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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지도를 통해 본 김정일의 리더십
이관세 지음 / 전략과문화 / 2009년 7월
평점 :
자칭 국가를 너무나 사랑하신다는 연로하신 분들이 주축이 되어 《친북인명사전》을 곧 발간한다고 한다. 《친일인명사전》발간을 계기로 뭐가 좀 찔리신 건지, 아님 진정 이 나라를 적화통일의 야욕으로부터 구하시려는 “구국의 결단”을 하신 것인지 암튼 세상 참 재미있게 돌아간다는 느낌이다.
난 북을 공부했다. 그리고 하고 있고, 관련된 일을 해서 먹고 산다. 내가 만약 조금 이름이 알려진 유명 인사였다면 그 사전에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누렸을지도 모르겠다. 에이! 아쉬워. 아직 내공이 덜 쌓였다. 기라성 같은 분들이 강호를 누비고 있는데, 내 일천한 실력이 드러날 리 없다. 하지만 분발하여 열심히 할 테니 추후에도 사전을 발간할 예정이시라면 내 이름도 꼭 기억해 주시라.
우리는 기형적으로 근대화를 맞이했고, 기형적으로 분단이 되었으며, 기형적으로 이데올로기를 수입했다. 여지없는 사실이다.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에 속해있다 냉전의 실험장이 되었고, 공산주의가 누구네 강아지 이름인지, 민주주의, 자본주의가 어느 동네 사는 뉘 집 아들의 이름인지도 모른 채 우린 가족을 살해했고, 형제를 묻었으며, 이웃을 밀고했다.
그리고 이른 바 조국과 민족을 너무나 사랑해서라는 명분으로 권력자들은 분단을 이용했다. 남북 모두 적지 않은 책임이 있으며, 죄과를 가지고 있다. 이 역시 반론의 여지가 없다.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A4 분량 40~100페이지로 사실에 입각하여, 반론을 제출하시라.
빌어먹을 이데올로기로 수많은 이들이 죽었다. 이별했다. 그리워하다 죽어갔고, 이제는 굶어 죽고, 맞아 죽고, 열 받아 죽고 있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내년이면 한국전쟁의 발발 10주년이 되지만, 우리는 그래도 희망을 안고 있다. 6․15 공동선언 10주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북은 가난하다. 70년대 중반까지 우리보다 잘 살았지만, 이젠 아니다. 경제적 격차를 더 이상 언급할 가치도 없다. 많게는 수백 대 일이라는 통계도 있다. 그 정도로 북은 가난하다. 상대적으로 우리가 살벌하게 빠른 시간동안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소리도 될 것이다.
하지만 결국 다 소용없는 짓이다. 우리만 잘 산다고, 우리만 먹고 살 만 하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북의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에 우리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아니 그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비극적 종말은 시간 차이만 있을 뿐, 예정된 수순이다.
그렇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식민지로 나라를 홀라당 먹혀버린 할아버지, 그 윗세대를 욕하고, 전쟁과 분단으로 한반도를 다시 만신창이로 만든 아버지 세대를 욕하면 끝인가? 아님 기적의 경제성장을 이룬 아버지 세대와 피 흘리며 민주화를 이루어놓고 그 과실은 자기들끼리 다 해먹은 다음, 젊은 세대들에겐 88만원만 안겨준 삼촌 세대들을 숭배할 것인가.
분단은 영구화되어야 할까? 그냥 이대로 약간 찔리지만 북을 외면한 채 우리끼리 한 번 한 오백년 잘 살아볼까? 정녕 그것이 대한민국이라는 반쪽의 미완국의 영광을 안겨다 줄 것인가.
《친북인명사전》을 만든다는 분들. 미안한 이야기지만 어서 빨리 자연으로 돌아가시라. 차라리 다른 생명들의 귀하디귀한 성장의 밑거름이 되시라. 잘 이해가 안 되는 분들이 있을 것 같다. 그냥 죽으시라. 민족적 양심, 아니 최소한의 인간적 양심도 없이 천박한 사상과 아집으로 가득 찬 그대여. 이제 그만 되었다. 깔끔하게 뒈지시라.
아니 돌아가시기 전에 한 가지 꼭 하시고 가실 것이 하나 있긴 하다. 《친북인명사전》에 첫 장에는 반드시 박정희의 이름 석 자를 담길 바란다. 남로당 최고급 간부 중 하나였다가, 여순 반란 사건 직후 숙군 과정에서 자기만 살겠다고 군내 모든 남로당 간부들의 이름을 불어버린, 그래서 결국 그들을 모두 죽게 만든, 비열한 이름도 꼬옥 담길 바란다. 그러니 5․16 이후 김일성이 “얘가 우리 편인가” 긴가 민가 해서 특사까지 보냈겠지만. 박정희는 공산주의, 사회주의는 뭔지도 모른 채 단지 출세 좀 해보겠다고 공산당이 된 “무늬만 골수” 빨갱이였다.
통일은 결국, 아니 먼저 일단 통일을 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먼저 상대방을 알아가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북이 잘못된 체제라고(우리가 보기에) 무조건 부정하고 말살하려는 태도는 아무런 이득을 얻을 수 없다. 역지사지의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일단 알아야 뭔 대화를 해도 할 것이 아닌가. 그냥 솔직하게 대화하기 싫고, 모조리 싹 다 죽여 버리고 싶다면, 공멸을 각오하고 미국님과 일본님의 허락을 구하고, 중국님과 러시아님의 눈치를 보면서 적당한 기회에 밀고 올라가든가. 물론 역대 대통령 중 그 정도 용기(라고 하면 좀 그렇고, 미친 깡이)있었던 이는 없었다.
김영삼은 성질나면 한 판 붙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막상 클린턴이 전쟁을 결심하고 한국에 있던 미국인들을 빼내자, 그 때서야 후들후들 떨며 “제발 전쟁을 하지 말아달라”고 미국에게 구걸했다. 너무나 무서웠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 카터가 김일성을 만나지 않았다면? 영변을 미군의 폭격기가 쓸어버렸다면? 상상해보시라. 나는 어쩜 이렇게 자판을 두드릴 수 없었을지 모른다.
MB는 과거 두 정권의 대북정책을 부정하며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정권을 잡은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버릇을 고쳐놓겠다”는 마인드에서 단 한 발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북이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이자 “거봐, 갈구니까 쫄아서 대가리 숙이고 들어오잖아”이러고 있다. 아이큐 문제도 있겠지만, 주변에 있는 브레인들이라는 것들이 죄다 광우병에 걸린 듯한 모습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미치광이 부시 덕분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핵무기까지 완성시킨 북이 과연 남에게 쫄아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경제제재, 유엔의 압박 이 따위 것들을 모조리 다 웃어넘기는 북이 과연 MB의 기침소리에 주눅이 들어 저러고 있을까. 장난 하냐?
지금 한반도는 그야말로 긴장의 만성화된 모습이다. 이제 웬만한 것에는 놀라지도 않는다. 서해에서 교전이 벌어져도, 우리가 이겼으니까 만사 오케이란다. 장난 치냐? 북은 반드시 당한 만큼 갚는다. 상식 아닌가? 그렇다면? 양쪽 누구든 한 번의 판단 착오가 바로 확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확전은? 공멸을 의미한다. 오세훈이 아무리 서울을 디자인 도시로 바꾼다고 리틀 삽질을 해도, 1~2시간 내에 잿더미로 변할 수 있다.
전쟁은 막아야 한다. 막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끊임없이 북과 대화해야 한다. 지금 북은 우리가 대화를 하겠다고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하잔다. 그런데 우리는 싫단다. 왜? 더 머리를 숙여야 한단다. 북이 “저희가 죄송했어요. 잘못했습니다. 각하!”이래야 움직일 수 있단다.
10만 톤씩 주던 식량 지원을 1만 톤 해주고 생색이다. 그것도 옥수수 가루다. 북이 아무리 가난하다고, 거지 취급을 해도 되는가? 이젠 원조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라고 자랑하면서, 정작 북은 죄다 굶겨 죽여야 속이 시원하신가? 정녕 그것을 원하시는가?
군 복무 기간을 줄인다고 개소리하기 전에 전체적인 국방부 개혁이나 해라. 물론 절대 못하시겠지만. 북의 핵을 없애겠다고 하기 전에 일단 북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 때문에 핵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는지를 먼저 헤아려라. 정녕 지긋지긋한 분단을 끝장내고 통일을 하겠다면 말이다.
북을 연구한 것은 역사가 얼마 되지 않는다. 이른 바 적화통일을 막고 북을 이기기 위한 소수의 정보 공유, 연구가 아닌 일반 학문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직 북의 출판물, 방송 등을 마음대로 볼 수 없는 기형적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만큼 북에 대한 연구는 중요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임해야 한다.
아직도 북을 찬양하고, 적화통일을 선동하는 이른 바 “주사파”가 국내에 득시글하다고 믿는 이들도 물론 있을 것이다. 안타깝고 불쌍하지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렇게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연 요즘 대학생들에게 《노동신문》이나 《근로자》 같은 북 출판물을 보여준다고 그들이 거기에 환장해서 월북이라도 할 거라고 믿는가? 한 페이지나 제대로 읽겠나? 지독히도 재미없는데?
《현지지도를 통해 본 김정일의 리더십》은 통일부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며, 통일부차관을 역임한 저자의 그동안의 경험과 이론이 충실히 뒷받침된 책이다. 저자의 박사 논문을 수정 보완하여 책으로 낸 것이기에 다소 지루한 면이 없지 않지만, 김일성부터 시작된 현지지도가 가지고 있는 위상과 역할, 그리고 현지지도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 동력을 파악하는데 용이하다. 아울러 북의 역사까지 개괄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북을 전공하는 이들 외에도 읽어볼 만한 수준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승만, 박정희와 전두환, 노태우가 거저 대통령을 해먹은 것이 아니다. 나름 엄청난 노력을 해서 이룬 것이 아닌가. 아마 뉴라이트들도 이것은 인정할 테지. 그렇담 김일성은? 김정일은? 그들이 거저 권력을 쥐었겠는가. 그들이 권력의 정점에 서게 된 과정, 그 이유, 동력은 무엇인지 알아야 할 것 아닌가? 그래야 포스트 김정일을 대비할 수 있고 그들의 국가 운영 시스템을 알 수 있지 않겠나.
북을 비난하고 욕하고 하는 인간들 대부분 북에 대한 사소한 정보마저 모르거나 왜곡해 알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냥 본능적으로 싫은 것이다. 하지만 공짜 점심은 없다. 이기려 해도 알아야 이긴다. 이 부분에선 뉴라이트들이 신경 좀 쓰시라.
공부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북 이야기가 나오면 흥분하고 열 받는다. 어쩔 수 없다. 통일을 가로막고 그 이익을 누리는 개자식들이 여전히 설치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이들이 통일을 위해 모든 것을 던졌지만, 그런 분들의 희생을 하찮게, 불편하게 여기는 개자식들이 여전히 설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이다. 알아야 한다는 것이. 알아야 이긴다. 참고로 오바마가 바쁜 일정으로 인해 한반도를 공부한 것이 이제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제야 미국의 한반도 정책이 제대로 가동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우리는 미국이 하라는 대로 끌려가기만 할 것인가? 몰살이 눈에 보이는 아프간 파병이나 하고?
어찌 보면 따분한 책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남북문제, 한반도의 미래가 불투명한 지금 상황에서 정말 따분한 것은 아직 시작도 안 했을지 모른다. 공멸 후에 적막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