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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박꽃
나카가와 요이치 지음, 김난주 옮김 / 샘터사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그러나 그 때문에 저는 오늘에 이르는 20 몇 년 동안
그녀를 가슴에 새기는 운명을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생애를 걸었습니다.』
우리나라 가요의 내용을 채우는 99%는 무엇일까? 영화는? 아니 전 세계 모든 예술의 대부분의 주제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누구든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바로 사랑이다. 그렇다. 사랑. 흔하디흔한, 그러나 영원히 인간의 영혼을 지배할 것만 같은, 아니 인간의 존재 이유일 것 같은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은 언제나 우리 인간의 마음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사실 모든 인간이 저지르는 범죄에는 대부분 사랑이 그 원인인 경우이다. 물론 나머지 커다란 원인은 돈일 테지만. 아무튼 사랑은 언제나 인간을 죽일 수도 있고, 혹은 영원한 기쁨의 근원이 되어준다. 우리는 매일 매일 지겨운 사랑 타령을 듣지만, 결국 그 타령에 눈물 흘리고 미소 짓는다.
어린 시절, 사랑 타령만 늘어놓는 우리나라 가요가 정말 같잖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꼴에 나름 락 음악을 듣고, 직접 한다는 녀석이라, 흔하디흔한 사랑 타령을 늘어놓기는 정말 싫었다. 나는 무언가 다른 것을 노래하고 때로는 분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마침 내가 한창 듣던 밴드들의 노래는 다른 것을 말하고 있기도 했다. 전쟁의 부당함, 자본주의의 몰락, 인간성의 회복, 기아, 정치의 부패, 그리고 젊음이 진정 해야 하고 원해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뇌…. 물론 섹스와 마약도 빠지지 않았지만^^.
하지만 지금, 물론 아직도 나는 어리다고 믿지만, 나도 모르게 유치찬란한 유행가에 가슴이 움직이곤 한다. 물론 듣고 나면, ‘아, 정말 궁상을 떨어도….’ 라고 생각하게 하는 노래들이지만, 결국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눈물을 떨구는 나를 보게 된다. 그렇게 나도 인간이란 것을 느낀다. 우습지만….
그렇게 애절하다고 할 수도 없지만, 나에게도 나름 슬픈 사랑이 존재했다. 지금은 내 곁에 한 친구가 나와 함께 인생을 걸어가고 있지만, 정말 ‘이 사람 아니면 안되겠구나’ 느꼈던 사람이 있었다. 끝까지 지켜주겠다고 느낀 첫 사람이었고, 아무튼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처음은 역시 수많은 시행착오를 남긴 채, 그리고 상처를 남긴 채 끝나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시간이 가면 잊혀질 것이 뻔한 아린 상처를 남겼다. 많이 무뎌지기도 했다. 당연하지. 아직까지 상처만 끌어안고 산다면 그건 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일일테니….
결론은 암튼 난 이제 모든 노래를 편견 없이 듣는다. 물론! 그래도 쓰레기는 쓰레기고, 허접은 허접이다. 노래가 아닌 그 외적인 것으로 승부를 걸면서 뮤지션 혹은 가수라는 이름을 얻고자 하는 인간들을 경멸하고, 될 수 있는 한 잘 안 되길 바라는 사람 중 하나이다. 어쩔 수 없다. 난 사기 치는 인간들이 때로는 살인범보다 더 악질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될 수 있는 한 음악에는 그 어떤 기준도 세우지 않는다. 내가 듣고 느낄 수 있으면 인정하는 편이다.
말이 길었다. 연애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뻔한 스토리에 눈물 짜내게 하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 믿었다. 하지만 그 통속성으로 인간은 살아가고 있다. 부정할 수 없다. 아무리 고상한 척, 예술의 극한을 느끼는 척 해도, 바로 앞에 있는 그 혹은 그녀 때문에 생명을 거는 것이 인간 아닌가. 참고로 일본 소설인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보고, 그야말로 대성통곡을 하며 운 적이 있고, 영화 ‘선물’은 아마 백번도 더 봤겠지만, 지금도 볼 때마다 운다. 아주 주책을 남발하는 인생이다.
「하늘의 박꽃」은 요즘처럼 아내가 유혹하고, 불륜이 남발하는 시대에는 그야말로 식상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이 소설이 1938년에 발표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그 당시와 지금의 ‘사랑’이라는 의미의 차이는 어느 정도일까 생각하게 한다. 저자는 소설의 서두에 이렇게 말한다.
『믿기 어려우시겠지요. 믿는다는 것이 현대인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가장 믿기 어려운 일을 가장 열렬하게 믿는 이 광기에 가까운 이야기를 뭐라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한 가지 꿈에 저의 온 생애를 바쳤습니다.』
과연 얼마나 놀라운 사랑이길래 이처럼 ‘광기’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일까. 당시 소설이 발표된 직후 금기시되는 사랑을 관철하려는 주인공의 극단적인 행동 때문에 오히려 문단에 커다란 저항 내지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금기시되는 사랑. 글쎄. 요즘 과연 금기시되는 사랑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아, 물론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을 우리가 사랑으로 과연 부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당사자들이야 전혀 상관하지 않겠지만….
주인공은 우연히 알게 된 하숙집 딸을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연상이자 이미 결혼한, 그리고 아이도 있는 여자였다. 하지만 그녀를 향한 주인공의 사랑은 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와 맺어지기 위해 23년이란 세월을 인고하며 자신에게 채찍질을 한다. 도중에 이웃집 처녀와 인연을 맺기도 했지만, 그것은 그녀를 잊기 위한 그의 또 다른 사랑의 방법이었을 뿐. 오히려 그녀를 향한 마음은 더욱 애절해진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 새 그녀는 마흔을 훌쩍 넘긴 중년이 되고, 주인공도 더 이상 젊은이가 아닌 그 때, 변함없는 사랑을 확인한 그녀는 그에게 5년 후에 다시 찾아와 준다면 그때는 받아들이겠노라 말한다. 그 말에 모든 삶을 건 주인공은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오두막을 짓고 5년이란 시간을 견딘다. 그리고 약속한 5년이 지난 후 그녀에게 달려가는 주인공. 하지만….
먼저 책을 읽은 친구가 마지막에 나름대로의 반전이 있다고 귀띔을 해주었다. 그랬다. 나름대로의…. 하지만 그러한 반전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예정된 것이었다. 사랑은 언제나 그랬다. 결코 완성할 수 없는 영원의 수행일지 모른다. 이 작품을 혹평하던 당시 문단은 당시의 기준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사랑, 집착, 성애의 묘사를 꼬집었다. 하지만 성애라니, 집착이라니,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은 ‘이렇게 사랑에 헌신할 수 있는 이가 존재할까’이다. 젊은 시절 사랑한 그녀, 23년의 세월이 그녀를 늙고 볼품없이 만들었다. 하지만 그녀를 향한 마음은 결코 변할 수 없다. 나는 이 사랑에 생애를 걸었기 때문이다. 이런 바보 천치 같은 사랑이 아직도 존재하느냐 말이다.
카뮈는 이 작품을 두고 ‘의연하고 진실된 소설. 기교를 부리지 않음으로서 함축의 맛을 한층 더 살려 낸 작품’이라 평하고 있다. 진실이라는 말이 가슴에 꽂힌다. 쓰리다. 그리고 누구인지, 어디인지도, 언제인지도 모르는 그 무엇이 그리워진다.
누군가 사랑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기적이자, 가혹한 형벌이다. 경험한 이들이 많으리라. 하지만 그 지독한 고통의 형벌을 인간은 기꺼이 감수한다. 그것이 진실된 마음의 움직임이라면 감수할 가치가 있기에 그럴 것이다. 사랑의 고귀함을 믿고, 지금도 소주 한 잔이면 그리고 정말로 우연히 임창정의 ‘소주 한 잔’이 동시에 나온다면 눈물 글썽이며, 어딘가에 전화를 해야만 할 것 같은 이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한. 난 아직 사랑은 썩 괜찮은 녀석이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나 역시 썩 괜찮은 녀석이었다고 믿고 싶다.
지금 나처럼 여전히 사랑을 믿는 그런 바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