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필름 클럽
데이비드 길모어 지음, 홍덕선 옮김 / 솔출판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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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장르에 차이는 있을지언정 영화 자체를 싫어하는 이들은 별로 없을 듯하다. 영화가 한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이란 얼마나 강력하고도 지속적이던가. 초등학교 시절 보았던 《ET》와 《킹콩》에 눈물을 흘렸고, 중학교 시절 동네 동시상영관에서 만난 유덕화와 장만옥은 영원히 잊을 수 없다.

나이를 먹고 점차 삶에 치이는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날들이 이어져도, 가끔씩 스크린에 펼쳐지는 또 다른 세상에 위안을 얻고 때로는 함께 눈물 흘릴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분명 축복이고 위안이자, 애절함이다.

책은 여러모로 나에게 적지 않은 즐거움을 전해줬다. 일단 옛 고전들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켜줬고, 잊혀진 배우들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다시금 내 영화 리스트를 들쳐보게 했고, 다시 한 번 꼭 봐야겠다고 메모하게 된 영화가 늘어났다. 제임스 딘의 고독한 얼굴이 돌아왔고, 말론 브란도의 단호한 입술, 장국영의 슬픈 눈과 잭 니콜슨의 광기가 되살아났다. 물론 잉그리드나 오드리와 같은 영원한 천사들도….

영화는 다른 전달매체에 비해 놀랄 만큼 큰 파괴력을 가진다. 물론 책 역시 평생의 기억으로 남게 되지만, 스크린에 펼쳐지는 어느 한 장면은 때론,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삶의 파편이 된다. 그리고 사는 내내 무의식중이라도 삶의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젊음의 방황을 제대로 겪고 있는 아들과 함께 영화를 본다. 그것이 다다. 학교에 갈 필요도 없으며, 따로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영화를 함께 보며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그뿐인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것이 학교에서는 도저히 배울 수 없는 삶의 지혜를 나누는 이 세상 최고의 수업이었음을 아들은 이제 깨달았을 것이다.

사랑으로 힘들어하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좌절하는 아들. 하지만 정작 자신도 직업을 잃어버린 백수. 모든 것이 마음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절망의 순간. 부자는 영화를 본다. 스크린 안에 수많은 인물들이 겪는 고통과 환희, 기쁨과 절망을 함께 한다. 감독의 세세한 표현 하나 하나를 찾아 함께 감탄하고, 때론 별 시답지 않은 그저 그런 영화를 보면서, 왜 이런 영화에 사람들이 열광했는지 궁금해 하기도 한다. 이들의 영화는 곧 치유의 그것에 다름 아니었다.

영화는 분명 멋진 친구다. 때론 연인이고, 때론 아버지다. 누구나 내 인생 최고의 영화를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책을 덮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내 인생 최고의 영화는 무엇이었을까. 눈물을 흘리며 감동에 북받쳐 보았던 영화들이 너무 많아 딱 꼬집기는 너무 아프다.

그런데 생각해봤다. 내가 아버지와 영화를 함께 보았던 적이 언제였던가. 결혼하기 전에는 그래도 간간히 본 것 같은데, 그 이후에는 없던 것 같다. 극장을 함께 갔던 적은? 기억이 거의 없다. 아마 《ET》가 마지막이지 않았을까. 아버지 못지않게 무뚝뚝한 녀석이라.

그런 점에서 제시가 참 부럽다는 생각도 든다. 영화에 상당한 내공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를 가져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이었다. 함께 영화를 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아버지를 가졌다는 것은 얼마나 행운인가. 흔치 않은 일이다.

문득 아버지와 함께 영화를 봐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전에는 내가 먼저 영화를 본 뒤 ‘이건 아버지랑 봐도 무난하겠다’싶은 것들을 주로 봤는데, 이젠 뭐 함께 야시시한 영화를 봐도 될 나이 아닌가. 물론 여전히 그런 영화를 함께 본다는 것은 일정한 긴장감을 동반하겠지만.

아버지는 《타이타닉》을 참 재미있게 보셨던 것 같다. 흔치 않게 사운드트랙까지 구하셔서 주제가를 즐겨 들으신다. 아버지께 타이타닉 DVD를 선물로 드릴까 생각도 해본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진작 사다드리지 못한 게 이상할 정도다.

매우 흥미롭게 책을 읽었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영화들을 다시 한 번씩 봐야 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 아직은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내 아이에게 어떤 영화를 추천해줘야 할까 고민해볼 생각이다. 이 녀석이 언젠가는 야시시한 영화를 들이밀며 “아빠~이 영화 같이 보실래요?”하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그런데 딸이면 어쩌지? 같이 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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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의 리더 검은 오바마 - 세상의 모든 패배자에게 보내는 재기 멘토링
박성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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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는 네오콘의 대부, 레오 스트라우스』의 저자 박성래 기자의 책이다. 미 대선을 얼마 앞둔 시점에 급하게 펴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레오 스트라우스』를 재미있게 읽은 나로서는 이 책 역시 약간의 기대를 하고 읽었는데, 결론적으로는 기대에 못 미친 책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기본기가 탄탄한데다 경륜을 겸비하고 있는 저자의 내공 탓인지 쉬운 문체로 오바마라는 인물과 미 정치판에 대한 간결한 설명은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보다 아쉬운 것은 어쩌면 오바마라는 인물에 대한 것일 테다.

부시 대통령의 실정이 적지 않았기에 미 국민들과 세계 모든 이들은 다음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때문에 개인적으로, 혹은 미국의 정치인으로는 결코 부족하다고 할 수 없는 매케인마저 압도적으로 누르고 오바마가 새로운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었다.

게다가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파격적인 사실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오바마 신드롬이 만들어진 것도 사실이다. 태생적으로 미국 정치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오바마를 바라봤고, 그의 당선과 더불어 관련 서적들이 쏟아진 것도 그리 이상할 것은 없었다. 이 책도 그 중 흐름을 잘 탄 책이라 할 수 있다.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검은”오바마는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금 역시 다소 그 강도는 떨어졌다 해도 그는 세계적인 아이콘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이라는 국가의 대통령이라는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이 여전히 살아있다.

하지만 저자에게 아쉬운 것이 바로 “검은”이라는 표현이다. 물론 흑인이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한 것도 사실이고, 오바마라는 인물의 인생 격정 역시 범상치 않았기 때문에 “검은”이라는 단어가 주는 상징성도 가볍지는 않을 것이다. 마약에 찌들었던 흑인 혼혈 청년이 미국이라는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영화 같은 이야기에 모두들 경탄을 금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오바마는 검다는 것보다, 이제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어떠한 정책, 어떠한 비전을 보여줄 수 있나 살펴야 할 시점이다. 단순히 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의 모든 행동들이 정당화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상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땡겨 받지 않았나. 무슨 일수도 아니고….

한국은, 부정하고픈 분들이 많으리라는 생각은 들지만, 미국에 상당히 구속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수도 한 복판에 반세기 동안 작은 미국이 존재하고 있으며, 국가의 정책 대부분 미국을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오바마의 당선 때를 기억해 봐도 알 수 있듯, 마치 조공을 갖다 바치는 제국을 바라보듯 우리는 미국의 눈치를 살핀다. 제후국의 설움이다. 더구나 우리 주변엔 미국 정도의 급은 아니지만 그 가능성이 농후한 국가들이 적잖이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또한 미국의 정책이 결정적으로 우리의 미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도 하다. 아프간에 이명박 대통령이 파병하려는 것도 결국 조공에 다름 아니다. 아무리 거창한 명분을 들이대도(사실 파병에는 어떠한 명분도 어설퍼 보이긴 하다. 분단된 주제에 뭔 세계 평화를 나불거릴 수 있나. 노무현 대통령 당시에는 이라크 파병을 거절했다 호되게 미국에게 당한 기억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깜짝 이라크 방문과, 병사를 붙잡고 뜨겁게 포옹한 후 눈물을 흘렸던 장면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 눈물의 의미를 우리는 여전히 충분히 모르고 있다.) 결국 주군의 명을 받들어 죽음의 전장으로 나아가는 제후국에 다름 아니다.

무조건 반미만 외치던 시대는 지났다. 반미를 외친다고 반미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는 미국이라는 국가에 동화되어 왔다. 알게 모르게 미국은 더 이상 우리와는 떨어질 수 없는 존재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용미”라는 거창한 말들을 하는 이들도 있다. 미국을 이용하자? 희망사항일 뿐이다. 미국이 우리를 이용할 때 최대한 우리의 이익도 챙겨야 할 따름이다.

오바마는 취임 직후 “핵무기 없는 세계”를 표방하며 핵무기 감축에 나섰다. 아주 바람직한 일이다. 핵무기가 가장 많은 미국과 러시아가 핵무기를 감축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하지만 먼저 이중 잣대를 풀어야 함이 당연하다. 이스라엘이라는 사상 최대의 “악의 축”을 그대로 둔 채, 먼저 핵을 보유한 국가들의 권리는 그대로 간직한 채, 북과 같이 초보적인 핵무기 보유국만을 압박하고, 핵을 허용할 수 없다고 떠드는 것은 정당성이 없다.

물론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정당성을 기대하는 것도 순진한 발상이지만, 최대한 국제적인 공조와 다각적인 평화 운동을 전개해 미국이 어쩔 수 없이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미국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절대 “공짜”가 없다.

아직 오바마는 한반도를 모르고, 북을 모른다. 물론 남도 모른다. 최근 들어 조금 말을 안 듣는 한국이었지만, 이명박 대통령 이후에는 너무 말을 잘 들어 고민이다. 모든 것을 의지하려 한다. 귀찮을 정도다. 반면 남북문제에 있어서는 미국의 방향과 다르게 가려고 안달이다. 태클이다. 보즈워스의 방북이 하루 연장된 것은 서해 충돌 이후 불편해진 미국의 심기가 그대로 드러난다. 짜증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국에게. 한국에 와서도 잠만 자고 갔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렇게 사정을 했지만, 그랜드 바겐의 “그”자도 나오지 않았다. 화난 것이다.

미국을 알기에는 할리우드 영화 한 편, 최신 랩 음악 한 곡,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따위의 책과 잘나가는 미드 한 편으로 충분할 때도 있다. 하지만 역시 그보다 더한 노력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검은”오바마 대통령이 어떤 모습으로 “미국의 대통령”이 될지 지켜봐야 한다. 꾸준한 연구와 안목이 필요하다. 단순히 연설 잘하고, 핸섬한 정치인이 아닌 우리의 운명과 직결되는 미국의 대통령이라는 시각으로 그를 봐야 한다.

미국 정치를 맛보기라도 할 수 있기엔 괜찮은 책이라 할 수 있다. 저자의 또 다른 성과를 기대해 본다.

** 이 리뷰는 온북리뷰에르로 작성한 글입니다. http://www.onbooktv.co.k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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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즐리를 찾아라
자미 바스테도 지음, 박현주 옮김 / 검둥소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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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북극 툰드라 지대. 그곳에 커다란 덩치를 가진 어미 곰과 세 마리의 새끼 곰이 움직이고 있다.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곰 가족은 때로는 새끼들의 짓궂은 장난과 어미 곰의 휴식으로 속도가 더디어 지기도 한다. 하지만 곧 묵묵히 다시 태양을 등지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즐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회색 곰을 말한다. 학명은 〈Ursus arctos horribilis〉로,‘공포의 곰’이라는 뜻이다. 엄청난 힘과 덩치로 유명한데, 무게가 1,500파운드까지 나간다고 한다. 하지만 그 덩치에도 전속력으로 달리면 시속 35마일의 속도를 낼 수 있다. 만만치 않은 녀석임에 틀림없다.

《그리즐리를 찾아라》는 캐나다 북서부 옐로나이프에서 광산을 개발하는 아버지를 따라 툰드라를 방문한 벤지가 겪게 되는 모험을 담고 있다. 광산 개발과 함께 주변 동물의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연구팀과 동행하게 된 벤지는 777이라 불리는 어미 곰과 귀여운 새끼 곰들과의 멋진 만남을 통해 어느 덧 자신도 모르게 성장하게 된다.

광활한 툰드라에서 비록 무서울 것이 없는 곰이라 하더라도 생존은 결코 녹록치 않다. 더구나 세 마리의 새끼 곰을 보호해야 할 어미 곰으로선 하루하루가 힘든 여정이다. 더구나 주위엔 인간이라는 최악의 적이 존재하지 않는가.

인간이 붙여준 777이라는 이름을 가진 어미 곰은 새끼들을 위해 목숨을 건 여정에 나선다. 그 사이사이에 닥치는 수많은 어려움. 그리고 인간과의 만남. 이미 인간들로부터 위성 수신용 안테나 목걸이가 걸린 상태인 어미 곰. 하지만 그 어떤 구속도 새끼들을 위한 모성 앞에는 무력해지고 만다.

전체적으로 책은 자연을 마음대로 통제하려는 인간의 오만함을 꼬집는 동시에 아름다운 대자연과 공존하는 동물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과정에 있어 인간은 철저히 손님일 수밖에 없다.

책에서 유독 뛰어났던 것은 어미 곰의 행동과 생각을 묘사한 부분이다. 어미 곰이 보기에 전혀 쓸모없어 보이는 모래 가루를 채취하기 위해 인간은 커다란 잠자리 같은 것을 타고 와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또한 땅을 파고 그 땅에서 무언가를 끊임없이 캐낸다.

“곰이 보기에, 인간들은 매우 이상하게 땅을 파고 있다. 어미 곰이 하듯이 허리를 굽히고 앞다리로 모래를 파내지 않고, 일어선 채로 가장자리 끝에 넓은 게 달린 긴 막대기로 땅을 쑤시고 있다. 그리고 파내게 될지도 모르는 뿌리들이나 동물들보다 모래에 훨씬 더 관심을 두는 것 같다. 두 인간 다 각자 자신의 모래를 담을 하얀색 봉지를 옆에 두고 있다. 한 인간이 모래를 약간 퍼 올려 얼굴 가까이 가져간 다음, 다른 인간에게 흥분된 소리를 낸다. 둘이 함께 그걸 자세히 들여다본다. 어미 곰의 눈에 그 모래가 자줏빛 색조를 띤 게 보인다. 두 인간은 그것을 조심스럽게 봉지에 담고, 파는 일을 계속한다.”

인간들이 찾는 것은 생존을 위한 식물의 뿌리도, 작은 다람쥐도 아니었다. 다이아몬드 광석이었다. 전혀 쓸모없는 광석을 캐내기 위해 인간들은 목숨을 걸고 툰드라를 누비고 있는 것이다. 어미 곰에게 인간이란 존재는 그야말로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럴듯하게 잘 만들어진 할리우드 영화와는 달리 책은 곰들의 생활과 인간과의 갈등을 드라마틱하게 꾸미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설명한다. 물론 여러 차례 모험과 긴장의 순간들이 있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작위적이지 않고 꾸밈없어 보인다. 소설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물론 흥미를 위한 장치들은 주변 주변에 숨어 있고, 찾아내는 것 역시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버스터라 불리는 난폭한 수컷 곰의 등장과 결말 부분은 다소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전체 소설을 무너뜨릴 정도의 티는 아니다.

《위대한 왕》이라는 소설을 읽은 기억이 있다. 아주 오래된 책이었고, 아주 오래전에 읽었다. 시베리아 호랑이의 이야기다. 생존을 위해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호랑이는 결국 인간들의 손에 의해 삶을 마치게 된다.

인간이 지구상에 등장해 살아온 동안 지구상에서 사라진 동물과 생물은 과연 얼마나 될까. 지금도 얼마나 많은 생명체들이 이 땅과 바다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을까. 마치 우리가 신이라도 되는 양, 우리 맘대로 그들을 보내도 되는 것일까.

책은 곰과 인간과의, 자연과 문명과의 화해를 꿈꾼다. 비록 서툰 몸짓이지만 필요한 일이다. 시간이 갈수록 자연과 멀어지고 있는 인간에게, 777호의 삶은 마지막 경고일지도 모른다. 자연을 정복했다는 오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결국 인간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임을.

어미 곰과 그 가족들의 행복한 삶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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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지도를 통해 본 김정일의 리더십
이관세 지음 / 전략과문화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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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국가를 너무나 사랑하신다는 연로하신 분들이 주축이 되어 《친북인명사전》을 곧 발간한다고 한다. 《친일인명사전》발간을 계기로 뭐가 좀 찔리신 건지, 아님 진정 이 나라를 적화통일의 야욕으로부터 구하시려는 “구국의 결단”을 하신 것인지 암튼 세상 참 재미있게 돌아간다는 느낌이다.

난 북을 공부했다. 그리고 하고 있고, 관련된 일을 해서 먹고 산다. 내가 만약 조금 이름이 알려진 유명 인사였다면 그 사전에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누렸을지도 모르겠다. 에이! 아쉬워. 아직 내공이 덜 쌓였다. 기라성 같은 분들이 강호를 누비고 있는데, 내 일천한 실력이 드러날 리 없다. 하지만 분발하여 열심히 할 테니 추후에도 사전을 발간할 예정이시라면 내 이름도 꼭 기억해 주시라.

우리는 기형적으로 근대화를 맞이했고, 기형적으로 분단이 되었으며, 기형적으로 이데올로기를 수입했다. 여지없는 사실이다.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에 속해있다 냉전의 실험장이 되었고, 공산주의가 누구네 강아지 이름인지, 민주주의, 자본주의가 어느 동네 사는 뉘 집 아들의 이름인지도 모른 채 우린 가족을 살해했고, 형제를 묻었으며, 이웃을 밀고했다.  


그리고 이른 바 조국과 민족을 너무나 사랑해서라는 명분으로 권력자들은 분단을 이용했다. 남북 모두 적지 않은 책임이 있으며, 죄과를 가지고 있다. 이 역시 반론의 여지가 없다.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A4 분량 40~100페이지로 사실에 입각하여, 반론을 제출하시라.

빌어먹을 이데올로기로 수많은 이들이 죽었다. 이별했다. 그리워하다 죽어갔고, 이제는 굶어 죽고, 맞아 죽고, 열 받아 죽고 있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내년이면 한국전쟁의 발발 10주년이 되지만, 우리는 그래도 희망을 안고 있다. 6․15 공동선언 10주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북은 가난하다. 70년대 중반까지 우리보다 잘 살았지만, 이젠 아니다. 경제적 격차를 더 이상 언급할 가치도 없다. 많게는 수백 대 일이라는 통계도 있다. 그 정도로 북은 가난하다. 상대적으로 우리가 살벌하게 빠른 시간동안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소리도 될 것이다.

하지만 결국 다 소용없는 짓이다. 우리만 잘 산다고, 우리만 먹고 살 만 하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북의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에 우리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아니 그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비극적 종말은 시간 차이만 있을 뿐, 예정된 수순이다.

그렇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식민지로 나라를 홀라당 먹혀버린 할아버지, 그 윗세대를 욕하고, 전쟁과 분단으로 한반도를 다시 만신창이로 만든 아버지 세대를 욕하면 끝인가? 아님 기적의 경제성장을 이룬 아버지 세대와 피 흘리며 민주화를 이루어놓고 그 과실은 자기들끼리 다 해먹은 다음, 젊은 세대들에겐 88만원만 안겨준 삼촌 세대들을 숭배할 것인가.

분단은 영구화되어야 할까? 그냥 이대로 약간 찔리지만 북을 외면한 채 우리끼리 한 번 한 오백년 잘 살아볼까? 정녕 그것이 대한민국이라는 반쪽의 미완국의 영광을 안겨다 줄 것인가.

《친북인명사전》을 만든다는 분들. 미안한 이야기지만 어서 빨리 자연으로 돌아가시라. 차라리 다른 생명들의 귀하디귀한 성장의 밑거름이 되시라. 잘 이해가 안 되는 분들이 있을 것 같다. 그냥 죽으시라. 민족적 양심, 아니 최소한의 인간적 양심도 없이 천박한 사상과 아집으로 가득 찬 그대여. 이제 그만 되었다. 깔끔하게 뒈지시라.

아니 돌아가시기 전에 한 가지 꼭 하시고 가실 것이 하나 있긴 하다. 《친북인명사전》에 첫 장에는 반드시 박정희의 이름 석 자를 담길 바란다. 남로당 최고급 간부 중 하나였다가, 여순 반란 사건 직후 숙군 과정에서 자기만 살겠다고 군내 모든 남로당 간부들의 이름을 불어버린, 그래서 결국 그들을 모두 죽게 만든, 비열한 이름도 꼬옥 담길 바란다. 그러니 5․16 이후 김일성이 “얘가 우리 편인가” 긴가 민가 해서 특사까지 보냈겠지만. 박정희는 공산주의, 사회주의는 뭔지도 모른 채 단지 출세 좀 해보겠다고 공산당이 된 “무늬만 골수” 빨갱이였다.

통일은 결국, 아니 먼저 일단 통일을 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먼저 상대방을 알아가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북이 잘못된 체제라고(우리가 보기에) 무조건 부정하고 말살하려는 태도는 아무런 이득을 얻을 수 없다. 역지사지의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일단 알아야 뭔 대화를 해도 할 것이 아닌가. 그냥 솔직하게 대화하기 싫고, 모조리 싹 다 죽여 버리고 싶다면, 공멸을 각오하고 미국님과 일본님의 허락을 구하고, 중국님과 러시아님의 눈치를 보면서 적당한 기회에 밀고 올라가든가. 물론 역대 대통령 중 그 정도 용기(라고 하면 좀 그렇고, 미친 깡이)있었던 이는 없었다. 

김영삼은 성질나면 한 판 붙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막상 클린턴이 전쟁을 결심하고 한국에 있던 미국인들을 빼내자, 그 때서야 후들후들 떨며 “제발 전쟁을 하지 말아달라”고 미국에게 구걸했다. 너무나 무서웠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 카터가 김일성을 만나지 않았다면? 영변을 미군의 폭격기가 쓸어버렸다면? 상상해보시라. 나는 어쩜 이렇게 자판을 두드릴 수 없었을지 모른다.

MB는 과거 두 정권의 대북정책을 부정하며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정권을 잡은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버릇을 고쳐놓겠다”는 마인드에서 단 한 발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북이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이자 “거봐, 갈구니까 쫄아서 대가리 숙이고 들어오잖아”이러고 있다. 아이큐 문제도 있겠지만, 주변에 있는 브레인들이라는 것들이 죄다 광우병에 걸린 듯한 모습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미치광이 부시 덕분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핵무기까지 완성시킨 북이 과연 남에게 쫄아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경제제재, 유엔의 압박 이 따위 것들을 모조리 다 웃어넘기는 북이 과연 MB의 기침소리에 주눅이 들어 저러고 있을까. 장난 하냐?

지금 한반도는 그야말로 긴장의 만성화된 모습이다. 이제 웬만한 것에는 놀라지도 않는다. 서해에서 교전이 벌어져도, 우리가 이겼으니까 만사 오케이란다. 장난 치냐? 북은 반드시 당한 만큼 갚는다. 상식 아닌가? 그렇다면? 양쪽 누구든 한 번의 판단 착오가 바로 확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확전은? 공멸을 의미한다. 오세훈이 아무리 서울을 디자인 도시로 바꾼다고 리틀 삽질을 해도, 1~2시간 내에 잿더미로 변할 수 있다.

전쟁은 막아야 한다. 막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끊임없이 북과 대화해야 한다. 지금 북은 우리가 대화를 하겠다고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하잔다. 그런데 우리는 싫단다. 왜? 더 머리를 숙여야 한단다. 북이 “저희가 죄송했어요. 잘못했습니다. 각하!”이래야 움직일 수 있단다.

10만 톤씩 주던 식량 지원을 1만 톤 해주고 생색이다. 그것도 옥수수 가루다. 북이 아무리 가난하다고, 거지 취급을 해도 되는가? 이젠 원조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라고 자랑하면서, 정작 북은 죄다 굶겨 죽여야 속이 시원하신가? 정녕 그것을 원하시는가?

군 복무 기간을 줄인다고 개소리하기 전에 전체적인 국방부 개혁이나 해라. 물론 절대 못하시겠지만. 북의 핵을 없애겠다고 하기 전에 일단 북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 때문에 핵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는지를 먼저 헤아려라. 정녕 지긋지긋한 분단을 끝장내고 통일을 하겠다면 말이다.

북을 연구한 것은 역사가 얼마 되지 않는다. 이른 바 적화통일을 막고 북을 이기기 위한 소수의 정보 공유, 연구가 아닌 일반 학문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직 북의 출판물, 방송 등을 마음대로 볼 수 없는 기형적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만큼 북에 대한 연구는 중요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임해야 한다.

아직도 북을 찬양하고, 적화통일을 선동하는 이른 바 “주사파”가 국내에 득시글하다고 믿는 이들도 물론 있을 것이다. 안타깝고 불쌍하지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렇게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연 요즘 대학생들에게 《노동신문》이나 《근로자》 같은 북 출판물을 보여준다고 그들이 거기에 환장해서 월북이라도 할 거라고 믿는가? 한 페이지나 제대로 읽겠나? 지독히도 재미없는데?

《현지지도를 통해 본 김정일의 리더십》은 통일부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며, 통일부차관을 역임한 저자의 그동안의 경험과 이론이 충실히 뒷받침된 책이다. 저자의 박사 논문을 수정 보완하여 책으로 낸 것이기에 다소 지루한 면이 없지 않지만, 김일성부터 시작된 현지지도가 가지고 있는 위상과 역할, 그리고 현지지도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 동력을 파악하는데 용이하다. 아울러 북의 역사까지 개괄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북을 전공하는 이들 외에도 읽어볼 만한 수준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승만, 박정희와 전두환, 노태우가 거저 대통령을 해먹은 것이 아니다. 나름 엄청난 노력을 해서 이룬 것이 아닌가. 아마 뉴라이트들도 이것은 인정할 테지. 그렇담 김일성은? 김정일은? 그들이 거저 권력을 쥐었겠는가. 그들이 권력의 정점에 서게 된 과정, 그 이유, 동력은 무엇인지 알아야 할 것 아닌가? 그래야 포스트 김정일을 대비할 수 있고 그들의 국가 운영 시스템을 알 수 있지 않겠나.

북을 비난하고 욕하고 하는 인간들 대부분 북에 대한 사소한 정보마저 모르거나 왜곡해 알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냥 본능적으로 싫은 것이다. 하지만 공짜 점심은 없다. 이기려 해도 알아야 이긴다. 이 부분에선 뉴라이트들이 신경 좀 쓰시라.

공부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북 이야기가 나오면 흥분하고 열 받는다. 어쩔 수 없다. 통일을 가로막고 그 이익을 누리는 개자식들이 여전히 설치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이들이 통일을 위해 모든 것을 던졌지만, 그런 분들의 희생을 하찮게, 불편하게 여기는 개자식들이 여전히 설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이다. 알아야 한다는 것이. 알아야 이긴다. 참고로 오바마가 바쁜 일정으로 인해 한반도를 공부한 것이 이제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제야 미국의 한반도 정책이 제대로 가동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우리는 미국이 하라는 대로 끌려가기만 할 것인가? 몰살이 눈에 보이는 아프간 파병이나 하고?

어찌 보면 따분한 책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남북문제, 한반도의 미래가 불투명한 지금 상황에서 정말 따분한 것은 아직 시작도 안 했을지 모른다. 공멸 후에 적막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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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가져요
모 로지에 지음, 박소진 옮김 / 펼침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짧은 내 독서 역사상 가장 적은 분량의 책. 본문을 다 옮겨도 A4 절반도 안 될 것이다. 책의 성격이 그림책이라 하더라도 역시나 매우 간결하다.

이런 성격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약간 어색했다는 점을 시인해야겠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틀에 박혀 글을 읽어왔는지도 느낄 수 있었다. 일단 책이라면 어떤 거창한 명분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언가 ‘진지함’과 ‘정성’을 기대하며 읽어왔던 것이다.

사실 이러한 편견 아닌 편견이 들게 된 것에는 내 스스로 그런 책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근사한, 혹은 내가 스스로 봐도 뿌듯한 그런 책을 꼭 한 권 쓰고 싶다는 욕심. 그 욕심이 눈을 좁게 만들었고, 생각을 짧게 만들어 온 것은 아닌지 반성해본다. 사실 이런 욕심 때문에 아직도 논문을 시작도 못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완전히  핑계다.

물론 그렇다고 《시간을 가져요》가 대충 만든 책이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렇게 짧은 분량으로도 깊은 성찰과 고민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내공이자 미덕이다. 책이 다 책은 아니라는 내 믿음에 전혀 위배되지 않은 그런 책이라 할 수 있다.

내용을 소개할 것도 없다. 짧은 글은 읽는 이에 따라 수 천 수만의 의미를 가질 것이다. 너무나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에서, 그 엄청난 속도를 절반이라도 따라잡겠다고 발버둥치는 속세의 인간들에겐,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 읽어나갈 수 있는 분량이다. 하지만 정 반대이기도 하다. 두고두고 다시 곱씹으며 읽어나가야 할 책이기도 하다.

도대체 시간이 많다, 혹은 없다의 기준은 무엇일까. 사실 시간은 분량으로 수치로 계산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다 죽어도 시간은 있을 것이고,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도 시간은 있었다. 우리는 다만 그 어떤 시기에 잠시 나타나 시간에 따라 흘러가다, 다시 돌아갈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입버릇처럼 “시간이 없다”고 중얼거린다.

생존을 위해 바쁘게 산다고는 하지만 정작 양심적으로 생각해보면 우린 욕심을 채우기 위해 발버둥 치면서 “시간이 없다”고 한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소비를 위한 생산의 시간. 생산을 위한 소비의 시간은 정당화되지만, 그것이 아닌 것은 무의미한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역시 역설이다. 우리는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 우리가 낭비한다고 낭비되는 시간이 될 수 없다.

변명이다. 실미도도 아닌데, 구차한 변명이다. 내가 상처받고, 혹은 나와 다른 이들을 상처 주며 살아가는 우리는 늘 바쁘게 산다는 핑계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그 순간에도 결국 시간을 쓴다고 생각할 것 아닌가.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없다고 푸념을 늘어놓던 그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찰나의, 아니면 아주 잠시 동안의 정적, 멈칫거림, 소소한 빈틈이다. 내 뺨에 스치는 조그만 바람, 침묵의 시간, 어머니의 품에 안겨있던 느린 오후, 어느 새 식어버린 커피.  

우린 소용돌이치는 이 삶 속에서도 문득 소소한 시간을 그리워한다. 정작 우리가 외면해 버렸으면서 말이다.

책은 단순하다. 하지만 전혀 단순하지 않다. 시간이 주는 치유, 그리고 작은 것에서 얻어지는 행복. 판에 박힌 멘트이긴 하지만, 우리는 판에 박혔다는 것만 알지, 그 판에 박힌 것조차 행동에 옮기지 못한다.

조용히, 페이지를 넘기고, 찻잔을 내려놓고, 하늘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보자.

오늘 다른 일은 하지 말고 말이다.

갑자기 얻어진 짧은 휴식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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