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파울로 코엘료의 『흐르는 강물처럼』을 읽고 있을 때, 김 훈 선생의 『바다의 기별』을 쟁여두고 있었다. 당시 두 책을 비교하는 글들이 적지 않았고, 나 역시 어설픈 눈으로나마 두 작품을 함께 읽어보려 한 심산이었다. 그렇게 먼저 파울로의 책을 읽고, 두 달이 지나서야 김훈의 책을 집어 들었다.

김훈의 책은 여러 권 읽은 경험이 있다. 뭐 마니아 수준은 아니지만, 신작이 나오면 꼬박 꼬박 쟁여두는 편이었다. 『남한산성』에 대한 뼈아픈 여운이 남아있던 터라, 이번 책이 에세이 형식이라고는 해도 어느 정도 기대는 하고 있었다. 뭐랄까, 남한산성은 그 이전의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등과 같이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무참한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꽤 재미있게 읽었고, 꽤 아프게 읽었다.  


김훈이란 작가에 대해 여러 가지 평가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필력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한 글자 한 글자 연필로 꾹꾹 눌러 담는 그의 글은 예사롭기 때문에, 더욱 비범하고 또한 무참했다. 삶에 대한 에누리 없는 시선과 그 속에 담겨 있는 눈물겨운 사랑 역시 김훈의 작품을 챙겨 읽게 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바다의 기별』은 에세이다. 그의 비교적 자유로운 생각과 중얼거림이 담겨 있다. 때문에 어찌 보면 덜 비장할 수도 있고, 예사로울 수도 있다. 또한 전에 파울료의 책을 평가할 때 말했던 식의 폄하가 가능할 수도 있다. 유명 작가가 가장 쉽게 돈벌이하는 방법으로서의 악용 말이다. 하지만 결론을 말하자. 김훈은 단지 김훈일 뿐이었다. 덜도 더할 것도 없는 김훈.

그는 애써 세상을 아름답게 꾸미지 않는다. 그럴 필요도 없다. 세상은 물론 눈물겹지만, 순간순간 나타났다 명멸하는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그는 딱 그만큼의 아름다움만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밖의 무참함은 그대로 건져낸다. 어쩔 수 없다. 그가 삶을 바라보는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삶 자체가 그런 것임을.

밥벌이의 지겨움을 말하지만, 정작 그 밥벌이가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를 알고 있는 그. 자신이 아니면 다른 어떤 기자가 대신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전두환을 위한 용비어천가를 묵묵히 써내려갔던 사람. 그걸 부정하지도 않는 사람. 그는 그렇게 정직한 작가다. 온갖 아름다운 말로 세상을 꾸미려 해도, 어차피 세상은 그들의 붓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자신의 의지와 소신을 꿋꿋하게 지켜내는 듯하다가, 한 순간 변절해버리는 속절없는 사람들이 넘치는 지금. 어쩌면 그의 우직함과 단단함은 더욱 무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면에서 그는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

소방수들의 애환을 담담하게 펼쳐낸 ‘기다려라, 우리가 간다’에서 그는 “인간에게 다른 인간이 다가오지 않으면 고립된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지극히 당연한 이 말이 사무치게 다가오는 요즘. 때문에 어쩌면 그의 글이 지극히 예사로운데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그를 찾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다가오고 있는 인기척, 그것이 인간의 희망이라고 말한다. 동의한다.

그리고 그는 신념에 찬 이들을 경계한다. “나는 신념에 가득 찬 자들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습니다. 나는 오히려 의심에 가득 찬 자들을 신뢰합니다. 인간의 진실이 과연 신념 쪽에 있느냐 의심 쪽에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더 많은 진실은 의심 쪽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렇게 그는 신념을 가진 이들을 경계한다. 동의한다. 아니 절감하고 있다. 온갖 비장한 신념을 내세우며 나타난 이들이 세상을 얼마나 무참하게 만들었나. 혹은 추호의 의심도 허하지 않는 지금의 시대는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신념이 필요하다고 믿지만, 그들이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의 글은 사실 편하게 읽히는 편이 아니다. 모든 글쟁이들이 그러겠지만, 그의 글은 한 문장 마다 수많은 밤들의 고단함과 치열함이 묻어있다. 그렇기에 더욱 처절하게 예사로울 수 있지 않을까. 때문에 그의 글은 적은 분량임에도, 적어도 나한테는 쉽사리 넘어가지 않는 그것이다.

그야말로 사람들이 그리운 시대에 우리는 그의 글을 아껴 읽고 있다. 그만큼 그의 글에는 사람이 있고, 우리가 있고, 눈물이 담겨 있다. 보통 사람들의 그러나 결코 예사스럽지 않았던 삶을 그는 개의 발바닥을 살펴보듯 유심히, 또한 무심히 쳐다본다. 그 무심함에 삶에 대한 비관과 회의만 있다고는 생각지 말아야 한다. 그 안에는 눈물을 믿는 이의 간절함도 함께 묻어있다.

정말 맥 빠지는 더위와 그보다 더욱 허탈케 하는 세상. 김훈의 글이 우리를 더욱 무참케 할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자. 우리는 누군가를 위한 인기척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론 더욱 더 아파해야 할 것이다. 우리보다 먼저 사람 냄새를 풍기며 살다간 수많은 이들이 그랬듯.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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