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 붉게 핀 역사의 꽃이었던 인물들의 이야기
천형균 지음 / 정보와사람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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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심상치 않다. 어설픈 내 서평들을 읽어본 이들은 얼추 아시겠지만 내가 좋아할만한 제목이다. 서평을 쓰기 위해 읽어둔 책들이 프린터 위에 어느 덧 적잖이 쌓여있다. 순서대로 서평을 쓰리라 다짐했지만, 읽은 시간이 지나니 당시의 감흥도 사라진 듯한 느낌이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젊은 녀석이 벌써 기억 탓이나 한다.

책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시대에 저항했던 오버액션맨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더 이상 노예가 되길 거부했던 스파르타쿠스를 시작으로 어떠한 이유에서건 삶을 내던져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냈던 이들의 모습이 펼쳐진다. 이들의 다양한 삶만큼 직업군 역시 다양하다. 혁명가, 정치가는 물론이요 작가, 학자, 사상가, 일본의 사무라이와 승려, 그리고 카사노바나 노애 같은 딱히 직업을 규정하기 힘든 이들도 등장한다.

스텐카 라진, 푸가초프, 바쿠닌, 크로포트킨, 체 게바라, 호치민, 볼테르, 니체, 도스토예프스키, 푸셰, 베블런, 크롬웰, 로베스피에르, 홍수전, 트로츠키, 카사노바, 노애, 사드까지. 여기서 카사노바, 노애, 사드는 무언가 하고 물을 수도 있다. 이들은 성 윤리에 저항한 이단아들로 설명된다. 뭐 그것도 나름 중요한 반항이긴 하다.

한반도에서 치열한 삶을 살았던 이들도 소개되고 있다. 반갑다고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봉준, 김옥균, 묘청, 신돈, 정여립, 허균 등이다. 다들 그렇게 아름다운 최후를 맞은 이들은 아니다.

책을 읽으며 아쉬웠던 점 하나. 여성이 없었다는 점이다. 아니 유사 이래 여성은 한 번도 반항한 적이 없더냐. 여성분들이 살짝 기분 나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로자나 가네코 후미코, 황진이 하다못해 대한민국 공식 열사 유관순 누나도 있지 않나. 뭐 저자가 여성만 따로 다룬 책을 구상 중일 수도 있으니 좋게 생각하고 넘어가자.

책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는 아직도 그 평가가 분분한 이들도 있고, 결코 아름답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는 인물도 있다. 솔직히 카사노바나 노애 같은 인물을 훌륭하다고 하긴 좀 그렇지 않나. 약간 부러운 면은 있다 하더라도…. 이크, 돌 맞겠다.

어찌되었든 책을 채우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이상이나 신념을 실현시키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제 수명을 다 채우고 돌아간 이들도 있지만, 역시 원하는 바를 성취했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 하나, 이들은 결코 자신의 삶을 타인에게 맡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보기에 온갖 부조리와 억압이 판치는 세상에서 제대로 한 번 살아보고자 치열한 삶을 불태웠던 이들의 이야기는 일상에 찌들어 정신 못 차리고 살아가는 나에겐 매서운 죽비가 되어준다.

신념이든 욕망이든 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내던져 세상과 맞섰다는 것. 불의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겐 어떤 경이로움마저 준다. 물론 소수의 특정 엘리트들이 역사를 발전시켜나간다는 것에 반대하는 편이다. 하지만 분명 변화의 불씨를 당긴 이들은 있었다. 그 작은 변화에 민중들의 힘이 보태져 걷잡을 수 없는 불길로 치솟게 된다. 우리는 ‘처음’이라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섰던 이들의 삶을 통해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나약한 인간이 때로는 얼마나 위대할 수 있는가를 뼈 속 깊이 느끼게 된다.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 이후 어떤 작가는 이제 대한민국의 운이 다했다고 탄식한다. 요즘 같은 꼴을 보면 그런 말이 나올 만도 하다. 하지만 너무 비관은 하지 말자. 언제나 우리 역사엔 ‘선천성 불의기피증’환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더러운 세상을 당최 받아들이지 못하고 시원한 ‘오버액션’으로 역사를 변화시켜 나갔다. 우리 주위엔 분명 그런 눈물겹게 고맙고 무모한 이들이 존재한다. 여전히 말이다.

언제나 서평을 통해 욕을 해댄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서평은 배설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희망을 찾고 반성을 통해 또 다른 실마리를 잡아야 한다. 적어도 타인에게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어야 좋은 서평일 것이다. 그렇담 나는 평생 좋은 서평 쓰기는 글렀다는 생각이다. 오호 통재라, 하지만 역시 사람은 제 생긴 대로, 제 능력대로 살아야 한다. 어쩔 수 없다. 세상의 이치다.

최근 유명 여배우의 유골함이 도난당해 난리가 났다. 사건 자체도 엽기였지만, 아무래도 고인이 국민 여배우로서 사람들의 가슴 속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화제가 되었으리라. 한 마디만 하자. 용산 희생자들은 7개월 째 냉동고에 모셔져 있다. 장례는커녕 시신 보관료 4억 원이 걱정이다. 피눈물 나는 세상에 정작 사람들은 죽은 여배우의 유골함에 더 관심이 간다. 아님 미국에서 몰래 결혼한 여배우라든지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에는 모두가 울었지만, 용산 참사 희생자들을 위해 울어주는 이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부터도 통렬한 반성이 필요할 것이다. 너 도대체 뭐하고 사는 녀석이냐는 생각을 해야 한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죽음들이다. 누군가는 그 업보를 받을 것이다.

반항인이라는 이름은 누구나 금기시하지만, 한 편으로는 동경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평생을 민주화에 투신했던 김대중 대통령은 분단된 한반도에서 금기시되었던 통일을 이야기했고, 머리에 뿔이 달린 줄 알았던 이른바 북 괴뢰 정권의 수괴를 만나 평화를 이야기했다. 분명 김대중은 반항인이었다.

우리는 지금 주위를 둘러봐야 한다. 반항인들이 점차 설 곳을 잃고 사라져가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하찮은 쓰레기가 되어 삶을 누르는 이 지독한 굴레 속에서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말 난 살고 있는 게 맞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아님 축생과 다를 바 없다. 때문에 책은 나 자신의 설 곳과 서있는 자리를 확인케 해준다는 점에서 미덕이 있다.

쓸모없는 인간이 될까봐 두려워하기 보다는 냉정한 인간이 될까봐 걱정해야 한다고 믿는다. 인간은 영재나 인적자원이나 이딴 표현으로 지칭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평생을 ‘아름다운 오버’를 하며 살다 가신 김대중 대통령님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빈다. 그 어디에서든 바보 노무현과 함께 행복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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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마하트마 K. 간디 지음, 김태인 옮김 / 녹색평론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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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봉사를 국가가 만든 경계선 너머 우리의 이웃들에게로 확장하는 데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신은 그런 경계선을 만든 적이 없다”

간디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간디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비폭력 무저항의 민족주의자로만 알고 있는 간디는, 또한 인간불평등 사상을 극복하고, 착취와 억압으로 작동하고 있는 사회 경제적 시스템을 극복하려 애쓴 풀뿌리 사상가이기도 했다.

책은 인도가 가야 할 길에 대한 간디의 오랫동안의 철학이 담겨 있다. 스와라지(자치, 독립)의 중요성, 아힘사(비폭력)와 스와데시(자립경제)의 세계를 향한 그의 염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아울러 그는 기계의 발달로 인한 인간성이 황폐화를 우려한다. 노동이 단순한 효율성의 증대가 아닌 사랑이 담보된 노동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은 가장 매력적이고 이상적인 조건에서만 일해야 하고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를 이롭게 하기 위해서, 욕심이 아니라 사랑이 동기가 되어 일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노동 조건의 변경이다. 부를 향한 이 미친 듯한 돌진은 중단되어야 하며,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한 임금만이 아니라 단순한 노역이 아닌 매일의 일거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이런 조건 하에서 기계는 국가나 기계를 소유한 사람에게와 마찬가지로 그것을 작동시키는 사람들에게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개인이 유일한 최고의 고려 대상이다. 개인의 노동을 줄이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하며 욕심이 아니라 정직한 인도주의적 배려가 동기가 되어야 한다. 욕심을 사랑으로 대체하면 모든 것이 제대로 될 것이다” 

평택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간디의 말은 무참하다. 이 책은 1962년에 간행되었다. 그 당시 우리의 노동 현장은 어떠했을까. 전태일 열사의 죽음이 모든 설명을 필요 없게 만든다. 그랬다. 우리는 전태일 열사의 죽음을 아무 의미 없게 만드는 데 전력을 기울여 왔다. 고작 청계천 다리 위에 그의 동상만 세웠을 뿐이다.

간디는 “다른 생명에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고대 이래 인도의 위대한 사상 유산에 대한 가장 겸허한 충실성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그에게 산업주의 경제와 근대적 과학기술에 의존한 서양 문명은 참된 의미에서의 문명이라는 이름에 값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서양문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가 “그런 게 있다면 참 좋겠지요”라고 답한 이유이다.

간디는 영국의 식민지 시대를 통해 비참한 운명을 강요당한 인도의 70만 개의 농촌마을의 부활과 회생 속에서 참다운 독립과 해방, 진정하게 새로운 인류 문명의 가능성을 보았다. 그는 물레를 돌리며 참다운 자치에 기반한 자립적 마을을 꿈꾸었다. 지금 우리에겐 어쩌면 너무 순진해 보이는 간디의 구상은 그러나 더욱 뼈아픈 자성을 이끈다. 외국의 수입이 없이는 단 하루도 버틸 수 없는 품목이 우리에겐 과연 얼마나 많을 것인가. 당장 석유가 수입되지 않는다면? 아마 패닉이 밀어닥칠 것이다. 해운대를 습격한 메가 쓰나미 정도의 파괴력이지 않을까.

간디의 수공업 중심의 마을 자치에 대해 현실성이 없다고 느낀 것은 비단 우리만이 아니었다. 네루 수상을 비롯한 당시 인도의 지도부는 간디의 주장에 대해 수긍은 하면서도 비현실적이라 느꼈다. 그리고 어느 덧 지금의 거대한 인도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렇담 지금 인도는 행복할까? 아직도 우리 인구의 몇 배가 넘는 이들이 굶주림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수많은 농부들이 자살하는 국가 인도. 신비로움에 가려진 굶주림과 부패. 이것들 역시 산업화와 개발이 가져온 어쩔 수 없는 “부수적 피해”라고 할 것인가? 글쎄, 아마도 간디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자발적으로 불러온 재앙일 뿐이다.

간디는 근대적 산업화, 기계화는 “인류에게 무엇보다 큰 화근”임을 주목하여, 언젠가 “반드시 인류에게 저주가 될 날이 올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미 저주는 시작된 지 오래다. 오래된 미래가 아닌, 새벽의 저주다. 해는 벌써 중천에 솟았다.

각 지자체 별로 특산화한 쌀이 많다. 종류가 하도 많아 기억도 힘들다. 저장한 쌀이 너무 많아 버리든지 북에 지원해주자는 말들도 나온다. 얼핏 보면 우리가 쌀이 넘치는 나라라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른바 압축적 경제성장의 결과, 농업, 농촌, 농민의 전면적인 몰락과 함께, 식량자급률 25퍼센트 수준에서 외국농산물에 대한 의존 없이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 위태로운 상황이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중국산 아닌 먹거리를 찾아보시라. 혹시 당신은 돈이 넘쳐 모조리 국산 먹거리만 드시는가? “행복한 줄 알아 이것들아~!!”

그 잘난 세계화-사실은 식민주의의 세련된 이름이지만-의 지배 밑에서 민중의 삶은 벼랑 끝에 몰리고 인간 생존의 자연적 토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땅을 사랑했을 뿐이에요”라고 말했던 분을 장관으로 모실 걸 그랬다. 암튼 자연적 토대가 붕괴되는 지금, 또 다른 대규모 자연 학살을 22조 원의 돈을 박아가며 하려 하는 것이 현 우리의 모습이다.

간디의 물레 사상. 우리가 입을 옷이라도 우리 손으로 만들자는 소박한 사상. 한 집에 물레 하나씩 가져 그것으로 생계를 꾸리자는 그 소박한 사상이 더욱 절실한 이유다. 간디는 단순함이 보편성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수백만의 이익을 위한 것은 어떤 것도 많은 학식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학식은 오직 소수만이 갖출 수 있고, 따라서 부자들에게만 이익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이다. 온갖 어려운 통계와 자료를 들이밀며, 우리에게 공범이 되자고 유혹하는 “머리 좋은” 이들을 경계해야 하는 것이.






자연을 파괴해가며, 환경오염의 주범인 킬러 자동차를 팔기 위해 우리의 쌀을 포기하는 지금. 과연 우리 마음속의 물레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지. 우리 모두 한 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우린 새벽의 저주를 맞이할 지도 모른다. 어쩜 그 저주가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농부가 멕시코에 가서 영어로 외치고 자결한 그 순간부터 말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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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 - 작은책 스타가 바라본 세상 철수와영희 강연집 모음 1
하종강 외 지음 / 철수와영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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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성, 안건모, 이임하, 홍세화, 정태인, 하종강. 월간 작은책 12주년 및 노동자 7,8,9월 대투쟁을 기념해서 만든 여섯 개의 강좌를 묶은 책이다. 역사, 생활 글짓기, 여성, 교육, 경제(한미 FTA), 노동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과 바짝 붙어있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그리고 결론이랄 것도 없이, 제목처럼 왜 80이나 되는 우리들이 고작 20도 안 되어 보이는 자본 권력에게 이렇게 속절없이 지배당하고 있는가를 되묻고 있다. 정말 재미없는 주제일수도 있는데, 강사들의 내공이 내공인지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를 부득부득 갈아가며 읽었다.

박준성 선생은 역사를 망각하는 것은 곧 또 다른 잘못을 되풀이하도록 만든다고 말한다. 그는 한반도 노동 운동의 역사를 설명하며, 말미에 이 노래를 적었다. 조금 길지 모르지만 옮겨본다.

우리 그렇게 죽었어.

그때 엄마 아빠가 거기 함께 있었다면

아니, 엄마만이라도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 우리가 방 안의 연기와 불길 속에서 부둥켜 안고 떨기 전에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 방문을 세차게 두드리기 전에

그러다가 동생이 먼저 숨이 막혀 어푸러지기 전에

그때 엄마, 아빠가 거기에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야, 우리가 어느 날 도망치듯 빠져 나온

시골의 고향 마을에서도

우리 네 식구 단란하게 살아갈 수만 있었다면

아니, 여기가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축복을 내리는 그런 나라였다면

아니, 여기가 엄마, 아빠도 주인인 그런 세상이었다면

엄마, 아빠! 너무 슬퍼하지 마.

이건 엄마, 아빠의 잘못이 아냐.

여기, 불에 그을린 옷자락의 작은 몸뚱이,

몸뚱이를 두고 떠나지만

엄마, 아빠! 우린 이제 천사가 되어 하늘나라로 가는 거야.

그런데 그 천사들은 이렇게 슬픈 세상에는

다시 내려올 수가 없어.

언젠가 우린 다시 하늘나라에서 만나겠지.

엄마, 아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배운 가장 예쁜 말로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어.

엄마, 아빠……엄마, 아빠……

이제, 안녕, 안녕…….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어려운 노동자들과 영세 서민들의 삶은 20여 년 전에 비해 그리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1990년 무렵 맞벌이 영세 서민 부부가 지하 셋방살이를 하고 있었는데, 세 살, 다섯 살 된 두 자매를 어디 맡길 데가 없었습니다. 문을 열어 놓으면 부엌으로 나와 더 위험할까 봐 자물쇠로 문을 잠그고 일을 나갔습니다. 두 아이들이 심심하니까 성냥불 장난을 하다가 옷가지와 이불에 불이 붙어 연기에 질식해 숨졌습니다. 이 두 아이의 죽음을 정태춘씨가 〈우리들의 죽음〉이라는 노래로 만들었습니다.”

이 노래는 내 중학교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중학교 이학년이었을 것이다. 당시 담임 선생님은 전교조 분이셨는데, 수업 시간에 웬 노래를 틀어주시면서, 이 이야기를 해주셨다. 두 아이의 죽음을. 그리곤 창밖을 바라보시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다. 꽤 예전 일이지만 지금도 선생님의 눈물이 생생히 떠오른다. 당시 나는 그리 큰 슬픔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철이 없었거나, 아직 그 누구도 그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1990년 무렵과 2009년 지금. 과연 이 땅의 노동자들의 삶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자신할 수 없다. 아니 전태일 열사가 자신을 사르며 외쳤던 노동자들의 진정한 삶의 권리는 과연 얼마나 개선되었을까. 자신할 수 없다. 정말 자신할 수 없다. 그래서 무참하고, 서럽고 죄스럽다.

세상 모든 괴로움을 다 초월하여 “다 그런 거지, 어떻게 세상이 완벽할 수 있겠어. 있는 사람들도 있으면, 없는 사람들도 있는 거고. 다 그런 거잖아.”이럴 수도 있겠다. 자신이 악해서가 아니라 차마 이 모든 슬픔들을 감당할 수 없어, 애써 돌아보지 않으려 할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랬다. 예전 다니던 사무실에서 가끔 담배를 태우러 복도로 나와 창밖을 바라보면 늘 횡당보도 앞에서 어떤 아주머니를 보곤 했다. 일정한 시간마다 길을 건너기 위해 서 있던 아주머니. 초라한 행색에 역시 초라한 배낭을 메고. 그 분은 손에 무언가를 열심히 바라보며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그 분의 철지난 운동화가 안쓰러웠고, 채 손질하지 못한 머리가 송곳처럼 날 찌르곤 했다. 아마 그 아주머니는 신용카드와 같은 작은 우편물들을 배달하는 분이었으리라.

그런데 왜 그 분의 모습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을까. 우습게도 내 어머니와 너무나 흡사했기 때문이다. 작은 체구나, 얼굴 생김새나, 하다못해 걸음걸이까지. 내 어머니 역시 평생 좋은 옷을 입어 본 적이 없었고, 평생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는. 그러나 노동자로서 인정도 받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내 어머니는 저 아주머니와 같았다.

목구멍에서 무언가 치밀어 올라오는 느낌. 그냥 보기 싫었다. 내 어머니를 여기서 또 보는 것 같아서. 그래서 부러 외면하려 했지만, 어김없이 난 그 아주머니를 쳐다보고 있었다.

비정규직 남편의 낡은 작업복을 빨며, 단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새 작업복 구입을 할 수 없다는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벅벅 닦으며 바짓단을 수선하는 아내의 이야기도 날 힘들게 했다.  


“저기, 여보……, 작업복을 살 수가 없다는데…….”

“왜?”

“그게, 난 비정규직이라 살 수가 없다네. 작업복은 정규직만 살 수 있고 비정규직은 회사에서 나눠 준 그 바지만 입어야 한 대……. 그래서 아는 정규직 사원한테 부탁은 했는데 모르겠네…….”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지만 가슴에서 알 수 없는 서러움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남편은 마치 죄인인 양 내 앞에 새로 산 작업복을 내놓으며 바짓단을 줄여 달라고 했다.

남편과 아이가 다 자는 새벽. 남편 작업복을 꺼내 가위로 길이를 잘라내고 손바느질을 하면서 자꾸 흐르는 눈물 때문에 시야가 흐려져서 손가락을 몇 번이나 찔려서야 완성할 수가 있었다. 뜨거운 다리미로 곱게 주름 잡아 옷걸이에 걸어 놓고 순간 나도 모르게 다시 바지를 바닥에 패대기치고는 발로 밟아 버리고 손으로 비틀기를 몇 번 하고 나서야 내 가슴속의 무엇인가가 비로소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이 뿐일까. 서러운 삶의 파편들이. 그래서이다. 우리가 제대로 알고 제대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책은 6명의 고수로 하여금 우리가 정말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물론 선택은 자유다. 하지만 난 그 선택마저 이미 정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난 20%에 속하지 않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같은 80%이기에 쪽수를 밑천삼아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또 느낀다.

책머리에서 안건모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80이 20을 지배하는 세상이, 사람이 살기 좋은 세상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노동자가 노동을 해서 만든 세상인데 노동자가 주인이 되어야 하는 게 정말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80%가 봐야겠지요. 당신이 그 나머지 20% 자본가라고 생각하면 이 책을 안 봐도 됩니다. 책을 그만 내려놓으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분명 80%에 들어가는 분입니다. 이 책을 꼭 보시고 널리 선전해 주세요. 당신을 포함한 80%가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보입니다. 아참, 절대 빌려 주지 마시고 꼭 사서 보라고 하세요.”

그래서이다. 절대 누구에게 이 책을 빌려주지 않았다. 사서 보라고 했다. 그래야 더 좋은 책들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입장료 한 푼 받지 않고 많은 이들이 고수들의 강연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1%”라는 광고가 버젓이 나온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라고 떠든다. 최근에는 오랜 만에 만난 친구에게 아무 말도 없이 새로 뽑은 그랜저 자동차를 보여준다. 그게 자신이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를 말해준단다. 아무 아름다운 세상이다. 그렇게 돌아간다. 평택의 노동자들에겐 물도 아깝다. 목말라 죽더라도 상관없단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이라니. 무슨 좌빨 책인가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담 읽지 마시라. 하지만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80% 중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 좌빨이든, 꼴통 보수든 자기 아이들이 무시 받지 않고, 당당하게 일한 만큼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시기 바란다.

학교 후배들에게 이 책을 사주려고 돈을 모으고 있다. 물론 그 녀석들이 제 돈으로 사서 읽는다면야 땡큐지만, 그동안 술 사준 것 밖에는 선배 구실 제대로 못 한 나이기에. 이런 퍼포먼스라도 필요하다고 느꼈다. 한 녀석이라도 읽고, 눈물을 흘린다면 난 밥벌이는 했다고 믿는다.

아름다운 모든 찌질이 80%에게 이 책을 권한다. 돈 주고 사보시라.

아, 제목이 무슨 말이냐는 분들을 위해 다음 글을 붙인다. 하종강 선생님의 강연 중 한 대목이다.

“민주노총의 김진숙 지도위원 아시죠? 《소금꽃나무》책 내신 분. 그분이 이런 얘기를 해요. 자기가 세상에 태어날 때 박정희가 대통령이 됐는데, 자기가 스무살 될 때까지 그 사람이 계속 대통령이었다는 겁니다. 박정희가 죽었을 때 조카가 걱정스럽게 묻더랍니다. ‘이모, 앞으로 박정희 대통령은 누가 해?’(웃음) 이런 코미디가 벌어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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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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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의 『흐르는 강물처럼』을 읽고 있을 때, 김 훈 선생의 『바다의 기별』을 쟁여두고 있었다. 당시 두 책을 비교하는 글들이 적지 않았고, 나 역시 어설픈 눈으로나마 두 작품을 함께 읽어보려 한 심산이었다. 그렇게 먼저 파울로의 책을 읽고, 두 달이 지나서야 김훈의 책을 집어 들었다.

김훈의 책은 여러 권 읽은 경험이 있다. 뭐 마니아 수준은 아니지만, 신작이 나오면 꼬박 꼬박 쟁여두는 편이었다. 『남한산성』에 대한 뼈아픈 여운이 남아있던 터라, 이번 책이 에세이 형식이라고는 해도 어느 정도 기대는 하고 있었다. 뭐랄까, 남한산성은 그 이전의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등과 같이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무참한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꽤 재미있게 읽었고, 꽤 아프게 읽었다.  


김훈이란 작가에 대해 여러 가지 평가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필력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한 글자 한 글자 연필로 꾹꾹 눌러 담는 그의 글은 예사롭기 때문에, 더욱 비범하고 또한 무참했다. 삶에 대한 에누리 없는 시선과 그 속에 담겨 있는 눈물겨운 사랑 역시 김훈의 작품을 챙겨 읽게 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바다의 기별』은 에세이다. 그의 비교적 자유로운 생각과 중얼거림이 담겨 있다. 때문에 어찌 보면 덜 비장할 수도 있고, 예사로울 수도 있다. 또한 전에 파울료의 책을 평가할 때 말했던 식의 폄하가 가능할 수도 있다. 유명 작가가 가장 쉽게 돈벌이하는 방법으로서의 악용 말이다. 하지만 결론을 말하자. 김훈은 단지 김훈일 뿐이었다. 덜도 더할 것도 없는 김훈.

그는 애써 세상을 아름답게 꾸미지 않는다. 그럴 필요도 없다. 세상은 물론 눈물겹지만, 순간순간 나타났다 명멸하는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그는 딱 그만큼의 아름다움만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밖의 무참함은 그대로 건져낸다. 어쩔 수 없다. 그가 삶을 바라보는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삶 자체가 그런 것임을.

밥벌이의 지겨움을 말하지만, 정작 그 밥벌이가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를 알고 있는 그. 자신이 아니면 다른 어떤 기자가 대신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전두환을 위한 용비어천가를 묵묵히 써내려갔던 사람. 그걸 부정하지도 않는 사람. 그는 그렇게 정직한 작가다. 온갖 아름다운 말로 세상을 꾸미려 해도, 어차피 세상은 그들의 붓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자신의 의지와 소신을 꿋꿋하게 지켜내는 듯하다가, 한 순간 변절해버리는 속절없는 사람들이 넘치는 지금. 어쩌면 그의 우직함과 단단함은 더욱 무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면에서 그는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

소방수들의 애환을 담담하게 펼쳐낸 ‘기다려라, 우리가 간다’에서 그는 “인간에게 다른 인간이 다가오지 않으면 고립된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지극히 당연한 이 말이 사무치게 다가오는 요즘. 때문에 어쩌면 그의 글이 지극히 예사로운데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그를 찾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다가오고 있는 인기척, 그것이 인간의 희망이라고 말한다. 동의한다.

그리고 그는 신념에 찬 이들을 경계한다. “나는 신념에 가득 찬 자들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습니다. 나는 오히려 의심에 가득 찬 자들을 신뢰합니다. 인간의 진실이 과연 신념 쪽에 있느냐 의심 쪽에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더 많은 진실은 의심 쪽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렇게 그는 신념을 가진 이들을 경계한다. 동의한다. 아니 절감하고 있다. 온갖 비장한 신념을 내세우며 나타난 이들이 세상을 얼마나 무참하게 만들었나. 혹은 추호의 의심도 허하지 않는 지금의 시대는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신념이 필요하다고 믿지만, 그들이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의 글은 사실 편하게 읽히는 편이 아니다. 모든 글쟁이들이 그러겠지만, 그의 글은 한 문장 마다 수많은 밤들의 고단함과 치열함이 묻어있다. 그렇기에 더욱 처절하게 예사로울 수 있지 않을까. 때문에 그의 글은 적은 분량임에도, 적어도 나한테는 쉽사리 넘어가지 않는 그것이다.

그야말로 사람들이 그리운 시대에 우리는 그의 글을 아껴 읽고 있다. 그만큼 그의 글에는 사람이 있고, 우리가 있고, 눈물이 담겨 있다. 보통 사람들의 그러나 결코 예사스럽지 않았던 삶을 그는 개의 발바닥을 살펴보듯 유심히, 또한 무심히 쳐다본다. 그 무심함에 삶에 대한 비관과 회의만 있다고는 생각지 말아야 한다. 그 안에는 눈물을 믿는 이의 간절함도 함께 묻어있다.

정말 맥 빠지는 더위와 그보다 더욱 허탈케 하는 세상. 김훈의 글이 우리를 더욱 무참케 할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자. 우리는 누군가를 위한 인기척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론 더욱 더 아파해야 할 것이다. 우리보다 먼저 사람 냄새를 풍기며 살다간 수많은 이들이 그랬듯.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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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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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전쟁이나 그 밖의 어떤 이유이건 인류가 멸망한 후의 모습을 담은 작품은 수없이 많다. 대부분 전쟁이거나 아님 환경의 재앙이 원인이 된다. 때론 내가 아주 좋아하는 ‘좀비’들만이 지구상에 남는 작품들도 있다. 물론 그럴 때는 무슨 전염병이 원인이 된다. 아무리 봐도 지구는 살만한 곳은 못되는 모양.

『더 로드』역시 잔혹한 핵전쟁 이후 살아남은 극소수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버지와 아들. 그들은 얼마 되지 않는 식량과 물을 가지고, 얼마 되지 않는 희망을 안고 하루하루 버티며 나아간다. 정확한 목적지는 물론 있지만, 사실 정확하지도 않다. 그냥 살아갈 수 있는 날만큼만 걸어가는 것이다.

가는 길은 순탄치 않다. 가는 길마다 위험이요. 어려움이다. 정작 무서운 것은 사람이다. 역설적이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사람보다 무서운 것을 여지껏 나는 본 적이 없다. 아비는 아들을 위해 온갖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때로는 살인까지 저질러야 한다. 하지만 아들은 사람을 돕고자 한다. 사람에게 빵을 주고 싶어 하고, 물을 주고 싶어 한다. 자신이 아직 인간임을 확인하고자 한다.  


소년이 고개를 돌리더니 남자를 보았다.

뭘 물어볼지 알고 있어. 하지만 답은 안 된다는 거야.

제가 뭘 물어볼 건데요.

우리가 저 노인을 데려갈 수 있냐는 거잖아. 못 데려가.

알아요. 

알지?

네. 

그럼 됐다.

다른 것도 줄 수 있나요?

일단 저걸 어쩌는지 보자.

그들은 노인이 먹는 것을 지켜보았다. 노인은 다 먹자 빈 깡통을 쥐고 앉아 혹시 더 들어 있지 않나 들여다보았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지, 혹은 얼마나 단순한지 우리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좁은 공간에서 화재가 난다면 불에 타 죽는 사람보다 깔려 죽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온갖 고상한 척을 다 하는 인간이라도 생사의 갈림길에 서면 이내 쉽게 동물로 변해버린다는 사실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임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적어도 자신이 죽을 정도의 상황이 닥치지 않는다면 말이다.

어찌 보면 인간이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부르기 시작한 그 때부터 우리는 동물임을 자각한 것일지 모른다. 이성을 갖춘, 예술을 사랑하고 이타심이 넘치는 인간이 실은 무수히 많은 동물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어쩌면 동물보다 더 미개한 종일지 모른다는 사실. 우리는 지금까지 역사라는 것을 통해 슬그머니, 혹은 너무나 명확하게 알고 있을지 모른다. 적어도 동물들은 집단적으로 동족을 학살하지는 않기에.

짧은 시간에 대량으로 학살을 저질러야만 야만적인 것은 아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우리가 느끼지 못할 정도의 시간에 서서히 살육하는 것 역시 엄연히 학살이자, 범죄다. 우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학살의 공범이 되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15조 원이 넘는 돈을 음식물 쓰레기 처리하는 데 퍼부으면서도, 정작 지구 반대편에는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이 넘친다. 연말이 되면 버릇처럼 정치인들은 검댕이를 얼굴에 묻혀가며 달동네에 연탄을 나른다. 사랑의 연탄이란 이름으로. 하지만 서울시는 아이들 급식비를 줄여가며 하이 서울 페스티벌을 하고, 서울시를 세계적인 디자인 도시로 꾸민다. 아이들의 생명을 갉아먹어가며 아름답게 꾸미는 서울이다.  


때로는 지구상이 한 번 크게 요동쳤다 제자리에 돌아왔으면 하고 바란다. 가끔 어르신들이 요즘 세태를 한탄하며 하는 소리. “전쟁이 한 번 나야 정신을 차리지.” 이 무시무시한 소리를 어느 덧 내가 중얼거린다. 이래서 애들은 뭐든지 잘 배운다.

평화는 아름답고 소중하다. 이 정권 들어 더욱 절감하는 중이다. 하지만 그 평화의 대상이, 평화를 누리는 대상이 지구상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를 차지하는가는 분명 봐야 한다.

팔레스타인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폭격으로 죽어나갈 각오를 해야 하고, 아니면 자신이 스스로 폭탄이 되어 이스라엘에 뛰어들 준비를 해야 한다. 이라크 아이들은 아버지 부시, 아들 부시 기간 중, 단지 이라크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굶주림과 병으로 죽어나갔다. 수백만의 아이들이 굶주림과 하찮은 질병에 죽어나간 다음, 부시 대통령은, 아니 미국은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전파하기 위해”다시금 폭격을 퍼부었다. 물론 뒤처리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군대가 동원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도 아프가니스탄, 레바논 등등에 우리의 자랑스러운 태극기가 나부낀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평화가 요즘처럼 소중하게 느껴진 적이 없다. 북의 핵 무장, 실험에 호들갑을 떨고, 비상사태가 벌어지면 얼마나 빨리 튀어야 우리가 먼저 태극기를 꽂을 수 있을까. 계산하고 있다. 아름답다. 정말 아름다운 대한민국이다. 비정규직 800만이 목숨을 바쳐가며 투쟁하는데, 차가 막힌다고, 뉴스에서 나쁘다고 떠드니까. 욕한다. 시발놈들이라고. 욕하는 사람 중 정규직이 있다는 것이 더욱 서러운 지금이다.

『더 로드』는 지구 멸망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간성을 눈물겹게 간직하는 모습들이 담겨있다. 모든 인간들이 사라진 다음에야, 인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서로  도와줌이, 사랑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우친다. 원래 인간은 멍청하고, 늦되다. 이 책이 엄청나게 팔린 베스트셀러란다. 곧 영화로도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만큼 사람들이 감동을 얻고, 또 공감했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눈물을 흘리며 책을 덮은 다음, 그 사람은 웃으며 티브이 토크쇼를 볼 것이고, 다음 날 아무 일 없다는 듯 출근할 테다. 시위 때문에 차가 막히고, 집회 때문에 경찰들이 모이면, 또 다시 “에이 시발, 또 데모야”할지도 모른다.

그래서이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자신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이 정작 누구를 위해 살아가는지. 알아야 할 이유다. 그런 점에서 늦었지만, 난 참 다행이다. 적어도 주제 파악은 할 줄 아니까. 그리고 책을 덮은 다음 바로 토크쇼를 켤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무심하진 않으니까.

난 이 땅의 주인 노동자이다. 역사의 주인이다. 거북선은 이순신 장군이 만든 게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들이 만든 것이다.

굳이 교회에 나가지 않더라도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믿는 이들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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