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 붉게 핀 역사의 꽃이었던 인물들의 이야기
천형균 지음 / 정보와사람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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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심상치 않다. 어설픈 내 서평들을 읽어본 이들은 얼추 아시겠지만 내가 좋아할만한 제목이다. 서평을 쓰기 위해 읽어둔 책들이 프린터 위에 어느 덧 적잖이 쌓여있다. 순서대로 서평을 쓰리라 다짐했지만, 읽은 시간이 지나니 당시의 감흥도 사라진 듯한 느낌이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젊은 녀석이 벌써 기억 탓이나 한다.

책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시대에 저항했던 오버액션맨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더 이상 노예가 되길 거부했던 스파르타쿠스를 시작으로 어떠한 이유에서건 삶을 내던져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냈던 이들의 모습이 펼쳐진다. 이들의 다양한 삶만큼 직업군 역시 다양하다. 혁명가, 정치가는 물론이요 작가, 학자, 사상가, 일본의 사무라이와 승려, 그리고 카사노바나 노애 같은 딱히 직업을 규정하기 힘든 이들도 등장한다.

스텐카 라진, 푸가초프, 바쿠닌, 크로포트킨, 체 게바라, 호치민, 볼테르, 니체, 도스토예프스키, 푸셰, 베블런, 크롬웰, 로베스피에르, 홍수전, 트로츠키, 카사노바, 노애, 사드까지. 여기서 카사노바, 노애, 사드는 무언가 하고 물을 수도 있다. 이들은 성 윤리에 저항한 이단아들로 설명된다. 뭐 그것도 나름 중요한 반항이긴 하다.

한반도에서 치열한 삶을 살았던 이들도 소개되고 있다. 반갑다고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봉준, 김옥균, 묘청, 신돈, 정여립, 허균 등이다. 다들 그렇게 아름다운 최후를 맞은 이들은 아니다.

책을 읽으며 아쉬웠던 점 하나. 여성이 없었다는 점이다. 아니 유사 이래 여성은 한 번도 반항한 적이 없더냐. 여성분들이 살짝 기분 나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로자나 가네코 후미코, 황진이 하다못해 대한민국 공식 열사 유관순 누나도 있지 않나. 뭐 저자가 여성만 따로 다룬 책을 구상 중일 수도 있으니 좋게 생각하고 넘어가자.

책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는 아직도 그 평가가 분분한 이들도 있고, 결코 아름답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는 인물도 있다. 솔직히 카사노바나 노애 같은 인물을 훌륭하다고 하긴 좀 그렇지 않나. 약간 부러운 면은 있다 하더라도…. 이크, 돌 맞겠다.

어찌되었든 책을 채우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이상이나 신념을 실현시키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제 수명을 다 채우고 돌아간 이들도 있지만, 역시 원하는 바를 성취했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 하나, 이들은 결코 자신의 삶을 타인에게 맡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보기에 온갖 부조리와 억압이 판치는 세상에서 제대로 한 번 살아보고자 치열한 삶을 불태웠던 이들의 이야기는 일상에 찌들어 정신 못 차리고 살아가는 나에겐 매서운 죽비가 되어준다.

신념이든 욕망이든 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내던져 세상과 맞섰다는 것. 불의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겐 어떤 경이로움마저 준다. 물론 소수의 특정 엘리트들이 역사를 발전시켜나간다는 것에 반대하는 편이다. 하지만 분명 변화의 불씨를 당긴 이들은 있었다. 그 작은 변화에 민중들의 힘이 보태져 걷잡을 수 없는 불길로 치솟게 된다. 우리는 ‘처음’이라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섰던 이들의 삶을 통해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나약한 인간이 때로는 얼마나 위대할 수 있는가를 뼈 속 깊이 느끼게 된다.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 이후 어떤 작가는 이제 대한민국의 운이 다했다고 탄식한다. 요즘 같은 꼴을 보면 그런 말이 나올 만도 하다. 하지만 너무 비관은 하지 말자. 언제나 우리 역사엔 ‘선천성 불의기피증’환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더러운 세상을 당최 받아들이지 못하고 시원한 ‘오버액션’으로 역사를 변화시켜 나갔다. 우리 주위엔 분명 그런 눈물겹게 고맙고 무모한 이들이 존재한다. 여전히 말이다.

언제나 서평을 통해 욕을 해댄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서평은 배설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희망을 찾고 반성을 통해 또 다른 실마리를 잡아야 한다. 적어도 타인에게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어야 좋은 서평일 것이다. 그렇담 나는 평생 좋은 서평 쓰기는 글렀다는 생각이다. 오호 통재라, 하지만 역시 사람은 제 생긴 대로, 제 능력대로 살아야 한다. 어쩔 수 없다. 세상의 이치다.

최근 유명 여배우의 유골함이 도난당해 난리가 났다. 사건 자체도 엽기였지만, 아무래도 고인이 국민 여배우로서 사람들의 가슴 속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화제가 되었으리라. 한 마디만 하자. 용산 희생자들은 7개월 째 냉동고에 모셔져 있다. 장례는커녕 시신 보관료 4억 원이 걱정이다. 피눈물 나는 세상에 정작 사람들은 죽은 여배우의 유골함에 더 관심이 간다. 아님 미국에서 몰래 결혼한 여배우라든지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에는 모두가 울었지만, 용산 참사 희생자들을 위해 울어주는 이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부터도 통렬한 반성이 필요할 것이다. 너 도대체 뭐하고 사는 녀석이냐는 생각을 해야 한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죽음들이다. 누군가는 그 업보를 받을 것이다.

반항인이라는 이름은 누구나 금기시하지만, 한 편으로는 동경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평생을 민주화에 투신했던 김대중 대통령은 분단된 한반도에서 금기시되었던 통일을 이야기했고, 머리에 뿔이 달린 줄 알았던 이른바 북 괴뢰 정권의 수괴를 만나 평화를 이야기했다. 분명 김대중은 반항인이었다.

우리는 지금 주위를 둘러봐야 한다. 반항인들이 점차 설 곳을 잃고 사라져가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하찮은 쓰레기가 되어 삶을 누르는 이 지독한 굴레 속에서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말 난 살고 있는 게 맞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아님 축생과 다를 바 없다. 때문에 책은 나 자신의 설 곳과 서있는 자리를 확인케 해준다는 점에서 미덕이 있다.

쓸모없는 인간이 될까봐 두려워하기 보다는 냉정한 인간이 될까봐 걱정해야 한다고 믿는다. 인간은 영재나 인적자원이나 이딴 표현으로 지칭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평생을 ‘아름다운 오버’를 하며 살다 가신 김대중 대통령님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빈다. 그 어디에서든 바보 노무현과 함께 행복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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