고 알아?”

“그게 뭡니까?”

“거기 들어가면 멀쩡하던 사람도 혈압이 높아지고 불면증에 시달려. 혈압ㅇㄹ 재면 여기보다 10에서 20 정도 올라가거든. 베개에 머리만 대면 3초 지난 다음부터 코를 골면서 자던 사람도, 거기서는 수면제가 없이는 잠을 못 자지.” / 17p

 

 

“너무 가깝지?”

“생각보다 훨씬 가깝네요.”

“사실 개성 공단의 최고 장점은 낮은 인건비가 아니라 서울과 엄청 가깝다는 거야. 차로 한 시간이면 도착하거든.”

“이렇게 가까울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말이야. 이곳에서 지내다 보면 엄청 멀리 떨어져 있다는 걸 느끼게 될 거야.” / 23p

 

 

 

 

 

 

   강민규는 곧바로 누가, 어떤 목적으로 원자재와 완성품을 빼돌리고 있는지 범인을 색출하기 위한 조사에 착수한다. 장부는 눈가림으로 만들어놨을 뿐, 입·출고 날짜랑 수량이 엉터리로 적혀 있으며 원자재와 완성품 수량도 교묘하게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눈치 채는 일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다만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 느닷없이 나타나 공장 내를 들쑤시고 다니는 강민규를 공장의 직원들이 곱게 볼 리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심지어 강민규는 건드리면 좋을 게 없다는 협박에 가까운 소리를 듣기도 한다. 때문에 강민규가 국정원이라는 헛소문을 퍼트리고 다니던 유순태 법인장과 강민규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고, 바로 그 날 밤 의문의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유순태 법인장이 자신의 숙소에서 살해를 당한 것이다. 일말의 주저함이나 두려움 없이 정교하게 계산된 듯한 살인 그리고 면식범인 듯한 자의 소행. 결국 범인은 여기 공장 내에 있는 사람들 중에 하나. 그렇게 강민규는 사건 현장의 특이성을 눈으로 훑으며 날카로운 감각으로 추리를 시작하려는데, 사회 안전원들이 들이닥치며 강민규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그를 체포한다.

 

 

“기묘한 곳이네요.”

“가끔은 이곳에 있다 보면 유령이 되는 기분이야. 북한 사람들은 우리가 눈에 안 보이는 것처럼 대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북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지만, 한편으로 그들 입장에서 우리는 없어야 되는 존재지.” / 40p

 

 

  “여긴 사고가 나면 안 되는 동네야.” 원종대 사장의 대사가 암시하듯 대한민국도 북한도 아닌 제3의 도시, 개성 공단에서는 그 어떤 사고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그런데 대한민국 사람이, 그것도 공장장인 유순태 법인장이 살해되었다. 이렇듯 『제3도시』는 남과 북이 유일하게 공존하는 공간이자, 아슬아슬한 외줄과도 같은 개성 공단이라는 무대에서 일어난 의문의 살인 사건을 쫓는 추리소설이다. 공장의 물건이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외부로 유출되는 원인을 찾으러 개성 공단에 온 강민규가 뜻밖의 살인범으로 내몰리면서, 스스로 살인 혐의를 벗기 위해 사건의 진상을 추적해가는 내용이다. 개성 공단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의 특수성, 그 배후에 짙게 깔려 있는 남북한의 정치적 관계, 난제에 가까운 살인 사건이라는 삼박자가 교묘하게 어우러져 극적 긴장감을 높인다.

 

 

 

뜻밖의 죽음 앞에서 그는 할 말을 잊었다. 어떤 죽음은 낯설고 뜻하지 않게 찾아온다. 하지만 그가 눈앞에서 직면한 죽음은 특히 더 낯설었다. 북한 속의 대한민국이라고 할 수 있는 개성 공단은 그 어떤 일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죽음은 더더욱 그러했다. / 83p

 

충동적으로 벌인 것이 아닌 이상 살인은 거미줄처럼 얽혀 버린 감정 때문에 벌어진다. 개성 공단에서 살인을 저지른 이유는 분명 이 폐쇄된 지역과 연관이 있다고 그는 굳게 믿었다. / 135p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위기에 몰린 강민규가 추리를 통해 자신의 혐의를 벗어가는 과정에서 오는 스릴과 호위총국 오재민 소좌와의 수사 공조, 엎치락뒤치락하는 이야기의 반전들이 흥미롭게 느껴질 것이다. 특히, 개성 공단이라는 장소의 특수성을 비교적 현실감 있고 설득력 있게 담아낸 작가의 내공이 그럴 듯하다. 역사, 추리, 종말, 좀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와 소재를 넘나들며 다수의 발표하고 있는 작가의 이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제 막 그의 작품 하나를 읽었을 뿐이지만, K-스릴러라는 장르를 이끌어갈 작가로 그의 이름을 자주 마주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의 활약이 기대된다.

 

 

 

이 도서는 ‘스토어하우스’로부터 협찬을 받았으나 본인의 주관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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