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철학자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히틀러의 철학자들 - 철학은 어떻게 정치의 도구로 변질되는가?
이본 셰라트 지음, 김민수 옮김 / 여름언덕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큰빗이끼벌레’ 라는 벌레를 나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사진을 통해 본 큰빗이끼벌레는 혐오 그 자체였다. 영화 에어리언에 나오는 괴물같이 보이기도 하고 바다 깊은 곳에 사는 심해생물 같이 보이기도 했다. 색깔도 이상하고 모양도 이상한 이 벌레가 한 가득 모여 있는 강을 보고 있으면 당장에라도 토악질을 하고 싶을 지경이다. 뉴스에 따르면 이 벌레는 악취마저 내뿜는 신공을 가졌다고 한다. 이명박 집권 시절 수십조 원을 쏟아 부은 4대강 공사 현장에서 이 벌레가 출몰하고 있다고 한다. 참 대단한 양반이다. 작년까지는 시퍼런 녹조가 강을 뒤덮더니 이제는 그것으로 모자라 벌레를 까지 4대강에 창궐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주목했던 것은 큰빗이끼벌레에 대한 기사가 포털을 도배한 며칠 뒤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 교수의 기사였다. 박석순 교수라고 4대강 공사에 적극적으로 찬동한 인사가 있는데, 이 사람이 인터뷰를 통해 4대강 공사 현장에 창궐한 큰빗이끼벌레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녹조는 가뭄 탓이고 큰빗이끼벌레는 수질을 정화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이었다. 환경단체와 시민단체에서 4대강 공사로 인한 수질 악화로 생기게 된 것이 녹조와 큰빗이끼벌레라고 주장한 것과는 정반대의 주장이다. 나는 그쪽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거니와 제반 지식도 전무하기에 어느 쪽의 논리가 더 타당한지 살펴볼 유일한 방법은 양쪽의 이전 주장을 찾아보는 것이다. 환경단체와 시민단체는 제쳐두고 박석순 이 사람은 이명박이 대운하 주장을 했을 때부터 적극적으로 찬동하고 논리를 뒷받침해준 사람이었다. 환경단체와 시민단체가 무슨 이득을 얻고 영리적 목적을 취하려고 그런 주장을 하겠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교수라는 직책을 가진 사람이 편향된 정치적 입장에 따라 자신의 전문성을 이용한 것이 더 터무니없다고 본다. 그의 말대로 녹조와 큰빗이끼벌레가 4대강 공사의 긍정적 효과라면 공사 이전에 녹조와 큰빗이끼벌레를 앞세워 홍보를 했어야 한다. 4대강 공사를 하고 나면 녹조와 큰빗이끼벌레가 생기는데 그것은 4대강의 수질이 좋아진 것이다. 그러니 강 색깔이 이상해지고 악취가 나고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해도 걱정하지 마라. 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입 다물고 가만히 있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자 이것을 반대쪽의 주장도 있는 것처럼,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처럼 만드는데 앞장서고 있다. 나와 같은 일반인들에게 “환경단체, 시민단체 주장이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내 주장과 같은 다른 주장도 있다. 이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은 것이다.

 

4대강 공사는 감사원에서도 여러 가지 지적이 나왔고 실제로 4대강 공사 주변지역에서는 온갖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데 아무런 조사나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한 자리 숫자로 떨어지면 시작하려나 모르겠다. 아무튼 4대강 공사에 찬동한 소수의 교수들과 전문가들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반대한 사업을 강행했고 지금 엄청난 부작용에 직면해 있다. 지난 대선 전에는 이것을 모두 해체해야 한다느니, 전면 재조사를 하겠다느니 말이 많았다. 박근혜씨가 집권하고 나니 이런 말들이 뒤로 쑤욱 들어가 버렸다. 그러니 박석순 같은 사람이 다시 나와 이상한 궤변을 늘어놓는 실정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사업을 벌이고 유지·보수하는 것도 모두 우리의 세금으로 하겠다는 데, 별로 관심이 없다.

이 사람들 처벌해야 할 텐데, 할 수 있을까?

 

 

“자네는 히틀러처럼 천박한 사람이 독일을 통치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중요한 것은 문화가 아닐세. 그의 경이로운 손을 보라고!” (p.163)

 

 

위대한 철학자 하이데거가 히틀러와 나치에 부역한 인물인 것을 알지 못했다. 전혀 알지 못했다. 음악가 바그너 등은 알고 있었지만 하이데거가 부역자라는 것은 바그너와 같은 음악가의 경우보다 더 충격이었다.

 

 

“내가 한 일 가운데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은……. 기본적으로 학자들의 의견을 공개해 그것을 생산적인 토론으로 이어지게 한 것이다.” (p.349)

 

 

카를 슈미트의 나치 부역 전력은 알고 있던 사실인데, 충격적인 것은 그의 변명이다. 나치에 대한 부역을 생산적인 토론의 대상으로 치환할 수 있다는 대담함이 놀랍다. “아~ 5.16은 말이죠.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는 사건입니다. 당시 5.16을 찬성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 말이죠.” 라는 논리와 무엇이 다른가? “일제 시대 때는 말이죠. 다들 그랬어요. 나만 친일했나?”라는 변명과 무엇이 다른가? 정치 철학가이자 존경받는 사상가이기도 했던 카를 슈미트가 어쩔 수 없이 나치에 부역했다면 이후에는 처절하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과거를 정당화 하는 일에 매진했다.

 

 

“많은 철학자들은 오래된 가치관과 제도를 파괴하는 일에서부터 유대인 추방과 교육과정의 나치화, 유대인 비방과 전쟁 신격화를 위한 각종 연구소 설립에 이르기까지 히틀러가 대학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도움을 준 핵심적인 조력자들이었다” (p.140)

 

 

하이데거와 카를 슈미트를 포함해 수많은 철학자들이 나치를 만들고 유지하는데 전심을 다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장 총살형에 처해지는 위협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역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나치에 부역하면 일자리를 유지하고 더 좋은 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자신을 신격화한 히틀러의 광기에 동조하고 그것에 논리를 만들어 주는 것으로 자신들의 부역을 정당화 했다. 이 책 「히틀러의 철학자들」에는 여러 부역자들의 이름이 나온다. 잘 알려진 철학자들이 더 많다.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지 8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조용하고 얌전한 이 사람들이 맡았던 역할은 단 한 번도 제대로 검토된 적이 없다. 내가 말하는 이 사람들이란 다름 아닌 철학자들이다.” (p.6)

 

 

이들은 히틀러와 나치의 핵심적인 조력자들이었음에도 제대로 검토된 적이 없다고 한다. 나는 지금까지 나치 부역자들은 전후 강력하게 처단 당했고 지금까지도 전 세계를 샅샅이 뒤져 부역자들을 잡아내고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하이데거는 ‘단순 동조자’로 분류되어 전후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명예교수로 추천되었으며, 계속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러니 지금까지 하이데거가 그렇게 유명해 질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정부였던 한나 아렌트와 사르트르가 직·간접적으로 하이데거를 지지하고 사상의 본류로 삼았던 점이 이후에도 하이데거의 부역 전력이 그다지 부각되지 않은 이유인 것 같다.

그렇다 하더라도 하이데거의 나치부역 전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단순 동조자’도 동조자고 부역자다. 나치 시절 그가 만든 철학과 논리가 젊은이들을 매혹시킨 것이 사실이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학살과 참극에도 눈 감고 있었던 철학자였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의 유일한 구호는 이것입니다. 나치당과 싸우자! 우리의 입을 막고 정치적으로 속박하는 데 이용되는 나치의 모든 조직을 거부하자!...” (p.324)

“전단을 1만여 장 복사한 후버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독일 전역에 배포했다.”

“후버가 죽고 나서 그의 연금은 남아 있는 가족에게 지급되지 않았다. 후버의 가족을 위해 학생과 동료들이 돈을 모았지만 나치는 이 돈마저 가로챘으며, 후보의 가족을 위해 모금활동을 벌이는 사람은 체제전복자라는 죄목으로 체포했다.” (p.331)

 

 

쿠르트 후버 같은 철학자는 나치에 정면으로 맞선 지식인이었다. 하이데거와 카를 슈미트 로젠베르크와 같이 적절하게 현실과 타협하면서 자리를 지키는 철학자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서슬 퍼런 나치에 맞서 목숨을 걸고 정의와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했다. 하이데거와 카를 슈미트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 결과가 쿠르트 후버의 삶에 그대로 나타난다. 목숨을 걸고 정의와 자유를 위해 싸운 철학자의 최후는 암담하고 초라한 것이었다. 그에 비해 하이데거는 잘 나가는 철학자, 교수, 지식인으로 잘 살았고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존경받는 사람이다.

한국의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비참한 삶과 오버랩 되는 지점이다. 일본 제국주의에 부역하고 산 친일파의 후손들은 지금까지 잘 먹고 잘 살고 있는데 반해 독립 유공자의 후손들은 참담하다. 한국도 일제 부역자와 친일파들에 대한 처단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소위 기득권 보수의 얼굴이라 여겨지던 문창극씨의 역사관이 그렇게 뒤틀려져 있는 것이다. 문창극씨와 그를 옹호하는 세력들에게는 그런 역사관이 당연한 것이다. 정설로 교육되는 역사는 패배주의적이고 편향된 역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슈미트가 나치주의에 관여한 것은 불행한 시대 탓이었다는 인식이 굳어지고 있다. 따라서 나치와의 관계 때문에 그의 학문적 사상이 지닌 중요성을 편견을 갖고 바라보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p.373)

 

 

하이데거와 슈미트가 이룬 학문적 업적이 워낙 대단하고 가치 있는 것이기에 그들의 부역이 정당화 될 수 있다? 그럴 수 없다. 불행한 시대를 맞아 어쩔 수 없이 나치에 부역했다는 논리라면 나치에 목숨을 걸고 맞선 쿠르트와 이름 없는 수많은 지식인, 시민들의 고통과 죽음을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인가? 나치와의 관계와 학문적 사상은 별개의 문제이지만 나치에 부역한 자의 철학이 지금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여전히 교육되고 있다는 것은 당연히 큰 문제가 아닌가? 그나마 나치 부역자들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졌다는 독일의 경우가 이러한 것을 보고 나니 한국의 앞날이 더 걱정이다. 만약 지금의 정권이 정권 연장을 하고 지금의 여당이 계속 과반의석을 넘는 정치적 지형이라면 ‘한국은 미래가 없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제에 부역하고 친일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불행한 시대 탓이었다는 논리가 지배적이 될 수도 있다. 그런 논리가 학교 교과서에 버젓이 실릴지도 모를 일이다. 정말 끔찍하다.

 

4대강 공사에 대한 전면 재조사와 비리·불법에 대한 수사가 언제쯤 시작될지 모르겠다. 집권 후 지지율이 대폭 하락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전 정권의 비리나 불법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기 마련인데, 지금 박근혜 정권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이렇게 그냥 묻혀 버리는 것은 아닌 지 걱정이 된다. 만약 비리와 불법이 없었고 박석순 교수의 주장대로 녹조와 큰빗이끼벌레가 4대강 공사 이후 강의 수질이 좋아졌다면 수반되는 증거를 더 내놓으면 될 일이다. 그의 말대로 시민단체와 환경단체, 야당과 좌파들의 흠집 내기라면 그것은 잘못된 일이다. 4대강 찬동 인사들과 박석순 교수의 주장이 맞다면 그것대로 국민들에게 사실대로 알려져야 한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 아니고 녹조와 큰빗이끼벌레가 강의 수질을 악화시켰고 4대강 공사를 둘러싼 비리와 불법이 밝혀진다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 국민의 세금이 20조원이나 넘게 투입된 공사였고 잘못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환경재앙을 맞을 수 있는 사안이었다. 어물쩍 넘어가고 덮어둘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후세대들에게도 돌이킬 수 없는 부담과 악영향을 떠넘길 수도 있는 문제다.

언제쯤 4대강에 대한 조사가 이뤄질 지 알 수 없다.

 

히틀러에 찬동한 철학자들은 잘 먹고 잘 살았다. 물론, 그 중에서 처벌받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도 유명한 하이데거와 카를 슈미트 같은 철학자들은 처벌받지 않았다. 그 얘기는 그렇게 처벌받지 않은 부역자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히틀러에 맞선 철학자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당사자는 물론 후손들에게까지 그 비참함은 전해졌다.

중요한 것은 제대로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이데거와 카를 슈미트가 분명한 나치 부역자들이었다는 사실.

4대강은 반드시 전면적인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들 말이다.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래야 기억하고 잊어버리지 않는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곰곰생각하는발 2014-07-15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이끼벌레인가요. 요건 제가 살던 하천에서 흔히 보던 벌레였습니다. 커다린 젤리덩어리 같은 겁니다. 썩은 물에서 자주 보이는... 제가 사는 동네 하천이 썩어서 악취가 심하게 나던 하천이라 서울시에서 늘 골치였던 겁니다. 언제부터인가 하천 정화 작업이 진행된 적 있습니다. 물고기가 돌아오더니 물이 맑아져 냄새도 사라지니 그이끼벌레도 종적을 감추더군요. 그런데 전국 각지에서 그것도 하천도 아닌 강에서 보인다는 것은 썩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박 교수인가 그 사람은 정말 영혼이라고 판 지식인 같군요... 결국 그 사람 말인 이끼벌레가 환경지표생물이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차윤정이란 작가 생각나네요. 신갈나무투쟁기'라는 걸작을 썼던 인물인데 4대강 홍보지원장인가 뭔가 타이틀 받았던 인물... 양심을 팔면 권세를 얻기 마련인가 봅니다.

참고로 제목 오타입니다. ㅎㅎ하이데와 4대강 - 하이데거와 사대강...

lmicah 2014-07-16 11:07   좋아요 0 | URL
저는 바닷가 출신이라 하천 생물, 벌레는 잘 알지 못합니다. 큰빗이끼벌레라고 TV에 나오는데 으.. 너무 징그럽고 혐오스럽더라고요.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무모할 수 있는지 4대강을 보면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4대강에 대해서 제대로 보도도 안 되고 조사나 수사는 시도조차 안 하고 있으니 암울합니다. 이대로 녹조와 혐오벌레들의 창궐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지 안타까워요.
너무나 가벼운 양심 하나쯤 팔면 여러가지를 얻을 수 있다는 이 사회를 지배하는 논리와 구조가 정말 철옹성 인 듯 합니다.
오타도 발견해 주시고 감사해요^^

만화애니비평 2014-07-17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페루찡~ 아니 곰골발님과 이웃인 만애비입니당..
으흐흐흐...바다 출신이라, 저도 바다출신에 바다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큰빗이끼벌레, 자세히는 모르지만, 환경공학 전공자로서 4대강은 재앙이라고 공사 이전부터 여겼는데, 재앙이 되었네요.

솔직히 BOD(생물화학적산소요구량), COD(화학적산소요구량), T-N(총질소), T-P(총인)을 점검하면 하천수질을 알 수 있는데, 분명 환경영향평가서에서는 수질정화와 수생태계가 제대로 정착될 친환경적 하천이라 떠벌렸으나 환경영향평가서를 보고 난 뒤의 저것이 결과라면 이미 저 교수는 썩을 때로 썩었죠.

환경공학과 전공 2년차만 되어도 저 교수 논리가 엉망이란 사실을 단번에 아니 환경공학이 아니라 일반적 과학지식이 있어도 아는데, 교수가 환경이라면 형이상학보단 유물론적으로 가야 하는데, 오히려 관념론자가 되었군여.

문화유물론적인 요소로 바라볼 하천을 올바르게 판단하면, 이 하천은 물이 흐르지 않고, 하상의 저질과 우천 시 주변지역 토사가 밀려와 자정되지 못한 채 산소가 고갈되고, 물이 흐르지 않음에 따라 물이 보에 갇힌 것처럼 되어 수질이 오염 시 발생되는 해충이 발생하였다.

그 교수의 관념론적 논리 : 생물이 나타났으니 이게 물이 맑아진 겁니다. 분명 이끼벌레는 존재하나 그 이끼벌레 너머의 물을 보고 있는 것이죠. 권력으로 물을 보는 크윽..

lmicah 2014-07-18 18:15   좋아요 0 | URL
우왓! 환경공학 전공자시군요.ㅎㅎ 그런데 정말 궁금한 게 있었어요. 이명박 시절에 아무리 권력의 힘이 서슬같이 시퍼렇고 대단해도 거의 모든 관련 분야 지식인과 학자들이 입을 다물거나 찬동하기까지 하는 것을 보고 '저렇게 살고 싶은 가' 싶었어요. 뭐 저도 생활인이고 처자식이 있는 몸이라 밥그릇을 없애버리는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지만 저건 양심의 문제잖아요. 그렇게 권력에 빌어 붙지 않아도 될텐데 앞서서 미리부터 고개 숙이고 기어들어가는 꼴이니... 참 답답했어요. 뭐 지금 박근혜 정권에서도 마찬기지고요.

저는 신문과 방송을 전공하다보니 왜 이런 사회정치적 구조와 구도가 좀처럼 깨지지 않는지가 가장 궁금해요. 언론의 편향과 권력,자본과의 유착이 가장 큰 영향이라고 생각하고요. 손석희를 사장으로 영입해 세월호 보도 이후 영향력과 공신력이 수직 상승한 jtbc의 속성은 삼성과 중앙일보거든요. 절대로 바뀌지 않는 태생적 속성을 묵과한 채 대안인 듯 보여지는 것이 저는 더 우려스러워요. 대안언론들이 많아졌지만 영향력은 너무 작고요.
언론에서 제대로 떠들어만 준다면 정권의 보위를 위해 카드로 쥐고 있기 전에 4대강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가 이뤄질텐데 기대할 수 없는 일이죠.

며칠 전 세월호 생존 학생들이 1박2일 도보행진을 한 것에 대해서도 외국의 통신사와 언론사의 보도와 비평의 반 만큼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한국의 언론들이니까요.

아이고~ 말이 길어졌네요. 만애비님 댓글이 워낙 길어서 저도 주저리주저리^^
방문과 댓글에 감사드려요.

만화애니비평 2014-07-18 21:00   좋아요 0 | URL
참고적으로 말하자면 제가 있었던 연구실의 교수가 저 미친행위의 최강동조자였습니다. 그래서 부끄러워서 연구실 모임에 일체 가지 않고 있죠.
저런게 가능한 것은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라 봅니다. 물론 대학원말고 학부생일 때 다른 학교 교수님은 4대강 반대했죠. 결국 권력의 유착이거나 혹은 알면서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인 교수도 있죠.
그래서 저는 교수들이 학생들보고 똑바라 살라고 할 자격은 없다고 봅니다. 그런 말을 하려면 거기에 합당한 태도를 보여야 하니말이죵...ㅠ.ㅠ

솔바람 2014-12-02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히틀러가 한 시대를 움직이고 역사를 거스를 때, 진정한 힘과 동력은 `철학`이었듯이 혐오벌레, 악취, 바로잡지 못하고 대안이 없는 왜곡, 오류, 거짓, 부정의 아수라장도 `철학`과 `교육`의 바로잡혀짐이 없으면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요. ˝꿈 속에서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고 외쳤던 도산의 순수하고도 단순한 외침을 먼지낀 과거 속에서 다시 찾아, 이 시대의 거울로 삼고, 남을 공경하고, 자신을 공경하며 우주와 진리 앞에 일생 옷깃을 여몄던 퇴계의 사상과 가르침을 벽장 안 묵은 서책에서 들쳐내 이 나라의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일이 우리 시대의 더욱 중요하고 시급한 근본적인 일이라 생각합니다. `사자방` 문제를 박근혜 정부와 국회가 심각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로 다루기 시작하고 있으니 ...
 
중앙역 - 제5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김혜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다음 내리실 곳은 중앙역, 중앙역. 중앙역입니다

 

 

“가끔 살아 있다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

“여자가 하는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얇은 이불 아래 몸을 옹송그리고 눕는다.”

 

 

늙고 병든 여자와 젊은 남자는 서로의 몸을 탐닉한다. 생각만 해도 처절하고 지저분하게 서로의 몸을 타고 넘는다. 애면글면 서로를 파고들지만 그것은 에로스가 아니다.

늙고 병든 여자와 젊은 남자에게 미래는 없다. 그래서 과거도 없다.

가끔이 아니다. 중앙역 광장에서, 모퉁이를 돌아 한참을 걸어 간 공사장에서, 기차의 헤드라이트가 비루한 두 몸뚱어리를 비추는 땅바닥에서, 후줄근한 굴다리 밑에서 고통스러운 서로를 확인한다.

끊임없이 사정(射精)하지만 사정(事情)은 나아지지 않는다.

 

 

“살아 있었다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 라고 과거형으로 말했다면 좀 더 나았을까?

 

 

저자인 김혜진은 무서운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다. 김혜진의 손끝에서 시제는 무의미해진다. 늙고 병든 여자와 젊은 남자는 오늘에만 존재하는 고통 하는 몸뚱어리다. 흔하디흔한 문장부호, 따옴표 하나 없이 장편을 펼쳐내는 과감함에 혀를 내둘렀다. 빙빙 돌리지 않고 직격탄을 날리는 작가의 솔직함이 따옴표라는 흔하디흔한 문장부호 따위를 망각하게 한다.

늙고 병든 여자와 젊은 남자의 과거를 들추었다면, 미래를 장밋빛으로 그려냈다면 이 소설은 현실성을 담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하 수십 미터를 파내려 간 지하철을 타고 중앙역에 내려야 한다. 다음 역이 ‘중앙역’이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지만 일어서지 못한다. 내가 타고 있는 무덤덤하게 그려지는 비참한 현실은 수십 미터가 아니라 무저갱이다. 무저갱. 밑으로, 땅 끝으로 끝없이 추락한다. 작가는 무서우리만치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이들의 추락을 펼쳐낸다.

 

 

그 중앙역은 늙고 병든 여자와 젊은 남자만의 것이 아니다

 

 

“밤에는 훔친 물건들을 머리맡에 두고 눕는다. 불빛을 막으려고 모자로 얼굴을 덮는다. 그래도 쉽사리 잡이 오지 않는다. 살대가 부러진 우산, 슬리퍼 따위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살의를 굴린다.”

 

 

캐리어 하나를 끌고 광장으로 들어 온 젊은 남자는 늙고 병든 여자에게 캐리어를 뺏긴다. 별스러울 것도 없었을 캐리어를 훔쳐갔다는 이유로 늙고 병든 여자를 취한다. 갖으려 했지만 철저하게 늙고 병든 여자에게 수동적이다. 별스러울 것도 없었을 캐리어 보다 더 추레한 살대가 부러진 우산과 슬리퍼 따위에 자신을 구겨 넣는다. 그리고 점점 늙고 병든 여자의 처진 가슴과 비루한 다리 사이를 파고든다.

 

 

“나는 그들과 점점 닮아가고 있다. 그런 예감은 나를 불안하게 한다. 불안의 강도는 점점 커진다. 누구나 그들이 될 수 있다. 나 역시 그들 중 하나가 되고 말 것이다. 그건 짐작보다 훨씬 빠를 수도 있다.”

 

 

충분히 자립하고 자활할 수 있을 것 같은 젊은 남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센터의 팀장이 고군분투하며 돕지만 젊은 남자는 역 광장에 남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수도 없이 반문한다.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저 늙고 병든 여자에게 왜 나는 집착하고 있나?

애초에 꿈이 없고 기대가 없는 젊은 남자에게 주어지는 호의는 오롯이 늙고 병든 여자를 향한 집착으로 내닫는다.

어차피 영원할 수 없는 일생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나? 무슨 일을 하고 살아야 하나? 나는 아직 젊지만 더 어렸던 시절 ‘나의 화두는 무슨 일을 하고 살아야 하나?’였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것이었다. 어떤 직장에서 어떤 일을 하며, 남들 다 하는 결혼하고 애 낳아서 그렇게 사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닐 거라 나는 아직 생각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는 방향성이다. 그 끝에 단번에 닿을 수 없고 한 번에 전체를 훑을 수 없지만 그곳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참 힘들다. 고되다. 남들은 다 이렇게 저렇게 살고 최소한 나보다는 더 성공한 사회인이 되어 있는 것 같고, 나만 뒤쳐져 있는 것은 아닌 가 두렵다.

세상은 방향성을 반기지 않는다. 얼른 분투의 현장으로 뛰어 들어와 일원이 되고 장렬히 전사하기를 기대한다. 그런 단계를 밟지 않으면 낙오자로 낙인찍는다.

‘최소한 나는 저기 저렇게 비참하게 나자빠진 노숙자들보다는 낫다.’

라고 자위하는 위안에 이단옆차기를 날린다.

연봉이 얼마나 되고, 가정이 얼마나 화목하고, 나보다 나를 더 위하는 친구가 얼마나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솔직하게 생각해 보자. 나는 사는 것이 좋다. 재밌다. 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 다들 힘들단다. 다들 어렵단다. 그런데 모여 앉아서 ‘우리는 저 사람들 보다는 낫잖아.’라고 집단 자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렇다. 인생은 처절하게 고되고 아픈 것이다.

 

 

“괜찮습니다.”

“그래요. 그래도 혹시 문제가 생기면 저희를 찾아와야 합니다.”

“사람들은 매일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돌아가며 술을 산다. 대개는 국가나 시로부터 지원금이나 보조금을 받는 사람들이다. 자립을 약속하고 받은 그 돈을 그들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데 다 써버린다.”

 

아무도 늙고 병든 여자와 젊은 남자, 나와 당신을 지켜주지 않는다. ‘가만히 있으라.’ 도 ‘가만히 있지 마라.’도 선동이다. 지켜주지 않는다. ‘가만히 있지 않으면’ 뭐! 어떻게 할 건데!

광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컨테이너 센터는 마지막 보루라 착시되어 있다. 센터를 유지하려면 일정 수준의 노숙인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래야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다. 광장의 사람들이 그 푼돈을 가지고 다시 술에 절어들 것을 뻔히 알지만 그들도 그들의 시스템을 지켜야 한다. 다들 그렇게 이기적으로 사는 것이다. 욕할 수 없다. 그렇게 사는 것이 삶이다.

 

 

중앙역은 아비규환이다

 

 

“이런 식이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나는 빼앗으려는 사람들보다 제 것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의 무능함에 분노를 느낀다.”

 

젊은 남자는 무모하게 미래를 꿈꾼다. 아무도, 아무것도 그들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무모하게. 그렇게 젊은 남자는 아비규환의 한 가운데로 뛰어든다. 타 죽을 것을 모른 채 타는 불빛으로 뛰어 들어가는 불나방처럼.

그리고 그 아비규환에서조차 타들어 가는 몸뚱어리를 그대로 놓아 둔 바보들을 마주한다.

작가가 얼마만큼의 리얼리티를 담보하고자 했는지 가늠할 수 없지만 나는 젊은 남자가 마지막으로 늙고 병든 여자를 응급실에 버려두고 오는 결말이 차라리 나았을 것 같다.

 

 

“끝없이 이어지는 밤 속에서 아침을 기다린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시린 눈을 깜빡인다. 누군가 뒤쪽에서 얼어붙은 담벼락을 탕탕 때린다. 줄지어 선 사람들이 한꺼번에 벽을 치면서 고함을 지른다. 나는 젖혔던 캡을 닫고 새벽이 오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것은 너무 잔인하다. 무모하지만 미래를 꿈꾸려 했던 젊은 남자의 날갯짓은 모조리 타 없어져 버렸다. 응급실을 뛰쳐나오며 “모르는 사람입니다. 정말 모른다고요!” 라고 외쳤던 것은 마지막 남은 인간성의 발로다.

하지만 진짜 마지막 장면에서 젊은 남자에게 먼지만큼 남아 있던 그것조차 모조리 타 버렸다. 마지막 남은 철거민들을 박멸하기 위해

 

“젖혔던 캡을 닫는다”

젖힌 캡 위로 어스름하게 다가오는 새벽은 절망이다. 일말의 희망도 없는 아득한 절망.

 

 

"다음 내리실 역은 중앙역, 중앙역. 중앙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없습니다.

가만히 계시든지, 계속 타고 가시든지 마음대로들 하시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널리즘
조 사코 지음, 최재봉 외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나는 이 소식을 트위터를 통해 알게 되었다. 한국에는 TV뉴스가 쏟아진다. 그런데 이 일에 대한 뉴스는 단 한 꼭지도 보지 못했다. 단 하나도. 공중파도 있고 보도채널도 있고 종편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뉴스는 아예 자취를 감춘 듯이 없다. 트위터를 통해 알게 된 팔레스타인의 소식은 충격적이고 참혹했다. 백린탄이라는 인간이 만든 군사무기 중 가장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폭탄이 팔레스타인 상공에 쏟아지는 사진을 보게 되었다. 백린탄으로 인해 온몸이 타버린 어린아이를 안고 절규하는 사람의 사진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사진들이 보도되지 않고 있었다. 적어도 한국의 언론보다는 더 언론답다고 생각되고 기대되는 유럽 유수의 언론사들도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고 한다. 궁금했다. 이스라엘이야 미국의 가장 강력한 우방이고 미국의 대 유럽, 중동 정책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시온주의로 포장된 그들의 제국주의적 야욕이 감춰졌었다. 또한 홀로코스트에 대한 유럽인들의 죄책감과 부채의식도 여기에 한몫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미사일이 민간인 거주 지역을 그대로 폭격하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는 다는 것이 정말 이해되지 않는다. 트위터 상에서 거울을 가운데 두고 좌우에 독일군과 이스라엘군이 서로를 마주하고 있는 사진을 발견했다. 일반인이 그린 그림인데, 독일군과 이스라엘군이 총을 겨누고 있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은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이다. 결국 이런 방식으로는 똑같다는 것이다. 이미 이스라엘로 인해 팔레스타인은 그들의 예전 거주지 대부분을 잃었고 가자 지구를 비롯한 구석까지 몰려난 상황이다. 이스라엘이 내세우는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팔레스타인의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군사공격은 비난받고 추후에 반드시 처벌받아야 할 범죄다. 나치와 히틀러에 의해 수백만 명의 조상들이 죽었다는 이유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격이 정당화 될 수 없다. 그런데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렇게 어이없는 일이 오늘도 벌어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누구도 나서서 이야기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론 자유 지수가 세계50위권인 한국의 상황이야 이해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프랑스와 영국, 독일의 언론들조차 이 상황을 자세히 보도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말 이상하다.

 

이 책 「저널리즘」의 저자 조 사코는 지금 팔레스타인의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동참 저널리즘(embeded journalism)에 대한 비판은 항상 있어왔다. 나도 이 점을 잘 안다. 「안심하면 죽는다」에서 저널리스트는 해병대원들가 함께 지내며 군인의 시점으로 현장을 경험한다.” (p.126)

 

이 책의 제목 자체가 의미심장하다. 저널리즘. 말 그대로 언론이다. 책 제목이 언론이다. 조 사코는 사람들, 특히 언론인들이 별로 가지 않는 지역,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주제에 뛰어든 언론인이다.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들에 대한 보도는 간단하다. 유수의 통신사들이 보내준 영상과 적절한 현지 특파원의 코멘트 정도면 본토에 전달되는 보도는 충분히 현실성을 담보할 수 있다. 그런데 조 사코는 이라크에 파병된 해병대원들과 함께 험비에 올라탄다. 그들의 막사에서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동참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기자가 얼마나 될까? 목숨 걸고 하는 취재를 하는 기자가 몇이나 될까? 이 책에 등장하는 인도, 몰타, 체첸의 이야기들은 내가 이전에 다른 어떤 책이나 TV에서도 본 적이 없는 내용이었다. 전적으로 저자의 관심과 열정, 용기로 인해 가능한 일이었다.

 

 

 

 

 

 

“많은 수의 이방인들을, 그것도 피부색이 다른 이들을 갑자기 받아들여야 한다는 도전을 감당할 만한 민족은 안타깝게도 많지 않다. 내 나라 사람들이라고 다른 민족보다 더 선한 것은 아니다.” (p.179) 「초대받지 않은 사람들」

 

 

이름조차 생소한 지중해의 <몰타>라는 섬나라의 상황은 꽤 흥미로웠다. 백여만 명의 인구에 불과한 이 작은 섬은 지중해의 풍요로운 나라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북아프리카에서 보트나 선박을 타고 아프리카인들이 작은 섬으로 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북아프리카에서 바로 이베리아 반도나 이탈리아 반도로 직행할 수 없으니 몰타가 그들의 중간 기착점이 된 것이다.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그들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하고 그들이 원하는 나라로 갈 수 있게끔 도와주어야 하지만 이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일단 아프리카에서 몰타로 몰려드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그들이 난민 지위를 받거나 몰타에서 정착한다면 그들에게 일정 정도 경제적 지원은 필수적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몰타 국민들의 몫인 것이다. 여기에서 또 다른 역차별이 생기게 된다. 만약 일정 수의 난민들만 몰타로 오게 된다면 적절하게 정책을 마련하고 대책을 세울 수 있을 텐데 그것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드니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게 된 것이다. 난민 지위가 부여되기 전 수용소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아프리카 인들은 그 곳에서조차 민족과 나라간 갈등이 생기고 자신들을 향해 적개심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몰타인들과도 갈등이 생기게 된다. 몰타 국민들은 그들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무분별하게 수용하게 되면서 이전까지 몰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일자리를 아프리카인들이 뺐어간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워낙 작은 나라이다 보니 이 상태로라면 그들의 자식들 세대에는 아프리카인들이 더 많이 살게 되는 몰타가 되지 않을까 라는 생존 자체의 걱정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주목한 것은 조 사코의 취재방식이다. 그림에서도 보이듯이 그는 밀착 취재한다. 한 사람의 일방적인 주장을 듣는 것이 아니다. 여러 이해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그것을 그대로 그림으로 그려 낸다. 어린 시절 흔히 보던 만화와는 다르다. 일단 대사가 너무 많다. 글이 너무 많아 사진처럼 촘촘하게 그려낸 그의 그림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다. 내용이 참 많다라고 생각하다가도 이런 취재를 하기 위해서 얼마나 그가 노력했을지 생각하게 되었다. 하루, 이틀 해서 될 취재가 아니다.

사실 몰타에 밀려오는 북아프리카인 들에 대한 문제는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아마 평생토록 몰랐을 내용일 수도 있다. 한국의 어느 언론에서 몰타까지 가서 취재하는 기자가 있겠나?

 

“나는 지중해의 작은 섬인 몰타에서 태어났고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자라 열두 살 무렵에 미국으로 이주했다. 유럽에서도 여러 번 살았다. 그래서 특정 지역에 갇히지 않는 관점을 갖는 게 내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내가 더 큰 세계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며, 내 감수성은 특정 민족 국가의 경계에 머물지 않는다.” (p.218)

 

국제분쟁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묻는 인터뷰에서 조 사코가 한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조 사코에게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당신은 왜 그런 인도의 불가촉인들에게까지 관심을 기울이는가? 체첸인 들은 테러리스트들이 아닌가? 왜 그들을 두둔하는가? 왜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몰타의 북아프리카인 들에 대한 문제를 긁어 부스럼 하느냐?

조 사코에게 국적은 무의미하다. 한 사람의 세계인인 것이다. 나도 개인적으로 가장 경계하는 것이 맹목적인 국수주의·민족주의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섬나라인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가 조 사코만큼의 안목과 세계인적 정체성을 갖기는 힘들다. 해외여행 몇 번 했다고 해서 저절로 장착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에게 체첸인 들의 문제, 인도의 불가촉천민들의 문제, 몰타에 몰려드는 북아프리카인 들에 대한 문제는 이웃의 문제다. 바로 나와 같이 시대를 사는 동시대, 동세계인의 문제인 것이다. TV앞에서 안타까워하면서 아이구 어쩌나 팔레스타인 사람들 참 불쌍하다. 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서 인터뷰하고 취재하고 자세하게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사실 나와 같은 일반인들은 TV앞에서 안타까워하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 있다. 하지만 언론인들에게는 다른 문제다.

 

 

 

 

 

“한국 기자들의 ‘현장’은 브리핑룸 또는 기자실로 종종 국한된다. 간혹 격동의 현장에 찾아간다 해도 깊이 충분히 보고 듣고 겪는 일을 낯설어 한다. 그것은 기자의 이력에서 예외적이고 드문 순간으로 기억된다. 대신 경찰, 검찰, 국회, 청와대 등의 출입처 경력을 바탕으로 차장, 부장, 국장 등으로 이어지는 관료적 출세를 꿈꾼다.” (p.227)

청와대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오프더레코드를 전제한 채 대변인이 한 말을 보도한 매체의 기자가 청와대 출입을 저지당한 일이 있었다. 어처구니없었던 것은 대변인 측에서 그 문제를 먼저 제기한 것이 아니라 다른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그것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최소한의 동업자적 정신도 기자 정신도 없는 유치하고 소아병적인 발상이다. 너는 우리 편이 아니라 나쁜 편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아니고는 가능할 수 없는 발상이다. 앞서도 여러 번 지적했지만 한국의 기자 중 조 사코처럼 전 세계를 누비며 용기 있게 취재를 하는 기자나 언론인이 있을까? 북미나 유럽에 특파원으로 전 세계를 누비는 사람들이 아니라 인도의 불가촉천민을 만나러 가고 몰타에 있는 북아프리카인 들을 만나러 갈 사람들이 있을까?

한겨레 안수찬 기자의 말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보다 일선 기자들에게 하는 것이다. 언론인으로서의 사명을 잊은 채 관료적 출세를 꿈꾸는 언론인들이 참 많다. 그저 윗선에서 시키는 대로 딱 그만큼만 취재를 하고 보도를 하는 것에 익숙해진 공무원과 같은 직업인들이다. 그들에게서 조 사코의 모습을 일말이라도 찾아볼 수 없다. 너무나도 비극적이고 참담했던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는 한국 언론의 민낯을 정확하게 볼 수 있었다. 언론이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엉망진창인 그들은 차라리 없는 편이 더 나을 지경이다. 차라리 없는 채로 아무 말 하지 않으면 최소한 혼란이라도 주지 않을 텐데, 난립하다 보니 사실관계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자질도 되지 않는 사람들을 앉혀 놓고 평론이라는 것을 하니 이것은 언론이 아닌 것이다. 저널리즘이 아니다.

청와대에 출입하고 국회에 출입하는 것이 벼슬이 아닌데, 그들에게는 벼슬자리가 되어 버렸다. 그런 자들에게서 저널리즘을 기대하는 것인 수탉에게 끊임없이 달걀을 낳으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

 

“저널리즘의 최고의 목표는 돈, 정부, 힘 센 자들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정치인이 하는 말을 충실하게 받아 적고 보도하는 것은 저널리즘이 아니다. 그 정치인의 말을 현실과 비교하는 것이 저널리즘이다.” (p.219)

 

조 사코가 인터뷰에서 저널리즘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피력한 부분이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저널리즘이다. 우리는 세상을 제대로,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것일까? 매일 TV를 통해 전해지는 뉴스와 보도와 취재가 정말 사실일까? 나는 이 물음이 저널리즘으로 향하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보도를 전해 듣고 보는 시민들은 이것을 의심해야 한다. 저들이 말하는 보도하는 저 보도와 취재가 정말 사실일까?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참 피곤하다. 적어도 공중파 공영방송에서만큼은 사실을 보도하고 그것을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보여주어야 하는데, 한국에서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못한지는 벌써 수년이 지났다. 진실을 알고 싶은 사람들은 찾아봐야 한다. 인터넷을 찾아보고 책을 찾아보고 SNS를 크로스 체크해야만 어렵게 진실에 근접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들이 만들어 내는 세상밖에 볼 수 없다. 그게 편하다. 보도하는 대로 믿고 살면 되니까. 하지만 진실과는 점점 멀어진다.

조 사코와 같은 용기 있고 성실한 언론인들이 많아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진실과 더 크게 괴리되지 않는다. 조 사코와 같은 언론인들은 마지막까지 이 세상이 썩어 문드러지지 않을 만큼 허락된 방부제다.

만약 지금 조 사코가 이스라엘군에 의한 공격이 계속되고 있는 팔레스타인 땅에서 취재 중이라면 그의 안전을 위해 신께 기도한다. 지금 팔레스타인에 있지 않더라도 그는 또 다른 팔레스타인을 찾아 나서고 있는 중일 것이다. 그의 건강과 안전을 지켜주시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치도록 가렵다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4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딸아이를 낳고 교회 고등부 반 아이였던 건후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와~ 쌤 진짜 축하드려요. 아빠 되셨네요!!”

 

밥 먹다 말고 전화를 했다는 녀석은 나보다 더 목소리가 상기되어 있었다. 작년 수능시험 성적이 기대이하여서 원서도 제대로 내지 않고 바로 재수 공부를 시작했던 건후였다. 재수를 시작한다면서 기도해달라고 했던 녀석에게 혹시라도 부담이 될까 문자 몇 번으로 소식을 전했었다. 내가 딸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고등부에 출석하는 동생들에게 듣고 바로 전화했다고 하는 녀석은 교회 고등부 2년 동안 내가 맡은 반이었다. 워낙 성실하고 예의바른 아이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챙기고 싶었다.

딸아이를 낳고 많은 주변 사람들의 연락을 받았지만 교회 고등부 학생에게 축하 전화를 받은 것은 건후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졸업한 지 십 수 년이 지난 제자가 학교로 찾아와 인사를 하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참 뿌듯하고 기분 좋았다.

교회 주일학교에서 반교사를 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교회 주일학교도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일주일에 한 번, 1시간 정도의 만남으로 뭐 대단한 관계를 형성할 수도,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거나 삶을 가르치기도 버겁다. 아이들은 너무 지쳐 있고 고등부 예배 중에도 학원 숙제를 하느라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

나는 6년 째 내가 다니는 교회 고등부 교사를 하고 있는데, 처음 고등부 교사를 시작하며 가졌던 다짐이나 목표는 이미 흐물흐물해지다 못해 사라져버렸다.

나는 절대로 그러지 않겠다 다짐했던 말도 이제는 입에 달고 사는 형편이다.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요즘 애들 왜 이래~!”

 

자신을 맡았던 교회 고등부 선생님이 딸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밥 먹는 도중에 축하 전화를 한 건후같은 아이들이 많았으면 좋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래도 교회야 1시간 정도 만나는 시간에 불과하지만 학교는 얼마나 서로 피곤할까 싶다. 학생들도 그렇고 교사들도 그렇고.

이 책은 공교육의 문제, 학교폭력의 문제에 숟가락 하나를 더 얹는 그런 내용이 아니다. 현재 한국 공교육의 문제, 학교폭력, 왕따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오늘 내일 대책으로 해결될 일도 물론 아니다. 다만 지금 학교도 교회도 이 책에서도 건후 같은 아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아이들은 모두 가렵다. 그리고 모두 아프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지는 못해도 네가 어디가 가렵구나, 그래서 가렵구나 알아주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녀? 너라도 알아봐줘야 하는 거 아녀? 말 드세빠지게 안 듣는 놈일수록 가려운 데가 엄청 많은 겨. 말 안 듣는 놈 있으면 아, 저놈이 어디가 몹시 가려워서 저러는 모양인가 부다 하면 못 봐줄 거도 없는 겨.” (p.217)

 

형성중학교 사서로 전근을 오게 된 수인은 의욕에 넘쳤다. 이전 근무지였던 학교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고 자신도 있었다. 남자친구 율과의 갈등을 명치 한 쪽에서 떨쳐내지 못한 채였지만 교장과 드잡이 할 만큼 용기도 있는 사람이었지만 결국 자신보다 자신을 더 잘 아는 엄마 앞에서 속내를 그대로 들키고 만다.

엄마는 삶 속에 녹아있는 지혜로 딸을 위로한다.

 

“사람은 누구나 가려운 것이다. 가렵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교회에서 만나는 아이들 중에서도 그런 아이들이 많다. 수인 엄마의 말대로라면 엄청나게 가려운 아이들이다. 아무래도 교회다 보니 학교에서 만큼 드세게 덤벼드는 아이들은 거의 없지만 대놓고 무시하고 비꼬는 아이들도 왕왕 있다. 나는 성격상 그런 아이들을 반드시 혼을 낸다. 예배 중에 밖으로 불러내 혼을 내기도 한다. 예배가 지겹고 믿기지도 않는 교회에 와서 병 든 닭 마냥 앉아 있는 아이들에게 이야기한다. 그럴 거 같으면 차라리 오지 말라고. 그런 말은 듣지 않는다. 엄마, 아빠 차에 실려 한 두 시간 앉아 있다 가는 것이 하루 종일 교회 안 갔다고 잔소리 듣는 편보다 더 편하다는 것이다.

나는 교회에 오늘 아이들도 가렵다는 생각을 많이 하지 못했다. 복에 겨운 아이들이라 생각했다. 고등학생 쯤 되면 선택하면 될 것을 그런 선택하나 하지 못하는 용기 없는 아이들이라 생각했다.

 

“세상에, 해명이한테 이런 재주가 있다니.” (p.124)

“해명은 어젯밤 잠을 설칠 정도로 설렜다. 난생처음 칭찬을 받았다. 자신도 어딘가에 쓸모가 있으며 귀한 대접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p.146)

“도범아, 고맙다. 이렇게 말해줘서.” (p.174)

 

그러면서 건후와 같은 아이들은 또 좋아한다. 말 잘 듣고 예의 바르고 성실한 아이들. 교회에 와서조차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이 어디가 가려운지 들여다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책에 등장하는 해명이가 덩치는 산 만한데 매번 말을 하지 않아 아이들에게 폭력을 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수인이 직접 해명이 집을 찾아가 해명이의 부모님이 언어 장애를 가진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해명이에 대해서 조금 더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매번 망치를 들고 다니는 이유도 알게 되었다.

강북에서 주먹 꽤나 날리던 소문난 문제아 도범이의 얘기도 들으려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도범이의 얘기처럼 마치 에이즈 환자처럼 자신을 격리시키고 분리시키는 사람들을 마주하고 도범이가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 해명이는 수인의 칭찬에 밤잠을 설쳤다. 도범이는 선입견 없이 다가와 준 수인에게 속내를 털어 놓는다.

나는 교회에서조차 삐딱선을 타는 아이들을 혼내는 것에 만족했다.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물어도 별 말 하지 않는다고 쉽게 포기했다. 교회에서 내가 만나는 아이들이 모두 건후와 같은 아이가 되기를 원하면서 건후와 같은 아이들이 될 수 있도록 충분히 격려하고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최소한 ‘이 아이들이 많이 가렵구나’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담배 피우지 않았습니다.”

“이 자식이 딱 잡아떼네. 빨리 이실직고 해 인마. 그래야 퇴학이라도 면할 거 아니야. 너 이제 갈 데도 업어. 알고는 있냐? 니가 한 짓이지? 왜 그랬냐? 개 버릇 남 못 주지. 너도 참 이름값 하느라 고단하게 산다.” (p.194)

 

도범이를 도서관 화재의 주범으로 몰려는 학생주임의 다그침이 과하다고 생각하나? 나는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에이~ 나는 아니야~’라고 생각하고 싶겠지. 만약 내가 편의점 점주인데 매번 정산이 맞지 않는다면, 알바부터 의심할 것이다. 도범이는 원래 문제 학생이고, 워낙 대단한 불량학생이라 수도 없이 전학을 다녔으니, 무슨 문제가 생기면 도범이부터 의심을 받는다.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고. 핸드폰을 만지지 않았다고. 말대꾸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해도 쉽게 믿어주지 않는다. 이 상황을 모면하려고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의심 받는다. 이런 나와 당신에게 아이들의 가려움은 2순위다. 너의 잘못을 드러내고 그 잘못을 혼내는 것이 1순위다.

 

“우리 엄마도 가렵대요. 가려움은 죽을 때까지 누구나 있는 거래요.” (p.242)

 

그런데 사실 수인의 엄마도 가려운 것처럼 나도 가렵다. 당신들도 가렵다. 김두식 교수의 책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중학교 딸아이를 보고 만들어낸 <지랄총량의 법칙>이 생각났다. 누구나 일정 정도의 지랄총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학교 딸아이는 그것이 과한 때이니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인데, 가려움도 마찬가지 인 것 같다. 어른이 되면 가려워도 어느 정도 참아낼 수 있는데 아이들은 그렇지 못하다. 당장 시원하게 긁고 싶은데 그 가려운 곳이 하필이면 날개뼈 아래, 두 손으로 아무리 휘저어도 닿지 않는 유일한 사각지점에 위치해 있어 괴로워 할 따름이다. 어른이 되어도 이 가려움은 없어지지 않는다. 참고 모른 채 하는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며 오해를 받거나 선입견으로 가득한 대우를 받을 때 너무 억울하다. 변명하고 싶고 대들고 싶은데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어린 시절 상처를 그대로 짊어진 채 ‘나는 우리 아버지가 나에게 했던 것처럼 절대로 내 아이들에게 하지 않을 것이다.’ 다짐하지만 점점 아버지를 닮아가는 나를 발견한다. 누구나 상처를 안고 가려움을 안고 산다.

수인도 도범이도 대호도, 심지어 교장도 나름의 상처를 안고 있다. 그 상처가 아물어서 가렵다면 다행이지만 해결되지 않는 괴롭힘 같은 가려움은 내내 발목을 잡아끈다.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교회에서 만나는 아이들도 분명히 가려운 곳이 있겠구나. 내가 모르는 아이들의 속사정들이 분명히 있겠구나. 이렇게 마음을 먹어도 막상 아이들의 고개를 숙인 채 학원 숙제를 하고 대꾸도 하지 않거나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을 보면 당장 지적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겠지만, 참아야 한다. 나도 아이들처럼 가려운 곳 천지인 사람일 뿐이다. 단지 내가 아이들보다 나이를 더 먹었을 뿐이다. 아……. 내 기질 상 정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쉽게 마음을 먹지 못하겠다. 그래도 건후와 같은 아이들을 만나려면 내가 해야 할 자세가 분명해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성의 연인 1 - 제1회 퍼플로맨스 최우수상 수상작
임이슬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보도가 심심찮게 나왔던 적이 있다. 천송이 역할을 한 배우 전지현씨가 극중에서 치킨과 맥주를 먹었는데, 그로인해 원래중국에서도 치맥 열풍이 불었다나 뭐래나. 나는 그 드라마를 보지 않아서 내용을 전혀 몰라야 하는데, 대략 내용을 알고 있는 걸 보면 대단한 인기였던 것 같다. 배우 김수현씨가 연기한 극중 도민준은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수백년을 살아온 사람이라는 것. 뭐, 물론 아내가 김수현을 좋아해서 이야기해준 탓도 있지만.

이 책 「유성의 연인」의 두 주인공 유미르와 정휘지는 <별에서 온 그대>의 천송이와 도민준의 구도와 비슷하게 생각되었다. 2609년 어느 날 성인이 된 유미르는 그들의 별에서 1609년 조선의 강원도 양양으로 불시착한다. 유미르가 살고 있던 별에서는 성인이 되면 비행체를 타고 우주를 여행하게 되는데, 유미르는 과거로 날아온 것이다. 2014년을 살고 있는 지금, 앞으로 500년 후의 일을 상상할 수 없지만 휴대폰이나 다른 기계들의 발전을 돌이켜 보면 분명히 지금은 도저히 예측할 수 없을 정도의 사회가 되어 있을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이 책은 로맨스 소설이다. 2609과 1609년이라는 시차를 상쇄시켜 줄 전문적이지만 독자로 쉽게 읽을 수 있는 기술적 내용도 부족하고 역사적 내용도 부족하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별에서 온 그대>의 잘생긴 김수현과 예쁜 전지현이 생각나고, 어린 시절 누구나 읽었을 <선녀와 나무꾼>도 계속해서 생각이 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제 위치를 발송하고 정보를 전송하기 위해서는 우주선 전체를 관할하는 인공지능 시스템... 여기서 바로 그 티타늄 나사가 결정적인 접합 기능을 하는데 온 산을 뒤져도 나오질 않네요.” (2권, p.133)

 

 

유미르와 정휘지는 서로의 마음을 숨겨둔 채 각자에게 대시해 오는 다른 이성의 마음을 뿌리친 후 연인이 된다. 좌수의 아들 김문혁에 의해 자신이 다시 고향인 별로 돌아갈 수 있는 결정적 티타늄 나사를 정휘지가 숨기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평소 인성이 나쁘고 정휘지와 유미르를 괴롭혀 온 김문혁의 말이지만 도무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정휘지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유미르는 의심을 품게 된다. <선녀와 나무꾼>이 오버랩되는 장면이었다. 김문혁에 의한 이간질이 오해로 풀리고 유미르와 정휘지는 더 사랑하는 연인이 된다. 이 부분에서 내가 아쉬웠던 것은 티타늄 나사다. 2060년도 쯤도 아니고 2600년에서 온 유미르의 비행체에서 가장 결정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부품이 티타늄 나사라고 하니 좀 당황했다. 한참 재미있게 소설 속에 빠져들어 읽고 있는데 <티타늄 나사>가 나오자 ‘에이~’라는 탄식이 나왔다. 뭐, 나는 기계 쪽이나 과학 쪽에는 젬병이다 보니 티타늄 나사라 해도 대단한 것처럼 여겨지고 나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대단한 기술의 결정체로 여겨지지만 2600년대라면.. 좀 더 미사여구를 덧붙여 멋진 단어를 만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대는 사람이요? 요괴요? 그도 아니면 정녕 하늘에서 온 선녀요?” (1권, p.24)

“미르의 몸에서 빛이 일기 시작했다. 봄볕보다 따스한 온기가 미르와 휘지를 감쌌다. 휘지의 찢겨진 세포가 자체적으로 증식하면서 혈관과 피부를 메워나갔다.” (1권, p.99)

 

2600년대에서 온 유미르가 가진 능력을 보면 티타늄 나사는 더욱 아쉽다. 유미르는 정휘지는 물론 자신들의 멘토 역할을 한 양양 도호부사의 아들 연수하의 목숨도 살려준다. 각종 SF물과 동화에서 나오던 그 장면 같이 말이다. 유미르의 눈물이 정휘지의 상처에 닿으니 광채가 발현하면서 씻은 듯이 나았다더라~~

그런데 이 초능력(?)을 남발하지 않아서 좋았다. ‘유미르는 양양 고을 백성들의 전염병을 모두 고쳐 임금의 어의가 되어 만수무강 했다더라~’가 아니어서 좋다.

  

 

“수연은 진심으로 휘지를 깊이 연모하는 중이었다. 휘지의 이야기만 나오면 붉어지는 그녀의 두 볼과 초롱초롱해지는 눈망울, 그리고 그리움에 절절하게 떨리는 말투까지.” (1권, .172)

 

 

김수현과 전지현이 더욱 생각나는 부분이었다. 어떻게 로맨스 소설의 두 주인공은 소설 속 등장하는 이성들로부터 무한정의 매력을 받는 지 궁금하다. 한국의 드라마와 미국의 드라마를 볼때마다 참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다. 시나리오와 세트의 허접 함쯤은 모두가 지적하는 것일테고, 내가 한국 드라마를 볼때마다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등장인물들의 헤어스타일이다. 퇴근하기 전 완벽하게 세팅된 헤어는 이해가 된다. 드라마를 보고 있는 시청자들도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그런데 퇴근을 하고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있거나 잠자리에 들기 전 두 부부가 침대에 누워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도 그들의 헤어스타일은 회사에서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12시까지 야근을 하고 새벽 2시까지 피할 없는 상사와의 술자리를 마친 뒤 겨우 집으로 돌아와 옷을 벗지도 씻지도 못한 채 그대로 침대에 엎어져 잠이 든다면 헤어스타일이 그대로 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퇴근 후나 외출 후 집에 돌아와 씻는다. 씻고 나서 씻기 전 헤어로 스타일링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정도의 황당함은 아니지만 매번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들이 김수현과 전지현처럼 생기지는 않았을 텐데, 이 책의 두 주인공 유미르와 정휘지는 대단한 매력의 소유자들이다.

   

 

“좌수께서 거두어들인 곡식 양이 어느 정도인지 대충 가늠해보아도 곡고에 있는 것보다는 훨씬 많을 것입니다. 게다가 뒤뜰에 있던 창고는 분명 밖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그 통로를 이용하여 곡식을 다른 곳으로 옮긴 것이 분명합니다.” (2권, p.177)

 

 

로맨스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이 장르에 살인사건이 등장하는 것은 작가가 꽤 잘한 선택으로 보여진다. 정휘지와 유미르가 연인이 되고 난후 조금 지루하게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이어지는 가 싶은데 중간에 살인사건이 일어나 긴장이 조성된다. 1600년대 초쯤에는 분명히 호랑이에 의한 피해가 있었을 것이고, 그러한 배경을 이용하여 지금말로 관피아가 얽힌 사건이 등장한다. 도호부사는 지금 시장쯤 되는 자리이고 앞서 말한 김문혁의 아버지는 좌수다. 평생토록 양양땅에 살면서 기득권 행세를 하는 사람이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돈과 권력과 정보를 가진 사람은 기득권이 된다. 기득권이 되면 지키고 싶은 것이 많을 것이고, 적이 많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욕심이 많아질 것이다. 호랑이로 인한 살인사건이 아니라 검은개와 뒤에 숨은 흑사회가 연관된 것이라는 것을 도호부사의 아들인 연수하와 정휘지가 밝혀낸다. 김좌수는 오래전부터 양양땅에서 갑질을 하고 살았던 것이다. 도호부사가 계속해서 바뀌고 여러 사람이 그 자리를 왔다갔다 하더라도 여전히 양양의 모든 것은 김좌수의 손 아래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로맨스 소설의 리뷰에서 이런 언급을 하는 것이 과한 것 같기는 하지만 지금 정부와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았다. 현재 국정을 운영하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지에 대해서 말이 많다. 7인회, 만만회 등. 그런데 이 정도로 매스컴을 타고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정도라면 저들이 진짜 실세가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저들을 매스컴 앞에 세우고 뒤에서 이 모든 것을 조정하고 통제하는 실세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뭐, 나는 아무런 정보도 없고 자료도 없으니 그저 추측할 뿐이다. 책에서도 그렇다. 도호부사가 있지만 김좌수는 오랜 기간 토호로 존재하며 백성을 수탈하고 통제했다. 연수하와 정휘지가 김좌수와 흑사회의 연관성을 밝혀 내면서 점점 김좌수의 범죄 사실에 다가가자 김좌수는 양양땅을 통제한다.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에게 협조하지 못하도록 유언비어를 퍼트리기도 한다.

결국 김좌수의 범죄가 낱낱이 밝혀져 처벌을 받게 되고 정휘지는 유배를 면하게 된지만 지금의 현실은 소설과는 많이 다르다. 여전히 갑질은 횡행하고 기득권은 아바의 노래(The winner takes it all)처럼 모든 것을 가진다. 앞으로도 주욱 그럴 것이고.

  

 

“미르가 남의 별 과거에 떨어진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지금도 이미 미르를 찾기 위해 많은 비행체들이 강원도 일대를 샅샅이 수색하고 있었다. 충분히 과거에 개입하고 말았다. 조금의 실수라고 했다간 지구의 미래가 바뀔지도 모름 이는 전 우주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 분명했다.” (2권, p.251)

 

소설은 착하다. 여차여차하여 고향별에 있는 부모에게 신호를 보내게 되는 미르를 찾아 온 부모는 참 착하다. 과거를 거슬러 역사에 개입한다는 것에 극도로 조심하는 소설 속 유미르 부모의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요즘 굉장히 재미있게 보는 프로그램 중 <렛츠고 시간탐험대>라는 것이 있는데, 말그대로 과거의 특정 시점으로 돌아가 철저한 고증대로의 삶을 살아보는 것이다. 개그맨 장동민씨가 예의 성격답게 아주 포악한 임금으로 연기를 한 적이 있는데, 만약 내가 1600년 당시 임금으로 살게 된다면 나도 장동민 정도는 아니지만 마음대로 국정을 농단하고 하고 싶은 것 실컷 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아이구~ 내가 역사를 뒤틀면 어떻게 되지?’ 같은 착한 생각은 하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의 작가는 참 착한 사람 같다.

  

 

“나리, 이리 가까이 오셔요. 제가 오늘 나리의 점괘를 보니 아주 기이한 일을 겪게 되실 듯하옵니다. 오늘 나리께서는 일생의 가장 중요한 귀인을 만나게 되실 것입니다.” (1권, p.14)

 

무당으로부터 이상하나 점괘를 듣게 된 정휘지는 유미르로 인해 대단한 경험을 하게 되고 양양좌수의 범죄를 밝혀내 유배로 면하게 된다. 고향별에서 딸을 찾아 온 유미르의 부모로 인해 생이별을 하게 되지만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연인이 다시 만나게 되는 듯한 암시가 있다.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럴 것이다. ‘아주 기이한 일’ 한번쯤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는 모르지만 인생에서 한번쯤은 찾아올 것 같다. 더불어 귀인도 만나게 된다면(꼭 이성이 아니더라도) 기대하는 것만으로 인생이 더 즐거워지는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