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 - 작은책 스타가 바라본 세상 철수와영희 강연집 모음 1
하종강 외 지음 / 철수와영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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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성, 안건모, 이임하, 홍세화, 정태인, 하종강. 월간 작은책 12주년 및 노동자 7,8,9월 대투쟁을 기념해서 만든 여섯 개의 강좌를 묶은 책이다. 역사, 생활 글짓기, 여성, 교육, 경제(한미 FTA), 노동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과 바짝 붙어있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그리고 결론이랄 것도 없이, 제목처럼 왜 80이나 되는 우리들이 고작 20도 안 되어 보이는 자본 권력에게 이렇게 속절없이 지배당하고 있는가를 되묻고 있다. 정말 재미없는 주제일수도 있는데, 강사들의 내공이 내공인지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를 부득부득 갈아가며 읽었다.

박준성 선생은 역사를 망각하는 것은 곧 또 다른 잘못을 되풀이하도록 만든다고 말한다. 그는 한반도 노동 운동의 역사를 설명하며, 말미에 이 노래를 적었다. 조금 길지 모르지만 옮겨본다.

우리 그렇게 죽었어.

그때 엄마 아빠가 거기 함께 있었다면

아니, 엄마만이라도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 우리가 방 안의 연기와 불길 속에서 부둥켜 안고 떨기 전에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 방문을 세차게 두드리기 전에

그러다가 동생이 먼저 숨이 막혀 어푸러지기 전에

그때 엄마, 아빠가 거기에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야, 우리가 어느 날 도망치듯 빠져 나온

시골의 고향 마을에서도

우리 네 식구 단란하게 살아갈 수만 있었다면

아니, 여기가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축복을 내리는 그런 나라였다면

아니, 여기가 엄마, 아빠도 주인인 그런 세상이었다면

엄마, 아빠! 너무 슬퍼하지 마.

이건 엄마, 아빠의 잘못이 아냐.

여기, 불에 그을린 옷자락의 작은 몸뚱이,

몸뚱이를 두고 떠나지만

엄마, 아빠! 우린 이제 천사가 되어 하늘나라로 가는 거야.

그런데 그 천사들은 이렇게 슬픈 세상에는

다시 내려올 수가 없어.

언젠가 우린 다시 하늘나라에서 만나겠지.

엄마, 아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배운 가장 예쁜 말로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어.

엄마, 아빠……엄마, 아빠……

이제, 안녕, 안녕…….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어려운 노동자들과 영세 서민들의 삶은 20여 년 전에 비해 그리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1990년 무렵 맞벌이 영세 서민 부부가 지하 셋방살이를 하고 있었는데, 세 살, 다섯 살 된 두 자매를 어디 맡길 데가 없었습니다. 문을 열어 놓으면 부엌으로 나와 더 위험할까 봐 자물쇠로 문을 잠그고 일을 나갔습니다. 두 아이들이 심심하니까 성냥불 장난을 하다가 옷가지와 이불에 불이 붙어 연기에 질식해 숨졌습니다. 이 두 아이의 죽음을 정태춘씨가 〈우리들의 죽음〉이라는 노래로 만들었습니다.”

이 노래는 내 중학교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중학교 이학년이었을 것이다. 당시 담임 선생님은 전교조 분이셨는데, 수업 시간에 웬 노래를 틀어주시면서, 이 이야기를 해주셨다. 두 아이의 죽음을. 그리곤 창밖을 바라보시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다. 꽤 예전 일이지만 지금도 선생님의 눈물이 생생히 떠오른다. 당시 나는 그리 큰 슬픔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철이 없었거나, 아직 그 누구도 그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1990년 무렵과 2009년 지금. 과연 이 땅의 노동자들의 삶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자신할 수 없다. 아니 전태일 열사가 자신을 사르며 외쳤던 노동자들의 진정한 삶의 권리는 과연 얼마나 개선되었을까. 자신할 수 없다. 정말 자신할 수 없다. 그래서 무참하고, 서럽고 죄스럽다.

세상 모든 괴로움을 다 초월하여 “다 그런 거지, 어떻게 세상이 완벽할 수 있겠어. 있는 사람들도 있으면, 없는 사람들도 있는 거고. 다 그런 거잖아.”이럴 수도 있겠다. 자신이 악해서가 아니라 차마 이 모든 슬픔들을 감당할 수 없어, 애써 돌아보지 않으려 할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랬다. 예전 다니던 사무실에서 가끔 담배를 태우러 복도로 나와 창밖을 바라보면 늘 횡당보도 앞에서 어떤 아주머니를 보곤 했다. 일정한 시간마다 길을 건너기 위해 서 있던 아주머니. 초라한 행색에 역시 초라한 배낭을 메고. 그 분은 손에 무언가를 열심히 바라보며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그 분의 철지난 운동화가 안쓰러웠고, 채 손질하지 못한 머리가 송곳처럼 날 찌르곤 했다. 아마 그 아주머니는 신용카드와 같은 작은 우편물들을 배달하는 분이었으리라.

그런데 왜 그 분의 모습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을까. 우습게도 내 어머니와 너무나 흡사했기 때문이다. 작은 체구나, 얼굴 생김새나, 하다못해 걸음걸이까지. 내 어머니 역시 평생 좋은 옷을 입어 본 적이 없었고, 평생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는. 그러나 노동자로서 인정도 받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내 어머니는 저 아주머니와 같았다.

목구멍에서 무언가 치밀어 올라오는 느낌. 그냥 보기 싫었다. 내 어머니를 여기서 또 보는 것 같아서. 그래서 부러 외면하려 했지만, 어김없이 난 그 아주머니를 쳐다보고 있었다.

비정규직 남편의 낡은 작업복을 빨며, 단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새 작업복 구입을 할 수 없다는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벅벅 닦으며 바짓단을 수선하는 아내의 이야기도 날 힘들게 했다.  


“저기, 여보……, 작업복을 살 수가 없다는데…….”

“왜?”

“그게, 난 비정규직이라 살 수가 없다네. 작업복은 정규직만 살 수 있고 비정규직은 회사에서 나눠 준 그 바지만 입어야 한 대……. 그래서 아는 정규직 사원한테 부탁은 했는데 모르겠네…….”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지만 가슴에서 알 수 없는 서러움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남편은 마치 죄인인 양 내 앞에 새로 산 작업복을 내놓으며 바짓단을 줄여 달라고 했다.

남편과 아이가 다 자는 새벽. 남편 작업복을 꺼내 가위로 길이를 잘라내고 손바느질을 하면서 자꾸 흐르는 눈물 때문에 시야가 흐려져서 손가락을 몇 번이나 찔려서야 완성할 수가 있었다. 뜨거운 다리미로 곱게 주름 잡아 옷걸이에 걸어 놓고 순간 나도 모르게 다시 바지를 바닥에 패대기치고는 발로 밟아 버리고 손으로 비틀기를 몇 번 하고 나서야 내 가슴속의 무엇인가가 비로소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이 뿐일까. 서러운 삶의 파편들이. 그래서이다. 우리가 제대로 알고 제대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책은 6명의 고수로 하여금 우리가 정말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물론 선택은 자유다. 하지만 난 그 선택마저 이미 정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난 20%에 속하지 않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같은 80%이기에 쪽수를 밑천삼아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또 느낀다.

책머리에서 안건모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80이 20을 지배하는 세상이, 사람이 살기 좋은 세상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노동자가 노동을 해서 만든 세상인데 노동자가 주인이 되어야 하는 게 정말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80%가 봐야겠지요. 당신이 그 나머지 20% 자본가라고 생각하면 이 책을 안 봐도 됩니다. 책을 그만 내려놓으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분명 80%에 들어가는 분입니다. 이 책을 꼭 보시고 널리 선전해 주세요. 당신을 포함한 80%가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보입니다. 아참, 절대 빌려 주지 마시고 꼭 사서 보라고 하세요.”

그래서이다. 절대 누구에게 이 책을 빌려주지 않았다. 사서 보라고 했다. 그래야 더 좋은 책들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입장료 한 푼 받지 않고 많은 이들이 고수들의 강연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1%”라는 광고가 버젓이 나온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라고 떠든다. 최근에는 오랜 만에 만난 친구에게 아무 말도 없이 새로 뽑은 그랜저 자동차를 보여준다. 그게 자신이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를 말해준단다. 아무 아름다운 세상이다. 그렇게 돌아간다. 평택의 노동자들에겐 물도 아깝다. 목말라 죽더라도 상관없단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이라니. 무슨 좌빨 책인가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담 읽지 마시라. 하지만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80% 중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 좌빨이든, 꼴통 보수든 자기 아이들이 무시 받지 않고, 당당하게 일한 만큼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시기 바란다.

학교 후배들에게 이 책을 사주려고 돈을 모으고 있다. 물론 그 녀석들이 제 돈으로 사서 읽는다면야 땡큐지만, 그동안 술 사준 것 밖에는 선배 구실 제대로 못 한 나이기에. 이런 퍼포먼스라도 필요하다고 느꼈다. 한 녀석이라도 읽고, 눈물을 흘린다면 난 밥벌이는 했다고 믿는다.

아름다운 모든 찌질이 80%에게 이 책을 권한다. 돈 주고 사보시라.

아, 제목이 무슨 말이냐는 분들을 위해 다음 글을 붙인다. 하종강 선생님의 강연 중 한 대목이다.

“민주노총의 김진숙 지도위원 아시죠? 《소금꽃나무》책 내신 분. 그분이 이런 얘기를 해요. 자기가 세상에 태어날 때 박정희가 대통령이 됐는데, 자기가 스무살 될 때까지 그 사람이 계속 대통령이었다는 겁니다. 박정희가 죽었을 때 조카가 걱정스럽게 묻더랍니다. ‘이모, 앞으로 박정희 대통령은 누가 해?’(웃음) 이런 코미디가 벌어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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