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된 공주
카렌 두베 지음, 안성찬 옮김 / 들녘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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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른 바 〈판타지 소설〉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다. 〈반지의 제왕〉같은 영화는 즐겨봤지만, 굳이 책으로 읽을 만큼 좋아하진 않는다. 감수성이 단단히 사라져 버린 녀석이다. 쓸데없이 책에다 대고 “이게 말이 돼?” 따위의 소리나 늘어놓곤 했으니. 판타지가 말이 되면 그게 되냐?

책을 읽은 것은 꽤 지났다. 쌓여있는 〈서평 작성 예정도서〉중에서도 아래에 놓여있었다. 아마 조금만 시간이 더 지났음 줄거리나 주인공을 비롯한 주요 등장인물들까지 잊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찌 이 유쾌한 모험을 쉽사리 잊을 수 있겠는가.

불을 뿜는 용이 등장하고, 절세 미녀 공주를 둘러싼 사랑의 투쟁, 음모와 배신, 의리와 정의가 살아 숨 쉬는 기막힌 세계. 어쩌면 뻔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영웅 서사시의 구조에서 벗어남이 없지만,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면 장면은 아주 조금은 나를 아이처럼 만들어 준다.

〈비〉와 〈이것은 사랑노래가 아니다〉로 베스트셀러 작가 대열에 오른 저자는 독일의 대표적인 작가 중 하나라고 한다. 유럽 작가들에 대해 거의 무지하다시피 한 (사실 다른 지역의 작가들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별로 없긴 하다) 나로서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나름 필력을 인정받은 작가라고 들었다.

〈납치된 공주〉는 영웅 서사시와 중세 기사 문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일 년 내내 눈으로 덮여있는 북쪽나라의 아름다운 공주 리스바나.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는 용감한 기사 브레두르. 하지만 따스하고 부유한 왕국 바스카리아의 디에고 왕자가 찾아와 리스바나에게 반하고 만다. 기사로서 용서될 수 없는 질투심으로 브레두르는 연회에서 춤을 추고 있는 디에고에게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게 되고, 두 국가 간에는 전쟁까지 불사하는 일촉즉발의 사태가 벌어진다.

소동 끝에 리스바나에게 청혼하는 디에고 왕자. 하지만 리스바나는 매정하게 거절하고. 아들의 고통을 보다 못한 레오 왕은 디에고를 위해 리스바나를 납치해 본국으로 돌아가는데…. 한편 납치된 공주를 찾기 위해 브레두르는 먼 길을 떠나게 되고 온갖 모험과 고나을 이겨내며 공주를 찾지만…. 과연 리스바나의 사랑을 얻는 이는 디에고일까, 브레두르일까.

〈해리포터 시리즈〉첫 권을 읽고 포기한 기억이 있다. 재미를 못 느껴서라기보다는 당시 읽어야 할 책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아직까지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시 시작을 하자니 이건 뭐 분량도 만만치 않고, 중간 중간 영화도 몇 편 봐서 대충은 알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납치된 공주〉를 읽고 다시 해리포터에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용과 마법사, 난쟁이들이 등장하는 환상의 세계. 명예를 지키기 위해 때론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용기, 스스로의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강인한 의지, 그리고 목숨을 바쳐 이루어내고픈 사랑. 허구와 환상으로 점철된 판타지 소설이지만, 소설이 전해주는 감동은 이 현실의 세계와 전혀 틀리지 않는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자격, 그것을 간직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세상이다. 우정, 의리, 명예, 양심, 관용, 배려 그리고 사랑. 이런 단어들이 무색해지는 지금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치졸하고 더러운 군상들이 TV화면을 장식한다. 오로지 돈과 권력에 눈이 먼 이들은 타인을 짓밟고 때로는 아무 거리낌 없이 해친다. 그리곤 그것을 발전, 혹은 국익이라 말한다.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대가를 받아들이는 모습.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지만 그렇기에 너무나 숭고하기도 하다. 그러한 모습을 본지 우리는 너무나 오래 되었다. 때문에 소설에 등장하는 용감한 기사와 명예를 지키는 왕자는 이 시대 우리가 꿈꾸는 인간상 바로 그것일지도 모른다.

판타지의 환상적인 세계, 그 속에서 명멸하는 수많은 군상들 속에 현재를 오버랩 시키는 것은 어쩌면 오버일지도 모른다. 판타지는 다만 판타지일 수도 있으니. 하지만 아름다운 공주를 지키기 위해 불을 뿜는 전설의 용, 그 용과 같은 사람들을 우리는 그리워한다.

유쾌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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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필름 클럽》 데이비드 길모어 / 홍덕선 옮김 / 솔출판사






 


 

 

 



고전 영화부터 현대의 걸작 영화에 이르기까지, 영화 예술의 진수를 평이하고도 깊이 있고 재미있게 다룬 에세이. 이 책은 일종의 영화 입문서이자 영화 교육서이다. 인생의 낙오자가 되려 하는 아들에게 영화를 보여주며 삶의 용기와 의욕을 불어넣어, 한 아이를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시킨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열여섯 살짜리 아들이 공부에 전혀 관심이 없고 학교 다니기 싫어하는 것을 파악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학교를 중퇴해도 좋다고 허락하는 대신, 딱 한 가지 조건을 내건다. 일주일에 세 편씩 아버지와 함께 영화를 보는 것. 이후 3년간 아들은 아버지가 골라주는 영화를 보고, 아버지가 영화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한다.

이 책은 아버지와 아들이 영화를 보며 나누는 대화가 주축이 된다. 영화에 대한 어려운 이론이 나오지도 않고, 고전 예술 영화만 다루는 것도 아니다. 그저 보통의 가족이 영화를 보며 나눌 만한 말들이 자연스럽게 오간다. 아들은 영화를 보며 아버지와 대화하는 가운데 정서적인 안정을 찾게 되고 자기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아버지가 아들이 학교를 중퇴한 후 보여주는 첫 영화는 누벨바그의 거장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400번의 구타]이다. 또한 아버지는 [원초적 본능]을 보여주며 아들의 욕구를 해소해주기도 하고, 아들이 실연으로 우울할 때는 신나는 액션 영화 [비정의 거리]를 보여준다. 이렇게 총 114편의 영화가 교육적 가치와 문화예술적 가치를 두루 고려하여 선정된다.

연꽃도시》 한한 / 박명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2006년 2억 6천만 위안의 인세수입을 올려 '포브스'지 유명인 명단에 올랐던 중국 작가 한한의 대표적 청춘소설. 원제 '一座城池'는 '유토피아'라는 의미로 개혁개방으로 인해 상업화된 2004년의 중국의 어느 도시를 배경으로 현대 중국 젊은이들의 삶과 일상, 그들이 꿈꾸는 이상향을 그려 내어, 2006년 중국대륙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중국의 당대 도시 젊은이의 세태 풍경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어 한한 신드롬을 일으키는데 견인차 역할을 한 작품이다. 2004년, 상업화의 절정을 달리는 중국의 어느 가상도시에서 백수로 지내던 젠수와 주인공 '나'는 우연히 패싸움에 휘말려 현장에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누명을 쓰고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이들의 삶에 왕차오라는, 학생 신분에 어울리지 않게 자가용을 굴리는 부유한 녀석이 합류하고, 그들은 한패가 되어 복권 구입과 인터넷 사업을 벌이며 일확천금의 꿈을 키워 나간다. 그러던 중 세계에서 가장 높은 매출을 올리는 중국 도시의 성탄절에 갑자기 시청사가 폭발하고 거리는 일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마는데… 
 

 

티베트의 별》 골드스타인․셰랍․지벤슈 / 이광일 옮김 / 실천문학사


'역사인물찾기' 시리즈의 스물여덟 번째 권. 티베트의 근대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티베트인 푼왕의 삶은 고스란히 티베트 현대사와 그 궤를 같이하며 티베트인들의 고뇌와 역사를 생생하게 드러낸다. 
 

 

푼왕은 1922년 동티베트의 오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 무렵의 티베트는 안으로는 귀족과 종교계가 지배하고 밖으로는 중국 군벌에는 예속된 봉건시대였다. 푼왕은 봉건제도를 타파하고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는 데 평생을 바치기로 마음먹는다. 열일곱의 나이에 티베트 공산당을 창건하고 인도, 중국, 소련 등 사회주의 세력과 연대하기 위해 세계를 누볐으며, 귀족과 승려를 망라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설득한다.

스물일곱 살에 사회주의자로 낙인찍혀 조국에서 쫓겨난 푼왕은, 민족 간의 평등을 옹호하고 일체의 억압에 반대하는 사회주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중국공산당과 협력한다. 그는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등 중국 최고 지도자들과 함께 달라이 라마와의 회담에 깊이 관여하며 1951년 5월 티베트-중국 간의 17개 조 협정을 성사시킨다.  


그러나 푼왕의 존재를 버거워한 중국 공산당에 의해 배신당하며 18년 투옥된다. 허나 이 혹독한 시련도 그를 꺽지는 못했다. 살아남은 푼왕은 지금도 끊임없이 소수민족 자치를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올해 여든 일곱, 푼왕의 투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교수대 위의 까치》 진중권 / 휴머니스트


가장 ‘개별’적이면서 가장 ‘독창’적인 진중권의 그림 읽기. 우리 시대 오래된 친구 ‘미오’로 불리는 <미학 오디세이 1, 2, 3>을 비롯하여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서양미술사 1> 등으로 예술적 상상력의 세계를 보여주었던 진중권. 그가 자신의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그림 컬렉션이자,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작품들의 전시회를 열었다.  


그가 책이라는 시공간에 전시한 12점의 그림은 미술사 속에서 ‘타자’로 인식되어온 예술가와 작품들이다. 초현실주의, 르네상스, 광우, 자기성찰, 해석의 문제 등을 담아낸 그만의 개별적이고 독창적인 ‘그림 읽기’이다. 그의 영혼에 울림을 준 12점의 그림. 그것은 작품이 숨 쉬었던 시대의 우울과 개별 예술가의 삶, 그리고 당대의 사회문화적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또한 이 책에는 한 달 전 중앙대 마지막 강의의 내용도 포함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화가의 자화상과 나의 모습’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 강의는 7장 '사라진 주체'에 오롯이 담겨 있다.

온 아워 웨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 / 조원영 옮김 / 에쎄  

 


이 책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대공황의 중심에서 뉴딜정책을 입안하고 진행한 그 지난한 과정을 되돌아보며 최대한 있었던 일 그대로 직접 써내려간 기록이다. 의회와 행정부는 물론 대부분의 국민들을 자신의 지지세력으로 만든 뛰어난 수완과, 세계라는 기계의 한 톱니바퀴로서 국가를 이해하고 운영해나간 글로벌 리더십의 진가가 남김없이 드러나고 있다.

구체적으로 집행된 국정운영 행위 자체의 내용들을 루스벨트의 육성으로 직접 들어볼 수 있으며, 각종 행정조치나 입법조치들을 수행해나가는 대통령 루스벨트의 업무 결정 스타일, 속도감 및 국정 전반을 파악하고 해석해나가는 그만의 독특한 방식을 발견할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선물한 책으로 유명하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역사의 한 장면을 연출했던 뛰어난 리더로서 한 위대한 대통령의 현실 인식방식과 파악된 현실 상황에 대처하는 최고통수권자로서의 결의와 의지, 그리고 일단 결정된 시행정책에 대한 확고한 실천의지와 책임의식 등 철학적이고도 개인적인 루스벨트 대통령의 내면세계를 살펴볼 수 있다.

내 마음속 대통령》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 / 한걸음․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배경과 7일간의 추모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한 책이다. 노 대통령의 서거 배경으로 거론되는 ‘대통령기록물사건’과 이른바 ‘박연차게이트’의 전후맥락을 노 대통령이 남긴 기록을 중심으로 정리하고 있다.

특히 서거 1개월 전에 이명박 대통령에게 청원 형식으로 쓴 ‘부치지 않은 편지’와 대검찰청 출석 후 5월 초에 작성하다가 중단했던 ‘추가진술 준비’는 그 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자료로, 서거 직전 노 대통령의 생각과 갈등을 잘 드러내고 있어서 주목된다.

또한 지난 5월 23일, 서거 당일의 정황을 경찰수사 발표내용, 언론보도, 비서관의 증언 인터뷰 등을 종합해서 생생하게 재현하여 기록했다. 이로써 그 동안 일부에서 제기되던 타살설이나 유서 진위 여부 등이 명확하게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른 살에 처음 시작하는 직장인 밴드》 전미영 / 북하우스


직장인 밴드를 경험하고 그 안에서 삶의 활력을 찾았던 지은이의 실제 경험담과 여러 직장인밴드 인터뷰 등을 담은 책. 초보자들을 위한 입문 팁을 상사히 수록, 구체적인 입문 방법을 알지 못해 주저했던 이들에게 실용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30대를 위한 본격 부추김 취미실용 에세이, '서른 살 처음' 시리즈 1권.

실제 직장인 밴드의 세계에 입문할 때 생기는 여러 가지 궁금증, 예를 들어 악기는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 악기는 어떻게 사야 하는지, 밴드활동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은 없는지, 직장인밴드를 꾸리는 것부터 공연까지 어떻게 진행해야하는지 등 노하우를 담았다. 
 

 

여러 직장인밴드 선배들이 생각하는 직장인밴드의 의미를 함께 읽다보면, 30대라는 나이의 의미에 대해 한 번쯤 되새김질해볼 수 있는 책이다. 
 

 

시간을 가져요》 모 로지에 / 박소진 옮김 / 펼침


시간이 주는 치유와 작은 것에서 얻는 행복을 이야기하는 그림책. 저자는 이 작은 그림책을 통해 우리들이, 우리와 우리를 둘러싼 것들에 대해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야함을 보여준다. 침묵을 느끼는 시간, 뺨을 스치는 바람을 느끼는 시간, 삶을 배우기 위한 시간…. 그 밖의 우리 삶의 가치 있는 소소한 일들을 즐기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네덜란드》 조지프 오닐 /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


 

2009년 펜포크너 수상작이자 「뉴욕타임스」 선정 2008년 10대 소설, 아마존 선정 2008년 최고의 책인 <네덜란드>는 작가 조지프 오닐이 7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이다. 9.11 이후의 뉴욕을 배경으로 네덜란드 출신 애널리스트 한스와 트리니다드토바고 출신의 이민자 척의 상실과 회복의 이야기를 그린다.  


모든 사람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향수병을 앓고 있다. 뉴욕에 홀로 남겨진 한스는 잠 못 이루는 밤에 구글 어스를 타고 아내와 아들이 있는 런던의 집으로 날아간다. 그는 현실이 멈춰진 첼시 호텔에 산다. 그라운드 제로는 도시의 악몽을 채우는 텅 빈 구멍이다. 이방인들의 스포츠인 크리켓을 통해 만난 네덜란드인 한스와 검은 피부의 척은 브루클린의 뒷골목에서 스태튼아일랜드의 크리켓 경기장에서 맨해튼의 첼시 호텔에서 잃어버린 꿈을 찾아 떠난다. 잃어버린 꿈의 흔적을 좇는다.  


2008년 5월에 출간되자마자 뉴요커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작품이다. 2009년 5월 오바마 대통령이 읽고 있는 책으로 다시 한번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10만 부가 폭발적으로 판매되는 기염을 토했다.  


나는 가능성이다》 페트릭 헨리 휴스․페트릭 존 휴스․브라이언트 스탬퍼드 / 이수정 옮김 / 문학동네


장애인이라는 세상의 편견을 뛰어넘어 세상을 향해 희망과 감동의 팡파르를 울린 트럼펫 주자이자 피아니스트, 패트릭 헨리 휴스의 책. 2007년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한 이래, 연주 모습이 담긴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200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으며, 이후 ABC 뉴스 등에 그의 기적 같은 삶이 방영되어 미국 전역에 'I Am Potential'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패트릭 헨리 휴스는 특별하다. 두 눈의 안구가 아예 없고, 팔다리가 심각하게 굽어 제대로 뻗을 수도 없는 희귀한 장애를 안고 태어나서가 아니다. 그의 특별함은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사람들은 그의 삶을, 그의 연주를 '기적'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패트릭 헨리는 자신이 이룬 것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던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었다고 말한다.

불굴의 의지와 아버지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도전하면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과 열정의 상징이 된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언제나 뒤에서 휠체어를 밀어주며 동행해온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듯 함께 써내려간 책으로, 지금껏 자신이 이뤄낸 승리와 살면서 배운 희망, 두려움, 용기, 투지, 결심, 사랑 등 인생의 중요한 교훈들을 당당하고 소신 있게 전한다.

 

에브리맨》 필립 로스 /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해마다 노벨문학상의 강력한 수상 후보로 점쳐지고, 1998년 퓰리처상 수상, 전미도서상과 전미비평가협회상을 각각 두 번, 그리고 펜/포크너 상을 유일하게 세 번 수상한 작가, 필립 로스의 장편소설. 오래전 해적판으로 몇몇 소설이 소개되기도 했으나, 판권 계약을 통해 정식으로 국내에 출간되는 것은 <에브리맨>이 처음이다.  


2006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필립 로스의 스물일곱번째 장편소설이며, 작가에게 세번째로 펜/포크너 상의 영광을 안겨준 작품이다. 한 남자가 늙고 병들어 죽는 이야기인 이 소설을 통해 필립 로스는 삶과 죽음, 나이듦과 상실이라는 문제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깊은 사유를 보여준다.

소설은 황폐한 공동묘지에서 시작한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누군가의 가족이거나 친구들이다. 그들은 막 세상을 떠난 한 사람을 추억하고 있다. 주인공은 바로 이 장례식의 당사자인 '그'이다. 소설은 노년 시절의 '그'의 삶에 초점을 맞춰, 그의 인생 전반을 돌아보며, 삶과 죽음, 그리고 늙어간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건강과 젊음이 떠나고 쇠잔해지는 육체. 찬란했던 지난 시절에 대한 추억을 곱씹으며 곧 찾아올 영원한 망각을 기다리는 삶. 서글프고 애닲지만 그것이 바로 늙어가는 것임을,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삶의 일부임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임을 이 소설은 이야기한다. 그것은 특별할 것도 없고, 그저 우리가 맞아야 할 삶의 한 부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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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펭귄 - 어제보다 더 좋은 오늘
임순례.조은미 지음, 이우일 그림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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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권 등장 이후, 집요한 압박과 은근한 무시로 국가인권위원회가 가지고 있던 상징성과 역할이 상당히 축소되었다. 인권위의 권고사항이 정부 해당 부처 혹은 단체에겐 ‘쇠귀의 경 읽기’가 되어버린 지 오래고, 온전히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약화된 모습이다. 현 정부에게 국가인권위원회는 그저 귀찮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우리 사회가 국가인권위를 귀찮아해야 할 정도로 인권이 신장된 것은? 물론 아니다. 여전히 대한민국은 인권 침해요소가 차고 넘치는 국가 중 하나 아닌가.  

그런 면에서 인권위와 임순례 감독의 만남은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비로소 ‘흥행 감독’이란 타이틀을 얻게 된 임 감독은 사실 그동안 우리네 이웃의 삶을 따스한 시선으로 스크린에 담아 온 흥행과는 거리가 먼 감독이었다.

2004년부터 매년 인권영화 옴니버스를 만들어왔던 인권위는 2008년, 단편이 지닌 한계를 벗어나고자 장편으로의 전환을 시도했고, 그 첫 번째 영화가 바로 임 감독이 연출한 〈날아라 펭귄〉이다. 인권위의 첫 번째 장편영화가 임 감독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더없이 어울려 보인다.

제작 주최가 인권위 이다보니 예산의 압박이 가장 큰 문제였다. 하지만 임 감독을 신뢰하는 많은 배우들과 인권위의 취지에 공감한 여러 스탭들이 그야말로 차비 수준의 출연료에 흔쾌히 제작에 동참했다.  

영화는 끔찍하고 충격적인 인권침해 사례들이 아닌 일상에서 누구나 지나치기 쉬운 이야기들을 주제로 삼았다. 물론 영화에나 나올 법한 끔찍한 인권 침해 사례 역시 아직 우리 사회엔 너무나 많다. 이주노동자, 외국인 신부와 관련된, 또한 단순히 우리 주변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웃 중에도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당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끔찍하다는 말밖에 할 말도 없다.

영화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혹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인권 침해의 모습들. 사실 사소한 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큰 인권침해일지도 모를 일이다. 채식주의자에다 술 한 잔 입에 못 대는 남자의 직장생활, 알파 맘의 등쌀에 집에서의 대화마저 영어로 할 것을 강요당하는 아홉살 초등학생, 언제나 퇴근 시간이 두려워지는 기러기 아빠, 그리고 고령화로 인해 차츰 주목받고 있는 노부부의 갈등 문제.  

인권 문제를 다룬 영화하면 떠오르는 다소 무겁고 지루한 느낌을 〈날아라 펭귄〉에서는 도무지 찾을 수 없다. 배우들의 내공도 그렇거니와 비교적 가벼운 소재로 버무려진 영화는 잔잔한 웃음과 감동을 함께 전해준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무언가 조금은 성숙된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으리라.

영화의 개봉에 맞추어 출간된 이 책은 해학적인 문체로 등장인물들의 내면 풍경을 독백 형태로 묘사하고 있다. 영화에서 미처 다 보여주지 못한 섬세한 심리묘사가 돋보인다. 영화와 함께 읽는다면 감동이 더 할 듯하다.

세상은 결국 어울림이다. 하지만 이 단순하고도 분명한 이치를 거스르고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날아라 펭귄〉은 나와는 ‘조금’다른 이들에 대한 배려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되묻는다. 그런 면에서 책은 따뜻한 연대와 공존이 절실한 이 시대를 위한 작은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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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불패 - 이외수의 소생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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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음은

막걸리 사발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파리 같았어.

허구한 날을 술에 절어서 비틀거렸지.

희망 같은 건 아예 없었어.

암울한 70년대 춘천시 석사동 목로주점

썩어 문드러진 세상을 구운 오징어처럼 발기발기 찢어서

질겅질겅 씹어 삼키던

차라리 행려병자로 떠돌다 객사하는 한이 있더라도

양심을 똥통에 처박고 살지는 않겠노라고

큰소리치던 

친구놈들 

지금은 모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 새벽 나처럼 잠 못 들고 그때를 생각하고 있을까.

어느새 귀밑머리에 무서리 내리고

나는 천식에 시달리다 급기야

그토록 좋아하던 술도 끊고 담배로 끊어버렸지만

그래도 굳건히 남아 있는 자부심 하나

이 나이까지 아직 한 번도 인생을 배반하지는 않았다네.

일본의 침략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 나라가 있었습니다. 36년이란 시간을 식민지의 백성으로 살아야 했죠. 그러던 어느 날, 지금은 건국절이니 뭐니 떠들어대지만 1945년 8월 우리에겐 그딴 죽은 말들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어설프게 그린 태극기와 눈물만이 거리를 메웠죠.

하지만 기쁨도 잠시 다시 우리는 서로를 증오해야만 했고, 죽여야만 했습니다. 그렇죠. 난리가 난 거죠. 많은 친구, 형제, 이웃들이 죽어나갔습니다. 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었습니다. 어딜 가나 송장이 쌓여있었고, 어딜 가나 통곡이 넘쳤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상처와 증오를 그대로 가지고요. 반쪽으로 다시 시작한 우리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가난의 서러움, 굶주림의 공포를 잊을 수는 없었죠. 바른 역사? 민주주의? 그런 건 솔직히 몰랐습니다. 시키는 대로 죽어라 일만 했으니까요.

물론 그렇다고 돈에 환장한 짐승으로 보진 마세요. 우린 4월 혁명으로 지긋지긋하던 이승만 독재를 몰아냈고, 80년 5월 광주에서 피로서 민주주의를 외쳤으니까요. 87년 6월의 함성이 있었고, 이젠 어린 아이들이 촛불을 들고 시청을 가득 채웠잖아요. 우리는 단순히 짐승은 아니었습니다. 이건 정말 오해하시면 안돼요.

또 우리에겐 뿔 달린 괴물로만 상상되었던 북괴가 북한이 되었고, 이제는 함께 살아가야 할 한반도의 동반자가 되었죠. 하지만 솔직히 그동안 무조건 북 보다 우월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에요.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기 그지없고, 또 서글픈 기억이기도 하죠. 하지만 우리는 그게 옳은 줄 알았어요. 이겨야 한다고 믿었거든요.

어르신들은 말하죠. 너희들이 전쟁을 알기나 하느냐, 배고픔이 무언지 아느냐, 지금은 정말 호강하며 사는 세상이다. 또 이렇게 말하기도 해요. 나라가 흔들리고 있다, 다시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강한 지도자가 나와 국민을 강하게 이끌고 나가야 한다. 다시 군홧발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죠.

 

그런데 정말인가요. 지금이 살기 좋은 세상이라는 것이 말이에요. 하루에 30명이 자살하고, 아이들은 죄지은 것도 없이 입시지옥에서 죽어가고, 노동자들이 맞아 죽고, 국민들이 타 죽고, 북의 이웃들은 굶어 죽는 지금이, 정말 좋은 세상인가요.

최근 마들 연구소에서 나온 책 제목이 생각나요. 지금 이 시대에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바보 아니면 도둑”이라는 제목. 그럼 지금 이 세상엔 바보가 많을까요, 도둑놈이 많을까요. 둘 다 적지 않은 것 같긴 해요.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이렇게 매일 매일 생길 수는 없잖아요.

전 사실 이외수 선생을 잘 몰라요. 잘 팔린 책들이 적지 않은 작가인데도 이상하게 이 분 책은 읽은 적이 없어요. 이 선생님, 물론 오해는 하지 마세요. 저 안티팬은 아니에요. 하다 보니 못 읽은 것뿐입니다. 무식한 것도 자랑은 아니니까, 송구스럽긴 하네요. 아, 글쓰기 부양법 쓰신 적 있죠. 그 책은 가지고 있어요.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요. 

때문에 저에겐 이 청춘불패가 선생님과 첫 대면인 셈이죠. 반갑습니다. 뒤늦은 감이 있죠? 제가 좀 많이 게으른 편이긴 합니다. 이 책도 사실은 제 후배가 생일 선물이라고 사준 거랍니다. 음. 이 말이 선생께 그리 좋은 인상을 주진 못하겠네요. 암튼 훌륭한 후배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제목과 같이 책을 통해 선생님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귀한 말씀을 하셨더군요. 자신을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청춘부터, 부모를 증오하는 이, 사랑의 아픔에 슬퍼하는 이, 왕따로 고통 받고 있는 이, 수많은 청년 백수, 썩어 문드러진 세상을 용서하지 못하는 이,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이, 못생겨서 고민하는 이, 열등감에 사로잡힌 이, 시대에 뒤떨어진 이, 돈을 못 버는 이, 종교로 싸우는 이, 장애로 힘들어하는 이, 자살을 꿈꾸는 이, 시험으로 시달리는 이까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 뿐 아니라 모든 이들이 적어도 한두 가지 정도는 해당하는 고민, 상처들인 것 같아 아렸습니다. 그리고 찬찬히 읽어 내려갔죠. 읽으면서 많이 끄덕거렸어요. 참 답답한 세상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삶이란 게 도대체 뭔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결코 아름답기만 하진 않잖아요.

하지만 결국 선생께서는 희망을 말하셨어요. 용기를 말하셨고, 도전을 말하셨죠. 사실 제가 고백할 것이 있는데, 세상에 이름 좀 날렸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특히 노인네들이 많죠. 뭐 요즘엔 젊은 것들도 많긴 하더만. 암튼 그런 이들이 인생철학이 어쩌고, 바르게 잘 사는 것이 어쩌고 하면서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꼴을 못 봐요. 참 아니꼽더라고요. 물론 누가 봐도 참 저 분은 훌륭하다, 저런 말이나 글을 세상에 내놓을 만하다, 이런 분들의 말이나 글은 주의해서 보고 듣죠. 하지만 아시다시피 안 그런 양반들이 그런 글이나 말을 더 많이 뱉고 쓰잖아요. 참 같잖아요. 이건 국내외를 막론하고 나타나는 현상인 것 같긴 해요.

암튼 그래서 훈계조나 가르치려 드는 책들은 잘 안 봤어요. 구구절절 훌륭한 말이긴 한데, 왜 그런지 잘 와 닿지도 않고, 거부감만 들곤 했습니다. 하지만 인정할 건 해야겠네요. 개 같은 소리, 더러운 소리, 앗, 개에게 사과합니다. 개보다 못한 인간들이 너무 많은데 개를 들먹거리면 안 되죠. 그런 소리들보다는 그래도 좋은 이야기, 좋은 소리, 좋은 글을 읽고 듣는 것이 낫다는 것을요.

외람스럽게도 선생님의 책을 읽고 그런 생각이 더욱 들었어요. 또 한 번 오해는 마세요. 선생님이 별 볼일 없는 분이라는 것이 아니니까요. 오히려 그 반대겠죠. 때문에 책이 더욱 와 닿은 것일 수도 있고요. 좋은 말, 당연한 말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전해질 수 있느냐를 느끼게 해준 책이었습니다.

책 사이사이 마다 밑줄을 긋고, 따로 메모해두고픈 구절들이 많았어요. 감사합니다. 나중에 기억이 난다면 출처를 분명히 밝히고 친구들이나 사랑하는 이들에게 써 먹을께요. 그 정도로 기억에 남는 문장들이 많았어요. 확실히 선생님께서는 글쓰기 부양법과 같은 책을 내실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나쁜 놈’들 천지인 세상에서 ‘좋은 놈’이 될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하셨죠. 조금은 길 수 있지만, 잠시 인용해 보겠습니다.

그대여. 

문제의 해답이 여기에 있다. 그대 자신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나뿐인 놈’을 그대 스스로 단호히 처단하고 ‘나뿐인 놈’들과는 정반대로 남의 입장을 보살핀다면, 그리고 남의 입장을 보살피는 일을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면 그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좋은 놈으로 성장하리라.  


그대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나뿐인 놈’을 단호히 처단하는 순간부터 그대는 소망의 날개를 가지리니, 자신의 입장을 생각하기 이전에 타인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인간, 이웃의 입장을 생각하고 친구의 입장을 생각하고 심지어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누군가의 입장까지 생각하는 인간, 개의 입장을 생각하고 꽃의 입장을 생각하고 돌의 입장을 생각하고 심지어는 구름이나 바람의 입장까지 생각하는 인간이 되리라.

정녕 아름답다 그대여.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입장을 생각하고 천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입장을 생각하고 자신처럼 보살피기를 끊임없이 반복한다면, 그대는 분명 살아 있는 인간 그대로 부처님과 예수님의 반열에 오르리니, 나이가 어리다고 어찌 만천하가 그대를 경배하지 않으랴.

정말 당연한 말씀이죠. 하지만 지극히 당연한 이 말이 정말 지켜지기 어려운 것이 지금의 세상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인가요. 저에겐 선생의 말들이 외롭다는 생각도 조금은 들었습니다. 괜한 생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이런 문구들도 가슴을 때렸어요. 아프기도 했고, 속상하기도 했죠.

당신의 아버지는 어쩌다 밥상에 올라온 날계란 한 개를 통닭 한 마리와 맞먹는 부귀영화로 생각하면서 밥을 먹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젊은이, 허리가 휘도록 일해 본 적도 없으면서 카페에 등을 젖히고 앉아 한 잔에 삼만 원씩 하는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으면 도대체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양심을 지키고 살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말하는 손해와 이익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나는 이익을 얻기 위해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사느니 차라리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인간답게 사는 쪽을 선택하겠다.

자애로운 응원의 목소리도, 서릿발처럼 매서운 호통과 꾸짖음도 먼저 사람에 대한, 만물에 대한 사랑이 없이는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때문에 선생의 죽비소리가 더욱 소중한 것일지도 모르지요. 책을 통해 많은 ‘지극히 당연한 것’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그 중요함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것이 실종된 이 시대. 그것을 찾아 목말라하고 있는 많은 이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더러운 세상 속에서도, 치열하게 사랑해야 함을, 그 길밖엔 없음을 온 몸으로 느끼며 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도 권합니다. 참 쓸모 있는 글, 요긴한 글은 바로 선생의 글 같은 것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건필하시길 바랍니다.  

처음에 해방 이후부터 같잖게 역사를 들먹인 것은, 정말 또 같잖게 과거를 이야기하며 지금 청춘들이 마치 무슨 큰 죄라도 지은 양, 마구 마구 괴롭히고 훈계하는 인간들 때문에 그랬어요. 청춘들이 그 때 태어나지 않은 게 죄는 아니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만약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일생을 고생한 그네들의 그 노력을 인정해줘야 한다면, 지금과 같이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이 활개치고, 사람이 돈에 의해 맞아 죽는 세상은 또 누굴 탓해야 하는 것인가요? 같은 세대 분들의 탓은 전혀 없나요. 잘한 건 앞 세대가 다 했고, 나쁜 건 다 요즘 젊은 것들 탓인가요? 그건 아니겠죠? 

아, 선생님이 저 대신 이 세상에서 욕먹어야 할 인간들을 매우 간결하게 집약해서 한 번에 욕해주신 문장이 있어서 마지막으로 갈무리합니다. 물론 선생께서 이렇게 욕을 해대신 이유가 다 책에 있긴 하지만, 표현이 너무 재미있고, 통쾌해서 이 부분만 옮겨봅니다. 행여 다른 분들의 오해가 없으시길.

하긴. 이런 세상이 또 없긴 할 겁니다.

한여름 염병을 앓다가 땀도 못 흘리고 죽을 놈들과, 간에 옴이 올라서 긁지도 못하고 죽을 놈들과, 또는 한겨울 마른 벼락을 쫒아가서 맞아 죽을 놈들과, 사막에서 우박에 맞아 죽을 놈들과, 비행기에서 뱀에 물려 죽을 놈들과, 똥통에 처박혀 똥물을 들이키다 배 터져 죽을 놈들과, 아니면 그런 천벌을 배판에 흔들고 독박, 피박, 광박으로 받아도 모자랄 놈들과, 또는 그에 버금가는 년들이 활개를 치면서 살고 있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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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를렌 하우스호퍼 지음, 박광자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시간이 오직 내 머릿속에만 존재한다면, 내가 이 세상에 살아남은 최후의 인간이라면, 내가 죽는 순간 시간도 멈출 것이다. 이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어쩌면 내가 시간을 살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느 날 아침, 이 세상에 오직 나만 남겨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면. 모든 인간들이 사라지고 이 넓은 땅에 홀로 남겨진 자신을 발견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공포에 사로잡혀 미쳐버리고 말 것인가. 아니면 차라리 잘됐다며 고독과 벗하며 살아갈 것인가.

상당히 도발적이고, 동시에 진부한 이야기다. 핵전쟁이나 그밖에 어떠한 천재지변으로 홀로 남겨진 주인공의 고군분투기는 지금껏 적지 않았다. 때문에 이 책 역시 기존의 그것 이상의 것을 담지 못한다면 또 하나의 모험기, 혹은 인류재앙의 경고 정도로 남았을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 서평이나 신간안내문을 통해 대략의 줄거리를 알고 있었다. 때문에 조금은 식상하지 않을까, 과거 읽었던 비슷한 내용의 작품들과 차별될만한 그 무엇이 있을까 우려했다. 사실 고립된 이후 2년 반 동안의 홀로 생활이라면 매우 단조롭고 지루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은 그런 내 우려를 보란 듯이 날려버렸고, 난 시간이 날 때마다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그리곤 한숨을 쉬었다. 막막하고, 아득했다. 주인공이 겪었던 시간들, 상처들, 그리고 행복이 고스란히 가슴에 전해지는 듯했다. 아팠다. 적지 않게.

40대 여성인 ‘나’는 사촌 부부의 초대를 받아 그들의 산장으로 휴가를 떠난다. 그날 밤, 사촌 내외는 볼일이 있다며 마을도 나갔고, 혼자 남겨진 ‘나’는 그렇게 밤을 산장에 보낸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사촌 내외는 돌아오지 않았다. 산장지기가 키우던 개 ‘룩스’를 데리고 사촌 내외를 찾아 나선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벽에 부딪치게 된다. 투명하고 단단한 벽. 그 벽이 숲 속을 둘러싸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벽에 건너의 모습들. 그것은 화석이었다. 모든 것이 일순간에 정지된 듯한 모습. ‘나’는 자신이 그 벽 안에 있었기에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벽 너머에 물을 마시기 위해 손을 든 채로 굳어있는 노인을 바라보는 ‘나’는 공포와 함께 자신이 이 숲 속에, 어쩌면 이 세상에 홀로 남았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나’는 차단된 벽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를 지켜주는 동반자 ‘룩스’와 어느 날 발견하게 된 암소 ‘벨라’, 그리고 영리하지만 쌀쌀맞은 암코양이까지. 이들이 ‘나’의 새로운 가족이 된다. 이제 벽 안에서의 새로운 공동체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새로운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주인공은 눈물겨운 사투를 벌인다. 이는 생존을 위한 사투였고, 자연에 대한 투쟁이 아닌 적응의 과정, 어울림의 과정이다. 그 안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또 죽는다. 자연의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과정. 순환. 그 안에서 주인공은 도시의 무관심과 단절이 아닌 삶의 또 다른 너그러움과 냉혹함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인공은 벽으로부터의 탈출 혹은 구조에 대한 기대를 접는다. 이는 비관이 아니다. 새로운 희망이다. 그는 자신이 그동안의 삶을 긍정해오지 못했음을 느끼게 되고, 자연 속에서 동물들과의 삶이 더 행복하고 편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포기가 아니라 긍정의 과정이다.

이 작품은 문명사회에 대한 비판이 남겨있고, 남성중심의 폭력적인 사회 구조에 대한 부정이 드러난다. 때문에 이 작품을 페미니즘 문학의 한 성과로 평가하기도 한다. 생명을 낳고 그 생명을 보살피는 모성의 고통과 희열이 작품 전체에 흐르고 있다. 이는 단순히 모성의 역할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할의 숭고함(그 어떤 작위적이고 남성 중심의 해석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이 담겨져 있다. 주인공은 사랑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절실히 느낀다.

“사랑을 하고 다른 존재를 돌보는 일은 매우 힘이 드는 일이다. 그것은 살생하고 파괴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이십 년이 걸린다. 반면 아이를 죽이는 일은 십 초면 끝난다. 송아지도 크고 힘센 소로 자라는 데 일 년은 걸린다. 그러나 도끼만 두어 번 내리치면 소를 죽일 수 있다”

그간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남성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시간이라는 속박에서 벗어나 새로이 여성의 시간을 맞는 주인공. 희생과 수동의 상태로 규정지어왔던 여성의 정체성을 깨고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주인공의 분투는 눈물겹다. 때문에 지극히 아름답다. 그는 이제 아이들에게, 남편들에게, 그리고 사회의 모든 남성 중심적 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롭다. 강요된 애정, 사랑은 없다. 오직 스스로 자신을 위한 사랑과 희생, 용기가 있을 뿐이다.

지극한 슬픔을 전해주면서도 희망을 차마 버릴 수 없도록 만드는 것. 이 책의 큰 미덕 중 하나이다. 생존을 위해 살생을 하면서도 동시에 다친 동물들을 치료해주고 사랑해줄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모습은 아무 이유 없이, 혹은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잔인하게 살생과 파괴를 일삼아온 남성중심의 사회, 폭력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그러한 문명사회가 스스로의 욕망으로 파괴되는 것은 어쩜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작품에서는 왜 갑자기 벽이 생겨났고, 그 벽 밖에 있는 이들이 어떻게 화석처럼 굳어진 채로 죽어버렸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문명사회 스스로 만들어 버린 재앙임을 암시한다. 핵전쟁이건 또 다른 형태의 전쟁이건 결국 인간이 만들어놓은 추악함이라는 것이다.

고도의 기술화, 인간을 소외시키는 능률 위주의 공격적인 사회. 주인공은 이러한 사회에서 벗어나 타인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시키는 사랑으로 충만한 사회를 만들어간다. 지독한 고독과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인공은 자살을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남겨질 동물들에 대한 미안함, 인간이 삶이 과연 어떻게 이어질까 하는 기대로 주인공은 삶을 놓지 않는다. 오히려 치열하게 자신을 희생시켜 동물들을 돌본다. 그리고 행복해 한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사랑을 하지 않고 사라져버린 인간들을 동정한다. 그들은 진정한 삶을 미처 살지 못한 채 굳어버린 것이다.

“동물들은 안쓰럽다. 인간들도 안쓰럽다. 그들은 자기 의지와는 관계없이 이 삶 속으로 내던져진 것이다. 인간이 가장 불쌍할지 모른다. 인간에겐 이성이 있어서 자연의 순환을 막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간을 악하게 만들고 절망적으로 만들었으며 흉하게 만들고 말았다. 다른 식으로 사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랑보다 더 현명한 감정은 없다. 사랑은 사랑하고 있는 사람과 사랑받고 있는 사람 모두가 삶은 그래도 견딜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것만이 더 나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희망, 유일한 가능성이라는 것을 좀 더 일찍 알았어야 했다. 죽은 자들은 이제 그 유일한 가능성을 잃고 말았다.”

작품은 “인류문명에 대한 비판서이며, 여성의 소외를 밝히고 그 극복을 요구하는 페미니즘 소설인 동시에 새로운 역사를 위한 제안서”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버린 이 세계, 이 사회에서 더 이상 인간성을 포기하지 말고 다시 희망을 찾아 나설 것을 당당히 요구한다. 폭력과 죽음으로 이어져온 남성 중심의 사고에서 생명과 희생, 그리고 사랑으로 상징되는 여성성을 회복할 것을 말한다. 사실 우리는 모두가 어머니요, 모두가 사랑 아닌가.

무척 슬픈 작품이지만 읽는 재미 역시 적지 않다는 것을 말해야겠다. 주인공의 분투 속에 함께 안타까워하고, 동물들의 죽음에 아픔을 느낀다. 하지만 또 다른 생명의 태어남은 희망과 기쁨과 사랑을 느끼게 된다.

이제 벽 바깥은 더 이상 관심이 없다. 스스로 만들어놓은 재앙에 굳어져버린 문명사회를 동정할 이유도 없다. 삶은 다시 시작된다. 하지만 그 새로운 삶은 죽임이 아닌 살림, 차별이 아닌 평등, 증오가 아닌 사랑의 세상이기를 바란다. 그런 세상이라면 까짓 벽 안에 갇혀도 살만 하지 않을까.

상당히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다. 꼭 페미니스트가 아니더라도, 염세주의자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 읽어보길 권한다. 주인공의 아름다운 도전을 함께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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