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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의 연인 1 - 제1회 퍼플로맨스 최우수상 수상작
임이슬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6월
평점 :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보도가 심심찮게 나왔던 적이 있다. 천송이 역할을 한 배우 전지현씨가 극중에서 치킨과 맥주를 먹었는데, 그로인해 원래중국에서도 치맥 열풍이 불었다나 뭐래나. 나는 그 드라마를 보지 않아서 내용을 전혀 몰라야 하는데, 대략 내용을 알고 있는 걸 보면 대단한 인기였던 것 같다. 배우 김수현씨가 연기한 극중 도민준은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수백년을 살아온 사람이라는 것. 뭐, 물론 아내가 김수현을 좋아해서 이야기해준 탓도 있지만.
이 책 「유성의 연인」의 두 주인공 유미르와 정휘지는 <별에서 온 그대>의 천송이와 도민준의 구도와 비슷하게 생각되었다. 2609년 어느 날 성인이 된 유미르는 그들의 별에서 1609년 조선의 강원도 양양으로 불시착한다. 유미르가 살고 있던 별에서는 성인이 되면 비행체를 타고 우주를 여행하게 되는데, 유미르는 과거로 날아온 것이다. 2014년을 살고 있는 지금, 앞으로 500년 후의 일을 상상할 수 없지만 휴대폰이나 다른 기계들의 발전을 돌이켜 보면 분명히 지금은 도저히 예측할 수 없을 정도의 사회가 되어 있을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이 책은 로맨스 소설이다. 2609과 1609년이라는 시차를 상쇄시켜 줄 전문적이지만 독자로 쉽게 읽을 수 있는 기술적 내용도 부족하고 역사적 내용도 부족하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별에서 온 그대>의 잘생긴 김수현과 예쁜 전지현이 생각나고, 어린 시절 누구나 읽었을 <선녀와 나무꾼>도 계속해서 생각이 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제 위치를 발송하고 정보를 전송하기 위해서는 우주선 전체를 관할하는 인공지능 시스템... 여기서 바로 그 티타늄 나사가 결정적인 접합 기능을 하는데 온 산을 뒤져도 나오질 않네요.” (2권, p.133)
유미르와 정휘지는 서로의 마음을 숨겨둔 채 각자에게 대시해 오는 다른 이성의 마음을 뿌리친 후 연인이 된다. 좌수의 아들 김문혁에 의해 자신이 다시 고향인 별로 돌아갈 수 있는 결정적 티타늄 나사를 정휘지가 숨기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평소 인성이 나쁘고 정휘지와 유미르를 괴롭혀 온 김문혁의 말이지만 도무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정휘지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유미르는 의심을 품게 된다. <선녀와 나무꾼>이 오버랩되는 장면이었다. 김문혁에 의한 이간질이 오해로 풀리고 유미르와 정휘지는 더 사랑하는 연인이 된다. 이 부분에서 내가 아쉬웠던 것은 티타늄 나사다. 2060년도 쯤도 아니고 2600년에서 온 유미르의 비행체에서 가장 결정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부품이 티타늄 나사라고 하니 좀 당황했다. 한참 재미있게 소설 속에 빠져들어 읽고 있는데 <티타늄 나사>가 나오자 ‘에이~’라는 탄식이 나왔다. 뭐, 나는 기계 쪽이나 과학 쪽에는 젬병이다 보니 티타늄 나사라 해도 대단한 것처럼 여겨지고 나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대단한 기술의 결정체로 여겨지지만 2600년대라면.. 좀 더 미사여구를 덧붙여 멋진 단어를 만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대는 사람이요? 요괴요? 그도 아니면 정녕 하늘에서 온 선녀요?” (1권, p.24)
“미르의 몸에서 빛이 일기 시작했다. 봄볕보다 따스한 온기가 미르와 휘지를 감쌌다. 휘지의 찢겨진 세포가 자체적으로 증식하면서 혈관과 피부를 메워나갔다.” (1권, p.99)
2600년대에서 온 유미르가 가진 능력을 보면 티타늄 나사는 더욱 아쉽다. 유미르는 정휘지는 물론 자신들의 멘토 역할을 한 양양 도호부사의 아들 연수하의 목숨도 살려준다. 각종 SF물과 동화에서 나오던 그 장면 같이 말이다. 유미르의 눈물이 정휘지의 상처에 닿으니 광채가 발현하면서 씻은 듯이 나았다더라~~
그런데 이 초능력(?)을 남발하지 않아서 좋았다. ‘유미르는 양양 고을 백성들의 전염병을 모두 고쳐 임금의 어의가 되어 만수무강 했다더라~’가 아니어서 좋다.
“수연은 진심으로 휘지를 깊이 연모하는 중이었다. 휘지의 이야기만 나오면 붉어지는 그녀의 두 볼과 초롱초롱해지는 눈망울, 그리고 그리움에 절절하게 떨리는 말투까지.” (1권, .172)
김수현과 전지현이 더욱 생각나는 부분이었다. 어떻게 로맨스 소설의 두 주인공은 소설 속 등장하는 이성들로부터 무한정의 매력을 받는 지 궁금하다. 한국의 드라마와 미국의 드라마를 볼때마다 참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다. 시나리오와 세트의 허접 함쯤은 모두가 지적하는 것일테고, 내가 한국 드라마를 볼때마다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등장인물들의 헤어스타일이다. 퇴근하기 전 완벽하게 세팅된 헤어는 이해가 된다. 드라마를 보고 있는 시청자들도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그런데 퇴근을 하고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있거나 잠자리에 들기 전 두 부부가 침대에 누워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도 그들의 헤어스타일은 회사에서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12시까지 야근을 하고 새벽 2시까지 피할 없는 상사와의 술자리를 마친 뒤 겨우 집으로 돌아와 옷을 벗지도 씻지도 못한 채 그대로 침대에 엎어져 잠이 든다면 헤어스타일이 그대로 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퇴근 후나 외출 후 집에 돌아와 씻는다. 씻고 나서 씻기 전 헤어로 스타일링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정도의 황당함은 아니지만 매번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들이 김수현과 전지현처럼 생기지는 않았을 텐데, 이 책의 두 주인공 유미르와 정휘지는 대단한 매력의 소유자들이다.
“좌수께서 거두어들인 곡식 양이 어느 정도인지 대충 가늠해보아도 곡고에 있는 것보다는 훨씬 많을 것입니다. 게다가 뒤뜰에 있던 창고는 분명 밖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그 통로를 이용하여 곡식을 다른 곳으로 옮긴 것이 분명합니다.” (2권, p.177)
로맨스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이 장르에 살인사건이 등장하는 것은 작가가 꽤 잘한 선택으로 보여진다. 정휘지와 유미르가 연인이 되고 난후 조금 지루하게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이어지는 가 싶은데 중간에 살인사건이 일어나 긴장이 조성된다. 1600년대 초쯤에는 분명히 호랑이에 의한 피해가 있었을 것이고, 그러한 배경을 이용하여 지금말로 관피아가 얽힌 사건이 등장한다. 도호부사는 지금 시장쯤 되는 자리이고 앞서 말한 김문혁의 아버지는 좌수다. 평생토록 양양땅에 살면서 기득권 행세를 하는 사람이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돈과 권력과 정보를 가진 사람은 기득권이 된다. 기득권이 되면 지키고 싶은 것이 많을 것이고, 적이 많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욕심이 많아질 것이다. 호랑이로 인한 살인사건이 아니라 검은개와 뒤에 숨은 흑사회가 연관된 것이라는 것을 도호부사의 아들인 연수하와 정휘지가 밝혀낸다. 김좌수는 오래전부터 양양땅에서 갑질을 하고 살았던 것이다. 도호부사가 계속해서 바뀌고 여러 사람이 그 자리를 왔다갔다 하더라도 여전히 양양의 모든 것은 김좌수의 손 아래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로맨스 소설의 리뷰에서 이런 언급을 하는 것이 과한 것 같기는 하지만 지금 정부와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았다. 현재 국정을 운영하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지에 대해서 말이 많다. 7인회, 만만회 등. 그런데 이 정도로 매스컴을 타고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정도라면 저들이 진짜 실세가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저들을 매스컴 앞에 세우고 뒤에서 이 모든 것을 조정하고 통제하는 실세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뭐, 나는 아무런 정보도 없고 자료도 없으니 그저 추측할 뿐이다. 책에서도 그렇다. 도호부사가 있지만 김좌수는 오랜 기간 토호로 존재하며 백성을 수탈하고 통제했다. 연수하와 정휘지가 김좌수와 흑사회의 연관성을 밝혀 내면서 점점 김좌수의 범죄 사실에 다가가자 김좌수는 양양땅을 통제한다.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에게 협조하지 못하도록 유언비어를 퍼트리기도 한다.
결국 김좌수의 범죄가 낱낱이 밝혀져 처벌을 받게 되고 정휘지는 유배를 면하게 된지만 지금의 현실은 소설과는 많이 다르다. 여전히 갑질은 횡행하고 기득권은 아바의 노래(The winner takes it all)처럼 모든 것을 가진다. 앞으로도 주욱 그럴 것이고.
“미르가 남의 별 과거에 떨어진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지금도 이미 미르를 찾기 위해 많은 비행체들이 강원도 일대를 샅샅이 수색하고 있었다. 충분히 과거에 개입하고 말았다. 조금의 실수라고 했다간 지구의 미래가 바뀔지도 모름 이는 전 우주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 분명했다.” (2권, p.251)
소설은 착하다. 여차여차하여 고향별에 있는 부모에게 신호를 보내게 되는 미르를 찾아 온 부모는 참 착하다. 과거를 거슬러 역사에 개입한다는 것에 극도로 조심하는 소설 속 유미르 부모의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요즘 굉장히 재미있게 보는 프로그램 중 <렛츠고 시간탐험대>라는 것이 있는데, 말그대로 과거의 특정 시점으로 돌아가 철저한 고증대로의 삶을 살아보는 것이다. 개그맨 장동민씨가 예의 성격답게 아주 포악한 임금으로 연기를 한 적이 있는데, 만약 내가 1600년 당시 임금으로 살게 된다면 나도 장동민 정도는 아니지만 마음대로 국정을 농단하고 하고 싶은 것 실컷 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아이구~ 내가 역사를 뒤틀면 어떻게 되지?’ 같은 착한 생각은 하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의 작가는 참 착한 사람 같다.
“나리, 이리 가까이 오셔요. 제가 오늘 나리의 점괘를 보니 아주 기이한 일을 겪게 되실 듯하옵니다. 오늘 나리께서는 일생의 가장 중요한 귀인을 만나게 되실 것입니다.” (1권, p.14)
무당으로부터 이상하나 점괘를 듣게 된 정휘지는 유미르로 인해 대단한 경험을 하게 되고 양양좌수의 범죄를 밝혀내 유배로 면하게 된다. 고향별에서 딸을 찾아 온 유미르의 부모로 인해 생이별을 하게 되지만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연인이 다시 만나게 되는 듯한 암시가 있다.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럴 것이다. ‘아주 기이한 일’ 한번쯤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는 모르지만 인생에서 한번쯤은 찾아올 것 같다. 더불어 귀인도 만나게 된다면(꼭 이성이 아니더라도) 기대하는 것만으로 인생이 더 즐거워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