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를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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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알라딘 서평단에 선정되고 나서 처음으로 받은 책이다..
책 속 주인공 영호처럼, 나도 어린 시절을 분명히 기억한다. 초등학교 다닐 무렵.. 아빠가 동네 아저씨들과 빨갱이들이 전라도에서 난리를 피우고 있다고 욕하던 일.. 몇 년 지난 뒤에 무슨 텔레비젼에선가 다큐처럼 광주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방영하던 일..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생각 나지도 않는다.
박종철, 이한열 이런 사람들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던 때에 나는 아무 생각없이 공부했다.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나는 대학생들이 왜 저렇게 데모하는지도 잘 몰랐고 아무 관심도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거의 매일 밤 12시까지 학교에서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야간 자율학습을 했다.
그러다가 꿈에 그리던 대학생이 되었을 때, 이런 저런 서클에 가입하자, 선배들이 하나 둘 씩 세미나라면서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나 [거꾸로 읽는 세계사] 뭐 이런 종류의 책을 읽게 했다. 좀 혼란스러웠다.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이 죄다 잘못 알고 있는 거라고 하니까, 뭐가 뭔지.. 과연 옳은 게 무엇인지 혼동스러웠던 것 같다.
그러다가 우연히.. 정말 우연하게 아는 선배를 따라 4월인가 5월에 난곡동 재개발지대에 가게 되었다. 신림동에서 살고 있었기에.. 별로 멀지도 않았고(버스로 세 정거장인가??) 그냥 말 그대로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간 것 뿐이었다. 별로 높지 않은 산동네.. 산동네라고 하기엔 벌써 많은 집들이 허물어져 있어서.. 이런데 누가 사나? 했었는데.. 여기 저기서 사람들의 기척이 들렸고 반쯤 허물어진 집인데.. 그냥 박스 같은 걸로 대충 막아 놓고 사는 그 사람들의 모습이 참 안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쯤.. 어디선가.. "철거 용역이다.. 튀어!! "하는 얘기가 들렸다.
난 무조건 선배를 따라 뛰었다.. 잡히면 어떻게 되리란 게 본능적으로 느껴졌기에 난 죽도록 뛰었다.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나를 그런 위험한 곳으로 데리고 간 선배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왠지 눈물이 났다.
물론 그 뒤에도 나는 적극적으로 사회의 변혁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 되지는 못했지만, 자신만이 아니라, 더 큰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많은 사람들 덕분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해왔는지는 알고 있다.
어떻게 이루어온 민주주의인데..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면서 쟁취한 자유인데..
얼마전에 지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전두환이 왜 나쁘냐는 질문에 지금 막 20대가 된 사촌 동생이 "돈 많이 챙겼잖아요!"하더란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80년대를 겪지 않았기에.. 그런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충격적이었다. 정말 모르는구나..
교문에 전경이 늘 깔려 있고 캠퍼스 곳곳에 최루탄 냄새가 진동하고.. 같이 공부하던 친구가 붙잡혀가고.. 하던 일들을.. (그나마 난 89학번이니까... 그 이전 세대보다는 훨씬 더 나은 대학 시절을 보낸 것이긴 하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또 민주화나 자유 같은 가치가 거저 인간 본연의 권리로 주워진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투쟁과 헌신의 결과임을 어느 사이엔가 잊어버리고 점점 개인적으로 변해가는 나같은 사람에게도 참 고마운 책이다.
시골 출신 학생 영호와 그의 어머니의 눈을 통해 80년대 우리 선배 세대들이 군부 독재에 맞서서 처음 시작은 용기 있고, 뜻있는 몇몇 사람이었지만, 그들의 헌신이 어떻게 모두의 공감을 이끌어냈는지 잊어버리고 있던 역사적 진실을 재조명하고 있다.
무엇이 진정 정당한 민주주의인가.. 어떻게 해야 정당한 민주시민으로써 사회에 대해 책임을 지는 태도인가에 대한 뒷부분의 문제 제기도 많이 공감이 갔다.
어느 사이엔가 우리는 헌법에 보장된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가 다시 정권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제한되는 상황에 처해있다. 오늘 6.10 항쟁 기념 범국민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 광장으로 가는 길에 시청 공사을 위해 만들어 놓은 공사장 차벽에 누군가.. 바로 이 책 100도씨를 한장 한장 복사해서 쭈욱 붙여 놓았다.
왜 역사의 시계 바늘이 다시 거꾸로 돌고 있는 걸까? 정치에 대해, 사회 문제에 대해 관심조차 없었던 바로 나와 같은 사람 때문이라는 생각에 부끄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