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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불패 - 이외수의 소생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9년 5월
평점 :
내 젊음은
막걸리 사발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파리 같았어.
허구한 날을 술에 절어서 비틀거렸지.
희망 같은 건 아예 없었어.
암울한 70년대 춘천시 석사동 목로주점
썩어 문드러진 세상을 구운 오징어처럼 발기발기 찢어서
질겅질겅 씹어 삼키던
차라리 행려병자로 떠돌다 객사하는 한이 있더라도
양심을 똥통에 처박고 살지는 않겠노라고
큰소리치던
친구놈들
지금은 모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 새벽 나처럼 잠 못 들고 그때를 생각하고 있을까.
어느새 귀밑머리에 무서리 내리고
나는 천식에 시달리다 급기야
그토록 좋아하던 술도 끊고 담배로 끊어버렸지만
그래도 굳건히 남아 있는 자부심 하나
이 나이까지 아직 한 번도 인생을 배반하지는 않았다네.
일본의 침략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 나라가 있었습니다. 36년이란 시간을 식민지의 백성으로 살아야 했죠. 그러던 어느 날, 지금은 건국절이니 뭐니 떠들어대지만 1945년 8월 우리에겐 그딴 죽은 말들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어설프게 그린 태극기와 눈물만이 거리를 메웠죠.
하지만 기쁨도 잠시 다시 우리는 서로를 증오해야만 했고, 죽여야만 했습니다. 그렇죠. 난리가 난 거죠. 많은 친구, 형제, 이웃들이 죽어나갔습니다. 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었습니다. 어딜 가나 송장이 쌓여있었고, 어딜 가나 통곡이 넘쳤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상처와 증오를 그대로 가지고요. 반쪽으로 다시 시작한 우리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가난의 서러움, 굶주림의 공포를 잊을 수는 없었죠. 바른 역사? 민주주의? 그런 건 솔직히 몰랐습니다. 시키는 대로 죽어라 일만 했으니까요.
물론 그렇다고 돈에 환장한 짐승으로 보진 마세요. 우린 4월 혁명으로 지긋지긋하던 이승만 독재를 몰아냈고, 80년 5월 광주에서 피로서 민주주의를 외쳤으니까요. 87년 6월의 함성이 있었고, 이젠 어린 아이들이 촛불을 들고 시청을 가득 채웠잖아요. 우리는 단순히 짐승은 아니었습니다. 이건 정말 오해하시면 안돼요.
또 우리에겐 뿔 달린 괴물로만 상상되었던 북괴가 북한이 되었고, 이제는 함께 살아가야 할 한반도의 동반자가 되었죠. 하지만 솔직히 그동안 무조건 북 보다 우월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에요.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기 그지없고, 또 서글픈 기억이기도 하죠. 하지만 우리는 그게 옳은 줄 알았어요. 이겨야 한다고 믿었거든요.
어르신들은 말하죠. 너희들이 전쟁을 알기나 하느냐, 배고픔이 무언지 아느냐, 지금은 정말 호강하며 사는 세상이다. 또 이렇게 말하기도 해요. 나라가 흔들리고 있다, 다시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강한 지도자가 나와 국민을 강하게 이끌고 나가야 한다. 다시 군홧발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죠.
그런데 정말인가요. 지금이 살기 좋은 세상이라는 것이 말이에요. 하루에 30명이 자살하고, 아이들은 죄지은 것도 없이 입시지옥에서 죽어가고, 노동자들이 맞아 죽고, 국민들이 타 죽고, 북의 이웃들은 굶어 죽는 지금이, 정말 좋은 세상인가요.
최근 마들 연구소에서 나온 책 제목이 생각나요. 지금 이 시대에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바보 아니면 도둑”이라는 제목. 그럼 지금 이 세상엔 바보가 많을까요, 도둑놈이 많을까요. 둘 다 적지 않은 것 같긴 해요.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이렇게 매일 매일 생길 수는 없잖아요.
전 사실 이외수 선생을 잘 몰라요. 잘 팔린 책들이 적지 않은 작가인데도 이상하게 이 분 책은 읽은 적이 없어요. 이 선생님, 물론 오해는 하지 마세요. 저 안티팬은 아니에요. 하다 보니 못 읽은 것뿐입니다. 무식한 것도 자랑은 아니니까, 송구스럽긴 하네요. 아, 글쓰기 부양법 쓰신 적 있죠. 그 책은 가지고 있어요.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요.
때문에 저에겐 이 청춘불패가 선생님과 첫 대면인 셈이죠. 반갑습니다. 뒤늦은 감이 있죠? 제가 좀 많이 게으른 편이긴 합니다. 이 책도 사실은 제 후배가 생일 선물이라고 사준 거랍니다. 음. 이 말이 선생께 그리 좋은 인상을 주진 못하겠네요. 암튼 훌륭한 후배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제목과 같이 책을 통해 선생님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귀한 말씀을 하셨더군요. 자신을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청춘부터, 부모를 증오하는 이, 사랑의 아픔에 슬퍼하는 이, 왕따로 고통 받고 있는 이, 수많은 청년 백수, 썩어 문드러진 세상을 용서하지 못하는 이,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이, 못생겨서 고민하는 이, 열등감에 사로잡힌 이, 시대에 뒤떨어진 이, 돈을 못 버는 이, 종교로 싸우는 이, 장애로 힘들어하는 이, 자살을 꿈꾸는 이, 시험으로 시달리는 이까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 뿐 아니라 모든 이들이 적어도 한두 가지 정도는 해당하는 고민, 상처들인 것 같아 아렸습니다. 그리고 찬찬히 읽어 내려갔죠. 읽으면서 많이 끄덕거렸어요. 참 답답한 세상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삶이란 게 도대체 뭔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결코 아름답기만 하진 않잖아요.
하지만 결국 선생께서는 희망을 말하셨어요. 용기를 말하셨고, 도전을 말하셨죠. 사실 제가 고백할 것이 있는데, 세상에 이름 좀 날렸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특히 노인네들이 많죠. 뭐 요즘엔 젊은 것들도 많긴 하더만. 암튼 그런 이들이 인생철학이 어쩌고, 바르게 잘 사는 것이 어쩌고 하면서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꼴을 못 봐요. 참 아니꼽더라고요. 물론 누가 봐도 참 저 분은 훌륭하다, 저런 말이나 글을 세상에 내놓을 만하다, 이런 분들의 말이나 글은 주의해서 보고 듣죠. 하지만 아시다시피 안 그런 양반들이 그런 글이나 말을 더 많이 뱉고 쓰잖아요. 참 같잖아요. 이건 국내외를 막론하고 나타나는 현상인 것 같긴 해요.
암튼 그래서 훈계조나 가르치려 드는 책들은 잘 안 봤어요. 구구절절 훌륭한 말이긴 한데, 왜 그런지 잘 와 닿지도 않고, 거부감만 들곤 했습니다. 하지만 인정할 건 해야겠네요. 개 같은 소리, 더러운 소리, 앗, 개에게 사과합니다. 개보다 못한 인간들이 너무 많은데 개를 들먹거리면 안 되죠. 그런 소리들보다는 그래도 좋은 이야기, 좋은 소리, 좋은 글을 읽고 듣는 것이 낫다는 것을요.
외람스럽게도 선생님의 책을 읽고 그런 생각이 더욱 들었어요. 또 한 번 오해는 마세요. 선생님이 별 볼일 없는 분이라는 것이 아니니까요. 오히려 그 반대겠죠. 때문에 책이 더욱 와 닿은 것일 수도 있고요. 좋은 말, 당연한 말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전해질 수 있느냐를 느끼게 해준 책이었습니다.
책 사이사이 마다 밑줄을 긋고, 따로 메모해두고픈 구절들이 많았어요. 감사합니다. 나중에 기억이 난다면 출처를 분명히 밝히고 친구들이나 사랑하는 이들에게 써 먹을께요. 그 정도로 기억에 남는 문장들이 많았어요. 확실히 선생님께서는 글쓰기 부양법과 같은 책을 내실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나쁜 놈’들 천지인 세상에서 ‘좋은 놈’이 될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하셨죠. 조금은 길 수 있지만, 잠시 인용해 보겠습니다.
그대여.
문제의 해답이 여기에 있다. 그대 자신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나뿐인 놈’을 그대 스스로 단호히 처단하고 ‘나뿐인 놈’들과는 정반대로 남의 입장을 보살핀다면, 그리고 남의 입장을 보살피는 일을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면 그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좋은 놈으로 성장하리라.
그대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나뿐인 놈’을 단호히 처단하는 순간부터 그대는 소망의 날개를 가지리니, 자신의 입장을 생각하기 이전에 타인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인간, 이웃의 입장을 생각하고 친구의 입장을 생각하고 심지어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누군가의 입장까지 생각하는 인간, 개의 입장을 생각하고 꽃의 입장을 생각하고 돌의 입장을 생각하고 심지어는 구름이나 바람의 입장까지 생각하는 인간이 되리라.
정녕 아름답다 그대여.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입장을 생각하고 천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입장을 생각하고 자신처럼 보살피기를 끊임없이 반복한다면, 그대는 분명 살아 있는 인간 그대로 부처님과 예수님의 반열에 오르리니, 나이가 어리다고 어찌 만천하가 그대를 경배하지 않으랴.
정말 당연한 말씀이죠. 하지만 지극히 당연한 이 말이 정말 지켜지기 어려운 것이 지금의 세상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인가요. 저에겐 선생의 말들이 외롭다는 생각도 조금은 들었습니다. 괜한 생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이런 문구들도 가슴을 때렸어요. 아프기도 했고, 속상하기도 했죠.
당신의 아버지는 어쩌다 밥상에 올라온 날계란 한 개를 통닭 한 마리와 맞먹는 부귀영화로 생각하면서 밥을 먹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젊은이, 허리가 휘도록 일해 본 적도 없으면서 카페에 등을 젖히고 앉아 한 잔에 삼만 원씩 하는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으면 도대체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양심을 지키고 살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말하는 손해와 이익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나는 이익을 얻기 위해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사느니 차라리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인간답게 사는 쪽을 선택하겠다.
자애로운 응원의 목소리도, 서릿발처럼 매서운 호통과 꾸짖음도 먼저 사람에 대한, 만물에 대한 사랑이 없이는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때문에 선생의 죽비소리가 더욱 소중한 것일지도 모르지요. 책을 통해 많은 ‘지극히 당연한 것’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그 중요함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것이 실종된 이 시대. 그것을 찾아 목말라하고 있는 많은 이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더러운 세상 속에서도, 치열하게 사랑해야 함을, 그 길밖엔 없음을 온 몸으로 느끼며 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도 권합니다. 참 쓸모 있는 글, 요긴한 글은 바로 선생의 글 같은 것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건필하시길 바랍니다.
처음에 해방 이후부터 같잖게 역사를 들먹인 것은, 정말 또 같잖게 과거를 이야기하며 지금 청춘들이 마치 무슨 큰 죄라도 지은 양, 마구 마구 괴롭히고 훈계하는 인간들 때문에 그랬어요. 청춘들이 그 때 태어나지 않은 게 죄는 아니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만약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일생을 고생한 그네들의 그 노력을 인정해줘야 한다면, 지금과 같이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이 활개치고, 사람이 돈에 의해 맞아 죽는 세상은 또 누굴 탓해야 하는 것인가요? 같은 세대 분들의 탓은 전혀 없나요. 잘한 건 앞 세대가 다 했고, 나쁜 건 다 요즘 젊은 것들 탓인가요? 그건 아니겠죠?
아, 선생님이 저 대신 이 세상에서 욕먹어야 할 인간들을 매우 간결하게 집약해서 한 번에 욕해주신 문장이 있어서 마지막으로 갈무리합니다. 물론 선생께서 이렇게 욕을 해대신 이유가 다 책에 있긴 하지만, 표현이 너무 재미있고, 통쾌해서 이 부분만 옮겨봅니다. 행여 다른 분들의 오해가 없으시길.
하긴. 이런 세상이 또 없긴 할 겁니다.
한여름 염병을 앓다가 땀도 못 흘리고 죽을 놈들과, 간에 옴이 올라서 긁지도 못하고 죽을 놈들과, 또는 한겨울 마른 벼락을 쫒아가서 맞아 죽을 놈들과, 사막에서 우박에 맞아 죽을 놈들과, 비행기에서 뱀에 물려 죽을 놈들과, 똥통에 처박혀 똥물을 들이키다 배 터져 죽을 놈들과, 아니면 그런 천벌을 배판에 흔들고 독박, 피박, 광박으로 받아도 모자랄 놈들과, 또는 그에 버금가는 년들이 활개를 치면서 살고 있는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