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1세, 기억의 저편 - 사진으로 기록한 재일동포 1세들의 마지막 초상
이붕언 지음, 윤상인 옮김 / 동아시아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자식들은 개처럼 키웠어. 개라도 지금 그렇게 키우면 살지 못할 거야.”

- 변봉석(여) / 1923년 3월 5일생 / 경상남도 출신 / 7남매 / 도쿄 미나토 구 시바우라 거주

큰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이 되던 봄에 남편이 폐암으로 세상을 떴다. 여섯 아이를 굶기지 않기 위해 그녀는 닥치는 대로 일했다. 매트나 의자, 이불에 솜을 넣는 일, 폐품 수집 따위.

“애들이 작을 때는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아이에게 ‘죽어’라고 말했지. 울면 일 못하잖아.  니가 죽으면 내가 편해지니까 죽어! 했지. 정말이었어.”

큰아들은 동생들을 보살피면서 그녀가 모아온 폐품을 분류하여 취급점에 가지고 갔다. 어느 날 큰 아들이 말했다.

“어머니, 우리 집은 왜 가난한 거야! 돈 좀 있었으면…….”

“아래만 쳐다보고 있으면 좋은 일도 있단다.”

“어머니, 아무리 아래만 쳐다봐도 돈은 없었어.”

- 이태숙(여) / 1915년 4월 13일 출생 / 경상북도 군위군 출신 / 4남매 / 교토 시 미나미 구 거주

“아들 둘은 일본에 있지만, 딸 넷 중에서 둘은 북한에 가버렸다오. 여기서 차에 올라 멀리 가는 것을 보는 것이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는지……. 그래서 항구까지는 도저히 못 갔고. 그 두 아이를 언제가 되면 만날 수 있을지, 그게 제일 가슴 아프다오.”

- 이갑년(여) / 1915년 10월 14일 출생 / 경상북도 의성군 출신 / 5남매 / 이와테 현 시즈쿠이시 정 거주

“민단 설립했을 때, 북한 사람들에게 끌려가 죽을 뻔했지만 내가 그렇게 간단히 죽을 사람인가. 고치에 조직 폭력단 300명 정도 있지만 그것들은 전부 잡아놨지. 내게는 감히 뭐라고 못해. 싸움은 정말 많이 했어! 엄청 셌지. 좋은 시절이었어. 내가 죽는 걸 기다리지 마라. 니들이 먼저 뒈진다. 난 이백 살까지 간다.”

- 김중권(남) / 1919년 11월 11일 출생 / 경상북도 영양군 출신 / 4남매 / 고치 현 고치 시 거주

“옛날에 ‘보리밥이 밥이냐, 정어리가 생선이냐’ ‘조선인이 인간이냐, 보리밥이 밥이냐’는 말이 있었다오. 조선인은 개나 매한가지로 무시하고 괴롭히는 것이 당연하다는 선입견이 일본인들에게 있었지. 나를 그렇게 보더라도 아무렇지도 않아. 일본에 와서 엄청나게 괴롭힘을 당했거든. 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조선인을 싫어했는지 모르겠어. 참 웃기는 곳이야, 일본이란 나라는.”

- 박수엽(남) / 1920년 9월 5일 출생 / 경상북도 의성군 출신 / 4남매 / 기후 현 기후 시 거주

“자전거가 넘어져서 소 내장이 길바닥에 죄다 쏟아진 거야. 근데 창피해서 당최 주울 수가 있어야지. 그래도 흙바닥에서 소 내장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서 하나하나 핀셋으로 돌멩이를 떼어낸 다음 팔았지.”

- 정증순(여) / 1925년 9월 8일 출생 / 경상남도 함안군 출신 / 4자매 / 사가 현 사가 시 혼조마치 거주

“나이 오십이 되어서 태어난 고향 집에 갔을 때, 내 어릴 때 자주 돌봐줬던 사람에게서 왜 한국말을 못하느냐, 왜 이렇게 나이를 먹었느냐는 말을 들은 게 지금도…….”

- 김봉도(남) / 1924년 11월 27일 출생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출신 / 5남매 / 오이타 현 오이타 시 다이지 리 거주

“21년 동안이나 못 봤던 어머니와 간신히 만날 수 있게 됐을 때 여권을 신청해 한국에 건너가려던 차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편지를 받았어요. 정말이지 말도 안 나오고……. 그래도 고향에 갔더니 지팡이를 짚은 아버지가 내 얼굴을 물끄러미 보시더니 너 용케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구나! 하시대…….”

- 김달룡(여) / 1924년 3월 27일 출생 / 경상남도 거창군 출신 / 4남매 / 구마모토 현 구마모토 시 미즈신치 거주

이렇게 한 장 한 장 넘기기 힘들었던 책이 근래에 있었나 싶다. 아흔 한 명의 재일동포1세의 삶. 2~3페이지 당 1명씩 담고 있는 이 책은 그야말로 고통과 눈물의 시대를 온 몸으로 살아냈던 그들에 대한 담담한 보고서이자, 마지막 기록이다. 

2001년부터 일본 전역을 돌며 생존해 있는 재일동포 1세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사진과 글로 기록한 저자는 재일동포 3세 사진작가이다. 그는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윤상인 교수에게 “재일의 역사를 남기고 싶었다. 1세가 사라지기 전에 기록해야 했다”고 자신의 의도를 밝혔다. 하지만 이 책이 한국어로 소개된 지금, 인터뷰에 응했던 네 명 중 한 명은 이미 세상을 등졌다고 전한다.

윤상인 교수는 저자 이붕언의 취재 과정을 이렇게 소개한다.  


“5년 동안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종단했다. 하루에 한 명씩 만나 반나절이나 한나절 이야기를 들었다. 이렇게 해서 91명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만난 사람은 100명 보다 많았다. 아예 면담을 거절하거나 면담 후 수록을 거부한 사람도 있었다. 수록은 하더라도 사진 게재만큼은 안 된다는 사람도 있었다. 오키나와에서 만난 세 명 모두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고통의 기억이 크고 깊을수록 말문은 굳게 닫히기 쉽다. 시간을 되돌리는 것 자체가 공포인 것이다. 혹은 정치적 입장 때문에 과거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일본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자손들에 대한 배려에서 이제와서 스스로를 드러내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역자는 재일 1세를 “나라 잃은 시절에 일본에 건너가 전란을 겪고, 전후의 혼란기에 일본 땅에 머무르며 정주의 길을 일궈 나간 사람들”이라고 정의한다.

나라 잃은 땅에서 태어나 강제로, 또는 먹고 살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이들. 해방이 되어도 차마 살던 터전을 버리지 못해 남은 이들. 혹은 여러 가지 운명의 장난으로 고향을 갈 수 없었던 이들. 이들은 전후 혼란기의 폐허만 남은 일본에서 그야말로 잡초와 같은 생명력으로 억척같이 삶을 일구어 나갔다.

현재 재일 한국인은 약 60만 명으로 추산된다. 재일 한국인은 여전히 일본 내 최대 소수민족 집단이고, 재일 3세와 4세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역자는 경제 선진국 일본에서 태어나 마이너리티로서 정체성을 일궈 나가며 정주의 길을 걸어야 하는 ‘조선인’의 후예들이 언젠가부터 스스로를 ‘자이니치(在日)’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개만도 못한 조센징이란 차별과 억압 속에 반세기를 강인하게 버텨 온 재일1세들. 그들에 대한 온전한 평가는 일본에서도, 그리고 조국이라 떠드는 한국에서도 여지껏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반도의 분단으로 일본 내 동포들마저 분단시켜버린 과거 양 정권의 오만과 죄악에 대해서 추호의 사죄도 없다. 일본 국민과 같이 똑같은 납세의 의무를 지면서도, 정작 투표권조차 가질 수 없는 3등 국민으로 살아가는 재일동포들. 그들에 대한 우리들의 기억은 무엇인가. 나라라는 것이 힘이 없어 강제로, 또는 어쩔 수 없이 건너간 일본에서 살아온 그들에게 우리는 따뜻한 관심을 보인 적이 있었는가. 일본의 재일 동포 차별에 대해서는 분노하면서도 우리는 ‘우토로’ 사람들의 고통을, ‘조선학교’에 다니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 대한 차별과 모욕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여 왔는가.

역자의 말처럼 재일1세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 기술에서 소외되어온 존재다. 식민지 지배/피지배 역사에 관한 진술 체계 속에 그들의 목소리가 스며들 여지는 없었다. 광복 이전에는 일본의 자민족 우월주의에 기초한 식민 담론을 통해 차별 대상으로서의 자신을 돌아보았고, 광복 이후에는 한국 민족주의의 배타적 저항 담론 속에서 배척 혹은 무시되는 고립무원의 정체성을 안고 살아야 했다.

“제국은 악이며 민족은 선이라는 선험적 공리가 작동하는 ‘제국과 민족의 이분법’(임지현)속에서 그들의 존재는 경원의 대상이 되었다. 제국 일본의 패망 후, 조국에 귀환하기를 거부했거나 귀환 후에 또다시 밀항선을 타고 민족의 땅을 버린 그들은 오히려 민족 수난의 지배적 기억을 훼손하거나 희석시키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일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제국 일본의 기억을 ‘껄끄러운’ 형태로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그들의 삶이 일본의 근대사 기술에서 챙겨질 여지도 거의 없었다. 역사 서술의 주체 세력 입장에서 볼 때, 대부분 무학에 빈곤했던 이들은 계급적 약자였으며, 영토 밖에 거주하는 이들은 공간적 약자였고, 일본 문화에 어설픈 형태로 동화된 이들은 문화적 약자였다. 무엇보다도 민족적 범주의 변방에 위치한 그들은 민족적 약자였다.”

민족주의에 대한 여러 가지 담론들이 나올 때마다 개인적으로 생각나는 것은 우습게도 “그럼 난 민족 구성원 중 하나 인거야, 개인인거야? 난 한국인인거야, 조선인인거야? 썅, 나는 사람인거야 조직 세포인 거야!?” 이딴 식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결국 분노하게 된다.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국가라는 폭력집단이 행해온 무수히 많은 범죄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의 특징 중 하나이다. 원시적이고, 매우 변태적인, 그리고 때로는 파쇼적인 냄새가 풀풀 나는 장면이다.

이들의 삶은 근대 한반도를 지나온 모든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고통과 눈물과 영욕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그동안 이들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려는 노력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대적인 북송작업을 통해 재일 동포들에게 조국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각인시키려 했던 북한 역시, 이건 따로 다룰 시간이 있겠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국 정부의 모습은 더욱 가관이었다. 굴욕적인 한일 회담이후 현재의 정신대 문제, 교과서 문제, 독도 문제에 이르기까지 한국 정부는 단 한 번도 일본에게 당당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탄생이 친일파의 계승이라는 뼈아픈, 그리고 수치스러운 역사와 함께 엮여있으니 어쩜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스포츠나 그밖에 한류 따위를 들먹이며, 국민들에겐 민족주의 감정을 일으키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악용한다. 아쉽지만 그동안 한국 정부의 수준은 이 정도로 형편없었다.

이런 자격미달 국가에게 일본 본토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재일 동포들은 관심의 대상이기보다는 언제나 이용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들의 삶을 진지하게 걱정하고 그들의 아픔을 생각하는 모습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기대할 수 없다. 재일 동포 1세의 삶을 조명하는 이러한 책들이 결국 같은 재일 동포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91명의 삶 하나하나가 가슴 묵직하게 다가온다. 힘겹게 페이지를 넘기고 또 넘겼다. 어느 장면에선 눈물이 맺히고, 어느 장면에선 부끄러움에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결국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의무감 비슷한 감정까지 일었다. 나는 도대체 이들에게 무엇을 생각하고 기억했던 것일까.

한류가 일본에서 돌풍이라고 주접떨던 시절, 물론 지금도 그딴 삽질은 현재진행형이지만, 우리는 정작 일본에서 살고 있는 동포들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한류 열풍으로 그들도 가슴 펴고 살지 않을까 따위에 한심한 생각뿐이었다.

여전히 주제 파악 못하고, 깝죽거리는 수많은 한반도 조센징의 한 사람으로서 반세기를 살아낸 재일동포 1세 분들에게 죄스러움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을 보다 많은 이들이 읽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이 분들에겐 우리의 눈물조차 가소롭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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