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 윤태영 비서관이 전하는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
윤태영 지음, 노무현재단 기획 / 책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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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친한 친구 녀석과 다툰 적이 있다. 아주 사소한 오해로부터 출발한 다툼이었다. 나와 친구 녀석 둘 만 있던 자리도 아니었다. 어른도 계셨고 다른 친구들 몇도 함께 한 자리였다. 친한 친구였던 만큼 그 자리가 파하기 전에 서로 오해를 풀고 화해를 했다. 집에 돌아와 가만히 그 시간을 돌이켜보니 여간 화끈거리고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이십 년 가까이 우정을 유지하며 어디를 가나 서로가 ‘베스트 프렌드, OO친구보다 더 친한 친구’라며 자랑하던 사이였는데, 별것도 아닌 오해로 얼굴을 붉히고 언성을 주고받았다는 것이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지금도 한 번씩 그때 일을 돌이키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둘 다 얼굴이 벌개져서 어쩔 줄을 모른다. 살다보면 오해를 받기도 하고 공격을 받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내 뒷담화를 했다고 하면 기분이 아주 나쁘다. 가장 친한 친구 녀석과 그 자리에서 오해를 풀지 않고 헤어졌다면 지금과 같은 우정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아무렇지 않게 만나고 있어도 속으로는 풀지 못한 나름의 앙금으로 불편했을 것이다.

 

인간 노무현만큼 많은 오해와 비난, 공격과 비판을 받은 사람이 있을까? 서거한 후에도 그에 대한 칼은 무뎌지지 않았다. 그가 고졸이고 이 사회의 기득권을 향해 반기를 들었다고 해서 그렇게 줄기차게 공격을 받아야 했을까? 지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는 NLL발언과 관련해서 또다시 공격을 받았다. 그 시기에는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었지만, 마치 이 사회에 큰 해악을 여전히 미치고 있는 존재로 표현되고 그려졌다. 선거가 끝난 후 선거 시기 그렇게 공격을 하던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라고 발뺌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 끝이다. 아니면 말고.

그는 서거한 후에도 이 사회 기득권의 눈에 가시였다. 이용하기 좋은 정치적 도구였다.

그가 대통령에 재임하던 시절, 그를 지지하고 응원하고 실제로 그에게 투표했던 ‘우리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도 공격을 받았다. 탈 권위를 표방한 그에게 사람들은 아낌없는 비판과 공격을 퍼부었다.

 

나는 아직도 노무현을 좋아한다. 존경한다. 앞으로 계속 그럴 것이다. 아마 죽는 날까지 그럴 것 같다. 정치인으로, 인간으로, 인생 선배로 그를 좋아한다. 나 또한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 참여정부 수장으로서의 노무현에 대해 비판적인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그만한 정치인, 대통령은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노무현이 후세의 반면교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노무현처럼 하면 노무현처럼 되는 구나!’라는 학습을 지금도 하고 있다. 노무현 만한 용기와 결기를 가진 사람이 ‘나도 노무현처럼 되겠다.’라고 발 벗고 뛰쳐나올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마이클 조던 이후 포스트 조던이라 표현되는 수많은 NBA선수가 있었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포스트 노무현은 절대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너무 무섭고 확실하게 학습했는데, 그것을 무릅쓰고 나설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냥 편하게, 다른 정치인들 하는 대로 하면 최소한 ‘노무현처럼’은 되지 않으니까 그 길을 택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많은 책이 쏟아졌다. 갑자기 그를 성인(聖人)취급하며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그의 영정 앞에 눈물을 쏟고 미안해하며 추억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다 좋다. 그런 사람들마저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정치를 할 뜻도 없고 여력도 없고 능력도 없는 나와 같은 일반인들은 이해해줘야 한다. 하지만 정치인들, 정치꾼들. 그들은 입에 함부로 노무현을 거론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직업 정치인이 된 채 선거를 앞두고 낯짝도 두껍게 다시 노무현을 언급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나쁜 것이다. 인두겁을 쓰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은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가까이에서 그를 지켜 본 윤태영씨의 책이다. 노무현의 말과 글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들었던 사람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기록의 역사’라고 말했습니다. 기록된 것만이 역사라고도 했습니다. 간혹 정무적인 문제로 구도 보고나 서면 보고의 필요성을 참모들이 얘기했을 때도 ‘기록에 남기기 두려운 일은 아예 하지 말라’고 했을 정도입니다.” (p.14)

“그는 사상과 생각을 말로 정리하고 글로 남기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말을 하는 과정에서 생각을 정리했고, 글을 쓰면서 체계를 가다듬었다.” (p.105)

 

노무현 대통령은 기록비서관이라는 자리를 두면서까지 기록을 남기는 것에 철저했다고 한다. 이전까지 정치인들이 룸살롱에서 밀실에서 차안에서 은밀하게 주고받던 정치적 거래와 밀약을 배척한 정치인이었다. 재임 시절 저자에게 건강이 허락하는 한 가까이에 있어 줄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그는 그의 말과 글이 기록으로 정리되고 그것이 후대에도 남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재임 직후부터 서거 직전까지, 아니 그 이후 지금까지도 노무현이 한 말과 글은 조롱과 공격을 받았고 받고 있다. 아이러니다. 그렇게 기록을 중요하게 여겨서 온전히 기록되도록 시스템을 만들고 장치를 만들었던 사람이 오히려 그것 때문에 공격을 받았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그날 그는 국무회의 자체를 외부에 공개하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장관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엇갈렸다기보다는 반대 또는 신중론이 대부분이었다.” (p.117)

 

그토록 노무현이 공격받은 이유는 그의 ‘파격’이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가장 비판을 받는 것 중의 하나가 밀실정치다. 대통령은 박근혜인데 누가 이 나라를 지배하는지 궁금해 하는 것이다. 열린 정치가 아닌 닫힌 정치다. 각종 대국민사과도 국무회의에서 할 따름이다. 이전 민주정부에서는 국무회의가 굉장히 열띤 토론의 장이었다고 한다. 각 부처 장관들과 국무의원들, 대통령이 사안별로 토론하고 협의하는 과정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박근혜 정부에서는 그런 것을 찾을 수 없다. 톱-다운 방식이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것. 그래서 이 정부 들어 각종 인사정책이 참사로 기록되고 있고 현재 진행형이다. 청와대와 집권여당조차 제대로 소통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이런 방식이 현재 이 사회 보수·수구세력의 자연스러운 태도라면 노무현의 ‘파격’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격 떨어지는 쇼에 불과한 것이었을 것이다. 권위를 버리고 국무의원들과 눈을 맞춰 토론하는 것은 대통령의 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언론개혁과 사법개혁을 위해 그 어느 정권보다 많은 청와대 출입 기자를 두고 평검사와의 대화를 시도했지만 모조리 비판받았다. ‘대통령답지 않다.’라는 것이다. 모름지기 대통령이라면 박 장군과 전 장군처럼 밀어 붙여야 하는데, 대학도 나오지 못한 고졸 출신 주제에 우둔한 대중의 응원 좀 힘입어 대통령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하지 않고는 노무현에 대한 병적인 비판과 공격을 이해할 수 없다.

 

 

“언론에 대한 불만도 표현했다.”

“편지 100통을 써도 집배원이 전달을 안 한다.” (p.32)

“언론하고 싸우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선거에 이겼을까? 내가 말을 조심하고 실수하지 않았다면 결론이 달라졌을까? ‘파병’하지 않고 ‘FTA’하지 않았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p.190)

 

노무현 대통령의 ‘파격’은 반대급부로 끊임없는 비판과 조롱을 낳았다. 조선일보에 대항한 정치인은 노무현 이전에는 없었다. 조선일보의 사설과 기사로 한 정치인을 좌지우지 할 수 있었다. 당연히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 언론들은 매 사안, 매 정책, 매 연설을 조롱하고 비판했다. 그것이 옳고 그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시절 그 신문들의 기사 제목을 찾아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대통령.. 말잔치>, <또 다시 말실수...> 돌이켜 보면 노무현 대통령이 말을 잘 하고 논리적이며 설득력이 있다는 것조차 저들에게는 꼴 보기 싫은 것이었던 것 같다. 안타까운 것은 민주·진보·개혁 진영의 태도다. 반대편의 프레임에 그대로 말려 들어가 더 날을 세우고 꼬투리를 잡았다. 오죽하면 노무현 재임 당시 가장 진보적이라 평가되던 정당에서조차 ‘노무현은 고졸이잖아.’라는 말이 떠돌며 대통령을 조롱하고 무시했겠나.

그들이 반대하지 않을 수 없었던 파병문제나 FTA문제에 대해서는 적법한 절차를 통해 비판하고 권력을 견제하면 되는데,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더 심하게 부화뇌동 했었다.

 

 

“언론은 사실을 보도해야 합니다. 정정 보도는 당연한 의무입니다. 이런 간단한 원리를 언론이 인정하고 실행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될 때까지 우리는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가시밭이 길이 될 때까지 우리는 긁히고 다치면서 아픔을 참고 가시밭길을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p.277)

 

사실 노무현 대통령과 가장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은 언론이다. 참여정부 시절만큼 보수언론이 정부를 비판했다면 참여정부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지금보다는 훨씬 더 좋은 정권이 되었을 것이다. 언론이 권력과 결탁해 견제와 비판의 기능을 상실했다면 그것은 언론이 아니다. 그런 언론의 기사는 읽을 가치도 없다. 그런데 권력의 힘을 등에 업고 호의호식하는 것에 익숙한 보수언론은 되레 노무현과 같은 ‘파격’에만 맞선다. 언론의 자유 지수가 가장 높았던 참여정부 시절을 뒤로 한 채 줄곧 언론 자유 지수가 하락하는 것을 보면 그들의 앞뒤가 맞지 않는 태도는 언론의 기본기능 조차 잃어버린 찌라시에 불과하다는 방증이다. ‘긁히고 다치면서 아픔을 참고 간 가시밭길’이 가장 불행한 역사가 되리라고는 노무현 대통령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책에서 자세하게 언급된 것처럼 그는 퇴임 이후 귀향을 소원했고 그 생활에서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방안도 마련했었다. 그의 바람대로만 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 세상은 결코 노무현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다.

 

 

“대통령님, 나와 주세요.” (p.209)

“자네들마저 없다면 이곳을 누가 찾아오겠는가? 이것이라도 안하면 내가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p.253)

 

이상하리만치 많은 사람들이 퇴임 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봉하를 찾았다. 이상했다. 그렇게 싫다고 하던 사람들이, 아니 그렇게 공격을 받는 대통령을 지켜주지 않았던 사람들이 마치 퇴임을 기다리기도 했다는 듯이 그를 찾아갔다. 각종 방송에서도 이 기현상(奇現象)을 보도했다. 그렇게 기이하게 노무현의 결말은 다가오고 있었다. 공격은 계속 되었고 노무현의 건강은 점차 나빠졌다. 퇴임 후 가장 매진하던 집필 작업을 위해 저자를 비롯한 소수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그의 유일한 위안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수구세력에서는 자신들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나 세력을 향해 ‘친노종북’이라고 한다. ‘친노’라는 단어는 정치적 이념과 입장을 떠나 걸면 걸리는 무기가 되었다. 야당에서조차 같은 야당의 정치인을 공격하는 도구로 ‘친노’를 사용한다. 노무현이 서거한 지 5년이 지났는데도 그러고 있다. 무슨 대단한 잘못이나 실책을 한 것도 아니고 국민들의 생활이 급속도로 나빠져서 최악의 대통령이 된 것도 아닌데, ‘친노’라는 무기는 강력하게 먹힌다. 노무현의 인생과 그의 정치적 태도를 좋아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조차 자신을 향해 ‘친노’라고 하면 손 사레를 치며 싫어한다. 이게 무슨 꼴인지 모르겠다.

나는 ‘극렬 친노’다. 노사모에 가입한 적도 없고, 참여정부 시절 비판적이기도 했고, 서거하기 전까지 한 번도 봉하에 찾아가지 않았고, 서거 후 추모집회에도 한 번 참석한 적이 없지만 나는 ‘극렬 친노’다. 노무현의 인생과 정치적 삶, 방향을 지지하고 찬성한다. 앞으로 노무현과 같은 정치인, 대통령은 결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극렬 친노’다. 지난 4월 25일 태어난 내 딸아이가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는 때가 오면 나는 딸아이에게 말 할 것이다.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있었어.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정치인, 대통령이었어.”

줄곧 이야기 할 것이다.

 

“너는 아빠 나이가 되어도 그런 사람 못 만날 거야.”

라고 놀리기도 할 것이다.

 

지난 대선 후 잘 마시지도 못하는 소주를 목구멍으로 부어 넣으며 아내에게 말한 적이 있다.

“차라리 잘 돌아가셨어.”

살아계셨다면 또 얼마나 더 극렬하고 악랄한 공격에 시달려야 했을까?

하지만 문득 문득 그가 보고 싶다. 그의 ‘파격’이 그립다. 그의 탈 권위와 바보 같은 용기를 마주하고 싶다. 비록 그는 괴롭더라도 그런 사람, 그런 정치인 하나 가진 사회라면 이렇게 암담하지는 않을 것 같다.

 

 

 

부디 멀리 멀리 가시라.

뒤돌아보지 말고 멀리 가시라.

그리고 그곳에서는 평안하시라.

 

 

나의 대통령.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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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7-24 0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증이로군요. 저 또한 인간 노무현과 노무현 정권을 분리하고 있습니다. 노 정권에서 실망스러운 정책을 펼치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써 노무현은 앞으로 한국 정치사에 다시 나타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매력있는 분 잃었습니다. 박근혜와 명박을 볼 때마다 노무현이 그립더군요...

lmicah 2014-07-30 17:08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아쉬운 것이 많았던 참여정부였죠.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어요. 10년 안에 바뀔줄 알았던 거죠. 국민의 정부는 IMF뒷처리 하느라 5년을 보냈다면 참여정부는 뒤를 이어 대단한 개혁을 해낼 줄 알았던 거죠. 그 기대가 너무 컸었던 것 같아요. 이 놈의 나라를 움직이는 코어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는데 말이죠. 멍청했던 거죠.

만화애니비평 2014-07-24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월호 추모 전시관 가면서 노무현의 이름이 자꾸 제 머리를 울리고 있었습니다.

lmicah 2014-07-30 17:11   좋아요 0 | URL
인간 노무현만큼 사람을 움직이고 감동시키게 하는 정치인이 다시 나올 수 없을 겁니다. 제대로 평가될 날이 언젠가는 오겠죠?

오리한마리 2014-07-25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너무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글 읽는 동안 눈가가 촉촉해 졌습니다.
그립고 그리우니 또 그립습니다.
좋은 글, 리뷰,,, 감사드립니다.

어렵게 글을 쓰고 세상에 내어주신 윤태영님께도 힘이 될 듯 합니다.^^

lmicah 2014-07-30 17:1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오리한마리님. 이 책 좋더라고요.
여전히 노무현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이 놈의 사회는 바뀌지 않는 걸까요? 답답한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