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도록 가렵다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4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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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를 낳고 교회 고등부 반 아이였던 건후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와~ 쌤 진짜 축하드려요. 아빠 되셨네요!!”

 

밥 먹다 말고 전화를 했다는 녀석은 나보다 더 목소리가 상기되어 있었다. 작년 수능시험 성적이 기대이하여서 원서도 제대로 내지 않고 바로 재수 공부를 시작했던 건후였다. 재수를 시작한다면서 기도해달라고 했던 녀석에게 혹시라도 부담이 될까 문자 몇 번으로 소식을 전했었다. 내가 딸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고등부에 출석하는 동생들에게 듣고 바로 전화했다고 하는 녀석은 교회 고등부 2년 동안 내가 맡은 반이었다. 워낙 성실하고 예의바른 아이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챙기고 싶었다.

딸아이를 낳고 많은 주변 사람들의 연락을 받았지만 교회 고등부 학생에게 축하 전화를 받은 것은 건후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졸업한 지 십 수 년이 지난 제자가 학교로 찾아와 인사를 하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참 뿌듯하고 기분 좋았다.

교회 주일학교에서 반교사를 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교회 주일학교도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일주일에 한 번, 1시간 정도의 만남으로 뭐 대단한 관계를 형성할 수도,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거나 삶을 가르치기도 버겁다. 아이들은 너무 지쳐 있고 고등부 예배 중에도 학원 숙제를 하느라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

나는 6년 째 내가 다니는 교회 고등부 교사를 하고 있는데, 처음 고등부 교사를 시작하며 가졌던 다짐이나 목표는 이미 흐물흐물해지다 못해 사라져버렸다.

나는 절대로 그러지 않겠다 다짐했던 말도 이제는 입에 달고 사는 형편이다.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요즘 애들 왜 이래~!”

 

자신을 맡았던 교회 고등부 선생님이 딸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밥 먹는 도중에 축하 전화를 한 건후같은 아이들이 많았으면 좋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래도 교회야 1시간 정도 만나는 시간에 불과하지만 학교는 얼마나 서로 피곤할까 싶다. 학생들도 그렇고 교사들도 그렇고.

이 책은 공교육의 문제, 학교폭력의 문제에 숟가락 하나를 더 얹는 그런 내용이 아니다. 현재 한국 공교육의 문제, 학교폭력, 왕따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오늘 내일 대책으로 해결될 일도 물론 아니다. 다만 지금 학교도 교회도 이 책에서도 건후 같은 아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아이들은 모두 가렵다. 그리고 모두 아프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지는 못해도 네가 어디가 가렵구나, 그래서 가렵구나 알아주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녀? 너라도 알아봐줘야 하는 거 아녀? 말 드세빠지게 안 듣는 놈일수록 가려운 데가 엄청 많은 겨. 말 안 듣는 놈 있으면 아, 저놈이 어디가 몹시 가려워서 저러는 모양인가 부다 하면 못 봐줄 거도 없는 겨.” (p.217)

 

형성중학교 사서로 전근을 오게 된 수인은 의욕에 넘쳤다. 이전 근무지였던 학교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고 자신도 있었다. 남자친구 율과의 갈등을 명치 한 쪽에서 떨쳐내지 못한 채였지만 교장과 드잡이 할 만큼 용기도 있는 사람이었지만 결국 자신보다 자신을 더 잘 아는 엄마 앞에서 속내를 그대로 들키고 만다.

엄마는 삶 속에 녹아있는 지혜로 딸을 위로한다.

 

“사람은 누구나 가려운 것이다. 가렵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교회에서 만나는 아이들 중에서도 그런 아이들이 많다. 수인 엄마의 말대로라면 엄청나게 가려운 아이들이다. 아무래도 교회다 보니 학교에서 만큼 드세게 덤벼드는 아이들은 거의 없지만 대놓고 무시하고 비꼬는 아이들도 왕왕 있다. 나는 성격상 그런 아이들을 반드시 혼을 낸다. 예배 중에 밖으로 불러내 혼을 내기도 한다. 예배가 지겹고 믿기지도 않는 교회에 와서 병 든 닭 마냥 앉아 있는 아이들에게 이야기한다. 그럴 거 같으면 차라리 오지 말라고. 그런 말은 듣지 않는다. 엄마, 아빠 차에 실려 한 두 시간 앉아 있다 가는 것이 하루 종일 교회 안 갔다고 잔소리 듣는 편보다 더 편하다는 것이다.

나는 교회에 오늘 아이들도 가렵다는 생각을 많이 하지 못했다. 복에 겨운 아이들이라 생각했다. 고등학생 쯤 되면 선택하면 될 것을 그런 선택하나 하지 못하는 용기 없는 아이들이라 생각했다.

 

“세상에, 해명이한테 이런 재주가 있다니.” (p.124)

“해명은 어젯밤 잠을 설칠 정도로 설렜다. 난생처음 칭찬을 받았다. 자신도 어딘가에 쓸모가 있으며 귀한 대접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p.146)

“도범아, 고맙다. 이렇게 말해줘서.” (p.174)

 

그러면서 건후와 같은 아이들은 또 좋아한다. 말 잘 듣고 예의 바르고 성실한 아이들. 교회에 와서조차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이 어디가 가려운지 들여다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책에 등장하는 해명이가 덩치는 산 만한데 매번 말을 하지 않아 아이들에게 폭력을 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수인이 직접 해명이 집을 찾아가 해명이의 부모님이 언어 장애를 가진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해명이에 대해서 조금 더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매번 망치를 들고 다니는 이유도 알게 되었다.

강북에서 주먹 꽤나 날리던 소문난 문제아 도범이의 얘기도 들으려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도범이의 얘기처럼 마치 에이즈 환자처럼 자신을 격리시키고 분리시키는 사람들을 마주하고 도범이가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 해명이는 수인의 칭찬에 밤잠을 설쳤다. 도범이는 선입견 없이 다가와 준 수인에게 속내를 털어 놓는다.

나는 교회에서조차 삐딱선을 타는 아이들을 혼내는 것에 만족했다.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물어도 별 말 하지 않는다고 쉽게 포기했다. 교회에서 내가 만나는 아이들이 모두 건후와 같은 아이가 되기를 원하면서 건후와 같은 아이들이 될 수 있도록 충분히 격려하고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최소한 ‘이 아이들이 많이 가렵구나’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담배 피우지 않았습니다.”

“이 자식이 딱 잡아떼네. 빨리 이실직고 해 인마. 그래야 퇴학이라도 면할 거 아니야. 너 이제 갈 데도 업어. 알고는 있냐? 니가 한 짓이지? 왜 그랬냐? 개 버릇 남 못 주지. 너도 참 이름값 하느라 고단하게 산다.” (p.194)

 

도범이를 도서관 화재의 주범으로 몰려는 학생주임의 다그침이 과하다고 생각하나? 나는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에이~ 나는 아니야~’라고 생각하고 싶겠지. 만약 내가 편의점 점주인데 매번 정산이 맞지 않는다면, 알바부터 의심할 것이다. 도범이는 원래 문제 학생이고, 워낙 대단한 불량학생이라 수도 없이 전학을 다녔으니, 무슨 문제가 생기면 도범이부터 의심을 받는다.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고. 핸드폰을 만지지 않았다고. 말대꾸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해도 쉽게 믿어주지 않는다. 이 상황을 모면하려고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의심 받는다. 이런 나와 당신에게 아이들의 가려움은 2순위다. 너의 잘못을 드러내고 그 잘못을 혼내는 것이 1순위다.

 

“우리 엄마도 가렵대요. 가려움은 죽을 때까지 누구나 있는 거래요.” (p.242)

 

그런데 사실 수인의 엄마도 가려운 것처럼 나도 가렵다. 당신들도 가렵다. 김두식 교수의 책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중학교 딸아이를 보고 만들어낸 <지랄총량의 법칙>이 생각났다. 누구나 일정 정도의 지랄총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학교 딸아이는 그것이 과한 때이니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인데, 가려움도 마찬가지 인 것 같다. 어른이 되면 가려워도 어느 정도 참아낼 수 있는데 아이들은 그렇지 못하다. 당장 시원하게 긁고 싶은데 그 가려운 곳이 하필이면 날개뼈 아래, 두 손으로 아무리 휘저어도 닿지 않는 유일한 사각지점에 위치해 있어 괴로워 할 따름이다. 어른이 되어도 이 가려움은 없어지지 않는다. 참고 모른 채 하는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며 오해를 받거나 선입견으로 가득한 대우를 받을 때 너무 억울하다. 변명하고 싶고 대들고 싶은데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어린 시절 상처를 그대로 짊어진 채 ‘나는 우리 아버지가 나에게 했던 것처럼 절대로 내 아이들에게 하지 않을 것이다.’ 다짐하지만 점점 아버지를 닮아가는 나를 발견한다. 누구나 상처를 안고 가려움을 안고 산다.

수인도 도범이도 대호도, 심지어 교장도 나름의 상처를 안고 있다. 그 상처가 아물어서 가렵다면 다행이지만 해결되지 않는 괴롭힘 같은 가려움은 내내 발목을 잡아끈다.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교회에서 만나는 아이들도 분명히 가려운 곳이 있겠구나. 내가 모르는 아이들의 속사정들이 분명히 있겠구나. 이렇게 마음을 먹어도 막상 아이들의 고개를 숙인 채 학원 숙제를 하고 대꾸도 하지 않거나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을 보면 당장 지적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겠지만, 참아야 한다. 나도 아이들처럼 가려운 곳 천지인 사람일 뿐이다. 단지 내가 아이들보다 나이를 더 먹었을 뿐이다. 아……. 내 기질 상 정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쉽게 마음을 먹지 못하겠다. 그래도 건후와 같은 아이들을 만나려면 내가 해야 할 자세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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