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풍경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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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에게 기묘한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기도 한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짜릿해지는 경험을 바라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그런 일이 한 번쯤은 있었다. 평소에는 잊고 살지만 뒤척이는 잠자리에서 문득 생각날 때가 있다. 혼자만의 경험, 지극히 비밀스럽고 은밀한 그 기억이 그렇지 않아도 뒤척이던 몸을 더 안달 나게 만들기도 한다. 그냥 그 기억과 경험 그것 자체로 좋은 것이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고 시중에 떠도는 도덕이나 상식의 기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철저하게 비밀스럽고 은밀한 것이기 때문에 들킬까 염려할 필요도 없다. 이념이나 가치 판단의 여지 또한 필요 없다. 그저 속으로 키득거리거나 살포시 입 꼬리를 올리기만 해도 된다. 톺아가며 따질 필요도 없고 애면글면 몸부림 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좋다. 편하다. 철저하게 나만의 것이다. 대단할 것도 저장해 둘 필요도 없다. 가만히 뒤척이며 입 꼬리를 올리면 그만이다.

그런데! 그 사람도 그럴까? 뭐?

그 사람이라……. 맞다. 그 사람도 그럴까?

 

홍상수 감독의 영화 <오! 수정>은 충무로에 리얼리티를 이식한 홍 감독의 연출력만큼이나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너무 솔직하고 너무 리얼해 충격적이었다. 남녀가 함께 있지만 전혀 다른 생각을 한다는 명제는 너무 흔하고 당연한 듯 보이는 것이지만 잊고 지낼 때가 많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확증편향의 최면에 빠지지 않았더라도 저 여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착각을 하는 남자는 전체 남자들 중 대다수이고 저 남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착각을 하는 여자도 전체 여자들 중 꽤나 많을 것이다. 사람은 그런 것이다. 영화 <오! 수정>에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연인의 몸을 더듬는 것이 어떤 그(그녀)에게는 사랑의 행위가 될 수도 있고 어떤 그(그녀)에게는 폭력일 수 있다는 내밀한 비밀을 대형 스크린을 통해 확인하니 옷을 벗고 있는 것 같이 화끈했다. 그렇게 다른 것일 테다. 그렇다. 사람, 사람과의 관계는 그렇다.

 

 

 

ㄱ - 밝을 소(昭昭)

 

구 소소(昭昭)는 충분히 음울하고 슬픈 곳이다. 개발의 반대편에서 사위어 가는 소소의 풍경은 이 소설 전체의 메타포다.

 

 

“혼자 사니 참 좋아!”

“둘이 사니 그것도 좋네!”

 

ㄱ은 주인공이다. 중심이다. ㄴ과 ㄷ과 있을 때도 주인공이었다. ㄴ의 죽음 이후 경찰서에서 형사에서 조사를 받을 때도 줄곧 주도권은 그녀에게 있었다. 불가항력으로 혼자 남게 되었지만 분해되어 가는 소소(昭昭)에서도 그녀는 밝다. 객관적으로 그녀는 밝을 수 없다. 부모님을 잃고 오빠도 잃었다. “나는 여전히 죽음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죽음이 지우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지워지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누구에게는 가시처럼 박히는 것이 죽음이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선인장은 그녀 자신이다. 극한의 환경일수록 강한 가시를 드러내는 선인장처럼 그렇게 존재한다. 갑자기 ㄴ과 함께 살게 되고 갑자기 ㄷ과도 함께 살게 된 ㄱ이지만 소소(昭昭)하게 “혼자 사니 참 좋아!, 둘이 사니 그것도 좋네!” 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정상적이지 않다. 분명하다.

 

 

“희로애락이 완전히 거세된.” (p.34)

 

ㄴ과 함께 파묻힌 시멘트 데스마스크를 보고 ㄱ은 희로애락을 떠올린다. 말도 안 되는 레토릭이다. ㄱ에게서 찾을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ㄱ은 친오빠의 죽음과 ㄴ의 죽음을 동일시해야만 한다. 그래야 자신에게 닥치는 죽음의 그림자를 걷어낼 수 있다. 갑자기 찾아온 ㄴ과의 섹스에서 환희를 경험하고 한 번도 그런 적 없는 ㄴ의 과거까지 찾아다니며 마음속 깊이 묻으려 하지만 벗어날 수 없다.

ㄴ이 죽은 뒤에야 그가 밴드의 베이스주자였으며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조지 해리슨을 꿈꾸던 뮤지션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희로애락이라는 감정이 모두 메말라 선인장의 가시처럼 거칠게 존재할 뿐인 자신에게도 소유욕의 발로라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키게 한 ㄴ을 찾아 나서지만, 그것 또한 ㄱ자신을 위한 자위다.

 

 

“나-ㄴ-ㄷ은 서로에게 어떤 요구도 하지 않는다.”

 

결국 ㄱ에게 ㄴ과 ㄷ은 소소한 풍경일 뿐이다. 정말 풍경이었던 것이다. <오! 수정>에서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던 연인의 각자 생각의 차이가 하늘과 땅 정도였던 것처럼 ㄱ과 ㄴ과 ㄷ은 함께 살면서 한 덩어리가 되었지만 ㄴ의 죽음 이전부터 ㄱ에게는 그저 풍경인 것이었다. 그녀를 살게 하는 선인장과 같이 끈질기게 삶을 이어가는 매개일 뿐이다. ㄱ에게 기억되는 ㄴ과 ㄷ은 서로 아무런 요구조차 하지 않고 통성명조차 하지 않으면서도 언제든 한 덩어리가 될 수 있는 모순된 연결이다.

ㄱ에게 있어서 ㄴ과 ㄷ은 작은, 소소(小小)한 풍경이었다. 그래서 밝을(昭昭) 수 있다. 그 밝음(昭)이 모순적이라 해도 말이다.

 

 

 

ㄴ - 근심스러울 소(騷)

 

“셋째 날은 부서진 헛간의 문과 지붕을 고쳤고 넷째 날은 물이 새는 주방 수도꼭지를.. 다섯째 날엔...”

“나는 우물을 파면서 자주 2층의 당신을 올려다보지요.”

 

ㄴ은 존댓말부터 시작한다. ㄱ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그렇다. ㄱ이 조그마한 귀퉁이에라도 걸쳐진 장면을 모조리 기억해내는 ㄴ에게 ㄱ은 존재의 이유다. 어찌할 수 없는 존재적 무력 앞에 시위하듯 한 물구나무서기를 ㄱ은 가볍게 웃어 넘겼다. ㄴ의 근심은-소(騷)- ㄱ의 밝음-소昭-로 잠시 동안 잊을 수 있었다. 그것이 결국 ㄴ을 파멸케 했지만 ㄴ의 죽음 이후의 독백에서는 후회나 원망 따위는 없다. 둘째 날, 셋째 날, 넷째 날, 다섯째 날……. 거듭해서 ㄱ을 기억해낼 뿐이다. ㄱ에게는 그저 풍경 같을 뿐이었으나 ㄴ에게는 존재였다. 준비된 죽음을 마무리하기 위해 우물을 파내려가는 ㄴ에게 ㄱ은 동경의 대상이다. 우물을 파면서도 2층을 기웃거린다. ㄱ에게 ㄴ은 그저 포크레인이었다. 그렇게 줄곧, 끊임없이, 쉴 새 없이 삽질을 할 수 있는지 모르는 수수께끼였을 뿐인데, ㄴ에게 ㄱ은 달랐다. 그때부터였다. 처음 ㄱ과 몸을 섞게 된 그 밤. 2층에서부터 걸어 내려오는 ㄱ의 발소리는 죽음을 예비한 ㄴ을 흔들었다. 가만히 뒤에서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을 안아주는 ㄱ의 몸에서부터 파장이 일었다. 자신을 껴안은 채 눈물을 흘리는 ㄱ으로 인해 ㄴ의 존재 전체가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ㄱ의 기억 속에서는 줄곧 무미건조하고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으려 했던 ㄴ이었는데, ㄴ에게 ㄱ은 달랐다. 소중한 존재였다. 함부로 할 수 없고 쉽게 다가갈 수도 없는 선인장 같은.

 

 

“나의 멸진(滅盡)을 눈물로 배웅해준 당신.”

“사멸로 가는 듯 한 구소소의 분위기가 좋았어요.”

 

죽음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ㄱ은 성가시지 않았다. 혹시라도 죽음의 과정을 완성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던 방해꾼이었다. 먼지가 사라지는 것으로 자신의 죽음을 비유한 ㄴ의 지고지순함, 그 사멸해 가는 순간마저도 ㄱ을 귀퉁이에 넣으려는 한결같음에 박수를 보내야 하나? 나는 잘 모르겠다. 이런 게 사랑이라면 너무 애달프고 어렵다.

어쨌든 ㄱ과 몸을 섞은 후 단 한번이라도 조지 해리슨 이야기를 꺼냈다면 발그레 흥분하는 ㄱ과 함께 밤새도록 조지 해리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처음부터 사멸의 구렁텅이로 향한 ㄴ에게 어쩌면 결과는 정해져 있는 것이었다.

 

 

“그게 전부예요. 당신이 몸을 구부려 세탁기 버튼을 누른 것과 내 몸의 우물 속으로 투하된 것은 동시였을 거예요. 나는 그렇게 믿어요. 당신-나, 혹은 나-그녀, 혹은 당신-나-그녀가 완벽하게 덩어리진 순간이었다고요.”

 

우물로 떨어지면서도 ㄴ은 ㄱ을, ㄷ마저도 끌어들인다. 너무 착한 사람인지, 너무 바보 같은 사람인지 나는 단정할 수 없다. ㄴ의 말처럼 우물 속으로 투하된 것인지, 투하한 것인지도 무의미 하다. 그래서 ㄱ이 경찰로부터 조사를 받고 ㄷ이 ㄴ을 밀었다는 행위 자체로 ㄱ으로부터 받는 의심도 무의미 하다. 처음부터 ㄴ은 죽음을 위해 소소(騷)했다. 그의 근심스러운 ㄱ과의 동거가 해피엔딩이 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뭔 놈의 사랑이 이런 가 모르겠다.

 

 

“단지 소소한 풍경이었다고 나는 생각해요.”

 

ㄴ에게도 단지 소소한 풍경이었을까? ㄴ은 죽음 이후에도 그렇게 기억하고 싶어 한다. 언젠가 한번은 겪었을지 모를 짜릿했던 그 기억을 간직한 채 부유하던 먼지가 완전히 없어지듯이 그렇게 사라졌다.

 

 

 

ㄷ - 하소연할 소(訴)

 

“우리, 도자기 마을에 가서 사기그릇 깰 때, 내가 울었잖아!”

 

ㄷ에게 ㄱ과 ㄷ은 하소연이다. 목숨을 걸고 탈출한 뒤에도 끔찍한 일을 겪었다. 신고하지 않고 돌봐준다는 것으로 엄마가 있는 옆방에서 짐승에게 몸을 내줘야했다. ㄴ이 우물로 투하된 후 떠나온 곳에서도 몸을 내주고 삶을 이어간다. 그 돈을 중국에 있는 짐승에게 보낼 수밖에 없다. 엄마가 그곳에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ㄷ은 하소연하고 싶은 것이다. 문득 찾아간 소소(昭)에 위치한 ㄱ의 집에서 ㄷ은 ㄱ의 밝음과 ㄴ의 근심은 안중에 없었다. 일단 그들에게 하소연(訴)하고 싶었다. 몸을 섞는 ㄱ와 ㄴ을 찾아간 그 방안에서도 바보같이 밝게 웃는 ㄱ의 눈길을 피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황망함, 놀람 따위는 안중에 둘 수도 없었던 기가 막힌 참담한 과거를 건너 온 ㄷ의 존재방식이다. 야동에 등장하는 쓰리썸은 지극히 음란하고 자극적이지만 그들의 쓰리썸은 섹스가 아니라 덩어리다. 감정과 느낌이 배제된 덩어리. 책에서 여러 번 표현되는 덩어리 그 자체다. 그냥 덩어리. 셋이서 삼각형이 아니라 둥근 덩어리가 된 것은 ㄱ,ㄴ,ㄷ 모두에게 이유가 있다. ㄱ에게는 놀이였고 ㄴ에게는 위로였고 ㄷ에게는 절박함이었다. ㄱ에게 있어 그들의 쓰리썸은 하나가 되는 착각이었고 ㄴ에게 그들의 쓰리썸은 ㄱ을 확인하는 순간이었고 ㄷ에게 그들의 쓰리썸은 생존의 확인이었다. 한 방에서, 한 침대위에서 덩어리졌지만 ㄷ에게는 여전히 결핍이다. 질펀한 쓰리썸 이후에도 ㄷ은 혼자서 또다시 자위를 해야 했다. ㄷ에게 쓰리썸이나 덩어리짐은 의미 있는 듯 무의미한 일이었다. 어쩌면 ㄷ도 그녀만의 우물을 파고 있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ㄴ의 죽음 이후 바다에 연한 작은 도시에서 여전히 자신의 몸으로 생존을 확인할 수밖에 없는 간절한 하소연이다.

자신을 찾아 온 ㄱ에게 또 몸을 들이밀었지만 ㄱ은 거부했다. ㄴ이 부재한 현재에는 덩어리짐마저 할 방법이 없다. ㄱ에게는 지나치는 풍경이었고 ㄴ에게는 ㄱ만이 존재하는 도자기 마을에서의 기억도 ㄷ에게는 절실한 존재확인이다. 거푸 물어본다.

 

 

언니~! 그때 말이야~! 도자기 마을에 갔을 때 있지? 알지 언니? 그때 내가 도자기 깼잖아~! 그 도자기 마을에서 언니~! 언니 기억나지? 어? 기억나지? 어?

목구멍까지 올라온 절실함이 하소연이 되어 흩어진다. ㄴ이 먼지처럼 부유하다 떨어진 것처럼 ㄷ또한 여전히 부유한다. ㄴ처럼 떨어질 지, 언제까지 부유할 지 알 수 없지만 가쁘게 매달린다.

ㄱ과 ㄴ과 ㄷ은 함께 소소(昭昭)에서 살았지만 누군가는 웃고(笑昭), 누군가는 근심했으며(騷), 누군가는 하소연을(訴) 하고 싶었다. 그들이 한 덩어리가 되었어도 그렇게 다르게 소소소(昭騷訴)한 풍경으로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첫 번째 계약은 우물이 완성되면 흩어져 각각의 길을 따라 떠난다는 것, 두 번째 계약은 그러므로 우리에겐 과거도 미래도 없다는 것이다.”

 

이런 게 사랑이라면 나는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

잠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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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 윤태영 비서관이 전하는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
윤태영 지음, 노무현재단 기획 / 책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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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친한 친구 녀석과 다툰 적이 있다. 아주 사소한 오해로부터 출발한 다툼이었다. 나와 친구 녀석 둘 만 있던 자리도 아니었다. 어른도 계셨고 다른 친구들 몇도 함께 한 자리였다. 친한 친구였던 만큼 그 자리가 파하기 전에 서로 오해를 풀고 화해를 했다. 집에 돌아와 가만히 그 시간을 돌이켜보니 여간 화끈거리고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이십 년 가까이 우정을 유지하며 어디를 가나 서로가 ‘베스트 프렌드, OO친구보다 더 친한 친구’라며 자랑하던 사이였는데, 별것도 아닌 오해로 얼굴을 붉히고 언성을 주고받았다는 것이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지금도 한 번씩 그때 일을 돌이키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둘 다 얼굴이 벌개져서 어쩔 줄을 모른다. 살다보면 오해를 받기도 하고 공격을 받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내 뒷담화를 했다고 하면 기분이 아주 나쁘다. 가장 친한 친구 녀석과 그 자리에서 오해를 풀지 않고 헤어졌다면 지금과 같은 우정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아무렇지 않게 만나고 있어도 속으로는 풀지 못한 나름의 앙금으로 불편했을 것이다.

 

인간 노무현만큼 많은 오해와 비난, 공격과 비판을 받은 사람이 있을까? 서거한 후에도 그에 대한 칼은 무뎌지지 않았다. 그가 고졸이고 이 사회의 기득권을 향해 반기를 들었다고 해서 그렇게 줄기차게 공격을 받아야 했을까? 지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는 NLL발언과 관련해서 또다시 공격을 받았다. 그 시기에는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었지만, 마치 이 사회에 큰 해악을 여전히 미치고 있는 존재로 표현되고 그려졌다. 선거가 끝난 후 선거 시기 그렇게 공격을 하던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라고 발뺌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 끝이다. 아니면 말고.

그는 서거한 후에도 이 사회 기득권의 눈에 가시였다. 이용하기 좋은 정치적 도구였다.

그가 대통령에 재임하던 시절, 그를 지지하고 응원하고 실제로 그에게 투표했던 ‘우리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도 공격을 받았다. 탈 권위를 표방한 그에게 사람들은 아낌없는 비판과 공격을 퍼부었다.

 

나는 아직도 노무현을 좋아한다. 존경한다. 앞으로 계속 그럴 것이다. 아마 죽는 날까지 그럴 것 같다. 정치인으로, 인간으로, 인생 선배로 그를 좋아한다. 나 또한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 참여정부 수장으로서의 노무현에 대해 비판적인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그만한 정치인, 대통령은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노무현이 후세의 반면교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노무현처럼 하면 노무현처럼 되는 구나!’라는 학습을 지금도 하고 있다. 노무현 만한 용기와 결기를 가진 사람이 ‘나도 노무현처럼 되겠다.’라고 발 벗고 뛰쳐나올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마이클 조던 이후 포스트 조던이라 표현되는 수많은 NBA선수가 있었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포스트 노무현은 절대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너무 무섭고 확실하게 학습했는데, 그것을 무릅쓰고 나설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냥 편하게, 다른 정치인들 하는 대로 하면 최소한 ‘노무현처럼’은 되지 않으니까 그 길을 택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많은 책이 쏟아졌다. 갑자기 그를 성인(聖人)취급하며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그의 영정 앞에 눈물을 쏟고 미안해하며 추억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다 좋다. 그런 사람들마저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정치를 할 뜻도 없고 여력도 없고 능력도 없는 나와 같은 일반인들은 이해해줘야 한다. 하지만 정치인들, 정치꾼들. 그들은 입에 함부로 노무현을 거론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직업 정치인이 된 채 선거를 앞두고 낯짝도 두껍게 다시 노무현을 언급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나쁜 것이다. 인두겁을 쓰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은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가까이에서 그를 지켜 본 윤태영씨의 책이다. 노무현의 말과 글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들었던 사람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기록의 역사’라고 말했습니다. 기록된 것만이 역사라고도 했습니다. 간혹 정무적인 문제로 구도 보고나 서면 보고의 필요성을 참모들이 얘기했을 때도 ‘기록에 남기기 두려운 일은 아예 하지 말라’고 했을 정도입니다.” (p.14)

“그는 사상과 생각을 말로 정리하고 글로 남기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말을 하는 과정에서 생각을 정리했고, 글을 쓰면서 체계를 가다듬었다.” (p.105)

 

노무현 대통령은 기록비서관이라는 자리를 두면서까지 기록을 남기는 것에 철저했다고 한다. 이전까지 정치인들이 룸살롱에서 밀실에서 차안에서 은밀하게 주고받던 정치적 거래와 밀약을 배척한 정치인이었다. 재임 시절 저자에게 건강이 허락하는 한 가까이에 있어 줄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그는 그의 말과 글이 기록으로 정리되고 그것이 후대에도 남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재임 직후부터 서거 직전까지, 아니 그 이후 지금까지도 노무현이 한 말과 글은 조롱과 공격을 받았고 받고 있다. 아이러니다. 그렇게 기록을 중요하게 여겨서 온전히 기록되도록 시스템을 만들고 장치를 만들었던 사람이 오히려 그것 때문에 공격을 받았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그날 그는 국무회의 자체를 외부에 공개하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장관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엇갈렸다기보다는 반대 또는 신중론이 대부분이었다.” (p.117)

 

그토록 노무현이 공격받은 이유는 그의 ‘파격’이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가장 비판을 받는 것 중의 하나가 밀실정치다. 대통령은 박근혜인데 누가 이 나라를 지배하는지 궁금해 하는 것이다. 열린 정치가 아닌 닫힌 정치다. 각종 대국민사과도 국무회의에서 할 따름이다. 이전 민주정부에서는 국무회의가 굉장히 열띤 토론의 장이었다고 한다. 각 부처 장관들과 국무의원들, 대통령이 사안별로 토론하고 협의하는 과정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박근혜 정부에서는 그런 것을 찾을 수 없다. 톱-다운 방식이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것. 그래서 이 정부 들어 각종 인사정책이 참사로 기록되고 있고 현재 진행형이다. 청와대와 집권여당조차 제대로 소통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이런 방식이 현재 이 사회 보수·수구세력의 자연스러운 태도라면 노무현의 ‘파격’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격 떨어지는 쇼에 불과한 것이었을 것이다. 권위를 버리고 국무의원들과 눈을 맞춰 토론하는 것은 대통령의 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언론개혁과 사법개혁을 위해 그 어느 정권보다 많은 청와대 출입 기자를 두고 평검사와의 대화를 시도했지만 모조리 비판받았다. ‘대통령답지 않다.’라는 것이다. 모름지기 대통령이라면 박 장군과 전 장군처럼 밀어 붙여야 하는데, 대학도 나오지 못한 고졸 출신 주제에 우둔한 대중의 응원 좀 힘입어 대통령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하지 않고는 노무현에 대한 병적인 비판과 공격을 이해할 수 없다.

 

 

“언론에 대한 불만도 표현했다.”

“편지 100통을 써도 집배원이 전달을 안 한다.” (p.32)

“언론하고 싸우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선거에 이겼을까? 내가 말을 조심하고 실수하지 않았다면 결론이 달라졌을까? ‘파병’하지 않고 ‘FTA’하지 않았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p.190)

 

노무현 대통령의 ‘파격’은 반대급부로 끊임없는 비판과 조롱을 낳았다. 조선일보에 대항한 정치인은 노무현 이전에는 없었다. 조선일보의 사설과 기사로 한 정치인을 좌지우지 할 수 있었다. 당연히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 언론들은 매 사안, 매 정책, 매 연설을 조롱하고 비판했다. 그것이 옳고 그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시절 그 신문들의 기사 제목을 찾아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대통령.. 말잔치>, <또 다시 말실수...> 돌이켜 보면 노무현 대통령이 말을 잘 하고 논리적이며 설득력이 있다는 것조차 저들에게는 꼴 보기 싫은 것이었던 것 같다. 안타까운 것은 민주·진보·개혁 진영의 태도다. 반대편의 프레임에 그대로 말려 들어가 더 날을 세우고 꼬투리를 잡았다. 오죽하면 노무현 재임 당시 가장 진보적이라 평가되던 정당에서조차 ‘노무현은 고졸이잖아.’라는 말이 떠돌며 대통령을 조롱하고 무시했겠나.

그들이 반대하지 않을 수 없었던 파병문제나 FTA문제에 대해서는 적법한 절차를 통해 비판하고 권력을 견제하면 되는데,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더 심하게 부화뇌동 했었다.

 

 

“언론은 사실을 보도해야 합니다. 정정 보도는 당연한 의무입니다. 이런 간단한 원리를 언론이 인정하고 실행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될 때까지 우리는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가시밭이 길이 될 때까지 우리는 긁히고 다치면서 아픔을 참고 가시밭길을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p.277)

 

사실 노무현 대통령과 가장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은 언론이다. 참여정부 시절만큼 보수언론이 정부를 비판했다면 참여정부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지금보다는 훨씬 더 좋은 정권이 되었을 것이다. 언론이 권력과 결탁해 견제와 비판의 기능을 상실했다면 그것은 언론이 아니다. 그런 언론의 기사는 읽을 가치도 없다. 그런데 권력의 힘을 등에 업고 호의호식하는 것에 익숙한 보수언론은 되레 노무현과 같은 ‘파격’에만 맞선다. 언론의 자유 지수가 가장 높았던 참여정부 시절을 뒤로 한 채 줄곧 언론 자유 지수가 하락하는 것을 보면 그들의 앞뒤가 맞지 않는 태도는 언론의 기본기능 조차 잃어버린 찌라시에 불과하다는 방증이다. ‘긁히고 다치면서 아픔을 참고 간 가시밭길’이 가장 불행한 역사가 되리라고는 노무현 대통령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책에서 자세하게 언급된 것처럼 그는 퇴임 이후 귀향을 소원했고 그 생활에서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방안도 마련했었다. 그의 바람대로만 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 세상은 결코 노무현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다.

 

 

“대통령님, 나와 주세요.” (p.209)

“자네들마저 없다면 이곳을 누가 찾아오겠는가? 이것이라도 안하면 내가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p.253)

 

이상하리만치 많은 사람들이 퇴임 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봉하를 찾았다. 이상했다. 그렇게 싫다고 하던 사람들이, 아니 그렇게 공격을 받는 대통령을 지켜주지 않았던 사람들이 마치 퇴임을 기다리기도 했다는 듯이 그를 찾아갔다. 각종 방송에서도 이 기현상(奇現象)을 보도했다. 그렇게 기이하게 노무현의 결말은 다가오고 있었다. 공격은 계속 되었고 노무현의 건강은 점차 나빠졌다. 퇴임 후 가장 매진하던 집필 작업을 위해 저자를 비롯한 소수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그의 유일한 위안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수구세력에서는 자신들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나 세력을 향해 ‘친노종북’이라고 한다. ‘친노’라는 단어는 정치적 이념과 입장을 떠나 걸면 걸리는 무기가 되었다. 야당에서조차 같은 야당의 정치인을 공격하는 도구로 ‘친노’를 사용한다. 노무현이 서거한 지 5년이 지났는데도 그러고 있다. 무슨 대단한 잘못이나 실책을 한 것도 아니고 국민들의 생활이 급속도로 나빠져서 최악의 대통령이 된 것도 아닌데, ‘친노’라는 무기는 강력하게 먹힌다. 노무현의 인생과 그의 정치적 태도를 좋아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조차 자신을 향해 ‘친노’라고 하면 손 사레를 치며 싫어한다. 이게 무슨 꼴인지 모르겠다.

나는 ‘극렬 친노’다. 노사모에 가입한 적도 없고, 참여정부 시절 비판적이기도 했고, 서거하기 전까지 한 번도 봉하에 찾아가지 않았고, 서거 후 추모집회에도 한 번 참석한 적이 없지만 나는 ‘극렬 친노’다. 노무현의 인생과 정치적 삶, 방향을 지지하고 찬성한다. 앞으로 노무현과 같은 정치인, 대통령은 결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극렬 친노’다. 지난 4월 25일 태어난 내 딸아이가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는 때가 오면 나는 딸아이에게 말 할 것이다.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있었어.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정치인, 대통령이었어.”

줄곧 이야기 할 것이다.

 

“너는 아빠 나이가 되어도 그런 사람 못 만날 거야.”

라고 놀리기도 할 것이다.

 

지난 대선 후 잘 마시지도 못하는 소주를 목구멍으로 부어 넣으며 아내에게 말한 적이 있다.

“차라리 잘 돌아가셨어.”

살아계셨다면 또 얼마나 더 극렬하고 악랄한 공격에 시달려야 했을까?

하지만 문득 문득 그가 보고 싶다. 그의 ‘파격’이 그립다. 그의 탈 권위와 바보 같은 용기를 마주하고 싶다. 비록 그는 괴롭더라도 그런 사람, 그런 정치인 하나 가진 사회라면 이렇게 암담하지는 않을 것 같다.

 

 

 

부디 멀리 멀리 가시라.

뒤돌아보지 말고 멀리 가시라.

그리고 그곳에서는 평안하시라.

 

 

나의 대통령.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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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7-24 0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증이로군요. 저 또한 인간 노무현과 노무현 정권을 분리하고 있습니다. 노 정권에서 실망스러운 정책을 펼치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써 노무현은 앞으로 한국 정치사에 다시 나타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매력있는 분 잃었습니다. 박근혜와 명박을 볼 때마다 노무현이 그립더군요...

lmicah 2014-07-30 17:08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아쉬운 것이 많았던 참여정부였죠.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어요. 10년 안에 바뀔줄 알았던 거죠. 국민의 정부는 IMF뒷처리 하느라 5년을 보냈다면 참여정부는 뒤를 이어 대단한 개혁을 해낼 줄 알았던 거죠. 그 기대가 너무 컸었던 것 같아요. 이 놈의 나라를 움직이는 코어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는데 말이죠. 멍청했던 거죠.

만화애니비평 2014-07-24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월호 추모 전시관 가면서 노무현의 이름이 자꾸 제 머리를 울리고 있었습니다.

lmicah 2014-07-30 17:11   좋아요 0 | URL
인간 노무현만큼 사람을 움직이고 감동시키게 하는 정치인이 다시 나올 수 없을 겁니다. 제대로 평가될 날이 언젠가는 오겠죠?

오리한마리 2014-07-25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너무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글 읽는 동안 눈가가 촉촉해 졌습니다.
그립고 그리우니 또 그립습니다.
좋은 글, 리뷰,,, 감사드립니다.

어렵게 글을 쓰고 세상에 내어주신 윤태영님께도 힘이 될 듯 합니다.^^

lmicah 2014-07-30 17:1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오리한마리님. 이 책 좋더라고요.
여전히 노무현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이 놈의 사회는 바뀌지 않는 걸까요? 답답한 요즘입니다.
 
[철학자와 하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철학자와 하녀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고병권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고등학교 때 철학 수업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책을 읽지 않던 때였고 철학의 ‘ㅊ’ 자도 모르던 시절이다. 철학 담당 교사가 여자교사이고, 미모마저 빼어났다면 가장 신나는 수업이었겠지만 그런 행운도 없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사립 남자 고등학교였고, 지역에서 가장 공부를 잘 하는 고등학교를 바짝 뒤쫓아 가는 입장이라 무지하게 공부를 시켰다. 수십 명의 교사 중 여자 교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모조리 남자 교사만 득시글대는 학교였다. 지금 돌이켜 보면 아마 체벌과 구타, 욕설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여자 교사는 아예 채용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 철학 담당 교사는 젊은 남자 교사였는데, 그에 대한 아무런 기억이 없는 것을 보면 수업도 아마 재미가 없었던 것 같다. 그저 교과서를 보고 필기하고, 철학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철학의 역사를 배웠던 것 같다. 누가 무슨 학파를 만들고, 무슨 주의를 주장하고 등등. 어린아이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인 청소년 시절, 앞으로 마주할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터득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아무런 준비 없이 대학에 들어가 주체할 수 없는 자유와 방종 사이에서 늘 술에 취해 허덕이거나, 취업과 경쟁의 논리에 함몰되어 변변한 MT나 동아리 활동 하나 하지 않은 채 늘 도서관에 처박혀 있는 이유는 철학의 부재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삶과 세상에 대한 스파링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고민하거나 싸워보지 않은 채 갑자기 어른이 된 이유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보다 더 극한 경쟁과 입시 지옥에 허덕이는 요즘 고등학생들의 학교 교실에서 ‘철학’이라 이름 붙여진 수업이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 없을 거라고 추측 해 보는데,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철학은 삶을 대하는 태도다. 그리고 다가 올 삶의 파편들과의 싸움이다. 그래서 중요하다. 단순히 철학의 역사를 달달 외우고 ‘누구는 무슨 주의, 누구는 무슨 학파’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는 철학이 ‘박식함’에 있지 않고 ‘일깨움’에 있다고 생각한다.” (p.9)

“교육이란 학생의 머릿속에 무언가를 집어넣는 일이 아니라 그들을 각성시키는 일이다.” (p.69)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지적에 동의한다. 지금은 ‘박식함’을 요구한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좋은 성적을 요구한다. 대학 입시를 앞둔 학생들에게는 높은 수학능력시험 점수가 되겠고, 취업을 앞둔 청년들에게는 높은 스펙이 될 수 있겠다. 대학과 직장에서만 원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 전체가 이것을 종용한다. 무한 경쟁 시대. 이것은 급격한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었고, 실질적으로 지표와 수치로 드러났던 경제성장은 무한 경쟁으로 인해 오는 사회적 비용과 폐해를 무시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시대다. 다른 사회다. 사람들도 다르다. 각자의 자리에서 맞이하는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박식함’ 내지는 ‘좋은 성적, 좋은 스펙’이 전부라면 그 사회의 결말은 절망뿐이다. 사회 전체가 하나의 방향으로 끝 모른 채 내달리다 보니 모두가 그 곳으로만 골몰해 있다. ‘나는 아닙니다!’라고 NO를 외치면 왕따가 된다. 바보가 된다. 낙오자가 된다.

대학 이후 책을 읽으며 알게 된 철학자는 대부분 외국 사람들이다. 한국에는 철학자가 없나? 무슨 무슨 학파라는 대가(大家)를 이루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철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많을 텐데, 한국 사람의 철학책은 거의 읽어본 기억이 없다. 어렵고 복잡한 철학적 담론이 아니라 이 책의 저자처럼 쉽게 삶과 적용하는 철학 수업이 필요하다. 힐링, 청춘 타령 하며 어설픈 자기계발서를 팔아먹는 대학교수나 종교인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처럼 들리지만 쉽게 철학적 화두를 던지는 이런 책이 필요하다. 이런 책을 쓰는 철학자들이 필요하다. 

 

책은 저자가 일상에서 경험한 철학적 화두로 채워져 있다. 어렵지 않고 복잡하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어떤 이들은 “이게 뭐야! 이게 철학책이다!”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런 책이 철학책이라 생각한다. <철학>이라 써 놓고, 정의부터 해서 최근 철학적 담론을 설파하는 따위는 전공자들로 충분하다. 나와 같은 일반인들에게 철학은 삶과 아주 가까워야 한다. 지난 대선 전 열광적인 인기를 얻었던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가 던진 단 하나의 화두는 “정치가 내 삶과 아주 가깝다.”는 것이었다. 정치도 그렇고 철학도 나와 가까워야 한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만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어야 한다. 고담준론은 전공자들 내지는 자칭 똑똑하고 고매한 분들끼리 모여서 하면 그만이다. 우리는 당장 내 삶, 나의 오늘과 내일에 적용되고 오늘 아침에 내가 겪은 일에 적용되는 철학이 필요하다. 당연히 어렵지 않아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떠받드는 어떤 것 때문에 그것들을 소홀히 한다. 추상적인 인류 평화보다 내가 요즘 듣는 음악이 내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철학이란, 그것들을 다루고 가꾸는 법이라고 할 수 있다.” (p.102)

 

 

미스코리아에 당선된 늘씬한 아가씨들은 늘 세계평화를 걱정한다. 그래. 세계평화는 미스코리아 아가씨들께 맡기면 된다. 우리는 당장 나의 한 시간 뒤, 두 시간 뒤에 있을 평화를 챙겨야 한다. 그것으로 족하다. 아니, 그것으로도 여지가 없다. 직장에서 어떻게 상사와 후배를 대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행동이 바로 철학이다. 우리 회사가 지역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나아가 국가와 동북아시아, 세계경제에 어떻게 이바지할 것인가는 CEO들께서 하시면 되는 일이다. 나는 당장 오늘 퇴근 후 상사가 권할 술자리를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 지, 상사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고 납득이 될 변명을 만들어 내는 것에 골몰해야 한다. 그것이 오늘을 사는 ‘나의 철학’이다.

 

 

 

 

“네 이웃을 사랑하지 마라! 그것이 ‘우리’가 ‘우리’에 갇히지 않기를 바라는 정의의 목소리다. 네 이웃이 아닌 자들과 연대하고 그들과 사랑을 나누다. 그것이 우리를 강하게 만드는 정의의 요구이다.” (p.238)

 

 

나는 종교인이다. 개신교인이다. 교회를 다니고 있다. 신을 믿지만 교회는 가고 싶지 않다. 결단이 쉽지 않다. 교회, 특히 한국의 교회를 향한 날선 비판과 조롱에 95%쯤 동의한다. 교회 내에서도 줄곧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지만 발톱의 때만도 못한 내 목소리를 교회의 도그마에 파묻혀 버리기 일쑤였다.

얼마 전 내가 사는 지역에서 퀴어축제를 했다. 대구는 한국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동네중 하나다. 그런 곳에서 퀴어축제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놀랐다. 제대로 축제가 진행될 지 걱정되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퀴어축제 당일 수많은 개신교인들이 거리로 나와 반대 집회를 하고 기도회를 했다. 퀴어축제가 열리는 바로 옆에서 말이다. 추태가 그런 추태가 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60넘은 노인 신자들만이 아니라 젊은 신자들도 많았다. 그들은 ‘동성애가 죄’라는 구약의 텍스트에는 주목하면서 ‘재물과 욕심이 죄’라는 신·구약의 수많은 텍스트에는 눈을 감는다. 동성애를 하는 것과 재물을 탐하고 그것이 신보다 더 큰 우상이 되는 것을 등치시키지 않는다. 재물과 탐욕에 대한 성경의 명령은 당장 ‘내 일’이 되니, 눈을 감고 동성애는 공격할 대상이 있으니 ‘너의 일’이 되는 것이다. 편하고 명확하다. 도그마와 자기합리화에 빠진 종교는 쓸모가 없다.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사안마다 요리 빼고 조리 빼면서 성경을 우악스럽게 들이미는 것에 종교적 순수는 정체를 상실한다. 자신들을 향한 세상의 비판과 조롱도 그들 내부의 도그마 안에서는 종교적 고난으로 둔갑된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당장 내가 오늘 만나는 회사의 동료들, 학교의 친구들, 연락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종교적 순수를 담보하는 일이다. 교회 안에서 거룩하게 찬송 부르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렇게 은혜로운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깜빡이를 켜지 않은 채 내 앞으로 들어오는 차를 향해 욕설을 내뱉는다면, 그의 종교성은 순수한 것인가? 그의 예배는 정직한 것인가? 중세 성인들처럼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교회 안에서의 모습과 교회 밖에서의 모습이 일치해야 한다는 도저히 성립할 수 없는 요구조건도 아니다. 일치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판이하게 다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이것은 나 스스로의 고백이자 다짐이다.

 

철학은 이런 것이다. 이런 것이어야 한다. 어렵지 않고 멀지 않아야 한다. 가깝고 쉬워야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된다. 골머리를 앓고 괴롭기만 했다면 ‘철학’의 ‘ㅊ’자도 다시 꺼내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삶을 부정하거나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철학이 필요하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철학의 면은 각자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무리한 요구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책의 저자처럼 삶과 가까운 철학적 담론을 던지는 철학자들이 많아야 한다. 성장과 경쟁, 힐링과 청춘이 난무해 너무 어지럽다. 복잡하지 않아도, 번지르르하지 않아도 쉽게 내 삶과 적용할 수 있는 철학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이 책처럼 쉽게 읽히고 쉽게 나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책도 많이 출간되기를 희망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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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 - 하버드 옌칭도서관에서 만난 후지쓰카 컬렉션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6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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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그런 책 어디에서 찾아?”

 

한창 아내와 연애 중이던 당시, 매번 절판되거나 아무도 읽지 않을 것 같은 표지 디자인에 가뿐히 500페이지가 넘어가는 책만 골라 읽던 나를 보며 아내가 정말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내 대답은 이랬다.

 

“책을 읽다보면 그 속에 찾아볼 책이 무지하게 많아.”

 

그랬다. 대학교 2학년 초겨울, 고(故) 리영희 선생님의 「반세기의 신화」를 읽은 것이 지금 내 독서 패턴과 삶의 방향성을 좌우하는 8할이 되었다. 온통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로 가득한 그 책을 줄을 긋고, 메모를 해가며 읽었다. 대입 수능 시험 성적표를 받아들었던 그 때의 충격파가 100이었다면, 「반세기의 신화」는 120은 족히 되었을 것이다. 이후 리영희 선생님의 책을 있는 대로 구입했다. 그리고 그 책들을 읽으면서 책 속에 언급되어 있거나 책의 하단 각주, 책의 마지막에 언급된 참고서적들에 눈이 갔다. 그러고 나서 인터넷 서점 검색창에 그 책들의 제목을 입력했다. 절판되거나 일시품절 된 책이 많아서 중고 인터넷 서점과 오프라인 중고서점을 뒤졌다. 어렵게 찾아 읽게 된 책들은 그대로 보물이 되었다. 리영희 선생님이 참고하고 발췌하고 공부한 책이라 생각하니 마치 「반세기의 신화」를 쓰시는 집필실 한 구석에 나도 한 자리 꿰차고 앉아 선생님의 잔심부름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렇게 책을 읽는 것이 재미있었다. 유용하고 도움도 되었다.

지금도 내가 책을 고르고 구입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내가 지금 읽는 책 속에 있다.

 


 

“이곳에서는 한 권의 책이 다른 책을 불러내고, 그것이 줄줄이 이어져서 금세 하나의 장대한 서사를 만들어내곤 한다. 이 모든 과정이 논스톱으로 이뤄지는 꿈의 도서관 속에서 나는 유영하고 있었다.” (p.109)

 

정민 교수는 1년 동안 하버드 옌칭연구소에서 책 속에 빠져들었다. 추사 김정희 연구가로 알려진 후지쓰카 지카시의 컬렉션을 발견하고 18세기 한중 지식인이 나눴던 문예교류를 발견해 냈다. 내가 리영희 선생님의 책 한권에서 완전한 가치판단의 전복을 경험하고 그 한 권의 책으로부터 지금의 책세계로 빠져든 것처럼, 정민 교수도 옌칭해(海) 속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던 것 같다.

 


 

“집에 돌아와 피곤한 잠을 몇 십 분자고, 라면 하나를 끓여 먹은 후 날이 캄캄해진 뒤에 다시 학교로 올라왔다. 빌려 쌓아둔 책을 급한 대로 복사하고, 인터넷으로 신청한 책 세 권을 다운로드하여 갈무리해 두었다. 밀린 글을 쓰고 일기를 적은 후 책상을 정리하고 나니 밤 12시가 다 되어 있었다." (p.156)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정민 교수의 태도다. 정말 신나서 책을 찾고 연구하고 기록하고 정리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몸은 피곤하고 찾으면 찾을수록 더 많은 자료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겠다는 엄살도 부리지만, 이 두꺼운 책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것은 ‘행복함’이다.



“1766년 2월 한 달 사이에 홍대용과 엄성 두 사람은 북경에서 일곱 차례 만났다.” (p.45)

“1801년 1월 28일, 박제가는 주자서를 구매해오라는 왕명을 받고 사은사를 따라 생애 마지막이 될 네 번째 연행길에 올랐다.” (p.630)

 

책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조선의 마지막 중흥기 정조시대다. 주지의 사실이다시피 정조는 문장가요 예술가였다. 홍대용으로부터 박제가, 박지원, 김정희에 이르기까지 정조의 안목이 아니었다면 이들의 북경행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여전히 당시 지배계급은 명나라를 숭상하고 이미 패권을 쥐고 대륙의 주인이던 청나라를 무시하고 있었다. 가당치도 않을 북벌론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혈안이었다. 정조로서는 그들을 적절히 견제하면서 신진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젊은 학자들을 유용한 것 같다.

 


 

“조선의 지식인들이 우연히 북경 거리에서 만난 사람은 오가다 흔히 마주치는 장삼이사가 아닌 당대 톱클래스의 명류였고, 그들이 단골로 거래한 서점은 중국 서적사에서 손꼽는 양심적 신상의 서점이었다.” (p.427)

 

유리창 거리(류리창, 琉璃厂)는 당대 최고의 서점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구글을 찾아보니 보니 지금도 고서적들이 즐비한 관광명소다. 주군인 임금이 자신들을 보낸 목적이 무엇인지는 분명하지만 젊은 조선의 학자들의 눈에 비친 유리창 거리의 서점들은 신세계였을 것이다. 내가 리영희 선생님의 책 속에서, 정민 교수가 옌칭도서관 안에서 만난 신세계와 일맥으로 상통한다.

조선에서는 여전히 명을 숭앙하는 꼰대들로 인해 제대로 기를 펴보지 못했지만 당대 최고의 문예가와 학자들을 북경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애석하게도 매번 연행길에 당대의 명사들을 만날 수는 없어 서신을 주고받으며 조선에서도 받지 못했던 인정과 칭찬을 받을 수 있었다.


이것은, 어느 날 <리영희 재단>으로부터 내게 전화가 와서

“OO께서 블로그에 올리신 리영희 선생님 책리뷰를 읽었는데요. 너무 감동을 받고 흡족해서 재단 관계자분들의 칭찬이 자자합니다. 그래서 그간 쓰신 리뷰를 엮어 책을 출간해 드리고 재단 후원금도 지급할 예정이니, 한번 재단에 내방하시죠.”


라고 하는 것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이런 전화를 받는다면 나는 하늘을 나는 것과 같은 기쁨과 희열에 정신을 못 차리고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자랑을 할 것이다.

정민 교수가 옌칭도서관의 책바다에서 연거푸 진귀한 보물을 발견해 낸 것처럼.

 


 

“박제가가 네 차례의 연행에서 쌓였던 인맥은 8년 뒤 동지사의 부사로 연행길에 오른 아버지 김노경을 수행한 24세의 청년 김정희에게 고스란히 인계되었다. 이렇게 해서 18세기가 마감되고, 19세기 문예공화국의 화려한 서막이 열렸다.” (p.649)

“박제가의 그늘 덕분에 김정희는 단번에 북경 지식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p.703)

“한문은 18세기 문예공화국의 당당한 공용어였고” (p.315)

 

더 중요한 것은 한문을 매개로 한 과거 한중 지식인들의 만남이다. 당대 최고의 명사였지만 청나라 시절 비주류였던 한족 학자와 서얼 출신에 망상에 빠진 기득 보수층에 의해 밀려난 조선의 젊은 학자들의 처지가 만나 시너지를 일으켰다. 시와 편지, 그림을 주고받으며 계속된 교류는 책 속에 즐비하게 소개된다. 서로를 그리워하는 시를 보다 보면 흡사 여인을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에 비견될 만큼 애틋하다. 말을 타고 오가는 길이 수개월이 걸리는 그 시대, 그들은 서로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나 자신과 상대를 위로했다. 할아버지의 대를 이어 손자들의 대에까지 교류했다고 하니 인연의 깊이와 정도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책에서는 18세기에는 개인 간 왕래와 교류를 통해 한중간 문예공화국의 서막이 열렸고, 19세기에는 단체 간 교류가 활발해지고 다양한 분야로 그것이 확대되었다고 한다. 그 중심에 완당 혹은 추사 김정희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제목에서도 분명히 말하지만 18세기까지의 이야기다. 영화 <반지의 제왕>의 후속편을 기다리던 그때의 초조함과 설렘이 다시 발로한다.

 


 

“내가 <세한도>를 다시 조선으로 보내는 것은 첫째 소전이 조선의 문화재를 사랑하는 성심에 감탄함이며, 둘째로는 그대가 이것을 오래오래 간직하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내가 돈을 받고 <세한도>를 내놓는다면 지하의 완장 선생이 나를 뭘로 치부하겠소? 더구나 우리는 그분을 사숙하는 동문 아닙니까?” (p.664)

 

이 책이 탄생하게 되는데 가장 주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후지쓰카씨다. 그는 경성제국대학에서 청을 고증하는 연구를 했다. 당시 조선에 있는 대학에 간다는 것은 하버드에 임용될 수 있는 실력을 가진 교수가 이름 없는 한국의 ‘OUT서울’ 대학교로 자원해 취직한 것과 다르지 않다. 많은 주변인들이 안타까워하며 비난했지만 후지쓰카는 성실하고 꼼꼼한 연구와 취재, 고증과 수집을 통해 18세기 한중 지식인들의 아름다운 교류와 풍성한 문예기를 발견한다. 일제의 패전 후 도쿄에 보관 중이던 자료가 대부분 불타고 남아 있던 자료를 그의 아들이 기증하고 팔면서 옌칭도서관에 초빙되어 있던 정민 교수를 만나게 된다. 책에서 정민 교수가 여러 번 언급하듯이, 후지쓰카는 대단한 연구가이자 기록가였다. 메모하고 수정하고 기록했던 성실함이 정민 교수의 연구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래서 컵라면을 먹으며 시간을 아껴가며 연구 해 세상에 내보인 이 책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을 내가 읽게 되었다.

 

아마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정민교수가 말을 아낀 듯하지만 19세기 한중의 문예공화국은 일본에까지 닿아있던 것으로 읽힌다. 그만큼 한중일 3국이 가까웠다는 것이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 3개국의 관계가 아슬아슬하다 못해 위험해 보인다. 3국이 공히 영토문제로 뒤엉켜 있고, 경제·역사·문화 모든 분야에서 긴장관계에 놓여 있다. 활시위가 최대로 당겨져 있고 방아쇠에 검지는 오므려져 있다. 슬기롭고 지혜롭게 이 위기와 긴장 상황을 헤쳐 나가지 못한다면 발칸반도, 크림반도, 팔레스탄인에 버금가는 국제적인 긴장지대가 될 지도 모르겠다.

18세기와 19세기까지 자유롭고 아름답게 이어졌던 문예의 흐름이 끊겼던 것도 결국은 전쟁 때문이었다. 이후 100년 동안 각자의 길을 가다가 다시 병목구간에 다다른 것이다. 저자의 바람대로 100년 이전 3국의 문예공화국이 부활하려면 진짜 지혜가 필요하다. 가짜 정책과 외교 전략은 필요 없다. 도움도 되지 않는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으로는 3국이 함께 갈 수 없다.

 

만약 <리영희 재단>에서 진짜로 전화가 온다면 내가 정민 교수의 뒤를 이어 이것에 대한 연구를 해봐야겠다. 로또 당첨되는 확률보다야 조금은 높겠지^^

 

연구 제목은 『21세기 한중일이 만들어 가야만 할 문예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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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7-18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고전을 제외한 책 중 단 한 권을 타임캡슐에 넣어야 한다면 타입캡슐에 들어갈 목록 가운데 한 권이 리영희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읽어도 뒤통수에 박히는 죽비 소리가 요란한데 그 삼엄한 시대에 목숨 걸고 읽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이었을까요 ? 가끔 그 생각을 하고는 합니다. 읽으면 감옥 가는 시대가 있었는데 이제 읽어도 감옥 가지 않는 시대가 왔으나 아무도 읽지 않으려고 하네요. 씁쓸하고 슬프기도 합니다.

lmicah 2014-07-23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에서 다 담아내지 못할 정도로 리영희 선생님은 제 인생 최고의 선생님이세요. 돌아가시기 전 병상에 계신 선생님과의 전화통화가 생생합니다. 책 한 권 추천해 달라고 하면 반드시 리영희 선생님의 책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단 한 권도 베스트가 아닌 책이 없습니다. 그런데 곰곰발님 말씀대로 리영희 선생님 책을 읽지 않는 시대가 되었죠. 그래도 추천하고 추천하고 또 추천할려고요.

CREBBP 2014-07-29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싹쓸이를 하시는군요. 예스에는 조용히 할께요. ㅎㅎㅎㅎ 축하드려요.
 
뜨겁게 안녕 - 도시의 힘없는 영혼들에 대한 뜨거운 공감과 위로!
김현진 지음 / 다산책방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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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키득거리며 책을 읽었다. 과장된 웃음을 조장하는 글이 아니라 더 좋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전적으로 고종석 작가 때문이다. 그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그의 책 「고종석의 문장」을 읽고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오해를 풀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를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니다. 싫어하지 않을 뿐이다) 그의 트위터를 팔로우하고 있는 내 오지랖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손에 꼽는 문장가, 작가인 고종석씨가 추천한 젊은 작가라는 짧은 트위터 내용을 보고 바로 그녀의 책 「뜨겁게 안녕」을 구입했다. 고종석씨가 그냥 좋아하는 후배 홍보해주기 위해서 날린 공수표가 아님을 알게 된 것은 책의 첫부분을 읽으면서 부터였다.

 

“나는 기억하기 위하여 태어났다. 그러므로 이 기억이 죄다 휘발되기 전에, 글씨를 쓴다. 이 모든 비속하고 정답고 지겨운 것들을, 하찮고 애절하고 시시하고 또 시시해서 끝도 없이 사랑스럽고 그리운 것들을.” (p.7)

 

글씨를 쓰는, 문장을 쓰는 이유를 이렇게 솔직하게 내뱉는 작가를 나는 별로 보지 못했다. 솔직하게 보이려고 부러 미사여구를 빼거나 감정을 과잉 투여하는 것과는 달랐다. 기억하기 위해 태어났고, 그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글씨를 쓴다는 그의 고백이 애절하고 솔직하게 느껴졌다. 이어진 고백도 절절하기 짝이 없다.

‘이 모든 비속하고 정답고 지겨운 것들, 하찮고 애절하고 시시하고 또 시시해서 끝도 없이 사랑스럽고 그리운 것들’

삶은 그렇다. 내가 삽십 여 년을 살면서 느끼게 되는 가장 큰 삶의 민낯이다. 구질구질하고 구차하기 짝이 없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하는 내게 김현진의 고백은 반가웠다. ‘젠’ 체하고 ‘난’ 체하는 일부(?) 작가들의 삐까번쩍한 글과 글씨, 문장들과는 달라 보인다.

이 책은 그런 작가의 고백이자 일기장이다. 대단한 삶의 목표도, 방향도, 움직임도 없는 그저 가난하고 가난한 젊은 작가의 기록이다. 한글 문서창 안에서 가볍게 ctrl+c 하고 ctrl+v 하듯이 되는 대로 흘러가는 삶은 물로 아니다. 책의 처음과 끝까지 술에 쪄든 고백을 서슴치 않고 하지만 분명한 삶의 방향과 가치를 가진 젊은이라는 것을 안타깝게 확인할 수 있다. 앞서 표현한 대로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그 무표정한 체념, 그리고 때론 체념 그 자체가 강철 같은 의지가 된다는 것을. 구불구불한 털을 뽑히든 냄새 나는 물을 퍼내든, 무엇을 하든 그걸 무심한 얼굴로 견뎌내는 것이야말로 용기 그 자체이기도 하다는 것을.” (p.83)

 

어릴때부터 줄곧 이어진 가난은 그녀를 강하게도 약하게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반지하 셋방에 역류해 들어오는 구정물을 수차례 만나도 보니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속에서 물을 퍼내는 자신을 그려내는 글에서는 그 누구냐, 대통령을 했었던 사람의 그 유명한 유체이탈 화법이 생각났다. 젊은 여자가 구정물 한가운데서 퍼내도 퍼내도 끝이 없는 역류하는 구정물을 퍼내는 장면을 제3의 관찰자의 시선으로 그려낸다. 다시 그 기억으로 감정이입하기에는 너무 구질하고 불쌍할 것 같아 그렇게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게 더 애처롭다.

 

“친구들이 마카롱이 어쩌고 레어치즈케이크가 어쩌고 할 때마다 나는 돼지곱창 생각만 했다.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 하나를 켜면서 칠면조 통구이를 망상하듯 학자금 대출을 거칠게 갚아내면서 곱창골목의 보도블록 한 개마다 곱창 한 점을 꿈꾸었다.” (p.93)

 

그녀의 고백과 기록은 절절하다. 가난을 피하지 않고 구조적인 이유에 근거해 비판하지도 않는다. 그냥 내 것으로 받아들인다. 체념하거나 수긍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래서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그 나이, 그 젊은 아가씨들이 그러하듯 그녀도 그렇게 살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 나는 가난하고, 마카롱이고 레어치즈케잌이고 뭐고 간에 돼지곱창 한 점을 꿈꾼다. 이것은 유머다. 그녀의 첫문장에서부터 마음을 빼앗긴 나와 같은 독자들에게 그녀의 고백은 유머다. ‘어머 불쌍해서 어째~ 참 힘들었겠다.’ 따위의 값싼 동정은 필요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나는 유머로 그녀의 가난에 대한 기록을 읽었다. 그것도 키득거리면서 말이다. 가난과 불행도, 재수없음도 과하게 자기비하 하지 않으면서 고백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냥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퍼붓는 술자리와는 완전히 다르다. 이것은 문장이고 글씨다. 정제되고 압축된 이야기다. 작가가 이 책을 출간하기 전 얼마나 오랜 시간 퇴고를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쉽게 끄적인 글은 아닌 것 같았다. 현재에 과하게 만족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부럽기도 했다. 그래서 자꾸만 그녀의 글이 멋있어 보이는 것 같다.

 

“그가 다녀간 날이면 그때 유행하던 노래 <그 여자 그 남자>를 지하방에 앉아 나도 모르게 흥얼거렸다. 니가 뭘 알아 세입자의 마음을... 그러다 지나가던 취객이 방에 딸린 잡지 한 권만 한 창문을 하수구로 착각했는지 소변을 보는 쏴아, 하는 소리... 비가 오나 싶어 돌아보았다가 화들짝 놀랐다.” (p.122)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웃었던 장면이다. 지하 셋방에서 유행가를 부르는 작가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 처럼 그려졌고, 술에 취해 지하 셋방 유리창을 향해 소변을 발사하는 취객의 모습도 영화의 한 장면 처럼 그려졌다. ‘비가 오나 싶어 돌아보았다가’에서 나는 배를 잡고 웃었다. 비가 오면 많이 올 것을 걱정해야 한다. 비가 많이 오면 또 다시 하수구가 역류해 구정물 속에 갇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비에 민감해 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살고 있던 지하 셋방의 주인이 시도때도 없이 술에 취해 세입자들에게 주사를 부리는 통에 유행가를 개사해 신세한탄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 신세한탄 쯤은 개나 줘 버려!!’라는 시츄에이션으로 취객의 소변 발사! 정말 많이 웃었다.

 

“일단 미친 듯이 달려가 보니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 사이에 삼십대 중반 정도의 여자가 태아처럼 웅크린 채 쓰러져 있었다.” (p.133)

“그때 사장님은 기름 묻은 목장갑으로 오토바이를 쓱쓱 만지며 말했다.”

“원래 그런 거여. 강만 건너가면, 집이고 차고 밥이고 뭐고 뭐든지 일단 두 배로 뛰는 겨.” (p.195)

 

그녀는 오지랖이 넓다. 달동네 골목에서 두들겨 맞고 있는 아내에게 달려 든다. 아내를 두드리는 남편을 달래고 그의 신세한탄을 모조리 들어 준다. 만나는 사람과 골목과 장면에서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제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면서 꼴에 참견은~’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 참 나쁜 사람이다. 언제 한 번 제 앞가림 잘 하고 잘 나고 잘 살고 힘 있는 사람들이 나와 당신을 도와준 적이 있나? 힘 없고 앞가림 잘 못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어깨를 내주며 사는 것이 더 현실에 가깝다. 그렇게 삶은 이어지는 것이고. 아무튼 작가의 오지랖은 책에 표현된 이상으로 넓고 깊은 것으로 보인다. 장기간 데모를 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찾아가는 것에서부터 히스테리로 가득한 지하 셋방 앞 집 아주머니의 사연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오지랖이 닿지 않는 곳이 없어 보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가 이제 죄다 사라져버릴 골목 갈피마다 어떤 사람과 사연을 품고 있었는지 당신도 당신의 골목을 기억해준다면 그보다 더한 기쁨이 없을 것이다.” (p.303)

 

옥수동, 남창동.. 나는 서울에서 산 적이 없지만 동네 이름만 들어도 뭔가 강남스럽지 않고 잘사는 동네 스럽지 않음을 직감할 수 있다. 그녀는 그런 동네만 전전했다. 동네 꼭대기 집에서부터 지하셋방까지 다양하게 오르내렸다. 그녀의 시선과 발자국에 닿는 동네와 골목과 그속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정겹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그려내는 마천루와 빌딩숲, 강남대로와 남산의 전망에서는 골목에 닿을 수 없다. 용산이 그랬고 옥수동이 그랬다. 그녀가 그 골목에 다시 찾아갔을 때는 모조리 허물어져 있었다. 그녀의 기억과 기록이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 실린 그녀의 글씨와 문장을 조합하면 한 편의 르포르타주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없어진 그 동네와 그 골목과 그 사람들의 마지막 모습을 기록한 것이니까 말이다.

이 책을 읽고 김현진의 팬이 되었다. 솔직하고 하찮으며 애절한 그녀의 글이 매력적이다. 추천하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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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6 17: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lmicah 2014-07-18 18:07   좋아요 0 | URL
곰발님이 대단한 분이시군요. 야무님까지 이렇게 방문해주시고 댓글까지 달아주시니까요. 감사해요. 무엇보다 리뷰 칭찬!! 너무 감사드려요. 성실하고 정성있다는 칭찬에 힘이 납니다. 보신한 것 같아요^^
또 들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