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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김누리 지음 / 해냄 / 2020년 3월
평점 :
대선을 앞두고 온갖 음모론과 다툼, 갈등과 정보가 쏟아지는 현재다. 대선이라는 큰 선거를 앞두고 반복되어 온 일이라 치부하기엔 정도가 과하다. 포털 사이트 첫 창을 보기가 힘들 정도로 온갖 정보가 넘쳐난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도 전에 새로운 일과 정보가 쏟아진다. 머리가 아프다.
팬더믹 이후 한국은 방역과 예방, 경제력의 회복 등에서 선진국의 위치에 올랐다. 이전까지 늘 부러워하기만 했던 기존의 선진국들이 K모델을 차용하고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 수준은 여전히 후진국이다..
“그들의 상대는 언제나 외세에 기대어 기회주의적으로 사적인 이익만을 탐하는 수구 보수들이었습니다. 도덕적 하자가 너무나도 분명한 수구 보수 세력하고만 경쟁해 왔기 때문에 항상 도덕적으로 우월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p.105)
이 책에서 저자는 한국에서 소위 진보로 분류되는 지금의 여당에 대한 비판에 힘을 싣는다. 그리고 언론이나 흔히 사람들이 알고 있는 ‘보수’와 ‘진보’의 정치 지형이 아니라, “‘수구’와 ‘보수’가 손을 잡고 권력을 분점한 ‘수구-보수 과두지배(oligarchy)’(p.172)”라고 정의한다. 100퍼센트 동의하는 바다. 거대 양당이 권력을 주고받았을 뿐, 소수정당은 제대로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해방 이후 친일부역자들을 처단하지 못했고, 이어진 한국전쟁과 군부독재 기간을 통해 한국은 ‘반공 파시즘’이 가득한 곳이 되었다. 저자의 지적대로 민주화운동과 학생운동을 통해 정계에 진출한 수많은 86세대는 수십 년을 지배한 거대 ‘수구’ 기득권 세력에 대항하는 것이 최선이자 최대였다. 당연할 수밖에 없는 도덕적 우위만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정당성이었다. 이것은 이번 정권 내내 이어진 ‘수구’ 기득권 세력의 뻔뻔한 행태를 통해 정확히 드러났다.
저자는 이것을 “‘광장 민주주의’와 ‘일상 민주주의’가 괴리된 현상으로 (p.32)” 지적한다. 함께 어깨를 걸고 거대한 시위와 운동을 하는 것에는 거리낌이 없지만, 이후 꼼꼼하고 면밀하게 감시하고 비판하는 일에는 미흡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대통령을 탄핵하는 엄청난 직접민주주의를 이뤄냈다. 이것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고, 교과서에서 배우던 것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에 한국 시민사회도 놀랐다. 하지만 이후가 문제였다. 촛불을 들고 대통령을 탄핵했던 사람들이 탄핵한 정치세력을 다시 지지하고, 제대로 처벌받은 정치세력은 전혀 없다. 과거 몇 년을 돌아보며 나도 무척 궁금했다. 도대체 왜 한국 사회는 이렇게 병리 되어 있었을까.
저자는 군사문화의 전면적인 재배와 정치 지형의 기형화를 지적한다. 그리고 교육문제를 지적한다.
“한국은 사립대학이 기형적으로 많습니다. 한국은 사립대학 비율이 87퍼센트로 세계에서 사립대학의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p.39)
“미국조차도 사립대학의 비율이 20퍼센트를 넘지 않습니다.”
사학법 개정에 대해 한국 사회의 전 기득권 세력이 들고일어났었다. 이명박 정권 시절에는 뉴라이트라는 이상한 역사교육이 시행되었다. 대학입시 제도는 수시로 바뀌고 일반인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졌다. 강남을 비롯한 교육열이 높은 곳에서는 대학입시를 컨설팅 해주는 사람들이 따로 있기도 하다. 부모의 등골을 휘게 만들었던 대학 등록금은 이제 청년세대의 짐으로 던져졌다. 졸업하고 취업해서도 대학 등록금을 갚아야 하는 실정이다. 출발선부터가 다른 것이다. 이것은 정권이 바뀌어도 똑같았다. 시민들이 정권을 교체해도 매번 똑같은 어려움과 부담을 지게 되니, 더욱 정치에서 멀어진다. 이것은 앞서 말한 ‘수구-보수 과두지배’세력이 가장 원하는 것이다.
“우리가 당연시한 많은 것이 여기서는 잘못된 것, 부조리한 것, 정의롭지 못한 것이라고 여겨지고 있었으니까요.” (p.16)
저자는 책에서 독일과 한국을 비교한다. 독일의 총리가 한국의 대통령을 각별히 존중하고,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젊은이들이 K팝에 열광해도, 저자가 경험한 수십 년 전의 독일 사회와 지금의 한국 사회 사이의 괴리는 현실이다. 이미 수십 년 전에 독일 대학에서는 “조교가 베를린 자유대학의 총장이 되고 (p.40),” 일반 기업 “이사회의 절반을 노동자가 차지하도록 법으로 정해놓았다. (p.43)”고 한다. 2021년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 우리는 계속 이런 사회·국가에서 살아야만 하나?
결국, 정치의 문제다. 가증스럽고 역겹지만, 정치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청년 고독사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공동체는 흩어졌으며 그것으로 인해 청년층의 보수화가 노골화 되는 지금이다. 더 이상 정치를 홀대해서는 안 된다.
만약, 지금의 정권이 아니라 탄핵당한 정치세력에서 코로나 펜더믹을 맞았더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두손 두발 다 놓고 있는 일본의 상황보다 더 심각했을지도 모른다.
당장 선거를 통해 ‘수구-보수 과두지배’체제를 무너뜨릴 수는 없을 것이다. 수십 년을 하루아침에 되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 계속해서 감시하고 비판해야 한다. 설득하고 함께 어깨를 걸어야 한다.
“도대체 한국의 국민은 어디까지 해야 하나요.”라는 커뮤니티 댓글이 기억난다. 탄핵하고 새로운 정치세력에 완전한 힘을 몰아주었지만,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에 대한 한탄이었다. 해당 댓글에 대한 좋아요와 추천이 엄청났었다.
어쩔 수 없다. 독일이 아닌 한국에서 사는 한, 정치를 바꿀 수 있는 건 우리의 몫이다. 어지럽고 혼란한 한국 사회의 균형을 되찾는 것은.
결국, 정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