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필름 클럽
데이비드 길모어 지음, 홍덕선 옮김 / 솔출판사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대부분 장르에 차이는 있을지언정 영화 자체를 싫어하는 이들은 별로 없을 듯하다. 영화가 한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이란 얼마나 강력하고도 지속적이던가. 초등학교 시절 보았던 《ET》와 《킹콩》에 눈물을 흘렸고, 중학교 시절 동네 동시상영관에서 만난 유덕화와 장만옥은 영원히 잊을 수 없다.

나이를 먹고 점차 삶에 치이는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날들이 이어져도, 가끔씩 스크린에 펼쳐지는 또 다른 세상에 위안을 얻고 때로는 함께 눈물 흘릴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분명 축복이고 위안이자, 애절함이다.

책은 여러모로 나에게 적지 않은 즐거움을 전해줬다. 일단 옛 고전들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켜줬고, 잊혀진 배우들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다시금 내 영화 리스트를 들쳐보게 했고, 다시 한 번 꼭 봐야겠다고 메모하게 된 영화가 늘어났다. 제임스 딘의 고독한 얼굴이 돌아왔고, 말론 브란도의 단호한 입술, 장국영의 슬픈 눈과 잭 니콜슨의 광기가 되살아났다. 물론 잉그리드나 오드리와 같은 영원한 천사들도….

영화는 다른 전달매체에 비해 놀랄 만큼 큰 파괴력을 가진다. 물론 책 역시 평생의 기억으로 남게 되지만, 스크린에 펼쳐지는 어느 한 장면은 때론,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삶의 파편이 된다. 그리고 사는 내내 무의식중이라도 삶의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젊음의 방황을 제대로 겪고 있는 아들과 함께 영화를 본다. 그것이 다다. 학교에 갈 필요도 없으며, 따로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영화를 함께 보며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그뿐인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것이 학교에서는 도저히 배울 수 없는 삶의 지혜를 나누는 이 세상 최고의 수업이었음을 아들은 이제 깨달았을 것이다.

사랑으로 힘들어하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좌절하는 아들. 하지만 정작 자신도 직업을 잃어버린 백수. 모든 것이 마음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절망의 순간. 부자는 영화를 본다. 스크린 안에 수많은 인물들이 겪는 고통과 환희, 기쁨과 절망을 함께 한다. 감독의 세세한 표현 하나 하나를 찾아 함께 감탄하고, 때론 별 시답지 않은 그저 그런 영화를 보면서, 왜 이런 영화에 사람들이 열광했는지 궁금해 하기도 한다. 이들의 영화는 곧 치유의 그것에 다름 아니었다.

영화는 분명 멋진 친구다. 때론 연인이고, 때론 아버지다. 누구나 내 인생 최고의 영화를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책을 덮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내 인생 최고의 영화는 무엇이었을까. 눈물을 흘리며 감동에 북받쳐 보았던 영화들이 너무 많아 딱 꼬집기는 너무 아프다.

그런데 생각해봤다. 내가 아버지와 영화를 함께 보았던 적이 언제였던가. 결혼하기 전에는 그래도 간간히 본 것 같은데, 그 이후에는 없던 것 같다. 극장을 함께 갔던 적은? 기억이 거의 없다. 아마 《ET》가 마지막이지 않았을까. 아버지 못지않게 무뚝뚝한 녀석이라.

그런 점에서 제시가 참 부럽다는 생각도 든다. 영화에 상당한 내공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를 가져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이었다. 함께 영화를 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아버지를 가졌다는 것은 얼마나 행운인가. 흔치 않은 일이다.

문득 아버지와 함께 영화를 봐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전에는 내가 먼저 영화를 본 뒤 ‘이건 아버지랑 봐도 무난하겠다’싶은 것들을 주로 봤는데, 이젠 뭐 함께 야시시한 영화를 봐도 될 나이 아닌가. 물론 여전히 그런 영화를 함께 본다는 것은 일정한 긴장감을 동반하겠지만.

아버지는 《타이타닉》을 참 재미있게 보셨던 것 같다. 흔치 않게 사운드트랙까지 구하셔서 주제가를 즐겨 들으신다. 아버지께 타이타닉 DVD를 선물로 드릴까 생각도 해본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진작 사다드리지 못한 게 이상할 정도다.

매우 흥미롭게 책을 읽었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영화들을 다시 한 번씩 봐야 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 아직은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내 아이에게 어떤 영화를 추천해줘야 할까 고민해볼 생각이다. 이 녀석이 언젠가는 야시시한 영화를 들이밀며 “아빠~이 영화 같이 보실래요?”하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그런데 딸이면 어쩌지? 같이 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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