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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즐리를 찾아라
자미 바스테도 지음, 박현주 옮김 / 검둥소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황량한 북극 툰드라 지대. 그곳에 커다란 덩치를 가진 어미 곰과 세 마리의 새끼 곰이 움직이고 있다.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곰 가족은 때로는 새끼들의 짓궂은 장난과 어미 곰의 휴식으로 속도가 더디어 지기도 한다. 하지만 곧 묵묵히 다시 태양을 등지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즐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회색 곰을 말한다. 학명은 〈Ursus arctos horribilis〉로,‘공포의 곰’이라는 뜻이다. 엄청난 힘과 덩치로 유명한데, 무게가 1,500파운드까지 나간다고 한다. 하지만 그 덩치에도 전속력으로 달리면 시속 35마일의 속도를 낼 수 있다. 만만치 않은 녀석임에 틀림없다.
《그리즐리를 찾아라》는 캐나다 북서부 옐로나이프에서 광산을 개발하는 아버지를 따라 툰드라를 방문한 벤지가 겪게 되는 모험을 담고 있다. 광산 개발과 함께 주변 동물의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연구팀과 동행하게 된 벤지는 777이라 불리는 어미 곰과 귀여운 새끼 곰들과의 멋진 만남을 통해 어느 덧 자신도 모르게 성장하게 된다.
광활한 툰드라에서 비록 무서울 것이 없는 곰이라 하더라도 생존은 결코 녹록치 않다. 더구나 세 마리의 새끼 곰을 보호해야 할 어미 곰으로선 하루하루가 힘든 여정이다. 더구나 주위엔 인간이라는 최악의 적이 존재하지 않는가.
인간이 붙여준 777이라는 이름을 가진 어미 곰은 새끼들을 위해 목숨을 건 여정에 나선다. 그 사이사이에 닥치는 수많은 어려움. 그리고 인간과의 만남. 이미 인간들로부터 위성 수신용 안테나 목걸이가 걸린 상태인 어미 곰. 하지만 그 어떤 구속도 새끼들을 위한 모성 앞에는 무력해지고 만다.
전체적으로 책은 자연을 마음대로 통제하려는 인간의 오만함을 꼬집는 동시에 아름다운 대자연과 공존하는 동물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과정에 있어 인간은 철저히 손님일 수밖에 없다.
책에서 유독 뛰어났던 것은 어미 곰의 행동과 생각을 묘사한 부분이다. 어미 곰이 보기에 전혀 쓸모없어 보이는 모래 가루를 채취하기 위해 인간은 커다란 잠자리 같은 것을 타고 와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또한 땅을 파고 그 땅에서 무언가를 끊임없이 캐낸다.
“곰이 보기에, 인간들은 매우 이상하게 땅을 파고 있다. 어미 곰이 하듯이 허리를 굽히고 앞다리로 모래를 파내지 않고, 일어선 채로 가장자리 끝에 넓은 게 달린 긴 막대기로 땅을 쑤시고 있다. 그리고 파내게 될지도 모르는 뿌리들이나 동물들보다 모래에 훨씬 더 관심을 두는 것 같다. 두 인간 다 각자 자신의 모래를 담을 하얀색 봉지를 옆에 두고 있다. 한 인간이 모래를 약간 퍼 올려 얼굴 가까이 가져간 다음, 다른 인간에게 흥분된 소리를 낸다. 둘이 함께 그걸 자세히 들여다본다. 어미 곰의 눈에 그 모래가 자줏빛 색조를 띤 게 보인다. 두 인간은 그것을 조심스럽게 봉지에 담고, 파는 일을 계속한다.”
인간들이 찾는 것은 생존을 위한 식물의 뿌리도, 작은 다람쥐도 아니었다. 다이아몬드 광석이었다. 전혀 쓸모없는 광석을 캐내기 위해 인간들은 목숨을 걸고 툰드라를 누비고 있는 것이다. 어미 곰에게 인간이란 존재는 그야말로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럴듯하게 잘 만들어진 할리우드 영화와는 달리 책은 곰들의 생활과 인간과의 갈등을 드라마틱하게 꾸미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설명한다. 물론 여러 차례 모험과 긴장의 순간들이 있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작위적이지 않고 꾸밈없어 보인다. 소설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물론 흥미를 위한 장치들은 주변 주변에 숨어 있고, 찾아내는 것 역시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버스터라 불리는 난폭한 수컷 곰의 등장과 결말 부분은 다소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전체 소설을 무너뜨릴 정도의 티는 아니다.
《위대한 왕》이라는 소설을 읽은 기억이 있다. 아주 오래된 책이었고, 아주 오래전에 읽었다. 시베리아 호랑이의 이야기다. 생존을 위해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호랑이는 결국 인간들의 손에 의해 삶을 마치게 된다.
인간이 지구상에 등장해 살아온 동안 지구상에서 사라진 동물과 생물은 과연 얼마나 될까. 지금도 얼마나 많은 생명체들이 이 땅과 바다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을까. 마치 우리가 신이라도 되는 양, 우리 맘대로 그들을 보내도 되는 것일까.
책은 곰과 인간과의, 자연과 문명과의 화해를 꿈꾼다. 비록 서툰 몸짓이지만 필요한 일이다. 시간이 갈수록 자연과 멀어지고 있는 인간에게, 777호의 삶은 마지막 경고일지도 모른다. 자연을 정복했다는 오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결국 인간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임을.
어미 곰과 그 가족들의 행복한 삶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