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이방인
제임스 처치 지음, 박인용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당신이 사는 세상은 어떻소?”

“듣는 것이 곧 무기를 만드는 모루와 망치인 곳이지. 남의 말을 들음으로써 힘을 키우고 공격을 준비한다오. 누가 이야기하는 것을 귀 기울여 들으면 그 사람의 약점을 알아차릴 수 있소. 그를 죽일 수 있는 지도가 그려지는 셈이지. 그래서 우리들은 이야기를 하되, 중요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해요. 누가 들을지 모르기 때문이오.”

- 117p

원산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언젠가 사무실에서 원산 해수욕장에 대한 잡지 기사를 읽기는 했다. 사진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미소를 짓고 있었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잡지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항상 크게 미소를 짓는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그랬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가난했지만 아직 희망은 남아 있던 옛날 1960년대의 잡지였다.

- 153p

“너 자신이 죽을 수도 있고, 어리석게 너를 믿은 사람을 수용소에 보낼 수도 있는 거다. 왠지 아느냐? 네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눈치가 없기 때문이다. 내 손자가 그런 바보였다니…….”

(중략)

“네 주위를 돌아봐. 우리가 원했던 게 바로 이런 거냐? 이걸 위해 우리가 일본놈들과 싸웠고, 이걸 위해 네 아버지를 겨울날 아침 죽으러 내보냈다고 생각하느냐? 젠장, 네 주위를 돌아보라니까!”  


- 175p 
 

 

“우리가 처음부터 다른 나라에 비해 뒤떨어졌다고, 거지처럼 살았다고 믿는 사람들 때문이야.”

할아버지의 얼굴은 이렇게 말할 때는 붉게 달아올랐다.

“미국인도, 중국인도, 일본인의 도움 없이도 우리 민족은 수백 년 동안 혼자서 가구를 만들어 왔다. 아름다운 가구를 말이지. 미국이 아직 나무로 뒤덮여 있고 야만인들이 동물 가죽을 옷 삼아 걸치고 다닐 때야. 그들이 나무에 대해 무엇을 알 것이며, 나무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그것의 정령에게 노래를 불러 줄 수는 있겠느냐? 그들에게도 참된 목수가 있을까?”

- 223~224pp

난 북한을 전공했다. 그런 학과가 있었나 하는 분들이 언제나 있다. 그렇다. 있다. 97학번이다. 재수를 해서 들어갔으니 내 나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대략 알 것이다. 문민정부 그리고 국민의 정부(둘 다 헛소리다. 문민정부가 문민을 위해 한 일은 대략 난감에다, 한반도를 전쟁 바로 직전까지 몰고 갔을 뿐이다. 그리고 다들 아시다시피 지금의 경제 위기의 예고편인 IMF나 불러왔다. 참고로 박정희 사망 후 후계 체제를 고민하던 미국에게 김영삼은 “무능하다”고 이미 분석된 인물이었다. 어허 통재라. 국민의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국민의 정부가 뭔가? 제2의 건국? 그 전엔 국가가 없었나? 국가의 권력이 국민들을 통제하지 못했나? 우리는 너무나 과잉된 국민국가 아니었나?)를 거치면서, 특히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 정책으로 남북관계의 급진전이 이루어지면서 절감한, “도대체 북에 대해 아는 이들이 왜 이리 없어?”라는 인식으로 몇 개의 학교에서 북한학과라는 것을 만들었다. 난 그런 학교 중 하나의 제1기 학과생이었다. 지금은 그 학교가 하는 꼴이 너무 가관이라 “나 이 대학 나왔어요”라고 말하지 못한다. 권력 추종, 그리고 오로지 돈을 위한 ‘효율적’ 교육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역겨운 냄새가 나는 학교다. 하긴 뭐 원래 친일파가 만든 학교인데, 뭐 어디 가겠나?

암튼 학사 4년, 그리고 이후 한참 있다 다시 대학원(다른 학교)을 들어가 또 2년. 이렇게 공식적으로는 6년, 비공식적으로는 거의 10년 정도 북을 공부했다. 사실 공부 했다기보다 그냥 북에 대해 궁금한 부분을 타인의 도움과 혼자 삽질(앗. 최대의 욕설)로 점차 알아갔다고 할까. 물론 난 지금도 북을 공부한다. 그냥 관련 자료나 책을 읽고, 강연을 찾아가고, 기회가 닿는 대로 북을 방문하는 정도이지만 말이다.

여전히, 아직도 북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사실 한 국가에 대해 연구한다는 것은 일생을 바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게 그런 깜냥이 없음은 진작 알고 있다. 난 그냥 분단된 나머지 반에 대해 궁금했고, 그들을 알아야 우리를 알 수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 생각엔 아직 변함이 없다. 그런 면에서 참 이명박 정권은 안쓰러울 뿐이다. 똑바로 해 이것들아~

자, 오늘도 말이 많다. 책 이야기를 하자. 제임스 처치라는 가명으로 소설을 펴낸 저자는 전직 정보요원으로 수십 년간 북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활동한 인물이라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그 외에 저자에 대한 정보는 철저히 비밀이다. 그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에서 활동했던 경험과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남북한에서 근무하면서 쌓인 한국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책을 썼다고 밝혔다.

책은 북을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이다. 나름 시리즈물로 ‘평양의 이방인’(원제는 고려 호텔의 시체) 이후에도 주인공인 ‘오 수사관’을 등장시킨 2편의 소설을 더 출간했다. 현재는 4부를 준비 중이라 전해진다. 일단 이전에 북을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이 전무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이 나름 신선함을 주고 있긴 하다. 하지만 아쉬움은 감출 수 없다. “역시, 어쩔 수 없구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저자는 말한다. “북한에 가기 전에 북한에 대해 많은 것을 연구했지만 처음 북한에 도착하는 순간 내가 그동안 가졌던 지식과 고정관념이 다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북한에서는 마치 60~70년대의 한국에서처럼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순수함. 좋은 이야기다. 60년대, 70년대의 남한. 순수했지 싶다. 그는 한반도에 대한 강한 애정을 표현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불편하다. 왜 불편한지는 앞서 인용한 문장들을 조금만 주의 깊게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한 이른 바 서방세계에서 바라보는 북은 부시 정권이 만들어놓은 불량국가의 이미지 이전에 이미 어느 정도 만들어져 있었다. 소련의 위성국가,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세습 독재체제, 전체주의 국가 그리고 아무도 내막을 알지 못하는 신비의 나라.

굳이 오리엔탈리즘을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요즘은 사이드 이야기를 하면 오히려 옥시덴탈리즘을 들먹인다. 그것도 서양인들이 아닌 남한의 먹물들이 그렇게 들먹일 때는 정말, 휴우. 매월 26,800원을 주고 시원하게 때려주고 싶다.

북은 아직도 수수께끼에 둘러싸인 최후의 국가 중 하나다. 체제의 특성상 그런 것도 있었지만, 사실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북에 관심도 없었다. 핵을 만들어 세계를 놀라게 하니 그제야 ‘아, 맞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나라가 있었지’ 했을 정도? 물론 7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서방세계에서는 코리아 하면 남보다는 북을 먼저 떠올리긴 했다.

암튼 저자가 어느 정도 북에 대한 지식을 갖춘 것은 알겠다. 그리고 그래, 북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말도 믿어준다. 하지만 책은 북에 대한 호기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물론 첩보나 추리소설로서 재미가 아주 없다는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재미도 있었고, 시리즈로 계속 나온다면 뭐 읽어볼 의향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적어도 서구인들의 시각에서는 그렇다는 것. 북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거나 공부를 했던 이들에게 이 소설은 그야말로 “뭐야, 장난 하냐?”정도가 아닐까.

더구나 2006년 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됐을 때 미국 언론의 반응을 보면, “역시! 이러니 부시가 대북정책을 고따위로 했지!”라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부시 행정부 외교안보팀의 취침 전 필독서”(워싱턴 포스트), “지난 50년간 북한을 알기 위한 미국의 어떤 노력보다도 훌륭하다.”(뉴트 깅리치 전 미국 하원 의장, 작가), “부시 대통령도 읽어야 한다. 북한을 이해하고 싶다면.”(마이클 브린 전 가디언 서울 특파원), “북한이라는 퍼즐을 풀고 싶은 사람은 이 소설을 보라”(로이터). 이 정도 되면 정말 정말 막 가자는 것이요. ‘미친 거 아냐?’가 된다. 허구의 소설 하나가 지난 50년 간 북한을 알기 위한 미국의 어떤 노력보다 훌륭하단다. 아 통재라. 찌라시와 꼴통은 비단 세계 공통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된다.

결론을 짓자. 심심풀이로 보기엔 괜찮다. 난 어쩔 수 없이 북 관련 도서들이 나오면 일단 관심을 갖게 되고 거의 읽어보려 하지만, 그냥 북에 관심도 없는 분들이라면(과연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럴 수 있을까 싶지만) 안 보셔도 될 듯. 차라리 이응준의 『국가의 사생활』이 기대 만땅이다. 무지 공부하고 준비한 작품이라는데, 기대가 크다.

『평양의 이방인』. 한동안 북을 소재로 그야말로 소설을 쓰신 김진명 보다 일면 나은 부분도 있지만, 북에 대한 호기심 충족, 그리고 교묘히 숨어있는 북에 대한 서구의 오리엔탈리즘. 그것은 어쩔 수 없이 드러난다. 책을 덮으며, ‘그럭저럭 시간 때우기에는 좋네’라고 느꼈지만, 한 편으로는 ‘이런 책을 미국인들이 읽고 북을 판단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드는 것은 나 뿐만은 아닐 듯하다.

제발, 북을 무시하거나 비난하기 전에 제대로 좀 알려는 노력을 먼저 하자.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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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박꽃
나카가와 요이치 지음, 김난주 옮김 / 샘터사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그러나 그 때문에 저는 오늘에 이르는 20 몇 년 동안

그녀를 가슴에 새기는 운명을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생애를 걸었습니다.』

우리나라 가요의 내용을 채우는 99%는 무엇일까? 영화는? 아니 전 세계 모든 예술의 대부분의 주제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누구든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바로 사랑이다. 그렇다. 사랑. 흔하디흔한, 그러나 영원히 인간의 영혼을 지배할 것만 같은, 아니 인간의 존재 이유일 것 같은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은 언제나 우리 인간의 마음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사실 모든 인간이 저지르는 범죄에는 대부분 사랑이 그 원인인 경우이다. 물론 나머지 커다란 원인은 돈일 테지만. 아무튼 사랑은 언제나 인간을 죽일 수도 있고, 혹은 영원한 기쁨의 근원이 되어준다. 우리는 매일 매일 지겨운 사랑 타령을 듣지만, 결국 그 타령에 눈물 흘리고 미소 짓는다.

어린 시절, 사랑 타령만 늘어놓는 우리나라 가요가 정말 같잖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꼴에 나름 락 음악을 듣고, 직접 한다는 녀석이라, 흔하디흔한 사랑 타령을 늘어놓기는 정말 싫었다. 나는 무언가 다른 것을 노래하고 때로는 분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마침 내가 한창 듣던 밴드들의 노래는 다른 것을 말하고 있기도 했다. 전쟁의 부당함, 자본주의의 몰락, 인간성의 회복, 기아, 정치의 부패, 그리고 젊음이 진정 해야 하고 원해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뇌…. 물론 섹스와 마약도 빠지지 않았지만^^.

하지만 지금, 물론 아직도 나는 어리다고 믿지만, 나도 모르게 유치찬란한 유행가에 가슴이 움직이곤 한다. 물론 듣고 나면, ‘아, 정말 궁상을 떨어도….’ 라고 생각하게 하는 노래들이지만, 결국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눈물을 떨구는 나를 보게 된다. 그렇게 나도 인간이란 것을 느낀다. 우습지만….

그렇게 애절하다고 할 수도 없지만, 나에게도 나름 슬픈 사랑이 존재했다. 지금은 내 곁에 한 친구가 나와 함께 인생을 걸어가고 있지만, 정말 ‘이 사람 아니면 안되겠구나’ 느꼈던 사람이 있었다. 끝까지 지켜주겠다고 느낀 첫 사람이었고, 아무튼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처음은 역시 수많은 시행착오를 남긴 채, 그리고 상처를 남긴 채 끝나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시간이 가면 잊혀질 것이 뻔한 아린 상처를 남겼다. 많이 무뎌지기도 했다. 당연하지. 아직까지 상처만 끌어안고 산다면 그건 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일일테니….

결론은 암튼 난 이제 모든 노래를 편견 없이 듣는다. 물론! 그래도 쓰레기는 쓰레기고, 허접은 허접이다. 노래가 아닌 그 외적인 것으로 승부를 걸면서 뮤지션 혹은 가수라는 이름을 얻고자 하는 인간들을 경멸하고, 될 수 있는 한 잘 안 되길 바라는 사람 중 하나이다. 어쩔 수 없다. 난 사기 치는 인간들이 때로는 살인범보다 더 악질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될 수 있는 한 음악에는 그 어떤 기준도 세우지 않는다. 내가 듣고 느낄 수 있으면 인정하는 편이다.

말이 길었다. 연애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뻔한 스토리에 눈물 짜내게 하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 믿었다. 하지만 그 통속성으로 인간은 살아가고 있다. 부정할 수 없다. 아무리 고상한 척, 예술의 극한을 느끼는 척 해도, 바로 앞에 있는 그 혹은 그녀 때문에 생명을 거는 것이 인간 아닌가. 참고로 일본 소설인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보고, 그야말로 대성통곡을 하며 운 적이 있고, 영화 ‘선물’은 아마 백번도 더 봤겠지만, 지금도 볼 때마다 운다. 아주 주책을 남발하는 인생이다.

「하늘의 박꽃」은 요즘처럼 아내가 유혹하고, 불륜이 남발하는 시대에는 그야말로 식상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이 소설이 1938년에 발표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그 당시와 지금의 ‘사랑’이라는 의미의 차이는 어느 정도일까 생각하게 한다. 저자는 소설의 서두에 이렇게 말한다.

『믿기 어려우시겠지요. 믿는다는 것이 현대인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가장 믿기 어려운 일을 가장 열렬하게 믿는 이 광기에 가까운 이야기를 뭐라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한 가지 꿈에 저의 온 생애를 바쳤습니다.』

과연 얼마나 놀라운 사랑이길래 이처럼 ‘광기’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일까. 당시 소설이 발표된 직후 금기시되는 사랑을 관철하려는 주인공의 극단적인 행동 때문에 오히려 문단에 커다란 저항 내지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금기시되는 사랑. 글쎄. 요즘 과연 금기시되는 사랑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아, 물론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을 우리가 사랑으로 과연 부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당사자들이야 전혀 상관하지 않겠지만….

주인공은 우연히 알게 된 하숙집 딸을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연상이자 이미 결혼한, 그리고 아이도 있는 여자였다. 하지만 그녀를 향한 주인공의 사랑은 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와 맺어지기 위해 23년이란 세월을 인고하며 자신에게 채찍질을 한다. 도중에 이웃집 처녀와 인연을 맺기도 했지만, 그것은 그녀를 잊기 위한 그의 또 다른 사랑의 방법이었을 뿐. 오히려 그녀를 향한 마음은 더욱 애절해진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 새 그녀는 마흔을 훌쩍 넘긴 중년이 되고, 주인공도 더 이상 젊은이가 아닌 그 때, 변함없는 사랑을 확인한 그녀는 그에게 5년 후에 다시 찾아와 준다면 그때는 받아들이겠노라 말한다. 그 말에 모든 삶을 건 주인공은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오두막을 짓고 5년이란 시간을 견딘다. 그리고 약속한 5년이 지난 후 그녀에게 달려가는 주인공. 하지만….

먼저 책을 읽은 친구가 마지막에 나름대로의 반전이 있다고 귀띔을 해주었다. 그랬다. 나름대로의…. 하지만 그러한 반전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예정된 것이었다. 사랑은 언제나 그랬다. 결코 완성할 수 없는 영원의 수행일지 모른다. 이 작품을 혹평하던 당시 문단은 당시의 기준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사랑, 집착, 성애의 묘사를 꼬집었다. 하지만 성애라니, 집착이라니,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은 ‘이렇게 사랑에 헌신할 수 있는 이가 존재할까’이다. 젊은 시절 사랑한 그녀, 23년의 세월이 그녀를 늙고 볼품없이 만들었다. 하지만 그녀를 향한 마음은 결코 변할 수 없다. 나는 이 사랑에 생애를 걸었기 때문이다. 이런 바보 천치 같은 사랑이 아직도 존재하느냐 말이다.

카뮈는 이 작품을 두고 ‘의연하고 진실된 소설. 기교를 부리지 않음으로서 함축의 맛을 한층 더 살려 낸 작품’이라 평하고 있다. 진실이라는 말이 가슴에 꽂힌다. 쓰리다. 그리고 누구인지, 어디인지도, 언제인지도 모르는 그 무엇이 그리워진다.

누군가 사랑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기적이자, 가혹한 형벌이다. 경험한 이들이 많으리라. 하지만 그 지독한 고통의 형벌을 인간은 기꺼이 감수한다. 그것이 진실된 마음의 움직임이라면 감수할 가치가 있기에 그럴 것이다. 사랑의 고귀함을 믿고, 지금도 소주 한 잔이면 그리고 정말로 우연히 임창정의 ‘소주 한 잔’이 동시에 나온다면 눈물 글썽이며, 어딘가에 전화를 해야만 할 것 같은 이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한. 난 아직 사랑은 썩 괜찮은 녀석이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나 역시 썩 괜찮은 녀석이었다고 믿고 싶다.

지금 나처럼 여전히 사랑을 믿는 그런 바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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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그날 밤 아버지는 형에게 선언했다.

“너는 공군사관학교에 가야 되겠다.”

형이 말했다.

“요샌 육사가 뜨는데요.”

나는 폴짝폴짝 뛰며 소리쳤다.

“아버지 나는요? 나는 자라 뭐가 될까요?”

아버지는 큰 손바닥으로 내 얼굴을 밀어내며 말했다.

“너는 그냥 잘 자라거라. 그게 애들이 할 일이야.”

- 『스카이 콩콩』중에서 -


소설 읽기를 좋아하지만, 문학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는 나는 소설의 끝자락에 걸려 있는 비평가의 분석 글을 이중적인 감정을 가지고 읽곤 한다.

“뭐야, 어떻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따위 해석이 나올 수 있어?” 혹은

“아~! 그렇게 깊은 뜻이?”

가지고 나온 책이 갑자기 끝나버려, 남은 오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고민하던 중 들어간 서점에서 순전히 제목만 보고 집어든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 역시 책의 끝자락에 매달려 있는 김동식의 해설은 윗 두 가지 반응이 적절히 섞이도록 만들었다. 즉 내 나쁜 머리로 이해가 되기도 하고, 또 아니기도 했다는 말씀.

결론적으로 참 재미있게 읽었다. 페이지 넘기는 것이 아까워 조금씩 아껴 읽었으니, 작가의 구라 실력과 문장의 비범성은 인정해야겠다.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작인 『노크하지 않는 집』을 포함한 9편의 소설은 일단 지루하지 않다. ‘달려라, 아비’ ‘스카이 콩콩’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 등은 킥킥 거리며 읽었고, ‘나는 편의점에 간다’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 ‘영원한 화자’ ‘사랑의 인사’ ‘종이 물고기’ ‘노크하지 않는 집’은 짧은 내용임에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김애란 소설집을 읽고 느낀 하나의 심상은 외로움에 대한 순응 혹은 반항, 체념 그리고 사랑에 대한 미련이다.

김애란의 소설에는 ‘아버지’가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이 아버지들은 당최 온전하지가 못하다. 어머니가 처음 잠자리를 허락한 밤 피임약을 사러 신나게 달리던 아비는 그 날 밤의 역사로 딸(주인공)이 생기자 역시 신나게 달려 나가 결국 돌아오지 않는다. 순돌이 아빠처럼 전파상으로 수십 년을 보낸 아버지는 큰 아들이 안경을 쓰고 돌아다닌 것을 몇 년간 보았으면서도 정작 아들의 시력이 나쁜 걸 모른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딸네 집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는 하루 종일 방안에 처박혀 티브이만 본다. 하반신은 이불 속 어딘가에 묻은 채. 이 밖에도 놀이동산에서 무정하게 자식을 버리고 도망간 아비, 아들에게 복 요리를 사주며 그 날 밤, 잠을 자면 아들이 죽는다며 공갈치는 아비 등 평범하다고는 보기 어려운 아비들이 주구장창 등장한다.

하지만 주인공들은 이런 아비들을 증오하거나 혹은 극복하려 하지 않는다. 이들을 긍정하며, 결국 자기 자신을 긍정하게 된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비가 지금도 지구 어디에선가 달리고 있을 것이라 믿는 딸은 꿈속에서 아비에게 멋진 선글라스를 끼워준다. 맛나게 먹은 복 요리 때문에 밤을 새워야 하는 아들은 아버지에게 이발을 부탁하며, 자신의 탄생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티브이 중독자로 살아가는 아비에게 밖에 나가 노시라며, 딸은 티브이 위에 돈을 올려놓는다.

김동식은 해설을 통해 그렇다면 왜 나를 버린 아버지를 생명의 도약이라는 이미지와 결부시키는 것일까 물은 뒤 이렇게 답한다.

아버지가 예뻐서일 리가 없다. 아버지와 관련된 정신분석학적 드라마의 재현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그것은 삶의 고통을 긍정하지 않겠다는 숨은 의지이며, 생명의 고양을 꿈꾸는 자기 자신을 위한 배려이다.

이는 아버지에 대한 긍정을 통해 정신적 상처를 만들지 않으려는 즐거운 의지다. 그리고 자신의 무의식에 대한 자기 배려다.

김애란의 소설은 또한 철저히 타자화된 ‘나’에 집중한다.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나는 어떤 인간인가에 몰두한다. 낯선 나에 당황스러워 하고,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어디에도 없는 나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김동식은 김애란의 소설에서 ‘나’는 영원회귀와 생명의 도약이 잠재적으로 공존하는 장소의 이름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타자화된 나를 찾는 길은 다름 아닌 후기산업사회의 철저히 익명화된 세상에서 이루어진다. 편의점을 갈 때마다 자신이 그 어떤 고상한 사람이라도 되는 척 상상하는 주인공은 정작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는 이가 나타나면 당황하고 귀찮아하며, 거부한다. 철저히 상품으로 환산되는 세상에 자신 역시 하나의 상품처럼 눈에 띄고 싶지 않아서 일까, 아님 그 반대일까. 나는 편의점에 간다. 하지만 편의점에는 너무나도 많은 ‘나’가 있다.

「노크하지 않는 집」을 보자.

주인공 여자는 대학가 주변 건물 1.5층에 산다. 세면, 목욕, 용변, 빨래 등 주로 물과 관련된 일은 공동의 장소에서 해결을 하고 각자의 공간으로는 단칸방을 갖는다. 5개의 방에 5명의 여자들이 살고 있지만. 그들은 얼굴을 마주치는 일이 없다. 여자 주인공이 어느 날 돌아와보니 얼마 전에 잃어버린 구두가 방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누구의 짓일까. 다른 사람들의 방에 들어가 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두 가지의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첫 번째는 5개 방의 열쇠가 모두 같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각 방에 비치된 물품과 양태가 동일하다는 것이다.

나는 없다. 아니, 많은 나들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똑같은 생활용품들이 동일한 방식으로 배치되어 있는 5개의 방에서, 그녀가 본 것은 무엇일까. 1.5층 단칸방에서 혼자 살아가는 여성들이 속하게 될 계층과 거기에 상응하는 문화적 취향이 있을 따름이다. 달리 말하면 나는 실존이 아니다. 자신의 내부에 또는 과거의 시간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근원적인 실존은 없다. 김애란의 소설에 의하면, 나는 아비투스의 구성물이다. 나는 관찰하는 섬세한 시선으로도 존재하지만, 그와 동시에 특정한 계층의 아비투스로서 공간적으로 발현된다. 나는 안과 밖에 동시에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소설에서 관찰의 시선이 갖는 지위는 대단히 압도적이다. 하지만 김애란의 작품들은 관찰자의 시선이 갖는 계급성을 전복적으로 탈은폐한다.

장기하와 얼굴들이 부른 ‘싸구려 커피’의 명 가사가 떠오른다. “이젠 내가 장판인지, 장판이 난지도 몰라”. 가끔씩 느낄 때가 있지 않은가. 내가 누구인지. 아님 누가 나인지.

단편 소설이 갖는 미덕은 비교적 짧게 감동을 얻을 수 있다는 편리함과 다양한 에피소드를 한꺼번에 경험할 수 있다는 점 아닐까. 성석제의 글 역시 장편도 좋지만 단편도 쏠쏠하다.

그러한 측면에서 김애란의 소설들은 나에겐 의외에 소득이었다. 그리고 즐거웠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사는 이곳에서 “그 중 하나”로 살아가는 내가, 가끔은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내가 무엇인지, 무엇이 나란 존재인지 고민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무모가 비관과 자기 체념이 아닌 긍정과 아이러니의 즐거운 회귀가 될 수 있다면, 썩 유쾌하지 않을까.

유쾌한 경험을 하도록 이끌어준 김애란에게 감사한다. 그가 유쾌한 ‘뒤끝’이 있는 작가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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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09-08-23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뷰를 보니까 스카이 콩콩 을 다시 읽고 싶은 충동이 드네요 ^^

메틀키드 2009-08-24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핫...감사합니다.^^
 
재일동포 1세, 기억의 저편 - 사진으로 기록한 재일동포 1세들의 마지막 초상
이붕언 지음, 윤상인 옮김 / 동아시아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자식들은 개처럼 키웠어. 개라도 지금 그렇게 키우면 살지 못할 거야.”

- 변봉석(여) / 1923년 3월 5일생 / 경상남도 출신 / 7남매 / 도쿄 미나토 구 시바우라 거주

큰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이 되던 봄에 남편이 폐암으로 세상을 떴다. 여섯 아이를 굶기지 않기 위해 그녀는 닥치는 대로 일했다. 매트나 의자, 이불에 솜을 넣는 일, 폐품 수집 따위.

“애들이 작을 때는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아이에게 ‘죽어’라고 말했지. 울면 일 못하잖아.  니가 죽으면 내가 편해지니까 죽어! 했지. 정말이었어.”

큰아들은 동생들을 보살피면서 그녀가 모아온 폐품을 분류하여 취급점에 가지고 갔다. 어느 날 큰 아들이 말했다.

“어머니, 우리 집은 왜 가난한 거야! 돈 좀 있었으면…….”

“아래만 쳐다보고 있으면 좋은 일도 있단다.”

“어머니, 아무리 아래만 쳐다봐도 돈은 없었어.”

- 이태숙(여) / 1915년 4월 13일 출생 / 경상북도 군위군 출신 / 4남매 / 교토 시 미나미 구 거주

“아들 둘은 일본에 있지만, 딸 넷 중에서 둘은 북한에 가버렸다오. 여기서 차에 올라 멀리 가는 것을 보는 것이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는지……. 그래서 항구까지는 도저히 못 갔고. 그 두 아이를 언제가 되면 만날 수 있을지, 그게 제일 가슴 아프다오.”

- 이갑년(여) / 1915년 10월 14일 출생 / 경상북도 의성군 출신 / 5남매 / 이와테 현 시즈쿠이시 정 거주

“민단 설립했을 때, 북한 사람들에게 끌려가 죽을 뻔했지만 내가 그렇게 간단히 죽을 사람인가. 고치에 조직 폭력단 300명 정도 있지만 그것들은 전부 잡아놨지. 내게는 감히 뭐라고 못해. 싸움은 정말 많이 했어! 엄청 셌지. 좋은 시절이었어. 내가 죽는 걸 기다리지 마라. 니들이 먼저 뒈진다. 난 이백 살까지 간다.”

- 김중권(남) / 1919년 11월 11일 출생 / 경상북도 영양군 출신 / 4남매 / 고치 현 고치 시 거주

“옛날에 ‘보리밥이 밥이냐, 정어리가 생선이냐’ ‘조선인이 인간이냐, 보리밥이 밥이냐’는 말이 있었다오. 조선인은 개나 매한가지로 무시하고 괴롭히는 것이 당연하다는 선입견이 일본인들에게 있었지. 나를 그렇게 보더라도 아무렇지도 않아. 일본에 와서 엄청나게 괴롭힘을 당했거든. 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조선인을 싫어했는지 모르겠어. 참 웃기는 곳이야, 일본이란 나라는.”

- 박수엽(남) / 1920년 9월 5일 출생 / 경상북도 의성군 출신 / 4남매 / 기후 현 기후 시 거주

“자전거가 넘어져서 소 내장이 길바닥에 죄다 쏟아진 거야. 근데 창피해서 당최 주울 수가 있어야지. 그래도 흙바닥에서 소 내장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서 하나하나 핀셋으로 돌멩이를 떼어낸 다음 팔았지.”

- 정증순(여) / 1925년 9월 8일 출생 / 경상남도 함안군 출신 / 4자매 / 사가 현 사가 시 혼조마치 거주

“나이 오십이 되어서 태어난 고향 집에 갔을 때, 내 어릴 때 자주 돌봐줬던 사람에게서 왜 한국말을 못하느냐, 왜 이렇게 나이를 먹었느냐는 말을 들은 게 지금도…….”

- 김봉도(남) / 1924년 11월 27일 출생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출신 / 5남매 / 오이타 현 오이타 시 다이지 리 거주

“21년 동안이나 못 봤던 어머니와 간신히 만날 수 있게 됐을 때 여권을 신청해 한국에 건너가려던 차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편지를 받았어요. 정말이지 말도 안 나오고……. 그래도 고향에 갔더니 지팡이를 짚은 아버지가 내 얼굴을 물끄러미 보시더니 너 용케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구나! 하시대…….”

- 김달룡(여) / 1924년 3월 27일 출생 / 경상남도 거창군 출신 / 4남매 / 구마모토 현 구마모토 시 미즈신치 거주

이렇게 한 장 한 장 넘기기 힘들었던 책이 근래에 있었나 싶다. 아흔 한 명의 재일동포1세의 삶. 2~3페이지 당 1명씩 담고 있는 이 책은 그야말로 고통과 눈물의 시대를 온 몸으로 살아냈던 그들에 대한 담담한 보고서이자, 마지막 기록이다. 

2001년부터 일본 전역을 돌며 생존해 있는 재일동포 1세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사진과 글로 기록한 저자는 재일동포 3세 사진작가이다. 그는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윤상인 교수에게 “재일의 역사를 남기고 싶었다. 1세가 사라지기 전에 기록해야 했다”고 자신의 의도를 밝혔다. 하지만 이 책이 한국어로 소개된 지금, 인터뷰에 응했던 네 명 중 한 명은 이미 세상을 등졌다고 전한다.

윤상인 교수는 저자 이붕언의 취재 과정을 이렇게 소개한다.  


“5년 동안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종단했다. 하루에 한 명씩 만나 반나절이나 한나절 이야기를 들었다. 이렇게 해서 91명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만난 사람은 100명 보다 많았다. 아예 면담을 거절하거나 면담 후 수록을 거부한 사람도 있었다. 수록은 하더라도 사진 게재만큼은 안 된다는 사람도 있었다. 오키나와에서 만난 세 명 모두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고통의 기억이 크고 깊을수록 말문은 굳게 닫히기 쉽다. 시간을 되돌리는 것 자체가 공포인 것이다. 혹은 정치적 입장 때문에 과거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일본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자손들에 대한 배려에서 이제와서 스스로를 드러내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역자는 재일 1세를 “나라 잃은 시절에 일본에 건너가 전란을 겪고, 전후의 혼란기에 일본 땅에 머무르며 정주의 길을 일궈 나간 사람들”이라고 정의한다.

나라 잃은 땅에서 태어나 강제로, 또는 먹고 살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이들. 해방이 되어도 차마 살던 터전을 버리지 못해 남은 이들. 혹은 여러 가지 운명의 장난으로 고향을 갈 수 없었던 이들. 이들은 전후 혼란기의 폐허만 남은 일본에서 그야말로 잡초와 같은 생명력으로 억척같이 삶을 일구어 나갔다.

현재 재일 한국인은 약 60만 명으로 추산된다. 재일 한국인은 여전히 일본 내 최대 소수민족 집단이고, 재일 3세와 4세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역자는 경제 선진국 일본에서 태어나 마이너리티로서 정체성을 일궈 나가며 정주의 길을 걸어야 하는 ‘조선인’의 후예들이 언젠가부터 스스로를 ‘자이니치(在日)’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개만도 못한 조센징이란 차별과 억압 속에 반세기를 강인하게 버텨 온 재일1세들. 그들에 대한 온전한 평가는 일본에서도, 그리고 조국이라 떠드는 한국에서도 여지껏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반도의 분단으로 일본 내 동포들마저 분단시켜버린 과거 양 정권의 오만과 죄악에 대해서 추호의 사죄도 없다. 일본 국민과 같이 똑같은 납세의 의무를 지면서도, 정작 투표권조차 가질 수 없는 3등 국민으로 살아가는 재일동포들. 그들에 대한 우리들의 기억은 무엇인가. 나라라는 것이 힘이 없어 강제로, 또는 어쩔 수 없이 건너간 일본에서 살아온 그들에게 우리는 따뜻한 관심을 보인 적이 있었는가. 일본의 재일 동포 차별에 대해서는 분노하면서도 우리는 ‘우토로’ 사람들의 고통을, ‘조선학교’에 다니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 대한 차별과 모욕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여 왔는가.

역자의 말처럼 재일1세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 기술에서 소외되어온 존재다. 식민지 지배/피지배 역사에 관한 진술 체계 속에 그들의 목소리가 스며들 여지는 없었다. 광복 이전에는 일본의 자민족 우월주의에 기초한 식민 담론을 통해 차별 대상으로서의 자신을 돌아보았고, 광복 이후에는 한국 민족주의의 배타적 저항 담론 속에서 배척 혹은 무시되는 고립무원의 정체성을 안고 살아야 했다.

“제국은 악이며 민족은 선이라는 선험적 공리가 작동하는 ‘제국과 민족의 이분법’(임지현)속에서 그들의 존재는 경원의 대상이 되었다. 제국 일본의 패망 후, 조국에 귀환하기를 거부했거나 귀환 후에 또다시 밀항선을 타고 민족의 땅을 버린 그들은 오히려 민족 수난의 지배적 기억을 훼손하거나 희석시키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일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제국 일본의 기억을 ‘껄끄러운’ 형태로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그들의 삶이 일본의 근대사 기술에서 챙겨질 여지도 거의 없었다. 역사 서술의 주체 세력 입장에서 볼 때, 대부분 무학에 빈곤했던 이들은 계급적 약자였으며, 영토 밖에 거주하는 이들은 공간적 약자였고, 일본 문화에 어설픈 형태로 동화된 이들은 문화적 약자였다. 무엇보다도 민족적 범주의 변방에 위치한 그들은 민족적 약자였다.”

민족주의에 대한 여러 가지 담론들이 나올 때마다 개인적으로 생각나는 것은 우습게도 “그럼 난 민족 구성원 중 하나 인거야, 개인인거야? 난 한국인인거야, 조선인인거야? 썅, 나는 사람인거야 조직 세포인 거야!?” 이딴 식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결국 분노하게 된다.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국가라는 폭력집단이 행해온 무수히 많은 범죄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의 특징 중 하나이다. 원시적이고, 매우 변태적인, 그리고 때로는 파쇼적인 냄새가 풀풀 나는 장면이다.

이들의 삶은 근대 한반도를 지나온 모든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고통과 눈물과 영욕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그동안 이들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려는 노력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대적인 북송작업을 통해 재일 동포들에게 조국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각인시키려 했던 북한 역시, 이건 따로 다룰 시간이 있겠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국 정부의 모습은 더욱 가관이었다. 굴욕적인 한일 회담이후 현재의 정신대 문제, 교과서 문제, 독도 문제에 이르기까지 한국 정부는 단 한 번도 일본에게 당당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탄생이 친일파의 계승이라는 뼈아픈, 그리고 수치스러운 역사와 함께 엮여있으니 어쩜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스포츠나 그밖에 한류 따위를 들먹이며, 국민들에겐 민족주의 감정을 일으키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악용한다. 아쉽지만 그동안 한국 정부의 수준은 이 정도로 형편없었다.

이런 자격미달 국가에게 일본 본토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재일 동포들은 관심의 대상이기보다는 언제나 이용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들의 삶을 진지하게 걱정하고 그들의 아픔을 생각하는 모습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기대할 수 없다. 재일 동포 1세의 삶을 조명하는 이러한 책들이 결국 같은 재일 동포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91명의 삶 하나하나가 가슴 묵직하게 다가온다. 힘겹게 페이지를 넘기고 또 넘겼다. 어느 장면에선 눈물이 맺히고, 어느 장면에선 부끄러움에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결국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의무감 비슷한 감정까지 일었다. 나는 도대체 이들에게 무엇을 생각하고 기억했던 것일까.

한류가 일본에서 돌풍이라고 주접떨던 시절, 물론 지금도 그딴 삽질은 현재진행형이지만, 우리는 정작 일본에서 살고 있는 동포들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한류 열풍으로 그들도 가슴 펴고 살지 않을까 따위에 한심한 생각뿐이었다.

여전히 주제 파악 못하고, 깝죽거리는 수많은 한반도 조센징의 한 사람으로서 반세기를 살아낸 재일동포 1세 분들에게 죄스러움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을 보다 많은 이들이 읽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이 분들에겐 우리의 눈물조차 가소롭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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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건너는 법 - 서경식의 심야통신
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 / 한겨레출판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생존자들의 증언은 존중받지 못했다. 프리모 레비들, 아우슈비츠 생존자들만이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살아 있는 증인들은 존중받기는커녕 “돈 타낼 목적으로 거짓말하고 있다” 따위의 욕까지 먹고 있다. 일본에서는 최근 10년간 반동화가 급격히 진행돼 과거 침략이나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려는 우파세력이 정권을 쥐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공공연하게 핵무장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지금이야말로 최대한의 예민함을 발휘해 증인들이 미래를 위해 울리는 ‘불길한 경종’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 260p,「참극 생존자들이 세상을 저버리는 이유」, 2006 -


지난 4월 5일 북의 장거리 로켓 ‘은하2호’의 발사 이후 일본이 보인 반응은 패닉에 가까웠다. 자국의 영공 위로 로켓이 날아갔으니 단순히 넘어갈 문제는 분명 아니었지만, 내가 말하는 패닉은 겁나고 무서워서가 아니라 너무나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의 일반 국민들은 그동안 일본 정부가 세뇌 시키다시피 한 ‘북한 공포증’으로 정말 무서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북의 로켓 발사에 매우 즐거워하고 있다. 겉으로 내색은 안 하지만 말이다.


일본은 그동안 전력을 보유하지 않고, 교전권을 포기한다는 헌법 제9조를 수정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헌법 9조는 서경식 선생의 말대로 일본이 과거에 저지른 침략전쟁을 두 번 다시 하지 않겠다는 국제적 공약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선생은 일본이 이 헌법 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다시금 일본이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에게 북한의 존재는 한없이 고마울 수밖에 없다.


서경식 선생의 책은 지난번에도 다룬 바 있다. 그는 제일조선인 2세로서 자신이 살아온 일본과 자신의 조국인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부단히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다. 책은 그런 그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한겨레신문에 연재했던 칼럼 ‘심야통신’을 묶은 것이다. 칼럼을 통해 그는 디아스포라적 상상력으로 우리의 역사와 현재, 일본을 비롯한 동북아 나아가 전 세계의 평화를 염원하고 있다.


그의 두 형이 군사정권 시절 조작된 시국사건에 연루되어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선생은 그러한 자신의 형들의 경험을 통해 조국의 실체를 깨달을 수 있었고, 자신과 같은 재일조선인들의 삶, 그들을 마치 없는 이들처럼 여기는 조국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프리모 레비 등 역사의 참혹한 현장을 증언한 이들의 죽음을 통해 과거의 올바른 인식과 용서가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디아스포라라는 단어를 우리 사회가 비로소 인식하게 된 계기를 만드는데 많은 역할을 한 선생은 디아스포라적 관점, 마이너리티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 국가에 많은 중요성을 부여한다. 소수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곧 다수의 권리마저 박탈하게 된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우리는 내 일이 아니라고 다른 이들의 고통에 눈을 감지만, 곧 그 ‘다른 이’들은 내 자신이 되었음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소수의 고통에 눈을 돌리고 그들의 고통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역사는 단지 역사일 뿐이라 여기고, 그 역사가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있다는 것은 망각한다. 아울러 이른 바 주류가 만들어 놓은 단 하나의 역사에게 모든 정당성과 권력을 넘겨주고 그밖에 것들은 철저히 무시하거나 지워버린다.

우리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일본이 항복한 사실에 좋아하지만 원폭으로 일본인들과 함께 숨져간 3만이 넘는 재일동포들은 잊는다.

위안부 등 일본의 잔악한 만행에 대해서는 분노의 목소리를 높이지만 베트남에서 우리 군대가 저지른 참혹한 만행은 잊으려 한다.

우리는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그것에게만 역사라는 이름을 붙이려 한다. 참으로 가증스럽고, 이기적인 행동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주류의 역사만이 역사가 될 수는. 택도 없는 소리다. 역사는 모든 동시대인들이 겪었던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서경식 선생의 글을 읽으면 이 점이 명확해진다. 우리가 무엇을 기억해야 하고 누구를 기려야 하는지, 또한 우리에게 강압된 역사, 왜곡된 역사를 주입하려 하는 주체들이 누구인지, 정작 우리는 어떠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 그의 글은 알려준다. 이것이 불편하지만 내가 그의 글을 꾸준히 읽는 이유이다.


일본의 온갖 만행 중 가장 추악한 것은 자신들의 과거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전무하다는 사실일 것이다. 일본은 단 한 번도 과거 자신들로 인해 고통 받은 이들에게 진실된 사죄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시대의 증인들이 자연적으로 소멸해감에 따라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단언하건대 이처럼 일본이 과거에 대한 화해를 진심으로, 온전히 하지 못한다면 동북아의 평화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일본만이 아니다. 정작 우리도 우리의 역사를 맘대로 왜곡하고 일방화하려 한다. 한 줌도 안 되는 권력자들의 짓이다. 서경식 선생은 일본 국민들이 일본 정부와 우익 세력으로 인해 점차적으로 망각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고 지적하지만, 그것은 비단 일본 국민들만이 아님을 요즘 소름이 돋을 만치 느끼고 있다.


한국 야구의 선전이 그리고 김연아의 우승이 눈물겹게 아름답고 자랑스럽지만, 오늘도 힘들게 하루하루 삶을 이어가는 이웃들의 이야기는 이미 들리지 않는다. 정부는 어느 순간 슬쩍 태극기를 시내 곳곳에 매달아두고 있다. 꼭 국경일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태극기는 우리에게 애국심을 강요하고, 국가에 대한 충성을 현 정권에 대한 충성으로 연결시키려 한다. 치졸한 짓이다. 국가에 대한 애국심 역시 실체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알지 않는가. 아직도 이승만을 국부라 여기는 이들이 존재하는 지금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을 사랑하는 것을, 국가는 자신에 대한 충성, 사랑으로 환원시키려 한다. 그리고 그러한 짓거리에 국민들은 알든 모르든 함께 장단을 맞춘다. 북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보이지 않고, PSI에 전격 참여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행동이 정의인 것으로 판단한다. 우리 역시 망각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시원한 술 한 잔이 그리운 목마른 세상이다. 단순히 노래 가사로 들리지 않는 요즘이다. 서경식 선생과 같이 시대의 어두움을 경계하고 역사의 망각을 거부하는 이들의 노력은 오늘도 지속되고 있다. 거대한 권력에 맞서 싸우는 이들의 모습은 때문에 눈물겹고 때론 전사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 시대의 전사는 수많은 민중이다. 이웃들과 함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것이 이들이 원하는 소박한 꿈이다. 이러한 꿈을 짓밟으려 하는 것이 누구인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들은 우리에게 “다 잘 될 거야”라고 떠든다. 그리고 역시나 닥치고 하라는 대로 하라고 윽박지른다. 그 다 잘 될 거라는 공익광고를 족벌 체제를 갖춘 위대하신 삼성이 협찬하는 우스운 나라가 한국이다.


때문에 이 우스운 나라에서 서경식 선생과 같은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너무나 고마운 일이다. 그리고 나 역시 적어도 스스로 부끄러운 인간이 되지는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관심이 커다란 죄악이 되어가는 시대다. 아니 언제나 그랬다. 무관심으로 자신을 합리화하는 치졸한 짓은 하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스포츠 열풍이라고 떠든다. 대한민국을 이끈다는 이들의 어처구니없는 작태에 질려버린 국민들은 스포츠에 열광한다. 스포츠를 통해서라도 현실의 고통을 잊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국가는 그러한 국민들의 무관심에 오히려 고마워하고 있다. 전두환이 프로 야구를 만든 것은 그에겐 너무나 적절한 행동이었다. 지금도 우리는 현실에 질려 다른 것들을 찾는다. 연예인들의 쓸데없는 잡담에 킬킬거리고, 조금만 심각한 내용이라도 나온다면 이내 귀찮아한다. 이 더러운 세상 어차피 어찌 할 수 없다고 체념한다. 이 우울한 시대를 진정 건너는 법은 무엇일까.


서경식 선생의 책은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한다. 그 정도로 책에 대한 선생에 대한 믿음이 나에겐 있다. 책을 옮긴 한겨레 한승동 기자에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기구한 그의 전체 가족사가 우리 민족 현대사의 일부였다. 아니, 일부라기보다는 그 축약판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1000년 동안이나 들판에서 벌어지는 중생들의 삶을 지켜봐온” 말없는 관촉사 미륵보살입상처럼 그는 어느 날 문득 그 모든 것의 본질을 한순간에 파악해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디아스포라적 상황이야말로 그에겐 오히려 창조와 자기확장의 절호의 발판, 무한히 열린 가능성의 장이 됐다. 자신의 의지로 그렇게 만들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의 세계는 북조선(북한이 아니다. 우리는 아직도 미완의 조선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북은 또 하나의 한국이 아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유럽, 미국으로 확장되고 계속 깊어지고 있다. 한반도 남쪽에 갇혀 있는 우리야말로 눈앞에 보이는 게 전부인 양 착각과 환상 속을 헤매는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닌가.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강자들의 게임이 빚어낸 아주 아슬아슬한 균형 위에서 하루살이처럼 파닥거리고 있다. 제대로 알고 대처하지 않으면 참혹했던 과오는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 서 교수의 글은 끊임없이 그걸 일깨운다.


보수 정권이든 개혁 정권이든 공통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은 국가 구성원들의 안위와 행복을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국가 전체 구성원들이 골고루 행복해질 수 있도록 국가 운영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는 일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 정부의 모습을 보면 당장 5년 후의 미래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는 오직 현재만을 위한(그것도 제대로 하는지는 의심스러운) 질주를 계속한다. 성찰 없는 대북 정책은 한반도 정세를 더욱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 입만 열면 주절거리는 국제적 협력 강화는 정작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역사의식이 없는 이들이 국가를 이끌게 되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평화를 위해서는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 절실하다고 선생은 말한다. 저 멀리 팔레스타인에서, 이라크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고통 받고 있는 아이들의 눈물을 우리 아이들의 눈물과 다르게 생각하지 않을 때 진정 평화는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용서라는 말을 감히 입에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나라 사람들은 역사의 고통을 잊어버린 걸까? 고통을 잊지 않는다는 건 과거에 얽매여 가해자를 계속 원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의 확실한 평화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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