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펭귄 - 어제보다 더 좋은 오늘
임순례.조은미 지음, 이우일 그림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MB정권 등장 이후, 집요한 압박과 은근한 무시로 국가인권위원회가 가지고 있던 상징성과 역할이 상당히 축소되었다. 인권위의 권고사항이 정부 해당 부처 혹은 단체에겐 ‘쇠귀의 경 읽기’가 되어버린 지 오래고, 온전히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약화된 모습이다. 현 정부에게 국가인권위원회는 그저 귀찮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우리 사회가 국가인권위를 귀찮아해야 할 정도로 인권이 신장된 것은? 물론 아니다. 여전히 대한민국은 인권 침해요소가 차고 넘치는 국가 중 하나 아닌가.  

그런 면에서 인권위와 임순례 감독의 만남은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비로소 ‘흥행 감독’이란 타이틀을 얻게 된 임 감독은 사실 그동안 우리네 이웃의 삶을 따스한 시선으로 스크린에 담아 온 흥행과는 거리가 먼 감독이었다.

2004년부터 매년 인권영화 옴니버스를 만들어왔던 인권위는 2008년, 단편이 지닌 한계를 벗어나고자 장편으로의 전환을 시도했고, 그 첫 번째 영화가 바로 임 감독이 연출한 〈날아라 펭귄〉이다. 인권위의 첫 번째 장편영화가 임 감독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더없이 어울려 보인다.

제작 주최가 인권위 이다보니 예산의 압박이 가장 큰 문제였다. 하지만 임 감독을 신뢰하는 많은 배우들과 인권위의 취지에 공감한 여러 스탭들이 그야말로 차비 수준의 출연료에 흔쾌히 제작에 동참했다.  

영화는 끔찍하고 충격적인 인권침해 사례들이 아닌 일상에서 누구나 지나치기 쉬운 이야기들을 주제로 삼았다. 물론 영화에나 나올 법한 끔찍한 인권 침해 사례 역시 아직 우리 사회엔 너무나 많다. 이주노동자, 외국인 신부와 관련된, 또한 단순히 우리 주변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웃 중에도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당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끔찍하다는 말밖에 할 말도 없다.

영화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혹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인권 침해의 모습들. 사실 사소한 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큰 인권침해일지도 모를 일이다. 채식주의자에다 술 한 잔 입에 못 대는 남자의 직장생활, 알파 맘의 등쌀에 집에서의 대화마저 영어로 할 것을 강요당하는 아홉살 초등학생, 언제나 퇴근 시간이 두려워지는 기러기 아빠, 그리고 고령화로 인해 차츰 주목받고 있는 노부부의 갈등 문제.  

인권 문제를 다룬 영화하면 떠오르는 다소 무겁고 지루한 느낌을 〈날아라 펭귄〉에서는 도무지 찾을 수 없다. 배우들의 내공도 그렇거니와 비교적 가벼운 소재로 버무려진 영화는 잔잔한 웃음과 감동을 함께 전해준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무언가 조금은 성숙된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으리라.

영화의 개봉에 맞추어 출간된 이 책은 해학적인 문체로 등장인물들의 내면 풍경을 독백 형태로 묘사하고 있다. 영화에서 미처 다 보여주지 못한 섬세한 심리묘사가 돋보인다. 영화와 함께 읽는다면 감동이 더 할 듯하다.

세상은 결국 어울림이다. 하지만 이 단순하고도 분명한 이치를 거스르고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날아라 펭귄〉은 나와는 ‘조금’다른 이들에 대한 배려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되묻는다. 그런 면에서 책은 따뜻한 연대와 공존이 절실한 이 시대를 위한 작은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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